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경제갈등과 민주노조운동의 투쟁방향 토론회 요약
강제징용피해자에 대한 한국대법원의 배상판결을 빌미로 아베정권은 7월 4일 불화수소 등 반도체산업 3개 핵심제품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 조치에 이어, 8월 2일화이트리스트 국가(수출심사우대국) 배제를 일방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전북지역 노동운동진영은 8월 21일(수) 오전 11시 30분에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한일노동자 공동성명 기자회견을 개최하였으며, 그 후속조치로 민주노총전북본부, 전교조전북지부, 아래로부터 전북노동연대가 9월 20일 민주노총전북본부 중회의실에서 공동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다음은 토론회 내용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1. 문제의식
아베에 의해서 촉발된 한일갈등은 제국주의 전쟁이다. 이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래 자본주의 쇠퇴가 가속화되면서 격화될 수밖에 없는 제국주의 열강간의 패권쟁투다. 한일갈등을 둘러싼 정세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직접적인 원인과 명분부터 분석하고 그 저변에 깔려있는 배경을 분석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2. 샌프란시스코 조약
1) 최근 한일 갈등의 직접원인이 된 일제의 근로자 강제동원 문제란 무엇인가?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의 핵심은 식민지배의 ‘불법성’ 여부다. 대법원은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이에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강제징용피해자의 위자료청구권을 인정했다. 일본이 반발하는 것은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청구권이 1965년 한일협정으로 소멸했다는 입장 때문이다.
2) 일본이 이러한 입장을 내세우는 근본 배경에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존재한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1951년 9월 8일 일본과 48개국 사이에 맺어진 전후 평화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연합국의 군정기가 끝나고 일본은 주권을 회복해서 다시 독립국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참가한 51개국 중 48개국이 조약에 서명을 했다.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소련은 서명을 거부했다. 인도, 버마 및 유고슬라비아도 초대되었지만, 참가하지 않았다. 이 조약은 ‘패전국 일본에 대해 배상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일본의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배상의 의무를 감한다.’는 내용과 함께,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국가의 범위를 “현재의 영토가 일본군에 의해 점령당한 그리고 일본에 의해 피해를 입은 연합국들”로 제한했다. 즉, 한국과 북한은 그 이전에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본은 한국의 샌프란시스코 조약 참여를 반대했고, 실제로 우리는 초대받지 못했다. 이 조약에서 빠지면서 전승국 지위를 갖지 못했고, 결국 배상청구권에서도 배제되었다.
강화조약을 주도한 미국의 입장은 1947년 8월 4일 연합국최고사령부 지령(SCAPIN) 1757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서는 연합국, 중립국, 적성국의 세 범주에 속하지 않는 ‘특수지위국가’로서 오스트리아, 핀란드, 이탈리아, 발트3국, 태국 등과 함께 ‘조선을 포함시켰다. 이들 국가들의 공통점은 자의든 타의든 독일과 일본에 부역한 전력이 있는 국가들이라는 것이다. 연합국과 패전국은 전쟁 책임에 대해서만 대립적이었지, 식민지 처리 문제에서는 이해를 공유하는 공범 관계였다. 뿐만 아니라, 또한, 식민지정책에 대한 인식도 다르지 않았다. “식민지 지배가 정치경제적, 문화적 우월성에 기인한 불가피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인류 공영과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맺어진 날 더 핵심적인 조약이 체결되었는데, ‘미일 안보조약’이다. 즉, 샌프란시크코조약은 한국을 ‘특수지위국가’로 전락시킴으로서 승전국에서 배제하고,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국제적으로 확인하는 한편, 한국전쟁에서 일본을 전략적 요충지화하기 위한 일본의 목적을 100% 반영한 것이었다.
3. 냉전과 함께 찾아온 한일기본조약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 (a)항에서는 재산 및 청구권의 처리를 “일본국과 당사국 간의 특별협정의 주제로 한다”고 규정. 전후 한일관계를 식민지 청산을 위한 관계가 아니라 한국의 독립에서 비롯된 재정적, 민사적 채권채무관계로 묶어놓았다. 실제 한일회담은 이 조항에 언급된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특별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열렸고, 그 결정판이 바로 1965년 한일협정이다.
한일협정 제2조 1항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돼있다. “한일 양국은 한일 양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한일 양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서명된 대일강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자금이 필요했고,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에서 준 3억불로 식민 지배의 법적 문제와 보상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당시 협정서에는 ‘식민지배가 ‘무효(null and void)’라는 표현이 들어있는데, 일본은 그 앞에 ’이미(already)’라는 표현을 넣고자 했고, 그렇게 되었다. 일본은 1910년 병합조약이 합법적이었는데 1945년 8월 15일에 자연적으로 해소된 것으로, 한국은 병합조약이 원천적으로 불법이라 무효라는 의미로 각각 해석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냉전시기에 만들어진 샌프란시스코 체제, 그 하위체제로서의 한일협정체제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판결의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대법원 판결은 샌프란시스코조약에 기초한 1965년 체제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개척해서 침탈하는데 무슨 합법/불법 논쟁이 필요한가.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은 법을 초월했기 때문에 사법적 판단이 필요하지 않다. 이러한 법리와 판단은 세계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기제에 불과한 것이다.
4. 일본의 경제보복
1) 한일갈등의 진행
한국대법원의 판결(2018년 10월 30일)로 인해 한일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그리고, 2018년 11월 한국정부가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합의를 근거로 설립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위한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자 일본 내각이 다시 이에 강렬하게 반발하면서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일본은 7월 4일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핵심소재 3개 품목에 수출규제강화조치를 취한데 이어 8월 2일에는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문재인 정부도 지난 8월 22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을 발표했고, 9월 18일 한국의 ‘백색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내용의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 시행에 들어갔다.
그런데 일본의 보복조치는 2012년 5월 대법원의 파기 환송때부터 시작됐다. 일본 외무성은 홈페이지에 한국을 ‘기본가치를 공유하는 이웃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로 표현을 바꾸었다. 2015년 2월에는 만기가 도래하자 통화스와프를 종료시켰다. 2018년 10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본격적으로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를 준비했다. 2018년 11월 반도체 세척용 불산의 한국수출을 제한했고, 2019년 1월 23일 발생한 한국 해군 대조영함에 대한 일본자위대 해상초계기의 저공 위협비행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2) 일본의 경제보복의 의미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은 특정 분야에 자국의 산업을 특화시켜 국제적인 규모의 분업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양국의 자본간 관계는 매우 긴밀하다. 이는 지금까지 정치적인 갈등이 격화되더라도, 경제분야의 협력이 지속되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아베내각은 굳이 왜 경제전쟁을 선택했을까? 그것은 첫째, 한일간 경제적 격차가 매우 빠른 속도로 좁혀가면서 비대칭적이고 위계적 관계로 인식했던 한일관계가 새롭게 정립될 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에 한일간의 위계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둘째, 2018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개시로 정전체제 종식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2018년은 ‘두개의 체제’가 해체되기 시작한 해이다. 하나는 냉전체제이며, 다른 하나는 65년 체제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명분으로 추진해온 일본의 재무장이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으로 도전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 패싱’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이 대목에서도 하나 강조할 것이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일방적인 일본 제국주의 공세가 아니다. 한일 자본간 제국주의 무역전쟁이다. 따라서,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이 남한 제국주의를 축소은폐하고 면죄부를 주며, 남한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을 유리시키려는 노동운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5. 미 제국주의의 패권 약화
이번 사태는 미 제국주의의 패권 약화가 근본적인 동학으로 작동하고 있다. 현재 미중 양 제국주의의 무역전쟁이 관세에서 환율로 확대되면서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면서 이른바 ‘R(Recession)의 공포’가 세계적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 독일, 일본, 러시아 등 주요 열강들의 경제가 경기침체 벼랑에 몰렸다. 미 제국주의가 추구하는 것은 자국의 패권을 확보한 뒤 그 힘으로 자국 자본가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그 힘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기에는 너무 큰 군사력을 지니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확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군사력이다. 게다가 이란, 북한, 베네수엘라 등 주요 거점에 대한 미국의 패권 전략이 동시다발적으로 난맥상을 드러내면서 스스로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6. 일본의 본격적인 전쟁국가화
미국의 패권약화는 미일 동맹과 주일 미군을 근간으로 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일본의 안보전략을 근본으로부터 흔들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거나 미ㆍ중이 협력관계로 갈 경우, 일본은 중국의 세력권에 편입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졌다. 이 때문에 미ㆍ중 관계가 갈등 국면일 때 미국의 대중 봉쇄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재무장을 빠른 속도로 추진함으로써 전쟁이 가능한 정상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베는 국내 정세 상황을 보아가며 중의원도 해산해 새로 선거를 치룬 뒤,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열기가 고조되었을 대, 국민투표에 부쳐 개헌안을 통과시키려는 구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7. 문재인정부의 선택은?
GSOMIA 종료의 정당화논리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식이다. 이런 논리는 GSOMIA 군사 효용성과 일본 압박 카드로서의 효용성의 비교, 미국에 대한 청원 수단으로서의 의미 등으로 전락한 것을 의미한다. 즉 한일 갈등이 완화되거나 미국에 중재했을 때 GSOMIA는 언제든지 복원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GSOMIA와 미국의 이익을 위해 배치된 사드로 인해 한국은 전초병이자 방패막이가 되었다면 작금의 한미동맹이 관연 누구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지 문재인정부의 성찰이 필요하다.
8. 민주노조운동의 투쟁방향
첫째 한일노동자연대는 필요조건이다. 정부의 반노동공세에 맞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일본에서 진행되는 노동탄압에 맞선 연대도 긴급하다.
둘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투쟁에 복무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투쟁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주한미군 없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남북간 군축, 한반도-동북아 비핵지대화,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의 폐기가 되어야 한다.
셋째, 반제국주의 반전평화의 관점에 선 동북아 민중연대가 필요하다. 미중 갈등,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강화를 핵심으로 한 동아시아 긴장격화에 맞선 동아시아 민중연대는 절실하다.
9. 질문과 응답
Q. 한일경제갈등 출구전략은 무엇인가?
– 청구권과 관련한 법적인 방법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것이다. 당시,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협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조약 관련해서 설명했듯이 당시 연합국(승리국)과 독일, 일본(패전국)의 입장이 제국주의국가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는 점은 유념해두어야 한다.
– 일본정부와 일본시민사회- 한국정부와 한국시민사회 4자회담을 제안했으나, 실상은 어렵다. 가능한 부분은 첫째, “일본정부-한국정부/한국시민사회” 3차회담이다. (한국시민사회단체가 피해자와 가해국의 중재자 역할이다.). 이를 위해 일본을 한반도 프로세스에 참여시키는 유화책이 필요하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6자회담처럼 6개국 연석회의형태가 가능할 것이다.
Q.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의 전후 처리가 불공평하다. 독일은 분단이 되었지만, 일본 대신 한국이 분단되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 미국이 독일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었음(소련, 영국과 공동지분임). 하지만, 일본은 사정이 다르다. 미국은 일본을 사회주의에 맞서는 병참기지화하기 위해 한반도의 분단을 용인하였다.
Q. 일본의% 우경화 경향이 한국에 비해 심한 것 같다. 이유가 있는가?
– 천황제가 큰 원인이다. 천황제가 유지되고 있는 한, 군국주의 성격을 버릴 수 없다. 전쟁 후 많은 일본 지식인들이 천황제 폐지를 요구했었다. 하지만, 미국은 왕조에 대한 아시아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일본은 (지배-복종의 사회적 관계로 인해) 민주주의에 대한 발전이 더디게 되고, 혐한(특정민족 혐오)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정치에 대한 대중역동성이 떨어진다.
Q. 어떻게 대법원판결 집행할 수 있나?
– 실질적으로 전범기업에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다. 일본정부에 물어야 한다. 일정정도 기준을 책정해야 하기 때문에 양보는 불가피할 것이다.
Q. 한일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가?
– 지금까지 한일관계를 규정해온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65년 체제는 폐기됐다. 새로운 체제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10. 마지막으로..
– 마지막으로 민주노조운동에 바라는 점이 있다. 민주노조 진성조합원들의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조합원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민주노조의 진보성과 역동성은 갈수록 퇴색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진성)조합원의 교육과 학습이 필수적이다. 질적 도약이 필요하다. 한상균 위원장 시절에 자문위원을 역임했었다. 집행부에 교통비만 지원한다면, 교수진 50명을 팀으로 꾸려 전국을 순회하며 교육하겠다고 제안했었다. 하지만, 회의에서 부결되었다. 갈수록 ‘이해관계’에 집착한다면, 대중적 박탈감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