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100주년? 건국70주년?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일각에서는 건국 100주년으로 칭하며 기념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상해 임시정부가 1919년 4월 11일 수립되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진영에서는 10여년 전부터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로 기념해야한다고 주장하며 논쟁에 불을 지펴오고 있다. 뉴라이트 진영에서 제기된 주장을 반정립하려다 보니 건국 100주년을 지지하는 주장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건국 100주년이라는 주장이야말로 정통 우익ㆍ반공주의에 기초한 입장이다.
애초 1948년 수립된 남한 단독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주장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제기한 것이다.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했고, 자신의 취약한 정당성을 보충하는데 임시정부를 활용하려 했다. 그 이후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임정법통론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다시 수면위로 나오게 된 것은 전두환 정권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였다. 80년대 민중운동이 성장하면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던 역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항일민족운동이 주목받게 되자, 좌익이 아닌 민족주의 세력을 찾으면서 임시정부로 이어진 것이다.(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과 기념식 다시 보기, 윤대원) 87년 개헌에서 헌법전문에 임시정부 법통론이 포함되게 된 배경이다.
정작 해방정국에서 활동했던 좌익계열 운동가들은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건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박헌영, 여운형, 최용달 등이다. 건준은 3개월만에 해체되어 공산당 계열의 인민공화국으로 재편되었고, 인공은 인공, 임정을 동시에 해체한 뒤 통일위원회를 결성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해방 직후 임시정부 계승을 처음 주장했던 것은 우파계열인 한민당, 김구 등이었다. 당시 이승만은 이를 소극적으로 지지했고, 1947년 신탁통치를 둘러싼 대립이 심화되는 과정에서는 아예 부정적인 입장으로 선회한다. 김구 등이 남북 공동정부 수립을 주장하면서 임정법통론을 제기했기 때문인데, 이승만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으로 기울어 있었다. 이후 남한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이 이루어지고 나서, 단독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상의 과정에서 드러나듯이 임시정부 법통론은 상황에 따라, 정파적 이해에 따라 여러 세력에게 혼용되어 왔다. 공통적인 것은, 임시정부 법통론이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전개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상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박헌영은 임시정부를 망국정부로, 임시정부요인들을 망국인사로 칭했다. 여운형도 ‘중경 임정을 환영하는 자들은 아무런 혁명 공적이 없는 자들로 호가호위하려는 것’이라고 맹비난한다.
임시정부 법통론은 북한 정부 수립과도 상충된다. 이승만 정권은 자신들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북한 정부를 괴뢰정권으로 규정했다. 올해가 건국100주년이라는 주장 안에는 북한과 공존의 여지가 없다. 이런 많은 문제들이 있음에도 문재인 정부가 건국100주년을 공식화시키는 것은 소극에 불과하다.
문제는 뉴라이트의 주장과 배치되기만 하면 다 옳다는 식의 무지가 사회 곳곳에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민주노총의 올해 정기대의원대회(67차) 결의문(안)에도 건국100주년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었다. 대회 무산으로 결의문이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세간의 조롱이 될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