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전문가위원회, “현장실습제도는 ILO 138호 협약 위반”

ILO 전문가위원회, “현장실습제도는 ILO 138호 협약 위반”

ILO 지적에도 여전히 동문서답하는 한국 정부, 이유는?

강문식(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사무처장)

ILO 협약·권고 적용에 따른 전문가위원회(이하 전문가위원회)가 한국의 현장실습제도 및 일·학습 병행제도가 ILO 138호 협약을 위반하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지난 2월 9일 발간된 전문가위원회 보고서에는 전문가위원회가 2022년에 한국 정부가 제출한 비준협약 이행보고서와 민주노총의 견해를 종합 검토하였으며, 한국 정부는 민주노총의 견해에 대한 답변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ILO 138호 협약은 「취업최저연령에 관한 협약(Convention Concerning Minimum Age for Admission to Employment)」으로 한국은 1999년에 비준했다. 138호 협약은 취업최저연령을 15세 이상으로 해야 하되, 청소년의 건강·안전 또는 도덕이 위태로와질 수 있는 경우에는 18세 이상이어야 한다고 정한다(제3조). 협약 비준국은 이 협약의 적용 범위를 정하기 위해 노동자 단체와 협의해야 하고(제4조, 5조, 6조), 협약 규정의 시행을 보장하기 위해 처벌부과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제9조).

직업계고(특성화고, 마이스터고)에서 시행되는 현장실습 제도는 형식상으로는 교육과정의 일환이지만 사실상 조기 취업의 형태로 운영되어 왔다. 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지식을 기업에서 실습한다는 현장실습제도의 취지와 달리 대다수 현장실습 참여자들은 자신들의 ‘실습’이 실상은 ‘노동’이었으며, 그것도 숙련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반복 업무였다고 호소했다. 현장실습 기업은 대체로 영세했으며 실습 담당자를 별도로 선임하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실습생이 혼자서 근무를 하다 중대재해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직업계고 현장실습 폐지’ 정책권고 촉구 기자회견(2024년 2월 22일) [출처:직업교육바로세우기현장실습폐지시민행동]

매년 현장실습생 중대재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한국 정부는 실습을 노동과 분리하겠다며 2018년부터 ‘학습중심 현장실습제도’를 시행한다. 그러나 2018년 이후에도 현장실습은 여전히 비숙련 단순반복 노동이었고, 현장실습 기업은 실습생에게 실습 교육을 제공하지 못했다. 특성화고 학생, 교사, 정부관계자 등은 현장실습제도를 효율적인 노동시장 진입통로로 인식하고 있었으나, 이와 같은 통념과 달리 실제로는 임금, 고용형태, 노사관계 등에 있어 현장실습 비참여자의 노동시장 이행 성과가 참여자에 비해 더욱 우수했음이 확인된다. 한국의 현장실습 제도는 직업교육의 목표를 취업으로 상정하고 기능 교육에 치중하는 직업주의적 교육관과 공명한다. 직업주의적 교육관 아래 특성화고는 학생들이 향후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초교육의 제공을 도외시하고 있다. 결국 현장실습 제도는 특성화고 학생의 노동권, 학습권, 건강권 등 각종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제약하는 매개로서 작동한다(강문식 외, 2022).

교육 현장의 모든 주체는 현장실습 제도를 조기취업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제도가 이를 부정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모순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동자성 부정이다. 한국 정부는 실습생은 노동자가 아닌 학생이므로 노동자성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한국 정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현장실습생은 노동자가 아니므로 ILO 협약, 권고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해석한다. 한국 정부는 2022년 이행보고서에서도 현장실습은 ILO 138호 협약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전문가위원회 보고서 공개 후 2월 17일에 배포한 해명 보도자료에서도 현행 현장실습이 ‘학습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동문서답을 내놓고 있다. 2023년에 ILO 제111차 총회에서 「양질의 도제제도 권고(Quality Apprenticeships Recommendation)」(권고 제208호)(이하 「도제 권고」)가 채택됐을 때에도 한국 정부는 현장실습생은 기업에 선채용되지 않으므로 도제 제도와 다르다며 해당 권고가 현장실습생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2022년에 ILO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현장실습 제도가 138호 협약의 적용 대상이라는 점을 지적했고, 전문가위원회 역시 이를 받아들였다. 전문가위원회는 아동이 위험한 노동으로부터의 보호받아야 한다는 협약 제3조의 요건은 직업훈련, 도제제도 참여자를 포함한 모든 아동 및 청소년에게 적용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현장실습 역시 실습생에 대한 건강, 안전, 도덕이 완전하게 보장되고 이들이 충분한 지도 또는 훈련을 받았을 때에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현장실습제도에서 현장점검이 느슨하게 이루어지는 것과 관련하여 협약 제9조에 따라 청소년을 안전 및 훈련 조건을 준수하지 않고 고용할 시 그 행위를 단념시킬 만큼 충분한 처벌을 부과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도제 권고」 역시도 한국 정부의 시각과는 달리 도제 협약에 당사자의 역할, 권리와 의무, 실습 장소, 실습에 따른 보수 등을 다루도록 했을 뿐 노동 계약 여부를 문제 삼지 않는다. 이는 교육부가 마련한 현행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 담긴 내용과 다르지 않다. 「도제 권고」 권고안을 마련하는 논의 과정에서도 이미 권고의 범위가 쟁점이 된 바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도제(Apprenticeship)를 도제 계약(agreement)을 통해, 체계적이고 재정적 보상을 받는 훈련을 받으며, 공인 자격을 취득하는 제도로 정의된다. 이 같은 정의는 한국의 현장실습제도와 일치한다.

우리 사회에서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현장실습생의 문제를 다룰 때 이들의 신분이 ‘학생이냐, 노동자냐’라는 이분법적 질문이 던져져 온 게 사실이다. 때로는 현장실습생들에게 벌어진 중대재해 참사에 슬퍼하고 분노하며 왜 ‘학생’이 그 같은 참사를 당해야했는지에 의문을 품기도 했다. 현장실습생 중대재해를 다뤄 화제가 된 영화 ‘다음 소희’ 역시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사회적 슬픔과 분노를 편의적으로 왜곡하여 학생과 노동자라는 이분법을 실습생 권리를 부정하는 방패막이로 삼고 있다.

현장실습생의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는 특성화고노동조합(2023년 7월 2일) [출처:특성화고노동조합]

필자는 관련 연구에서 학생과 노동자라는 이분법이 오히려 실습생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으며, 노동권‧학습권 등의 기본권은 계약 상 신분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닌 인간으로서 갖는 보편적 권리로 접근되어야 함을 지적한 바 있다. 이미 한국의 노동관계법은 노동자성 여부를 판단할 때 계약의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판단하고 있으며, 국제 규범도 다양한 형태의 노동관계의 출현에 따라 종래의 인적 종속(subordination)을 넘어 다양한 계약관계를 포괄하도록 확장할 것을 권고한다. 그런데도 노동계약서 작성 여부로 권리의 적용을 가름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인식은 보편적 가치 규범을 비롯해 법률과 국제기준에도 크게 미달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반복되는 동문서답은 국제기구의 지적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ILO 138호 협약, 「도제 권고」의 적용을 회피하고 싶어서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희망과 달리 전문가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현장실습제도와 관련하여 노사 단체와 진행한 협의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라고 분명하게 요청했다. 그동안 교육부, 고용노동부는 민주노총과 도제제도, 현장실습제도와 관련한 협의를 진행한 적이 없다. 한국 정부는 노동단체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스스로 목적을 훼손하고 있음이 반복적으로 확인된 현장실습제도의 존폐를 포함하여 관련 논의를 조속히 시작해야 한다.

참고문헌

· 강문식‧김성호‧노현정‧이수정‧임동헌‧조용화‧하인호. (2022).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인권개선 방안마련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 고용노동부. (2023.6.19.) 「우리 도제제도는 이미 일학습병행법을 통해 이번 국제기준에 준하는 노동기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 _________. (2024.2.17.). 「(설명) 뉴시스, “18세 미만 청소년 ‘현장실습제도’ ILO 협약 위반 우려 첫 판단” 등 기사 관련」

Post Author: 전북노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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