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을 위하여

사법개혁을 위하여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팀* 사법부의 개혁을 위하여 박근혜의 국정농단에 의해 전개된 촛불투쟁의 가장 큰 요구가 ‘사법개혁’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법은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송기춘 교수님께 ‘사법개혁의 방향’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요청드렸고, 간단하지 않는 요청에도 혼쾌히 수락하여주셨습니다. 이 지면을 빌려 송기춘 교수님에게 감사드립니다.

1. 정책법원인 대법원을 꿈꿨던 양승태의 잘못

사법개혁의 핵심은 법원의 개혁이다. 법원 개혁의 중심은 무엇보다도 충실한 심리가 이뤄지는 공정한 재판을 하는 법원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재판을 하는 데 필요한 안목과 능력을 가지고 어떠한 압력이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법관이 필요하며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이 부여되는 법원과 법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법농단 관련자에 대한 재판과 함께 이러한 관점의 법원개혁의 방향이 유지되어야 한다.

대법원장이었던 양승태가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한 것은 상고법원제도의 도입이었다. 최종심으로서 대법원에 폭주하는 사건을 여러 개의 상고법원을 설치하여 처리하고, 대법원은 중요한 사건의 재판만을 담당함으로써 정책법원의 위상을 가지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양승태의 구상대로 상고법원제도가 도입되었을 경우, 지금 사법농단사건에 관련된 많은 법관들이 상고법원에서 종래 대법관들이 하던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양승태의 구상은 근본에서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우선 대법원이 정책법원이 되는 것은 헌법이 예정한 바가 아니다. 본래 사법이란 구체적인 법적 분쟁에 대해 헌법과 법률을 해석·적용하여 해결하는 국가작용이기 때문에, 대법원이라고 하여 그 본질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재판의 최종심이기 때문에 그리고 상고로서 다퉈야 할 정도로 사건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법원의 판결이 정책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지, 대법원이 아예 특정한 사안에 대해 정치적 입장을 발표하거나 정책을 결정 또는 변경하기 위해 사건을 선별하여 재판을 진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책결정은 국회나 행정부의 몫이지 대법원이 작정하고 나설 일은 아닌 것이다. 둘째, 대법원에 폭주하는 상고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상고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나 법관을 늘리는 것은 아니다. 왜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대법원까지 사건을 들고 가겠는가. 이것은 1심이나 2심에서 당사자가 자기의 얘기를 충분히 할 기회를 얻지 못했거나 법관이 제대로 들어주지 않고 재판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충실하게 재판이 진행되었다면 굳이 1심 재판에 대해 상소할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법원에 몰리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하급심을 담당하는 법관과 재판부의 수를 늘이는 것이다. 과로로 쓰러지는 판사가 있는 판에 법관의 수를 늘리는 것은 현실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대법원으로 사건이 몰릴 수밖에 없는 법원구조를 그대로 둔 채 법원조직만 키우겠다는 것은 승진에 목매는 일부 판사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2. 부장에게 결재 받는 배석판사

어느 법학책을 보더라도 합의재판부는 단독재판부에 비해 다수 법관이 관여하여 신중한 심리가 이뤄진다는 점을 장점으로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법부의 대부분 합의재판부는 법관만 다수이지 진정한 합의부라고 하기 어렵다. 대부분 부장판사가 배석판사 가운데 한 명을 주심으로 정하고, 주심법관이 사건의 주요한 내용을 파악하여 정리하고 판결문 초안을 작성하여 부장판사에게 결재를 받는 식으로 사건이 처리되기 때문이다. 결국 3명의 법관이 있는 재판부에서 재판에는 상하관계가 있는 부장과 배석판사 한 명만 관여하는 식이다. 제대로 된 합의부라고 할 수 없다.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아서 그러기도 하고, 또 하나는 예로부터 법원이 별다른 법조경력 없이 법관이 된 이들을 훈련하는 과정으로 재판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합의부에서 판사가 부장과 배석의 인연을 맺어 법원생활을 시작하는 경우 웬만한 스승과 제자의 사이보다 더 돈독한 관계가 된다. 근래 들어 대등한 고등법원 부장판사 셋으로 구성되는 대등재판부가 있다고 하나 합의부의 판사 셋이 모두 같은 사건을 같은 비중으로 다루는 것도 아니다. 대법관 4명씩으로 구성된 대법원의 소부도 마찬가지이다. 법원에는 어느 합의부나 주심법관 제도가 있어서 주심법관의 판단과 결정대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뤄야 할 사건이 많기 때문이다. 필자가 참여하는 노동위원회의 경우 한 번에 다루는 사건의 수가 많아야 3건이기 때문에 주심제도와 무관하게 심판에 참여하는 모든 위원들이 사건에 대해 충실하게 관여할 수 있다. 법관의 수를 늘리고 법조경력을 가진 이들 가운데서 법관을 충원할 필요가 있다.

3. 상급법원과 하급법원

헌법과 법원조직법상 대법원은 최고법원이다. 그 재판결과에 대해 다툴 더 이상의 심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법원 ‘아래’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이 있다. 고등법원에 합의부가 있고, 지방법원에는 합의부와 단독부가 있다. 법관은 대체로 지방법원 합의부에서 좌배석 판사로 시작해서 우배석 판사을 거쳐 단독판사, 고등법원 배석판사를 거쳐 지방법원 합의부 부장이 된다. 그리고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을 노린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면 법원장과 대법관도 된다. 전체의 법원이 서열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서열은 독립되어 재판을 해야 할 법관을 상하의 관계가 있는 사법관료로 만든다. 법원장의 인사평정이 인사이동에 또는 재임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법원행정조직상의 관계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그렇지만 지방법원의 단독재판부가 고등법원보다 하급의 재판부는 아니라는 점에 대해 인식이 필요하다. 대법원의 전원합의체이건 지방법원의 합의부나 단독부나 모두 대등한 법원이라는 점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법원의 행정조직으로는 상하의 관계가 있다고 해도 재판을 담당하는 ‘법원’으로서는 모든 법원은 대등한 지위를 가진다. 그 법원의 구성원인 법관은 어느 누구 또는 어떤 힘으로부터도 독립하여 재판을 진행하여야 한다. 모든 법원의 재판은 그 자체로 최종적일 수 있다. 다만, 심급제도라는 것에 의하여 상소로 다툴 여지를 남겨두고 당해사건에 대한 상급법원의 판결에 구속될 뿐이다. 1심법원의 판결이 2심에서 파기되는 것은 심금제도 때문이지 1심법원이 2심법원의 하급법원이기 때문은 아니다. 모든 법원은 대등하고 그 법원의 법관은 대등하여야 한다. 법관 스스로도 그러한 인식을 해야 한다.

4. 대법원장의 힘의 근원: 대법관 임명에 관한 제청권

대법원장이 법원 안에서 힘을 가지는 것은 인사권 때문이다.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받는다고 하지만 법관 인사는 대법원장이 주도한다.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에 관한 정보를 근거로 대법원장을 보조한다. 대법원장은 대법관이 될 사람의 임명제청권까지 행사한다. 생각해보라. 다수의 구성원이 합의하는 조직에서 어느 한 사람이 다른 구성원 모두를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구성된 기구가 진정한 합의기관일 수 있겠는가. 물론 이러한 제청이 한꺼번에 다 이뤄지지 않고 자신의 임기 동안 서서히 되는 것이지만, 대법원이 합의재판부라는 성격과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다. 이러한 제청권은 대법관이 되고자 하는 모든 법관에게 현직 대법원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그 ‘아래’서 평정을 받아야 하는 모든 법관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주게 된다. 법원의 서열화와 관료화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대법원 구성방식을 취하는 헌법은 어디에도 없다. 운영하기에 따라서는 장점도 생길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방식은 합의부의 본질에 맞지 않고 법원 내에서 대법원장의 권한을 지나치게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72년 (유신)헌법으로 인해 제왕적 대통령과 함께 제왕적 대법원장이 탄생한 것이다.

2018년 3월 대통령이 제안한 헌법개정안에는 이러한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남아 있다. 대통령이 지명하는 3명,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 법관회의가 선출하는 3명으로 구성되는 법관추천회의의 추천을 거쳐 대법원장이 대법관후보자를 제청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지형 때문에 대법원장의 영향력을 존치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인식이 바탕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앞으로 백년을 설계하는 헌법개정안으로서는 적절한 조항은 아니다.

5. 정치사법의 책임

십여 년 전 조작간첩사건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의 과정에서 재심청구를 위한 준비를 여러 법률가들이 함께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성과는 근래 무죄판결로 나타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조작간첩사건의 담당재판부 또는 법관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의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다. 다른 예도 적지 않지만, 납북되었다가 귀환한 어부 등을 간첩으로 조작하여 이념적 갈등을 정치에 이용한 사건이야말로 대표적인 정치사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을 조작한 수사당국 이외에도 법원의 법관은 사건의 심리과정에서 과연 사건의 조작 가능성에 대해 아무런 의심조차도 하지 않았을까? 법원이 피고인에 대해 유죄의 판결을 하려면 무죄일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배제할 정도의 입증이 있어야 하는데, 조작간첩사건의 재판과정에서는 피고인들이 고문의 증거를 보여주고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들 사건의 담당 법관들은 피고인들이 혐의사실을 부인하거나 고문을 당하였다는 주장을 듣고도 이것이 터무니없는 것이었다고 여긴 것이었을까. 법관이 피고인들의 주장을 듣고도 이를 애써 외면한 결과 이들을 사형에, 무기징역이나 유기징역에 처하였다면 법관에게 살인죄나 감금죄의 책임을 지우거나 국가배상책임을 진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일까? 고의 또는 중과실로 국민에게 피해를 입한 공무원의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데, 법관은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이 사건들의 재판을 담당했던 법관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사법농단사건 관련 법관들에 대해서는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다. 현직 법관들에 대한 재판은 언제나 끝날지 알 수가 없다. 3월에 시작한 재판은 아직 1심 재판도 끝나지 않았다. 1심의 판결이 선고되면 법관인 피고인들은 상소할 것이고 대법원까지 갈 재판은 피고인들이 정년에 달할 때까지 마무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는 동안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더 추락할지 모른다.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의결하여 당장 관련 법관을 재판으로부터 배제하고 탄핵결정을 통하여 법관직에서 파면하여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지만 국회는 탄핵소추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법원 내부에서 이뤄지는 징계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면서도, 법원 외부에서 법원이나 법관의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정말 법원이나 법관은 독립되어 있으므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아야 하는 것인가?

6. 새 술은 새 부대에: 국민이 참여하는 법관의 인사

법원의 개혁은 쉽지 않다. 특히 법원의 독립성이 헌법적으로 보장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사임의 압력을 받는 법관들은 갖은 사회적 압력이나 법적 공격으로부터도 버티려 할 것이다. 사법농단에 관여한 판사들이 지금 보이고 있는 행태도 다르지 않다. 독일에서 처음 공화국이 수립된 뒤 독일황제가 임명한 판사들에 대해 “공화국의 헌법을 따르지 않으려면 나가라!”는 요구에도 사임한 판사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는 것도 남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국민이 신뢰하지 못하는 법원이 기존의 법관들만으로 근본적으로 다른 신뢰를 얻어내기란 쉽지 않다. 제도의 개혁과 함께 지속적으로 좋은 판사가 충원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법관을 대폭 충원할 필요가 있다. 사건에 비해 적은 수의 판사가 충실하게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 법원으로서는 재판 잘하고 있다 할지 모르지만, 국민의 눈에는 그렇게 비치지 않는다. 과로사하는 판사가 있는 실정이라면 법관의 수를 늘리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단순히 법관의 수만 늘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재 법관의 충원이 법원 스스로에 의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기존의 법관과 질적으로 다른 법관이 임명되기 어렵다. 국민의 생명, 자유와 재산에 대해 제한을 할 수 있는 법관이 우리도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임명이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의 대표인, 또는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은 판사가 아니라면 우리에 대해 재판을 할 권한이 없다. 헌법은 판사의 임명에 대해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받아 대법원장이 하는 것으로 하고 있으나, 판사의 임명과정에 국민의 관여를 강화하는 것이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임명되는 판사의 민주적 정당성 또는 대표성을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판사의 임용과정에 법원에 재직하는 판사만이 아니라 변호사까지 포함하는 법률가집단, 국회에서 추천한 인사 등이 참여하여 판사 임명과정의 민주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법관의 인사에도 적절한 수준에서 국민이 참여하여야 한다. 법원 조직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의 이익을 충실하게 확보할 수 있는 판사가 지속적으로 법원에 자리잡아야 법원이 조금씩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도 20년은 걸릴 작업이다.

Post Author: 전북노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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