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정세 전망
Ⅰ. 들어가며
작년 한 해 인플레이션의 지속과 경기침체의 현실화를 점쳤던 주류 경제학자, 운동단체 들의 전망과 달리 우리는 인플레이션은 진정될 것이고 경기침체의 가능성도 낮다고 전망한 바 있다. 또한 중국의 부상이라는 전망과 기대에 이견을 제시하고 중국 경제가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미국의 견조한 성장세와 인플레이션 완화라는 작년 경제 지표는 우리의 전망이 타당했음을 보여준다. 중국 경제의 성장률 둔화, 부동산 위기 심화 역시 중국 경제가 새로운 자본주의 축적 모델로 등극하기 쉽지 않을 것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우리는 올해에도 미국 경제의 완만한 성장을 전망한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대외 종속성에 더해 윤석열 정부의 통화주의적 경제정책의 결과로 미국과 한국의 비동조화 추세는 반전되기 어려울 것이다. 보호주의가 확산되고 미국 헤게모니가 약화되는 세계 정세 변화의 가운데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 위기는 높아지고 있다. 전세계에서 점증하는 극우적 포퓰리즘 세력의 준동도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중요한 쟁점이다.
Ⅱ. 헤게모니국과 나머지 국가의 경제 비동조화
1) 침체를 전망하기 이른 미국 경제
미 연준, IMF 등 주요 경제 관련 기구들은 작년 미국의 성장률을 0.3%로 전망했으나 매분기 예상을 크게 뛰어넘어 연 2.5%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 내에 경기침체, 혹은 인플레이션에 경기침체를 더한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은 크게 어긋나게 되었다. 비관적 전망은 대개 인플레이션이 쉽게 둔화되지 않을 것이므로 긴축을 지속할 수밖에 없고 경기를 냉각시키는 과정에서 실업률 상승에 직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에 기대고 있었다. 우리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노동자계급의 조직력‧협상력이 크게 훼손되었기 때문에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서 나선효과는 관찰되지 않을 것이며 실질임금 하락이 오히려 문제일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자본주의 경제에서의 공황이 반복되고, 이윤율이 하락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주류 경제학의 이론적 빈곤에 있다. 통화정책의 부작용으로 실업률의 등락이 발생한다는 통화주의의 설명이나 생산성, 기술변화 충격으로 경기순환이 발생한다는 실물적경기순환이론(새고전학파) 모두 경기순환의 원인을 경제 외부에서 찾고 있으며 2023년 경제 예측에서 보듯이 현실 경제를 예측하는데 자주 실패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에 기초해 2020년 이후 미국 경제를 다시 살펴보면, 2020년 공황으로 과잉생산의 조건이 청산된 이후 다음 공황이 도래할 것인 만큼 만큼 고정자본의 축적, 생산 과잉, 불균형의 누적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20년 공황 이후 상품소비, 제조업 설비 가동률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는데 이는 lockdown으로 인해 서비스 소비가 급격하게 둔화되며 상품소비 수요가 급증한데 따른 것이지 고정자본 증대와는 거리가 있다. 또한 2022년 하반기부터 제조업 PMI가 50 이하로 하락했고 상품소비와 서비스소비 사이의 불균형이 축소된 이후인 2023년 하반기 들어 제조업 신규주문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
미국 실질 개인 소비지출
자료:Fred
비고:2020=100
미국 제조업의 고정자본 투자는 2022년 4분기 이후에 큰 폭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 순환에 더해 미국의 보호주의 회귀를 상징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발효 결과이다. 구조물 준공 기간과 설비 가동까지의 시간을 고려하면 생산과잉까지는 수 년의 시간이 경과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직전 제조업 설비 투자 정점(2015년 2분기)과 산업생산 정점(2018년 4분기) 사이에도 3.5년 정도의 시차가 있었다.
미국 제조업 구조물 투자와 산업생산지수
자료:Fred
미국의 실업률은 2023년 내내 4%를 넘지 않았고 4분기에는 3.7%에 머물렀다. 구인률은 2022년 1월 7.1%에서 지속적으로 낮아져 2023년 말에는 5.4%에 도달했다. 미국 노동시장은 실업률의 증가 없이 구인률의 감소만으로 긴축의 충격을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 실업률은 강력한 경기선행지표라는 점에서 4% 미만의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는 미국 경제가 조만간 침체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하기에는 어렵다. 다만 노동인구의 조기은퇴, 비자발적 실업 등으로 미국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20년 공황 이후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구직단념자 등 비자발적 실업을 포괄하는 광의의 실업률(u-6)은 실업률과 달리 2023년 4분기에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양한 노동시장 요인을 고려할 때 실제 실업률이 완전고용 수준으로 여겨지는 4%에 근접했거나 초과했을 가능성이 있어 긴축 일변도의 정책이 지속되었을 때 노동자 계급에게 돌아올 피해는 정책결정자들의 예측보다 클 수 있다.
미국의 구인율과 실업률
자료:Fred
Fed가 금리 결정의 핵심 지표로 사용한다고 알려진 슈퍼코어 CPI물가지수(에너지, 주거비 제외)는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낮아졌다. 여전히 물가상승률이 Fed의 목표인 2%대로 낮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있지만, 이 같은 전망에 앞서 ‘왜’ 2%여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폴 크루그먼 등 미 자유주의 진영의 경제학자들이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물가상승률이 3%, 4%이면 안 될 마땅한 근거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 이미 실업률의 저점을 통과했다면 물가와 실업률을 교환하는 주류경제학의 관점에서도 2% 물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일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목표의 달성을 위해 다수 노동계급이 희생을 감수하라는 주문이 된다.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 요인으로는 부채와 부동산이 꼽힌다. 2022년 기준, 미국의 GDP 대비 공공 부채비율은 97%로, 부채상환에 GDP의 1% 가량을 사용한다. 올해 금리가 하락한다면 공공 부채가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의 가계부채는 2023년 3분기에 17조 2,900억 달러로 통계가 집계된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특히 저소득 가구의 신용카드 연체율이 2019년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규모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3년 3분기 기준 75.2%로 2007-08년 위기 당시 100%를 초과했던 데 비하면 20%p 이상 낮은 수준이다. 상업용 부동산 공실 문제가 금융 부문으로 확산될 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으나, SVB 파산은 위기의 확산 없이 지나갔고 금리 인하 여력이 있어 대응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2024년에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을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는 전망이 이전의 성장 추세선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자본의 수익성이 회복될 특별한 계기는 보이지 않으며, 1970년대 이후 저성장은 고착되었고 2020년 공황 이후 실질임금의 감소, 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 가구 간 소득 격차 확대 등 불평등 요인은 심화되고 있다.
미국 비농업 부문 노동생산성과 시간당 임금
자료:Fred
비고:2017=100
미국 소득 분위별 가구 소득 추이
자료:Fred
비고:2018=100
<보충> 미 Fed 양적긴축 이후 유동성 확대와 관련하여
미 연준은 2022년 6월부터 양적완화(QE)를 종료하고 양적긴축(QT)을 시작했다. QE는 연준이 MBS 등 부실 채권과 국채를 매입하여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던 정책을 뜻한다. 2020년 경제위기 전 연준은 매입한 채권의 만기가 도래하면 재투자를 중단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산 규모를 축소했으나 2020년부터 재차 QE를 시작했다. 현재 QT는 연준의 보유자산을 축소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기준금리 인상, QT로 통화긴축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미 주식 시장은 여전히 활황이다. 이는 연준의 자산 구성 변화를 함께 살필 때 이해 가능하다. 미 연준의 자산은 연준이 매입한 채권(국채, MBS 등)으로, 부채는 상업은행 지급준비금, 역레포(Reverse Repurchase Agreements), 재무부 현금 잔고(Treasury General Account)로 구성된다. QT는 연준이 채권을 매각하면서 자산과 부채를 동시에 축소하는 것을 의미한다.미 연준 부채 구성
자료:Fred
위 그래프를 보면 QT가 시작된 2022년 6월 이후 총 부채가 감소(자산도 함께 감소. 대차대조표 축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축소된 부채는 역레포 자금이고, 상업은행 지급준비금은 오히려 증가했다. 축소된 역레포 자금은 대개 재정증권(만기 1년 미만 미국채)으로 흘러갔고 일부는 지급준비금으로 돌아오고 있다. 지급준비금 증가는 금융시장의 유동성 증가를 의미한다. 최근 미 증시 활황은 지급준비금 증가와 연관지을 수 있다. 금융시장의 유동성은 역레포 자금이 모두 소진된 후 지급준비금이 감소하기 시작할 때 본격적으로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역레포 자금 소진은 2024년 1분기 무렵, 지급준비금 규모가 예년으로 축소되는 것은 2024년 하반기 이후다.
지급준비금과 S&P500 지수
자료:Fred
2) 보호주의의 확대와 자본주의 열강국의 위기
미국의 보호주의 강화가 미국 경제에 단기적 효용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품생산 경제라는 자본주의에 고유한 성격에서 비롯하는 주기적 공황과 이윤율 하락을 피해갈 수는 없다. 앞서 살폈듯 미국의 제조업 고정자본 투자는 IRA법 발효 이후 급격히 증가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높여 이윤율 하락폭을 키울 것이다. 또한 다음 과잉생산 공황까지의 기간을 단축하고 과잉생산의 규모를 키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미국의 보호주의가 강화되면서 미국과 유럽, 한국 등 미국을 제외한 미 주변국 사이에 비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OECD가 11월에 발표한 2023년 GDP 성장률 추정치에 따르면 독일은 –0.1% 역성장하고, 유로존 평균은 0.5% 성장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국가들의 고용률, 실업률은 Covid-19 대유행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파트타임 노동자 비율도 2009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2009년 17.3%, 2022년 17.0%). 그러함에도 유럽 국가들의 성장이 부진한 이유로는 미국의 보호주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을 고려해야 하고, 구조적인 요인으로는 생산연령인구 감소를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우리는 중국이 미국 헤게모니와 다른 새로운 축적 모델을 보여주지 못하였고 중국 경제가 수익성 하락, 인구 감소, 빈부격차 등의 문제를 겪고 있음을 2022년, 2023년에 제출했던 전망에서 일관되게 지적해왔다. 중국의 통제‧억압적 정치사회 제도가 새로운 국제 질서로 수용되기 어려울 것임도 지적했다. 제출했던 전망은 각주에 요약하여 첨부한다1.
2007년에 정점을 찍은 이후 하락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 경제는 2024년에도 성장률이 둔화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주요 요인은 부동산 과잉 공급, 회사채 및 지방정부 부채 위기,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노동력 공급과 수요 감소이다.
GDP 성장률 저하 시점(T) 이후 GDP 추이
자료:OECD
비고:3년 이동평균
부동산 부문은 2010년 대 이후 중국 경제를 지탱해왔으나 현재는 중국 경제의 위기를 초래하는 내적 모순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의 회사채 디폴트(채무불이행) 규모는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연중 증가했고, 명목상으로만 존속하고 있을 뿐인 헝다 그룹에 더해 비구이위안 등 사실상 파산을 맞은 부동산 개발기업의 수는 늘어나고 있다. 부채 문제는 부동산 개발기업에 재정을 의존해왔던 중국 지방정부에서도 심각하다. 중국 지방정부의 부채 잔액은 2023년 12월 말 기준 40조 7,373억 위안으로 전년에 비해 5조 6,755위안이 증가했고, 이자 비용도 1조 2천억 위안을 초과한다. 특히 일부 시‧성은 부채비율이 200%를 초과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되어 문제를 겪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0년대 말 부동산 부문에 의존한 성장을 전환하려는 계획이 있었으나 Covid-19 확산 시기 락다운으로 경기가 악화된 데에다 부동산 연관 회사채 문제가 겹치면서 재차 부동산 경기 부양책(특별 국채 1조 위안 발행 등)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문제를 지연시키면서 확대시키는 효과에 그칠 것이다.
경제가 일정 규모 이상 도달한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출산률이 감소해왔지만 중국은 그 감소 추세가 주요 선진국, 고소득 국가에 비해 훨씬 가파르다는 점에서 우려를 더한다. 중국은 장기 예측보다 빠른 시기인 2022년에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것으로 기록되었고 2023년 4월에는 인도가 인구에서 중국을 추월한 것으로 집계된다. 중국의 초혼 평균 연령도 2010년 24.89세에서 2021년에 31.3세로 증가세가 가파르다.
중국‧독일‧일본의 출산률 비교
자료:The Newdaily
비고:중국 0=2016년, 독일 0=1964년, 일본 0=1973년
중국 정부는 2020년 쌍순환 전략을 발표하고 국내순환(국내 소비)을 경제 정책의 주요 기둥으로 삼는 것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출산률 감소와 결혼 연령 증가 등 인구 구조 변화는 장기적으로 수요를 둔화시킬 것이므로 내수 확대 전략에 제약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적으로도 인구 감소, 결혼 연령 증가가 부동산 부문의 수요 회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3) 한국 경제 전망
한국 경제는 2023년 1.4%의 낮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만성적인 저성장에 시달리던 일본이 2.0%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에 비해서도 낮은 수치이다. 윤석열 정부가 삼각동맹을 추구하는 대상국 미국, 일본이 전망(미국 0.5%, 일본 1.8%) 대비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데 비해 한국만 연초 전망(1.8%) 대비 저조한 결과를 보였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 일본과의 경제‧군사 결속을 강화하려는 노력에 매진했음에도 오히려 경제의 비동조화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의 긴축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3.5%로 유지하면서 통화긴축을 지속하고 있다. 여기에 재정긴축이 더해져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반면 미국은 통화긴축 정책을 펼치면서 동시에 IRA법 등 보호주의와 확장재정정책을 분명히 하고 있고, 일본도 자국의 주요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며 설비투자를 견인했다.
긴축재정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문제였으나, 문재인 정부의 국가회계가 흑자를 반복하는 긴축재정이었다는 점에서 문제였다면 윤석열 정부의 국가회계는 총수입이 감소하여 적자가 지속 되는 긴축재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2023년 국세수입 예산을 400조 5천억 원으로 수립했지만, 9월 발표한 세수 재추계 결과 국세수입 전망값은 341조 4천 억 원으로 59조 1천억원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예산상 규모 58조2천억 원에서 94조3천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세수입 감소는 윤석열 정부의 세제개편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2023년 연달아 세법을 개정하여 국세수입을 축소했다. 2022년 세법 개정에서는 소득세 과세표준을 상향했고,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추고 구간을 4단계에서 2‧3단계로 단순화했다. 종합부동산세는 중과제도를 폐지하고 기본공제 금액을 상향했다. 2023년에도 소득세, 부가세를 추가로 감세했고 법인 세액공제 대상 범위를 넓혀 법인세를 감면해줬다.
윤석열 정부의 긴축 기조로 2023년 정부소비의 GDP 성장 기여도는 0.3%p(정부소비 0.2%p, 정부고정자본형성 0.1%p)에 머무르는 수준이다. 2024년에도 세입‧세출 긴축 기조가 이어지는 만큼 올해 경제 성장에 정부의 역할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정부의 긴축 기조는 감세가 기업의 투자를 유도한다는 레이건‧대처 시절에 통용되던 신념에서 비롯한다. 미 바이든 행정부의 ‘자유’가 보호주의‧고립주의의 외피일 따름인데 비해 윤석열 정부의 ‘자유’는 그 방향과 내용, 현실성 모두가 불분명하다.
한국 GDP 정부기여도와 총세출 증가율
자료:한국은행, 기획재정부
한편 최근 한국 경제의 부진에는 미국의 보호주의‧고립주의 정책의 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에 따라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높이는 통화긴축에 나서게 되면서 경제에 큰 부담을 안겼다. 또한 미국과 유럽 사이의 경제 비동조화와 유사하게 한국이 미국의 프렌드쇼어링에 깊숙이 편입될수록 보호주의와 근린궁핍화의 영향이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의 고정자본 투자는 2022년부터 둔화되었는데 IRA법 시행에 따라 한국 대자본이 미국 내 설비투자를 진행하면서 한국의 고정자본 투자는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이 신념에 불과할 뿐 대외의존도가 높은 개방경제인 한국 경제 현실에서는 기업의 투자유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제조업 설비투자 증가율
자료:한국은행
미국의 중국 고립 정책에 동참한 데 따른 경기 위축도 있다. 중국으로의 수출 비중은 2021년 이후 빠르게 감소했고 반면 미국으로의 수출은 증가했다. 중국과의 관계 조정은 2023년 한국 경제 성장률 둔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앞으로도 영향이 지속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향을 과대 해석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대중 수출, 수입액이 감소한 반면 대미 수출액은 증가하고 있다.
한국의 대중·대미 수출액 비중
자료:UN Comtrade, 한국무역협회
한국 경제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는 고금리 지속에 따른 건설‧부동산 부문의 유동성 위기가 있다. 통화긴축으로 유동성이 축소되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가 낮아진 데다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이미 2023년 말 기준 59.6%로 높아져 부동산 수요는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다. 결국 차입에 의존하는 건설 사업 시행에 차질이 생기면서, 부동산 PF 관련 대출의 부실이 발생하고 PF대출 보증을 선 대형 건설사로까지 부실이 번지고 있다. PF 유동화증권은 파생상품과 달리 제2, 제3 유동화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실이 전체 금융시장으로 파급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이지만 유동성에 의존하는 건설업 전반의 부실과 위축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주요 건설 선행지표인 건설착공면적은 2022년부터, 건설수주액, 건축허가면적은 2023년 들어 크게 감소하고 있어 건설업 위축은 향후 수 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손실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이다. 이미 워크아웃 절차에 들어간 태영건설은 자구책 마련보다는 자신의 부도가 경제 전반에 미칠 피해를 무기로 버티는 모습을 보여줬다. 손실의 사회화가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공공주택 매입을 전격적으로 늘리며 부동산 부문 위기를 대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차입에 의존하는 건설업이 실질적으로는 금융부문화 된 만큼 자기자본비율 등 금융 규제의 적용으로 건설 부문의 불안정성을 축소해야 할 것이다.
건설수주액, 건축허가면적, 건축착공면적 전년(동기)대비 증감
자료: 대한건설협회, 국토교통부
비고:2023년은 9월까지 자료
한국 경제 둔화의 구조적인 요인으로는 생산연령인구의 가파른 감소가 있다. 인구 감소, 특히 생산연령인구의 감소는 유럽, 중국 등 대다수 나라가 공유하고 있는 문제다. 한국은 2021년부터 인구 감소가 시작됐지만 생산연령인구는 이미 2016년에 정점을 찍었고 하락 속도도 가파르다. 한국 인구 그래프의 기울기는 주요 선진국 보다는 중국과 유사하다.
한국의 인구 변화
자료: 통계청 「인구동향조사」
인구와 국민회계를 분석한 Fernández-Villaverde 등의 최근 연구2에 따르면 G7 국가들 사이에 GDP 연간 성장률에서는 차이가 크지만, 생산연령인구 1인당 GDP 연간 성장률은 간격이 대단히 좁혀지며 국가 간 양상도 달라진다. 미국은 1990~2019년에 노동인구 1인당 GDP 연간 성장률이 1.56%였는데 일본(1.44%), 독일(1.58%), 영국(1.52%)은 미국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시 말해 1인당 GDP 연간 성장률, 1인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의 둔화는 총인구 중 노동인구 비중이 감소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향후 경제 전망에 있어 인구구조의 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주요하게 고려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 연구는 한국은 설사 노동인구 당 노동생산성이 유지된다 해도 가파른 노동인구 감소로 인해 국민회계의 역성장을 막을 수 없을 것임을 자명하게 시사한다. 인구 당 산출물이 줄어들 때, 산출물의 분배를 둘러싼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은 매우 치열해질 것이다.
1990~2019년 경제성장과 인구
캐나다 | 프랑스 | 독일 | 이탈리아 | 일본 | 스페인 | 영국 | 미국 | |
---|---|---|---|---|---|---|---|---|
GDP 연간 성장률 | 2.31 | 1.59 | 1.51 | 0.73 | 0.93 | 2.06 | 1.97 | 2.49 |
인구1인당 GDP 연간 성장률 | 1.24 | 1.07 | 1.35 | 0.56 | 0.84 | 1.39 | 1.43 | 1.52 |
인구 연간 성장률 | 1.06 | 0.52 | 0.16 | 0.18 | 0.09 | 0.67 | 0.54 | 0.95 |
노동인구 1인당 GDP 연간 성장률 | 1.32 | 1.30 | 1.58 | 0.80 | 1.44 | 1.41 | 1.52 | 1.56 |
노동인구 연간 성장률 | 0.98 | 0.29 | -0.07 | -0.06 | -0.51 | 0.64 | 0.45 | 0.91 |
총인구 중 노동인구 비율 | 0.68 | 0.65 | 0.67 | 0.66 | 0.65 | 0.68 | 0.65 | 0.66 |
출처 : Fernández-Villaverde et al.(2023)
G7+스페인의 인구당, 노동인구당 GDP
출처 : Fernández-Villaverde et al.(2023)
연구에서 한국에 견줘 주목할 나라는 이탈리아인데 이탈리아는 1981~2007년의 노동인구 1인당 GDP 연간 성장률은 1.67%로 미국 2.06%, 독일 1.84%와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금융위기 이후인 2008~2019년 노동인구 1인당 연간성장률은 –0.11%로 미국 1.34%, 독일 1.35%와 격차가 커졌다. 이탈리아는 2000년대 들어 성장이 둔화했고, 2008년 경제위기 당시에는 부채위기를 동시에 겪으며 재정정책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의 생산성 하락은 성장의 한계에 경제위기와 긴축재정이 겹쳤을 때 민족경제가 마주할 수 있는 경로 중 하나이다.
Ⅲ. 경제‧안보 블록화와 극우/포퓰리즘의 확산,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위기
1) 미국 주도 경제‧안보 블록화
미국 대외정책의 초점은 중국에 맞춰져 있다. 미국은 중국을 국제 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를 가진 유일한 경쟁자로 규정하고 중국의 부상을 막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34.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자는 이른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정책은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전략 목표가 되었고 공급망 재편이 진행 중이다. 미국 주도의 보호주의 질서는 세계 경제의 공급망 사슬을 길어지게 하면서 공급 비용 상승 요인으로도 작용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국가별 수입 비중
자료 : UN Comtrade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중국의 부상은 미국과 대립‧갈등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헤게모니 국가의 등장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구도로 중국, 러시아를 겨냥하는 미국의 대외 정책은 경제‧안보 블록화에 ‘규칙 기반 질서’라는 그럴듯한 정치적 포장을 씌우는 데 불과하다는 평가가 더 적합할 것이다. 반대 측면에서 중국이 미국 다음의 헤게모니 국가가 될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 역시 중국 경제‧정치체제에 대한 객관적 진단이 결여 되었다.
한편 미국의 대중국 포위 과정은 미국 헤게모니의 약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2023년 5월 23일에 공식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는 대중국 포위망에 참여한 국가들에 제공할 뚜렷한 인센티브(시장접근)를 제시하지 못했고 그 위상도 의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는 행정협정에 그쳤다. 한국을 미‧일의 중국(‧러시아) 포위망에 깊숙이 편입시킨 미‧일‧한 캠프 데이비드 합의도 그 내용에서의 문제를 뒤로 하더라도 미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았다(못했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노정되어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적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열강들의 경제‧안보 블록화로 대규모 전쟁 가능성이 점증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블록화 정책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공간은 동북아시아이다. 미국은 중국(‧러시아‧북한)을 포위하기 위해 한국을 미‧일 동맹에 합류시키는 블록화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블록화는 반대급부로 중‧러‧북의 결속을 강화시키며 군사적 위기를 양측에서 고조시키고 있다. 2017년 이후 5년 만인 2022년 9월에 동해 공해 상에서 미‧일‧한 합동 군사훈련이 실시됐고, 중‧러 군사훈련의 횟수도 증가하고 있다. 아직 중국의 입장이 유보적이기는 하지만 중‧러‧북 연합훈련까지 거론된다.
2) 극우/포퓰리즘 확대라는 전세계적 흐름
미국과 소위 ‘자유세계’는 경제‧안보 블록화를 위해 독일의 재무장, 일본의 정상국가화를 지지하고 있다. ‘자유세계’는 이스라엘의 극우정권 역시 자신들의 일원으로 승인하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방조했다. 이렇듯 경제‧안보 블록화는 배타적 민족주의, 고립주의, 극우적 이념의 확산과 공명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 러시아 등이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하지만, 미국 사정도 만만하지 않다. 올해 말 치러질 미 대선은 바이든과 트럼프의 양자 대결로 예상되며, 현재 추세대로면 트럼프가 재선할 가능성도 낮지 않다. 트럼프는 연일 반이민 혐오 발언을 일삼으며, 배타적 민족주의를 외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민감한 정치적 쟁점 중 하나는 이민자 문제다. 텍사스주는 멕시코에서 이민자가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남부 국경에 가시 철조망을 설치했는데 2024년 1월 연방대법원은 연방 정부가 이를 철거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러나 텍사스 주지사 그렉 애버트가 주방위군을 투입해 연방 요원의 국경 접근을 차단하면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텍사스 주는 2023년에도 이민자를 태운 버스를 워싱턴, 뉴욕 등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대도시에 보내면서 문제를 확산시켜왔다. 연방정부에 대립하는 텍사스주의 행보는 분리주의 지지 여론과도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트럼프는 텍사스를 지지하는 다른 주에서 텍사스로 주방위군을 파견해야 한다고 선동하며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공화당도 가세해 미국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이 텍사스 국경에 모여 세력을 과시했고, 2월 13일에는 미 하원에서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 탄핵 소추안을 채택했다.
재임 기간 주 이스라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겼던 트럼프의 전적을 보면, 트럼프와 공화당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한다 해서 이들의 득세가 평화의 진전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미 민주당, 바이든의 블록화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 대안일 수도 없다.
유럽의 상황도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헝가리, 이탈리아 등에서 극우 정당이 집권했고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 유럽 주요국에서 극우 정당이 2~3당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
3) 한국의 정치 지형과 사회운동
극우 정치세력의 성장이라는 전세계적 흐름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가 드러내는 극우적 색채는 한층 더 심각한 수준으로 나아갔다. 2023년에 이루어진 인사에서 극우 인사들을 정부 요직에 추가로 입각했고, 적을 힘으로 제압해야 평화라는 발언이 쏟아졌다. 정부 비판 세력을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으며 증오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안전 이슈를 안보로 치환하는 장면도 지나칠 수 없다. 신림역, 서현역에서 발생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폭력 행위를 명분으로 시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며 완전무장한 경찰 특공대가 도심을 순찰하는 모습을 전시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훼손되는 현상에서도 윤석열 정부 및 국민의힘 주요 인사들의 역할이 크다. 이들은 운동권청산론을 제기하며 저항운동의 역사를 왜곡‧훼손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극우 이념의 확산이 정치세력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들은 극우화 되어가는 대중 이데올로기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는 것이기도 하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한국의 정치 지형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의 편가르기 정치 심화에 더불어 진보정당의 민주당 하위파트너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여기에 제3지대론자들의 합종연횡도 이루어졌다.
민주당은 검찰독재론을 제기하며 정부‧여당과 대립하고 있으나, 검찰독재론은 스스로를 국가권력의 피해자로 위치 짓기 위한 전략이라는 점에서 지지층을 규합하여 양당 편가르기를 강화시키는 결과에 이를 뿐이다. 양당 편가르기를 벗어나겠다는 제3지대론자들이 합종연횡하였으나 정치적 지향이 혼재한 만큼 2016년 국민의당의 경과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운동사회와 진보정당이다. 운동사회의 상당 세력과 인사가 ‘정권 퇴진’을 매개로 민주당 세력을 포함하는 연합을 추구하고 있다. 진보당, 정의당 등 여러 진보정당들 역시 민주당 위성 비례정당 참여 혹은 민주당과의 선거 연대를 추진 중이다. 운동사회가 거시 전망, 의제를 분명히 수립하지 못하면서 민주당과의 분별‧정립에도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의 우경화, 편가르기 정치, 민주당으로의 흡수에 따른 운동사회 영역의 축소 등 산적한 당면 문제는 운동사회 공통의 전망과 원칙을 모아내는 데에서부터 풀어가야 할 것이다.
현재의 세계 정세가 자본주의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열강국 사이에 블록화가 진행되었던 제1, 2차 세계대전 전간기의 상황과 유사함은 지난 전망에서 지적한 바 있다. 과거에서 배운다면, 현 정세에서 운동사회가 견지할 핵심 원칙과 요구는 단연 국제주의와 평화다. 이민자 문제는 한국 운동사회에서도 이미 구체적인 쟁점이 되었다. 민주노총 가맹조직인 건설노조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한 사실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도 심각하게 논의되었고 위원장 명의의 입장문이 발표되기에 이르렀다. 이민자 권리는 운동사회의 각별한 관여가 필요한 의제다. 북한이 남한을 적성국으로 규정하며 통일 가능성을 부정하고 나선 것 역시 블록화라는 전세계적 흐름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 북한은 미국의 정치 상황을 주시하며 추가 핵실험 내지 국지적 군사분쟁까지 검토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운동사회는 군축 입장을 분명히 하고, 미‧일‧한의 군사위협 뿐만 아니라 북한의 군사위협에도 반대 목소리를 밝혀야 할 것이다.
Ⅳ. 신기루 발전 담론에서 벗어나야 – 규제 완화를 위한 자치
전라북도는 대기업 유치를 주요 도정 목표로 삼고서 새만금 산업단지에 2차전지 특화단지를 조성하려는 등 기업유치 전략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전라북도가 추진하는 2차전지 특화단지는 그 장소가 새만금이라는 점에서도, 2차전지 산업의 가치사슬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2차전지 산업의 가치사슬은 광물 채굴 – 광물 가공 – 배터리 소재(음극재, 양극재, 전해액, 분리막) – 배터리 셀 – 재활용으로 이어진다. 새만금에 들어올 2차전지 산업은 원자재 제련 및 배터리 소재 전구체 가공 단계로 가치사슬의 중류에 해당한다. 2차전지 원료 가공 과정은 채굴 과정 못지 않게 많은 화학물질을 배출하고 물을 오염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수도권, 해외에서는 해당 공정의 공장 건설을 반대하는 여론으로 입주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나 전라북도는 환경단속 사전예고제까지 시행하며 기업유치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배터리 산업의 가치 사슬
출처 : 삼정KPMG
특별자치도 출범은 이와 같은 기업유치 전략에 날개를 달아주는 형국이다. 전북특별자치도법의 핵심은 각종 개발, 산업, 농업, R&D, 보건 등에서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이다. 이차전지산업 관련 특례도 법에 포함되었다. 전라북도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이주노동자 관련 규제의 완화다. 전북도는 지속적으로 이민‧비자 관련 권한의 지방정부 이양을 요구하고 있고 전북특별자치도법에도 해당 내용이 일부 반영되었다. 또한 법에는 이주노동자의 파견업종 규제를 완화하고, 외국인 유학생 취업활동 허용시간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전라북도특별자치도법의 이민 권한 이양 관련 특례 조항
출처 : 전라북도
그러나 각종 규제 완화가 질 좋은 일자리의 확대, 안정적인 기업의 진출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선행 특별자치도인 강원, 제주의 노동지표는 전북과 함께 전국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각 지역의 GRDP 성장도 제한적이다. ‘자치’ 담론이 신자유주의적 국가 재구조화의 일부로서 확대되어 온 역사를 고려하면 규제완화를 위한 자치의 확대가 갖는 의미가 더욱 명확해진다. 냉정하게 진단하면, 현재 수도권과 벌어지는 격차는 전라북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성장이라는 의미의 자치는 각자도생의 다른 표현일 따름이다.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격차가 급격히 확대되는 가운데 지방의 자치 권한 확대에 방점을 찍는 정책은 지역 간 격차 축소에 대한 중앙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성격이 있다. 또한 지방정부의 규제 완화 성장 전략은 종국에는 다른 지방정부와 차별화할 수 없게 되어 ‘바닥을 향한 경쟁’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규제 완화는 새만금 개발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전북특별자치도법에는 새만금 무인 이동체 산업 육성, 새만금 고용 특구, 연구산업진흥단지 지정, K팝 문화관광거점 등 새만금 사업 관련 특례 조항이 다수 포함되었다. 그러나 2023년 세계잼버리 사태에서 드러나듯, 일단 던지고 보자는 식의 정책은 사업의 성공은 물론 전라북도의 성장도 담보하지 못하며, 부지 및 시설이 완공되어도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전망이 불투명한 사업으로의 예산 투입은 전라북도의 성장을 가로막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이는 사업의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고 시작된 군산형 일자리 사업이 전라북도의 다른 부문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예산을 흡수한 뒤 산업의 파급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사실상 실패에 이르게 됐던 전례와 비슷할 것이다.
전라북도 노동·사회운동은 ‘자치’ 담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전라북도의 규제 완화 전략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규제 완화의 무대가 될 새만금은 앞으로도 주요한 전선이 될 것이다. 이차전지 산업을 비롯 새로 진출하는 기업들에 노동‧환경 기준이 유보되지 않도록 사회적 압력을 만들어나가는 대응 역시 필요하다. 전라북도가 노동력 감소를 이민으로 메우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하는 만큼 이주노동자 조직화 및 이들의 노동권 보장도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다.
- [2022년 정세전망]
중국 경제의 성장률 하락은 일시적 위험 요인이 아닌 중장기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다. 고정자본 투자와 유기적 구성 고도화, 이에 따른 이윤율 및 성장률 저하라는 자본주의 고유의 장기 동역학은 중국 경제에도 적용된다.
‧ 생산성 하락 : 중국의 총요소생산성 수준은 2014년을 정점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한국은행(2021) 추산으로는 중국 GDP 성장률에 총요소생산성의 기여도가 2000~2009년 4.6%에서 2010~2019년 2.2%로 하락했다. 투자가 중국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는 생산설비보다는 건설부문에 집중된 데 주로 기인하는 것으로 평가되며(한국은행, 2021 재인용), 설비과잉, 중복투자에 따른 생산성 저하도 지적된다.
‧ 인구성장 둔화와 불평등 : 중국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출산률 감소로 2013년 10.1억 명에서 2020년 9.7억 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총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2010년 8.9%에서 2020년 13%로 급격히 증가하는 중이다. 동시에 중국의 미국대비 임금 수준(구매력 기준)은 2000년 8.8%에서 2020년 33.5%로 높아졌다. 저임금 노동력 공급에 의존한 성장이 불투명해졌으며 중국(및 동유럽, 여성)의 저임금 노동력 공급에 의존해온 세계 경제의 저인플레이션 성장 역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중국의 불평등 확대도 중국 경제의 주요 문제다. 중국 내 불평등은 농촌과 도시, 소수민족과 한족, 농민공(이주노동자)과 정주노동자, 자산보유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 부체 의존 성장 : 1990년대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던 중국은 미약한 자본축적의 해결 방법으로 적극적인 회사채 시장 육성에 나선다. 1990년대 말부터 회사채 시장이 성장하여 중국 기업들은 레버리지를 활용한 성장을 추구했다. 특히 2007-09년 세계경제위기를 대형SoC 사업과 경기부양책을 통해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을 보인 뒤 자산가격 상승, 주요 산업의 공급 과잉, 부채비율 상승의 문제를 고질적으로 안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2010년대 중반에도 경기부양책을 지속하여 과잉자본의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생산성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지방정부도 기업유치와 신축 주택 공급을 위한 부동산개발에 적극 나섰다. 지방정부는 토지사용권을 부동산개발기업에 판매한 수익을 재정의 주 수입원으로 삼았고 부동산개발기업은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해 주택을 공급하였으며 시민들은 은행 대출로 주택대금을 치르는 순환이 이어졌다. 따라서 회사채 부실은 중국 경제의 뇌관이다.
종합하면 중국이 당면한 생산성 및 성장률 둔화, 생산가능 인구 감소와 불평등, 부채·재정위기 증대는 단기적 처방으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다. 최근 중국 정부는 노동자·소수민족에 대한 통제와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 향후 중국의 성장이 부정적 경로로 이행한다면 노동자 민주주의 역시 더욱 위기에 처할 것으로 우려된다.
[2023년 정세전망]
중국이 미국을 대체한 헤게모니 국가가 될 가능성은 낮다. 중국 경제는 성장 및 투자 둔화, 기업 부채, 인구 고령화 문제를 직면하고 있다. 중국 내 지역 간, 계층 간 빈부 격차 확대도 심각하다. 그러나 중국에서 저하된 자본의 생산성을 만회할 새로운 기술 혁신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 또한 중국식 사회주의로 일컬어지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는 20세기 초 영국(가족 기업) 헤게모니를 대체했던 법인 혁명의 경험과 달리 현재의 성장성 하락을 만회할 새로운 자본 형태를 제시하지 못한다.
정치적 측면에서도 중국는 전후 미국 주도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비해 수용성 있는 표준적 제도와 가치를 제시하지 못한다. 오히려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회의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결정해 격대지정 불문율을 깨트렸고 상하이방‧공청단계도 지도부에서 퇴출했다. 덩샤오핑 이후 성립된 집단지도체제의 종말이다.
중국 정부는 노동자‧시민의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제약한다. 중국은 2000년대 이후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을 시민 감시에 활용해왔다. 인터넷 검열 장벽인 ‘그레이트 방화벽’, AI를 이용한 안면인식 감시 시스템인 ‘스카이넷’이 대표적이다. 2015년에는 대대적으로 형법을 개정해 시민의 목소리를 억누를 수 있는 근거를 확대했다. 특히 테러 위협과 소수민족의 독립 의지 분출을 개정 사유로 들어 형법의 공공위해죄 조항이 집중적으로 개정되었다. 2017년 무렵부터 신장‧위구르 자치구 지역에서 이루어진 심각한 폭력과 기본권 제약은 이 형법 개정과 무관하지 않다. 노동운동 탄압도 강화되었다. 중국노공통신에 따르면 중국 전역에서 벌어진 노동쟁의는 2015년 2,776건에서 2022년 829건으로 감소했다. 쟁의 건수의 감소 역시 통제‧억압 체제의 강화와 무관할 수 없다.
중국의 억압적인 기본권 제약은 COVID-19 대응 과정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중국 정부는 이른바 ‘제로코로나 정책’을 표방하며 확진자 0명을 목표로 방역정책을 펼쳐왔다. 중국 정부의 COVID-19 방역 정책은 감염병의 확산을 막는 것 뿐만 아니라 통제·억압적 방역 정책을 바탕으로 독재적 지배 체제를 공고하는 효과가 있었다. 중국은 ‘제로코로나 정책’에 힘입어 2021년에는 8.1%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중국의 ‘비과학적’ 방역정책은 결국 감염병의 확산을 막을 수 없었으며, 3년 동안 이어진 극단적인 기본권 제약에 고통받던 시민들이 저항에 나서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저항은 통제·억압을 유지의 동력으로 삼는 체제의 불안정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시켜 준다.
중국의 정치·사회 제도가 통제·억압에 의한 지배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은 결국 경제성장이 둔화하는데 따른다. 통제·억압을 기초에 두는 정치·사회제도는 새로운 국제 질서로도 수용하기 어렵다. 여기에 시진핑 주석이 4연임을 넘어서는 장기 집권을 시도한다면 통제·억압의 강화만으로 늘어나는 불만을 잠식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새로운 사건이 필요해질 것이다. 여러 전문가들은 그 사건이 대만을 향한 군사 행동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 Jesus Fernandez-Villaverde, Gustavo Ventura, and Wen Yao. (2023). The Wealth of Working Nations. ↩︎
- “국제 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 그런 목적을 진전시키기 위한 경제적·외교적·군사적·기술적 힘을 함께 지닌 유일한 경쟁자”, 미국 국가안보전략(2022) ↩︎
- 그러나 두 국가의 경제 분쟁에서 핵심적인 쟁점은 결국 지식재산권이다. 미국은 중국이 지식재산권을 무시하여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서 컨닝을 통해 우위를 점하려 한다는 것이다. ↩︎
- 함께보기 : 2023년 정세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