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를 봤어
붉은 꽃을 보면 피가 끓고
흰 꽃을 보면 눈물이 터지는
그러니까 고등학교 일학년 때
죽을 것 같은 급성 페렴을 앓고 일어섰던
그 환한 봄날 친구들과 걸었던
기찻길 옆 뽕밭길 전북대학교 정문 앞 거기였어
난생 처음 탱크를 보았어
대학교 철문을 눌러버릴 것 같은 그 육중한 탱크를
팔십년 오월
누님 집에서 자취하던 마산 출신 전북대 공대생 형은
매캐한 냄새를 달고 다녔지만
그것이 뭔 가루인지는 나중에야 알았지
내 머릿속 박정희는 총탄에 죽었으나
여전히 위대한 영원한 대통령이었고
똥별 전두환의 반질거리는 대가리는
그해 전국체전이 열린 전주 공설운동장
체조 마스게임 공연을 할 때 보았어
형형색색으로 공연에 동원된 여학생들에게
눈길이 더 많이 머물렀지만
누군가는 두환이 대가리 돌대가리 독재자 박정희를
말하기도 했어
그해 내내 탱크는 내 몸 위를 누른 것 같은데
오월 광주에서 피가 모자란다고 해서
헌혈을 하자고 모든 교실을 돌아다녔지만
꽤 열심이었지만
슬픔은 잘 몰랐어
신록예찬 청춘예찬 따위가 더 멋져보였던
난 또는 우리는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 체재 아래
그냥 고등학생
어떻게든 대학에 들어가야만 생존 가능하다는 철칙을
되뇌이는 되뇌이는 슬픔을 몰랐어
대학에 고 리세종 열사 추모비가 세워지고 탈취 당하고
다시 제자리를 찾는 세월 동안에서야
슬픔에 눈을 떴지
아 ‘척박한 땅 한반도’
조성만이 명동성당에서 스스로 뛰어내렸을 때
슬픔이 깊어졌지
붉은 꽃을 보면 피가 끓고
흰 꽃을 보면 눈물이 터지는
오월 그해 탱크를 봤어
가르쳐야만 민주주의가 될까
지금 아이들은 주눅들지 않고
아무 말이나 할 수 있을 정도로 컸는데
민주주의는 겪어야만 세워지는 것인가
혼돈과 평화가 겹치며 다가오는 학교의 오월
아직도 두환이 대가리는 반질거리고
사십년이 다 되도록 흘린 피가 얼마인데
피어 붉은 꽃
피어 흰 꽃
그해 오월 탱크 하나 못치울까
붉은 꽃을 보면 피가 끓고
흰 꽃을 보면 눈물이 터지는
오월 그해 탱크를 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