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노동자교류, 2023년 일본 답사기
일본 노동운동에서 배우다 –
김연탁 (아래로부터 전북노동연대 사무처장)
민주노총전북본부 국제교류위원장직을 2019년부터 어느덧 5년째 맡고 있다. 2020년 코로나 시국이 시작되면 서, 3년 동안 대면교류가 중지되었다. 1989년부터 30여년 이상 이어져온 한일노동자연대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다. 『去者日疎, 來者日親(거자일소, 내자일친)』이라는 말이 있다. 의역하면,“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게 되고, 자주 만나는 사람은 갈수록 친해진다.”
는 말이다. 지난 3년 여 동안 화상교류, 선물교환, 공동성명 등 서로 멀어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이러한 노력이 과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쓴소리를 많이 듣고 있지만, 한일노동자연대는 인터내셔널 정신의 연장선이며 일본노동운동과 활동가에게서 배울 점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살배기 어린 아이에게도 배울 점은 있다.’는 말이 있지 않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 노동운동이 바닥이고,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일본의 노동운동 제반 조건이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민주노총과 같은 내셔널센터도 없을 뿐 아니라, 거리 집회도 익숙지 않고, 총파업과 같은 투쟁은 생각할 수도 없다. 대정부 투쟁 및 요구안도 낯설다. 오랜 보수정당 집권, 총평의 해체와 랭고(연합) 설립, 사회당 해체 등 전반적 사회보수화에 기인한 결과 다. 하지만,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시절에도, 군사독재시대에도 노동운동가들은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다. 1995년 민주노총 창립 이전의 노동 운동이 지금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노동운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과 진실한 활동가의 존재 유무다.
필자가 보기에, 일본 노동자들은 운동에 진심인 것 같다. 특히, 일한민주노동자연대의 동지들의 활동과 연대가 오사카와 고베에서는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이번 방문에서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친 방문에서, 『오사카연대넷』이 환영회를 주최해왔다. 하지만, 이번 주최는 일한민주노동자연대였다. 그러나, 참여 단위나 참가 인원 수는 예년에 비해 크게 변화가 없었다.
현장교류회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예전에는 방문의 형식이었다. 즉 사무실을 방문하면, 주로 내근하는 간부들과 인사를 나누고 방문하는 단체의 현안을 듣고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끝났다. 단편적인 질의응답이 이루어지기는 해도 방문단의 의견을 듣거나 한국 노동운동에 대해 거꾸로 질문하지는 않았다. 소요시간도 1시간 내외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간사이 레미콘지부, 전항만노조 오사카지부, 전항만노조 고베지부, 무코가와 유니온 총 네 장소에서 현장교류회를 진행했다. 진지한 토론이 이어지며 소요시간도 2시간을 훌쩍 넘겼다. 자신들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의제임에도 고령의 노동자들이 2시간 넘게 꿋꿋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놀랐다.
아와지시마에서는 교류회를 요청해와서 혼시해협버스 분회와의 교류회가 즉석으로 이루어졌다. 나카무라 선생님은 안절부절했지만, 조합원과의 교류회는 긴장감 있으면서도 재미있었다. 조직화에 대한 고민, 사측과의 투쟁에 대한 고민, 조합활동에 대한 고민들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특이점은 청년 노동자들이 예년에 비해 많아졌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일한민주노동자연대 동지들이 있다. 민주노총전북본부와 일한민주노동자연대는 28년 동안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공유하고, 실천해왔다. 일한민주노동자연대 동지들은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에 대해 그 반성과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그래서, 방한 때마다 위안부 집회에 참여하고, 윤석열과 기시다의 징용공 합의에도 반대하고 있다. 관동대지진 100주년을 맞이하여 조선인 학살문제를 재조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재일한국인과 조선학교 차별과 탄압에 분노하며, 일본자본의 한국에서의 노동탄압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투쟁과 동북아평화문제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모임과 학습을 통해 노동운동의 전망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해오고 있으며, 한국어도 공부 중이다. 일본 노동자들은 한국 노동자들을 진정한 파트너로 여기며, 한국 노동자 맞이에 소홀함이 없다. 그래서, 방일단에 참여한 한국의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그 정성에 감동한다. 한일노동자연대운동에 참여하면서, 노동 운동에 있어 국경은 무의미하며,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말이 진리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비해 한국 노동운동은 한국군의 베트남전쟁의 파병과 민간인 학살에 대해, 이주노동자와 재외국민들의 고통에, 개발도상국에서의 한국기업의 노동탄압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낸 적이 있는지 반성하게 된다. 한국 노동운동은 (기업)이기주의 심화, 관료화, 노령화, 노동자들의 의식과 실천력 저하 등 전반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속에서 활동가들은 전망을 찾지 못한 채 소진되어 가고 있다. 소통과 논의·연대·희망·활동가재생산 부재의 현실은 반전의 계기조차 어렵게 만든다. 이제는 한국 노동운동의 희망을 장담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을 겸허 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일한민주노동자연대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노동 연구회에서는 ‘노동운동,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며, ‘교육’을 대안으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일본 노동자들이 노동운동 강화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긴밀하게 소통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