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인권 의제를 중심으로 살펴본
KT 투쟁의 발자취
KT의 노동탄압도 역사가 길다. 한국통신 시절 민영화를 밀어붙이며 자행했던 퇴출프로그램은 그 이름만 바뀐 채 상품판매팀, CFT 등으로 이어져왔다. 노동조합 지배개입도 악랄하기로 유명하다. KT를 둘러싼 노동자 투쟁의 역사를 정리했다.
KT 노동인권 투쟁의 발자취는 초국적자본과 정권이 90년대부터 한국사회를 재편하는 과정 자체라고 할 수 있다. KT의 전신인 공기업 한국통신 시절부터 시작된 민주노조 파괴는 그 뒤 이어지는 공공부문 사유화(민영화)와 비정규직 양산과 외주화로 이어졌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정부와 사측은 집단적 권리를 비롯한 노동인권에 대한 탄압을 동반했다. 이와 같은 KT의 잔혹사를 아는 이들이 ‘누가 민영화를 묻거든 KT를 보게하라’는 말하고는 한다. 우리가 KT 노동인권 탄압과 투쟁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한국통신 민영화 전후 과정
1987년 미국을 필두로 한 초국적자본에 의한 통신개방 압력이 이뤄지면서 1989년 노태우 정부에서부터 공기업민영화추진위원회가 설치되어 한국통신에 대한 민영화가 계획되었다. 김영삼 정부 들어서 본격적으로 민영화 과정이 추진되어 1993년 정부 지분 매각이 시작되었다. 비슷한 시기였던 1994년, 한국통신 노동자들은 어용노조 체제를 마감하고 30년 만에 민주노조가 건설했다. 그러나 당시 김영삼 정부의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부당노동행위가 거세게 진행되었다. 대표적으로 대통령이 직접 ‘노조가 파업을 강행하면 국가전복세력’이라는 발언을 하면서 노조 탄압을 위한 공안몰이 정국을 만들어 노조 집행부에 대한 구속과 수배, 사무실 폐쇄 등 폭력적인 탄압이 자행되었다. 1996년에는 퇴출 프로그램의 시초격인 신인사제도가 시행되며 조직적인 노동인권탄압이 시작되었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졌다.
○ 구조조정에 저항한 마지막 대중투쟁
1997년 IMF 구제금융 및 구조조정의 바람은 한국통신도 예외는 없었다. 특히 민영화를 앞두고 있던 회사는 1998년에 5천여 명, 99년에 3700여 명의 노동자들을 구조조정으로 퇴출시켰다. 고령, 부부사원들을 대상으로 이름만 명예퇴직인 사실상의 정리해고였다. 이어서 2000년 12월 또 다시 대량 구조조정과 직무별 아웃소싱이 시도되었다. 이에 분노한 노조 활동가들의 항의와 조합원들의 참여로 명동성당에서 5일간의 총파업이 전개되었다. 명동성당 총파업으로 사측은 명퇴를 대규모로 진행시키지 못했지만 이후 파업에 대한 징계가 이어졌다. 게다가 집행부의 결의로 이끌어진 파업이 아니었기에 사측의 징계과정에 노조 차원의 대응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여 전체적으로 조합 활동이 위축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어서 회사는 2001년 7월에는 114교환 업무를 분사하려 했다. 이에 맞서 114 조합원 1천여명이 46일간 본사 점거를 하고 농성투쟁을 진행했고 투쟁에는 의식적인 한국통신 노조원들과 활동가들도 연대하였다. 그러나 끝까지 투쟁에 참가한 114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얻는 것을 끝으로 114업무는 분사되었다. 이 투쟁 과정에서 114 노동자들에 대한 사측의 폭력행위에 대해 규탄하는 여성시민사회단체들의 성명이 발표되기도 했다. 114분사와 동시에 진행된 다른 분야에 대한 아웃소싱은 별다른 저항 없이 진행되었다. 114 분사 저지 투쟁을 끝으로 KT에서 구조조정을 저지시키는 대중적인 투쟁은 일어나지 못했다.
○ KT 이후 노동인권탄압 과정
김대중 정권 말기였던 2002년 6월 30일, 한국통신이란 간판을 버린 KT는 정부 지분이 모두 매각되며 해외지분 49%의 완전한 민영 기업이 되었다. 이후 KT는 반복적인 구조조정과 집요한 노동인권 탄압을 시행했다.
1) 조직적인 퇴출 프로그램 규탄과 사회운동의 연대
2003년 당시 단일기업 최대 구조조정인 5500여 명 명예퇴직이 진행되었다. 이 시기에 사측은 명퇴거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조직적 퇴출을 시행하기 위한 퇴출기구 ‘상품판매전담팀’을 조직했다. 약칭 상판팀으로 불린 480여명을 전환배치한 뒤 집요하게 퇴출 대상자들을 감시와 미행, 차별 등 괴롭힘을 가했다. 결국 피해노동자의 산재신청을 통해 최초로 정신적 피해에 의한 산업재해가 인정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상판팀의 폐해에 대해 최초로 전북 지역에서 노동자들과 인권단체가 지원한 폭로 기자회견, 인권단체가 중심이 된 조사활동을 통해 쟁점화 되었고 결국 해체되었다. 그러나 이후 사측은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노동인권 탄압을 통한 퇴출 프로그램(일명 CP)을 기획했다. 명퇴를 거부했던 직원과 민주노조 활동가 1,002명을 특정해서 리스트를 작성하고 부서 내 따돌림과 감시, 징계 및 부당 전보와 발령 등을 통해 스스로 그만두게 하는 것이다. 퇴출프로그램에 대해 2008년 1월, 2010년 7월, 2011년 4월과 12월 2012년 9월 등 다섯 차례에 걸쳐 내부폭로가 이어졌다. 폭로는 본사기획자, 실행한 중간관리자에 의한 양심선언을 통해 진행되었고 사회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또한 2012년 9월 노동부의 퇴출프로그램 인정, 퇴출프로그램 피해자의 대법원 판결까지 이어지며 실상과 문제점이 전면적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KT는 단 한 번도 회사 차원의 퇴출 계획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2014년 명예퇴직을 거부한 290여명의 노동자들을 CFT(업무지원단)으로 인사조치를 하며 퇴출기구인 제2의 상판팀을 만들었다. 이에 CFT 해체를 촉구하는 노동자들과 사회단체들의 투쟁이 지속되었다.
2) 노조 선거 지배개입 등 부당노동행위에 맞선 투쟁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를 거치며 이석채, 황창규가 낙하산으로 KT에 들어올 때마다 구조조정은 거침없이 자행되었다. 2008년엔 700여 명의 전산직들을 분사하는 작업이 진행되었고, 시 단위 이상의 전화국 영업창구에 대한 아웃소싱 작업이 진행되었다. 2009년엔 당시 최대 구조조정 규모인 6,000여명 노동자들이 명예퇴직으로 퇴출되다. 2014년에는 사상 퇴대인 8,300여 명의 특별 명예퇴직이 시행되었다. 이렇게 반복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존 노조인 제1노조는 회사와 적극적인 파트너가 되어 퇴출을 용이하게 했다. 이러한 어용노조가 지속될 수 있도록기 위해 경영진은 시기별로 노조선거에 대한 지배개입 등 적극적으로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했다. 전국적으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당사자들의 고발과 시민사회의 규탄 등이 진행되었고 법원에 의해 인정되기도 했다.
○ 계열사,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투쟁
본사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외에도 계열사, 자회사 노동자들의 투쟁도 지속되었다. 대표적으로 2011년 3월엔 계열사인 KTCS 노조의 전OO 지부장이 권고사직에 저항해 분신하는 사안이 발생해, 노조와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투쟁이 이어졌다. 2018년에도 계열사인 KT서비스의 부당노동행위, 노동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노조와 사회단체들의 연대 투쟁이 있었고,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판정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KT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 및 임단협 쟁취 투쟁까지 KT자본을 둘러싼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