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시계추가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려 할 때

권력의 시계추가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려 할 때

코로나19를 핑계로 도민출입통제 정당화하는 전북도청 규탄

채민(전북평화와인권연대)

2020년, 코로나19 유행이라는 비상 시기를 이유로 사회 곳곳에서 ‘비상적’ 조치들이 시행되고 있다. 방역과 감염자 파악을 이유로 국가가 개인을 감시하는 체계들이 쉽게 하나씩 늘어가는 것이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상적 조치’들이 비상 시기가 끝나면 원래대로 돌아갈까? 어떤 이들은 그럴 것이라고, 이런 조치들은 한시적인 것이라 얘기한다. 이를 괘종시계의 시계추가 흔들리는 것에 빗대어 ‘시계추 논리’로 부른다고 한다. 한쪽으로 기울여진 괘종시계 시계추처럼 권력의 방향이 ‘소위 공공의 안전’을 위한 조치로 기울여진만큼 시민의 자유 등은 축소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계추가 반대쪽으로 돌아가듯 사회가 안정되면 축소된 시민적 권리는 다시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란 견해다.

그런데 정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까? 미국의 법학교수 대니얼 J. 솔로브는 우리나라에 2016년 출간된 저서 <숨길 수 있는 권리>에서 이 시계추 논리가 반대로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비상시기에 권력의 시계추가 시민의 권리를 축소시키는 것에 맞서 “비상 시기야말로 우리가 가장 결연하게 자유와 사생활의 권리를 지켜내야 하는 시기이다”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시기를 이유로 전북도청이 행하는 태도를 보면 그의 말에서 더욱 무게감을 느끼게 된다.

도청이 도민출입을 통제한다?

지난 4월말부터 5월 중순에 걸쳐 있었던 전북도청의 불통·봉쇄는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4월 중순이 지나서야 파악했다. 도의회에서 지난 3월에 코로나19 관련 추경을 처리하며 도청이 3억 원의 예비비를 들여 출입통제시스템(정식 명칭은 ‘청사 안전 출입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대해서 의결했다. 이후 전북도 청사 내에 공사가 시작되어 4월 27일부터 청사 내에서 이 시스템이 시행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청사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엘리베이터, 도의회 청사 및 공연장 연결구에 출입차단장비(스피드게이트) 및 터치식 자동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로 인해 과거엔 자유롭게 민원이나 방문을 위해 갔던 도청 2층 이상의 공간을 이젠 갈 수 없게 됐다. 오직 공무원을 비롯한 도청 직원 등 사전 등록한 카드를 가진 사람들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그 외 다수의 도민들은 도청에 출입하려면 주민증을 안내창구에 전달하고 방문증을 교부받아야 한다. 이 시스템의 운영 목적은 ‘코로나19 등 감염증 확산을 방지’하고, ‘각종 사건·사고로부터 민원인과 직원의 안전 보호’다. 또한 시민사회단체와의 행정부지사의 면담에서 전북도는 결코 시민들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며 민원 편의와 신속한 업무처리를 위해 구축한 시스템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오히려 코로나19 유행을 틈타 도민의 권리를 제약하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도민출입 통제는 헌법에 어긋나는 행정이자 차별행정이다.

청사를 방문하는 모든 도민을 대상으로 하는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무엇보다 헌법의 정신에 어긋난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범위를 ‘필요한 최소수준’에 그쳐야 한다고 하고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그 동안 도민들이 도청에 출입하는 것으로 인하여 심각한 문제가 초래된 적은 없다. 설혹 그런 사례가 있더라도 이렇게 전면적으로 출입통제 시스템을 도입할 정도는 아니다. 도청에 드나들려면 신분증을 전달하고 용무를 확인한 다음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이는 시민들의 주민등록증 상시 소지 의무가 1997년에 주민등록법 개정이 되며 폐지되었는데, 이마저도 훼손하고 있다. 입으로는 개방과 소통, 불필요한 규제철폐를 강조하며, 도청 행정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는 모양새다.

도청은 이미 유사한 시스템을 정부 청사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며 정당하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국가기관에서 시행되고 있는 출입자 통제 방식이 주민자치와 주민의 접근성을 강조하는 지방자치단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소수의 허가된 사람들을 제외한 절대 다수 도민들의 청사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는 출입통제시스템은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한 것이며 차별적인 행정이다. 결국 도지사 혹은 도청과 ‘불편’한 관계의 사람들에 대한 통제 목적으로만 활용되기 쉬운 시스템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도민의 직접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활동을 제약하는 악영향도 불러오게 된다. 현재 많은 도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청사 2층의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 등을 통해 전북도와 도민들에게 의제와 이슈를 전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출입통제시스템 도입이 도민의 직접 민주주의 실현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효과까지 불러올 수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그러나 전북도는 앞서 말한 문제제기 중 어떤 것도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

청사를 운영하는 것에서 민주주의가 보인다.

세금으로 지어지고 운영되는 공공건물은 원칙적으로 시민 모두를 위해 개방되어야 하는 공간이며 특정한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더욱이 지역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지방자치단체는 주민들이 민원과 의견 개진을 위해 자유롭게 방문하고 출입할 수 있는 청사를 만들어야 한다. 정말로 전북도가 청사의 정보보호와 안전을 확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구역에 한정해서 사람들의 출입을 제한하면 된다.

청사를 운영하는 것에서부터 지역의 민주주의를 살필 수 있다. 지방분권국가가 요청되고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대에 주민들을 향한 행정의 열린 자세, ‘소통 행정’과 ‘인권 행정’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송하진 전라북도지사 역시 그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소통행정, 인권행정을 하겠다고 도민들에게 밝힌 바 있다. 도 인권조례를 제정하고, 인권부서를 운영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송하진 지사와 전북도청은 오히려 차별 행정, 불통 행정의 문제점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차별과 헌법에 어긋나는 행정을 하고, 도민 불편을 가중시키는 행정의 행태를 보며 도지사와 소수의 편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오만함만이 느껴질 뿐이다.

비상적 시기, 비상적 조치를 감시해야 한다.

더욱이 이러한 조치가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한 비상적 국면에서 등장한 것에 대해 매우 우려스럽다. 한국 현대사에 비춰보면 이런 우려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역대 독재정권들은 천재·지변이나 내우·외환을 핑계로 국민의 인권을 침해해 왔다. 비상적 조치가 필요한 시기라며 강한 규제를 정당화하지만, 그러한 조치가 비상적 상황이 끝난다고 당연히 원래 상태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었다. 비상적인 시기에 이뤄지는 조치들은 비상적 상황이 끝나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그런 원상회복 조치들은 자연스럽게 대부분 이뤄지지 않았다.

만약 코로나19 유행이 지나가고 시스템의 설치 전후로 민원 처리 속도가 차이가 없고 다른 방법으로 청사 안전 확보할 수 있다면, 전북도는 원래대로 청사를 운영할까. 시스템 구축을 위해 3억이나 들인 예산을 낭비하면 안된다는 핑계를 대면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런 행태가 주민의 대표이고 주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할 자치단체가 할 모습은 아니다. 시민사회의 기자회견, 성명, 면담, 인권위 진정 등을 통해 출입통제시스템 문제제기에도 자신들의 입장이 옳다고만 하는 전북도청이 거대한 성벽처럼 답답함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러한 답답함을 넘어 다음에 도민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또 다른 조치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심각함으로 도 청사를 다시 보게 된다.

“민주주의가 병들면, 파시즘이 침대 곁으로 다가온다. 조심할 것. 그는 단지 안부를 묻자고 오는 것이 아니니.”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까뮈의 남겼다는 이 말을 다시 곱씹게 된다. 천재·지변을 틈타 우리의 권리를 퇴보시키는 세력들이 있다. 앞서 인용한 것처럼 비상적 시기의 시계추가 시민들의 권리를 제한하려 할 때 감시하고 그에 맞서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시계추가 멈추지 않는다면, 그 다음 단계는 시계추를 움직이는 권력을 바꾸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Post Author: 전북노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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