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자가 소모되지 않는 일터가 ‘사람 다닐’만한 일터다
오리온 익산공장 청년노동자 사망사건 대응 경과와 방향
지난 3월 17일 오리온 익산3공장에서 근무 중이던 22세 청년노동자 서○현님이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진지 3개월이 넘었다. 고인이 일터에서 받는 괴로운 심정을 “오리온은 사람 다닐 곳이 아니다”, “그만 괴롭히라” 등으로 표현한 유서가 발견되며 이 사건은 노동인권 침해, 직장내 괴롭힘 문제로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됐다. 익산 오리온공장의 노동환경에 문제가 있음을 감지한 유족의 문제제기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3월 말 이후, 민주노총 전북본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사건 파악 노력과 언론의 연속보도가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고인이 오리온 내에서 직장 내 괴롭힘만이 아니라, 남성 관리자 등에 의한 성희롱 피해로 고인이 고통 받았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4월 특별근로감독 촉구 기자회견 이후, 5월 15일부터는 민주노총 전북본부와 익산시지부, 전북평화와인권연대가 고인이 근무 중이던 익산공장 입구 앞에서 회사의 사과와 책임을 묻는 피켓팅을 시작했다. 그 후 익산지역 시민사회연대체, 고인이 자라온 구례를 비롯해 목포, 순천, 나주 등에서도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오리온의 책임을 묻고 있다. 서울의 오리온 본사 앞에서 열린 사건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는 직장갑질119,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연대하기도 했다. 지난 6월 10일엔 유족들과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고인의 죽음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를 찾아 산재신청을 하게 되었다.
뻔뻔한 오리온 사측의 문제점
그러나 회사는 사건 이후부터 현재(6/15기준)까지 공식적인 사과를 표하지 않고 책임 회피만 하고 있다. 회사 측은 고인이 안치된 병원에 찾아와 응당 가장 먼저 해야 할 위로는커녕 유족에게 퇴직금을 받을 계좌번호를 운운한 뒤 유서 등 증거 사진들을 찍어갔다. 그리곤 사건 발생 보름도 안 된 3월 말경 유가족과 언론 취재진과의 면담 자리에서 자체조사 결과 아무 문제가 없다고 통보한 뒤 불분명한 금전을 입금하고 연락을 끊었다. 오리온 측은 첫 번째 면담 자리에서 관리자가 고인에게 시말서를 강요한 것이 없다고 발뺌을 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얼마 전이었던 2월 말경, 고인이 관리자에게 시말서 작성을 업무 외 시간에 반복적으로 강요당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고인의 시말서를 유족이 공개하자 사측은 말을 바꿨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고인이 관계하고 있던 사내 연애를 빌미로 관리자 등이 업무와 상관없는 언어적 괴롭힘을 했던 것으로 파악되었지만 이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답변은 없었다. 또한, 회사는 사건 발생한지 보름도 되지 않아서 공장의 철저한 자체조사를 통해서 고인의 죽음과 회사의 관계는 없었다고 했지만 5월 이후 언론을 통해 추가적으로 드러난 고인의 성희롱 피해에 대해선 보도 이후에야 파악해 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는 사이 쏜살같이 지나간 시간 속에 6월 들어 고인이 세상을 등진지 100일이 되었다.
청년노동자를 괴롭힘으로 모는 차별의 구조
사건대응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간혹 그런 질문을 받게 된다. ‘그 정도로 힘든 직장이었다면 고인이 한창 젊은 나이인데 일터를 옮길 수도 있었을텐데.. 굳이 오리온에 계속 있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는 내용의 말들이다. 한없이 무거워지는 내용이며,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던 고인의 심정을 다 헤아릴 수 없어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전에 생을 달리 했던 젊은 노동자들의 사례를 함께 보면, 청년노동자들에게 닥친 어려운 취업현실과 보수적이고 위계적인 직장문화가 많은 청년노동자들을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고통으로 밀어넣고 있으며, 심지어 죽음으로 몰고 있다는 점은 명백히 얘기할 수 있다.
고인의 죽음에 대해 표면적인 부분을 넘어 깊이 보기 위해선 더욱 면밀하고 종합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우선 고인이 전남 순천의 직업계 고교를 졸업한 뒤 바로 오리온 익산공장에 취업했다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 사회경험이 전무한 20대 초반의 고졸 여성노동자로서 교대근무제의 힘든 노동강도와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의 낯 선 기숙사 생활은 매우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가장 어린 노동자로서 직장 내 괴롭힘에 더 취약한 현실, 이와 함께 가능한 빨리 경제적·사회적으로 독립을 하고 싶어 했다는 유족과 지인들의 증언을 함께 봐야 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첫 직장에 입사한 청년(15~29세) 3명 중 2명(67%)이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같은 조사 결과 첫 직장에서의 평균 근속기간은 1년6개월에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청년층이 갖는 불만과 개인적인 이유가 이런 결과를 보여주는 것일까? 하지만, 노동인권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다른 조사결과와 교차해보면 문제의 원인을 청년층에게 돌리기는 어렵다.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으로 진행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2017)에 따르면 조사 대상이었던 만20∼64세 직장인 1천506명 중 약 73%가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들 중 연령과 직급이 낮을수록 직장 내 괴롭힘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고인의 죽음은 오리온의 주장처럼 오롯이 개인의 책임이 아닌, 회사와 사회가 져야하는 책임으로 읽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 노동인권을 보장할 제도적인 역량은 충분하지 않다.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포함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과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은 현장에서 무력하다는 것이 현장활동가들의 얘기다. 당장 현행법의 괴롭힘 금지조항은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 처우가 없는 한 변변한 처벌조차 어렵다. 그마저도 5인 미만 사업장ㆍ간접 고용ㆍ사용자의 직접적인 괴롭힘의 경우에는 신고 자체가 사실상 봉쇄되어있으며 회사가 취업규칙에 관련 조항을 넣기만 하면 사실상 그 이상의 괴롭힘 예방 의무는 없다. 고용노동부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직장 괴롭힘 사업장에 관해서는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하겠다고 발표 한 바 있지만, 이 또한 오리온 사건에는 이뤄지지 않았다.11. “특별 감독의 경우는 폭언, 폭행,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 등 중대한 법 위반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을 예외 없이 특별 감독을 한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은 단호하게 대처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예시- 2018년 한국인터넷기술원그룹 특별 감독 실시” (*2019년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종합개선방안 중 발췌) 편집자 주* 고용노동부 익산지청은 지난 4월 유가족들의 특별근로감독 요구에 대해 난색을 표하다가 사건 발생 3달 후이자 이 글이 씌여진 이후인 6.18일에 이르러 특별근로감독에 들어갔다.
정말 ‘청년노동자’가 살아야 ‘모두’가 산다
청년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다. 정규직은 위계적이고 보수적 직장문화 속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죽음을 강요당하고 있고, 비정규직은 사측의 안전불감증과 생명경시풍조로 인해 노동재해로 죽어가고 있다. 20대의 청년노동자들이 죽어가는 고통의 노동환경과 사회를 바뀌지 않는다면 또 다시 제2, 제3의 서지현과 김용균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를지 모르지만 한국사회에서의 인권은 거꾸로 흐르고 있다. 사회적으로 가장 차별받고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권리확대로 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기업들에 대한 행정·재정지원의 노력의 절반이라도 노동자, 특히 사회구조적 약자인 청년노동자들의 노동인권보장을 위해 사용된다면 이런 상황은 변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선 21대 국회가 현행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많은 구멍들을 메워가야 하고, 노동부의 행정 역시 더욱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예방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터를 바꾸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과자를 만드는 노동자가 그 회사를 ‘사람이 다닐 곳이 아니다.’고 절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리온이 생전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통 받고, 마지막 순간까지 유서로 호소한 고인과 그 유가족에게 최소한 사과와 철저한 진상규명의 결과를 가져오고 이를 바탕으로 재발방지 대책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사회운동이 이 사건 대응을 통해 이러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면, 청년노동자가 괴롭힘으로 희생되고 죽지 않고 일하는 일터와 사회를 위한 작은 디딤돌을 쌓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