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총선 이후, 권력 지형에 포위된 노동자 민중의 현실
김정훈(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대표)
길고 지겨웠던 총선이 지났다. 그러나 어느 누군가에게는 역동적인 드라마이고, 꽃피는 봄날일 것이다. 참패한 현 정권은 몰락의 예고만큼은 막아낸 기둥뿌리 하나에 기대고서도 변화의 조짐이 없다. 분기탱천으로 기세를 올려 대승을 거둔 이른바 범야권도 그럴듯한 청사진 하나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무소불위 안하무인 ‘검찰 권력’을 쪼개어 놓으면 한편 속은 후련해질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인가. 그것이 정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엄중한 축인 것인가. 노동자 민중을 포함한 시민들이 ‘삶’이 보장되거나 나아지는 길인 것인가. 대승을 자축하는 민주당과 범야권이 답할 문제다. 작년부터 켜켜이 쌓인 우리나라의 총체적 위기를 풀어낼 토론도, 방향 제시도 하지 않았거나 못했던 그들의 총선이 답해야 한다.
현 정권의 무능과 오판 일방주의 그리고 반민주적인 행태에 제동을 걸고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시급한 일이었고 총선의 과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권력의 정당성 문제에만 함몰된 것은 그야말로 권력 간 쟁투일 뿐이다. 무엇보다 국내 경제와 국제 정치 질서가 우리나라의 명운을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도 총선조차 이 위기를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정당성 논쟁 앞에서 이성과 논리와 원칙을 감성이 지배한 상황이 당혹스럽다. 우리 동지들 주변에도 그 ‘감성’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은 분들이 상당하게 있다. 이 또한 현실이다. 이 현실은 총선이 끝나고 눈을 떠보니, 한바탕 꿈을 꾼 뒤에 일어나 보니 이 또한 현실이 아닐 것이다. 엄중한 현실은 극우 보수와 보수 및 亞진보 권력 지형이 ‘노동자 민중의 현실’을 포위·포박했다는 사실이다.
거의 모든 경제 지표가 한국 경제의 위기를 가리키고 있고, 이는 중산층의 몰락과 소득 불평등의 극단화를 가속하고 있다. 경기침체와 물가 급상승은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 노동 현장 곳곳이 아우성치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도 불안하고, 비정규직에서 외국인 노동자까지 노동권과 그 생존권이 위협을 받는 데에도, 지금 정국에, 야권 총선 승리의 단꿈 자리에 노동과 민중은 없다. 노동과 민중을 의제화하는 것을 철 지난 이념 투쟁으로 비하하는 이른바 민주주의자도 있다. 소수 자본과 권력의 이익이 곧 한국의 국익인 양 떠드는 것과 그들이 무엇이 다를 것인가. 여기에 더해 어렵게 쌓아 올린 노동 정치, 노동자 정치의 꿈도 무너졌다.
세계 주요 분쟁 지역이 전쟁의 참화 속에 있다. 국제 질서의 재편이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존 제국주의적 수탈에 대한 항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이 국제 상황에서, 한국의 국제적 지향과 가치 그리고 생존권이 시험대에 올라 있다. 전 세계 인민의 생존과 평화의 문제이자 남한 땅 노동자 민중의 생존과 평화의 문제이다. 지구 차원의 기후 정의를 외쳐도 당장의 감성 정치에 휩쓸려 가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해방을 위해 걸어온 길이 편한 날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그 길이 ‘끝이 없는 길’이라는 것을. 절망의 자리에서 희망을 세우고 무너진 기반 위에 다시 터를 잡고 기둥을 세우는 일은, 다시 해도 다시 해도 우리가 이미 그렇게 걸어온 길임을 알고 있다. 이 지점에서 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를 비롯한 노동자 민중 진영이 대중의 바다와 물결 속에서 놓친 것은 무엇인지, 소홀히 한 것은 무엇인지 다시 살필 일이다. 스스로 힘없음을 한탄하며 현장의 치열함에서 조금씩 벗어난 것은 아닌지도 되새겨볼 때이다. 대중(노동자 민중)과 함께 한다는 것은 대중의 요구로부터 너무 멀어지는 것이 아님도 확인해야 한다. 원칙과 이상은 현실에 있다.
이제 경제위기 탈출의 통로를 구실로 갖가지 개발 광풍이 몰아칠 것이며, 자본의 투자는 노동자의 목줄을 노리는 곳에서 작동할 것이다. 전북의 경우 특별자치도 지정을 빌미로 무책임하고 반환경 반민중적인 개발 정책이 ‘전북발전’의 허울을 쓰고 본격화될 것이다. 자광이 대한방직 터에 세우려는 타워를 보라. 그 속도감이 무섭다. 새만금을 바라보는 눈부터, 농업과 건설 부문 등의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눈까지 우리가 함께 뛰어들어야 할 부문이 아주 많다. 그 시작을 지역 연대의 복원과 재건설에서 생각해 볼 일이다. 지역의 노동과 사회운동이 만나는 넓고 깊고 부드러운 연대부터 시작할 일이다.
연대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현실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