전주리싸이클링타운, 10개월 간의 투쟁과 남겨진 과제

전주리싸이클링타운, 10개월 간의 투쟁과 남겨진 과제

손종명(공공운수노조전북본부 조직국장)

2024년 1월 1일, 새해벽두부터 전주리싸이클링타운에서는 11명의 노동자가 해고됐다. 예견되었던 집단해고였고, 그에 맞서 노동조합은 1월 3일 천막농성을 시작으로 원직복직 투쟁에 돌입했다. 투쟁을 시작한지 10개월, 302일이라는 시간이 흘러 마침내 해고자 전원 복직이라는 합의를 이뤄낼 수 있었다. 길고도 혹독한 시간을 거쳐 이뤄낸 합의였다. 전주 곳곳의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시청과 오거리광장의 천막농성장에서, 시청 출입구 앞에서, 민주당 도당사에서, 국회에서 우리는 ‘해고는 살인이다!’, ‘악질적 민자투자사업을 중단하라!’고 목이 터져라 절박하게 외쳤고, 포기하지 않고 싸웠다. 격렬했던 지난 투쟁의 과정을 복기하고 그 의미와 남겨진 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주관운영사 변경과 노조파괴를 의도로 한 집단해고

2023년 10월, 느닷없이 전주리싸이클링타운의 운영사였던 에코비트워터가 ‘주관운영사’가 변경된다는 공문을 노동조합으로 발송했다. 2년이나 질질 끌렸던 2022년 임금합의의 서명 잉크도 마르지 않은 때였고, 전주리싸이클링타운 운영 개선을 위한 노사정 운영위원회가 첫 발을 떼려던 시점이었다. 공문의 내용은 2024년 1월 1일부터 주관운영사를 에코비트워터에서 성우건설로 변경하며, 그에 따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규채용 설명회를 진행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운영사 변경에 따른 고용불안이 예상됨에 따라 사측과의 교섭, 전주시와의 협의에 나섰으나 어느 누구도 노동자들의 생존권은 안중에도 없었다. 에코비트워터는 주관운영사 변경은 법적으로 고용승계 책임이 없다고 했다. 성우건설은 고용승계는 확답할 수 없으나 일단 신규채용 절차에 응하라는 입장이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시설의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전주시의 반응이었다. 주관운영사 변경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답변과 함께 고용문제에 대해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발뺌했다.

당시 전북평등지부 소속 전주리싸이클링타운분회 조합원은 15명이었다. 이들은 성우건설의 신규채용 절차에 응했다. 조합원들 모두 전주리싸이클링타운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채용 절차에서 11명의 조합원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성우건설에 채용되지 않았다. 4명의 조합원은 채용이 확정된 직후 노동조합에 조합원 탈퇴서를 보내왔다. 에코비트워터는 기다렸다는 듯이 채용되지 않은 조합원 11명을 강릉, 평창, 시흥, 화성, 평창 등 연고도 없는 원격지로 인사발령했다. 주관운영사 변경을 빌미로 그동안 시설의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온 눈엣가시 같은 노동조합을 파괴하겠다는 운영사들의 의도가 명확했다.

지자체의 방관 속에 불법과 편법의 온상이 된 민자투자사업

사실 이번 주관운영사 변경과 집단해고 사태는 갑자기 터져 나온 돌출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이전부터 민간투자사업(BTO)이라는 이름 아래, 전주리싸이클링타운의 운영사들은 이윤 추구를 위해서 실시협약을 비롯해 관련 규정을 얼마든지 무시해왔다. 기준치를 초과하는 악취는 몇 년이 지나도록 어떤 개선도 이뤄지지 않았다. 처리 공정을 임의로 생략하하여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음폐수를 무단으로 방류해왔다. 타지역 음폐수를 불법적으로 반입하여 처리하면서 이익을 챙기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는 명백히 실시협약과 관련 법규를 위반하는 행태였지만, 운영사들은 거리낌 없었고, 주무관청인 전주시는 불법 행위들을 사실상 수수방관해왔다.

2024년 자격 미달 업체인 성우건설로의 ‘주관운영사’ 변경은 그 불법과 편법의 정점이었다. 실시협약에는 운영사 변경 시 ▲폐기물 처리 실적 등 자격 요건 충족 ▲주무관청의 사전 승인이라는 명확한 규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운영사들은 폐기물 처리 경험이 전무한 성우건설은 시설의 운영사로 내세웠고, 전주시의 승인 절차조차 무시했다. 공식 문서 어디에도 없는 ‘주관운영사’라는 용어를 자의적으로 사용한 것은 절차를 회피하려는 얄팍한 수작이었다. 이러한 탈법적인 운영사 변경이 가능했던 것은 그동안 전주시가 실시협약 등에 명시된 관리감독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법 행위를 제재하고 정상화를 요구해야 할 주무관청의 침묵은 결국 운영사들이 더 대담한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셈이다.

리싸이클링타운 실시협약 제42조(유지관리 및 운영 관련계약)

전주시는 사태를 바로잡을 권한과 책임이 있었다. 실시협약에 근거하여 운영사의 자격 미달과 절차 위반을 지적하고 변경을 불승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주시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초기에는 주관운영사 변경에 절차적 문제가 없다고 발뺌하다가, 문제가 공론화되자 뒤늦게‘공동운영’이라는 기형적인 방식의 운영사 변경을 사후 승인하며 면죄부를 주는 행태를 보였다. 이렇게 전주시는 방관범에 이어 운영사들의 불법 행위에 공범이 되기를 택했다. 이 무책임한 행정은 노동자 11명 집단해고라는 결과로 직결되었다. 전주시가 주무관청으로서 제 역할을 다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새해를 아스팔트 바닥에서 맞이하며 투쟁을 시작했다

2024년 1월 1일, 11명의 조합원들이 전주리싸이클링타운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1월 3일부터 전주시청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이 시작됐다. 조합원들은 새해벽두를 해고투쟁으로 맞이했고,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겨울을 아스팔트에서 보냈다.

우리는 이 집단해고 사태에 대해 전주시의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전주시는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민간 운영사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급급했다. 나아가 전주시는 조합원 11명 중 일부가 해고를 받아들이면 자신들이 운영사를 설득해서 일부는 살려보겠다는 인면수심의 제안을 하기도 한다. 이 와중에 성우건설은 어용노조를 앞세워 우리의 투쟁을 비난하고 전주리싸이클링타운 운영사 변경 문제를 제기해온 시의원을 공격하는 저열한 행태를 보였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할 수 있는 투쟁을 해나갔다. 매일 시청, 성우건설을 비롯해 전주시내 곳곳에서 선전전과 행진을 이어갔다. 매주 촛불문화제를 열고, 공동대책위 차원의 수요일 시민발언대가 진행되며 연대의 힘을 모아갔다. 언론 간담회, 수많은 기자회견을 통해 리싸이클링타운의 부적절한 운영 실태를 끊임없이 폭로했다. 감사원 공익감사청구 서명운동을 벌여 2,883명의 시민들과 함께 전주시의 관리감독 부실 책임을 묻기도 했다. 공공운수노조 중앙과 전북본부, 민주노총 전북본부 차원의 결의대회도 이어졌다. 투쟁 속에서 우리의 외침은 조합원 11명의 원직복직을 넘어, 민간투자사업의 구조적 폐해를 고발하고 사회기반시설의 공공성을 바로 세우라는 요구이기도 했다.

리싸이클링타운 운영사 변경 감사청구 돌입 기자회견(2024년 2월 20일)(사진 : 전주MBC)

예견된 인재, 5.2 가스폭발 참사

투쟁이 한창이던 5월 2일 저녁, 참담한 소식을 접했게 됐다. 전주리싸이클링타운의 지하공간, ‘중층’이라 부르며 위험성을 수없이 경고했던 그 공간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발생해 5명의 노동자가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 가스폭발 사고로 재해자 중 한 명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단순한 사고라고 할 수 없었다. 이것은 명백히 예견된 인재였다. 노동조합은 2019년부터 노사협의회를 통해 중층의 지독한 악취와 유해가스 문제를 제기하며 환기시설 개선, 가스감지기 설치를 요구해왔다. 2023년 노동환경 실태조사에서도 환기시설 미비와 가연성 가스 축적 위험이 지적됐다. 그런데 이런 공간에서 플라스틱 배관 교체 및 연결을 위한 토치 작업이 이뤄지면서 폭발 사고로 이어지게 됐다. 원래 설비대로라면 스테인리스 배관이 설치되어야 했다. 하지만 비용절감을 이유로 플라스틱 배관을 설치하면서 가연성 가스가 발생 및 축적되는 곳에서 화기작업이 이뤄지게 됐다. 자본의 이윤 논리 앞에서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이 또다시 무참히 짓밟힌 것이다.

사측과 전주시는 그동안 시설 안전과 관련되어 제기된 경고를 무시했다. 운영사는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해온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내쫓겼다. 해고투쟁을 진행하면서도 시설의 위험요인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폐기물처리 시설 운영 경험이 전무한 성우건설로의 운영사 변경은 어느 때보다 안전사고의 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을 줄기차게 해왔다. 하지만 전주시는 이 모든 우려를 외면하고 무책임한 민간기업들에 시설 운영을 내맡긴 채 방치했다. 전주시는 이 가스 폭발 사고에서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몬 공범이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불인정 이후
이어진 더불어민주당, 국회 대응 투쟁이 투쟁의 분수령이 되다.

법적 대응도 병행했다. 1월, 우리는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접수했다. 4월 11일, 지방노동위원회는 성우건설을 사용자로 한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고용승계 기대권이 인정되며, 합리적 이유 없이 조합원들만 고용승계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정이었다. 하지만 지방노동위원회의 판단에 사측은 불복했고 이어진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지노위 결정은 뒤집히게 됐다.

중앙노동위원회 판정 이후 행정소송으로 넘어갈 경우 법적 대응에 기댄 복직은 기약 없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파열구를 만들어내야만 했다. 그렇게 8월 9일, 우리는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 과정에서 경찰력이 투입되는 상황까지 갔지만, 결국 지역 국회의원들과의 면담 약속을 받아내며 농성을 종료했다. 이후 진행된 전주지역 국회의원들과의 면담을 계기로 지역 정치권이 비로소 문제 해결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 시기 우범기 전주시장, 태영건설 대표에 대한 국정감사 증인 채택 1만인 서명운동이 진행됐고, 국회 토론회 등 국회 대응사업이 병행됐다. 태영건설 최금락 부회장은 환노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사회적 대화 참여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정치권 대응 투쟁이 얼어붙었던 국면에 변화의 기류를 만들게 됐다.

복직은 투쟁의 끝이 아니라 리싸이클링타운 정상화의 출발점이다

마침내 9월 11일, 노동조합, 운영사, 전주시, 더불어민주당(지역 정치권)이 참여하는 ‘전주리싸이클링타운 정상화를 위한 공동합의’가 타결되었다. 해고자 11명 전원 복직을 핵심으로 하고, 시설 안전 및 환경 개선을 비롯한 시설 정상화에 대한 내용이 담긴 이 합의는 9개월간 이어진 우리 투쟁의 성과였다. 공동합의 이후 2차례의 실무협의를 거쳐 10월 28일, 구체적인 복직 조건과 시기를 명시한 최종 합의문 작성이 이뤄졌다. 그리고 11월 4일, 해고 노동자들은 마침내 일터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전주리싸이클링타운 투쟁은 단순히 11명의 복직만을 목표로 하는 싸움이 아니었다. 민간투자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공공성이 어떻게 훼손되며, 노동자의 정당한 목소리가 어떻게 묵살되며, 민간 자본의 이윤 논리 앞에 안전이 어떻게 뒷전으로 밀려나는지를 뼈저리게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해고자들의 복직은 투쟁의 끝이 아니라, 전주리싸이클링타운 정상화를 위한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이 투쟁의 주요 성과 중 하나는 전주리싸이클링타운 운영 정상화를 위한 노사민정 협의체 구성에 대한 합의다. 노사민정 협의체는 전주리싸이클링타운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근본적인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논의기구를 통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요구됐다. 하지만 합의 이후 6개월이 흐른 현 시점까지 협의체 구성은 이뤄지지 않았다. 운영사 측이 공동대책위원회가 협의체에 들어오면 자신들은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들이 합의한 내용조차 손바닥 뒤짚듯이 모르쇠하는 운영사들은 최근 전주시에 사용료 인상 등 금전적 지원을 요구하며 어떤 반성도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파렴치한 자본에 맞선 우리의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10개월 간의 해고 투쟁,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외롭게 투쟁하지는 않았다. 함께 어깨 걸고 싸워준 동지들이 있었고, 물심양면으로 연대하고 지지해 주신 전주리싸이클링타운 공대위를 비롯한 수많은 연대단위가 우리 곁에 있었다. 연대의 힘으로 일궈낸 투쟁의 성과가 유실되지 않고 전주리싸이클링타운이 노동자에게 안전한 일터로, 시민들에게 환영받는 공간으로 거듭날 때까지 우리의 투쟁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Post Author: 전북노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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