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종합리싸이클링타운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에 부쳐
환경 기준 부적합, 그러나 안전보건 기준에는 적합?1
강문식(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들어가며
전주종합리싸이클링타운(이하 리싸이클링타운)은 전주 에서 발생하는 생활폐기물을 처리하는 시설이다. 수익형 민자사업(BTO)으로 설립되어 2016년부터 가동 중이며 음식물 폐기물(300톤/일), 하수슬러지(150톤/일), 재활용품 폐기물(60톤/일)을 처리하고 있다.
폐기물 처리 시설이 으레 그러듯, 리싸이클링타운에서도 악취, 소음, 분진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아 시설 인근 주민들의 민원도 줄기차게 이어졌다. 올해 발간된 환경 상영향조사 보고서에서는 복합악취 희석배수가 시설 협약 기준을 최고 41배 초과한 것으로 나타나 주민들의 호소에 객관적인 근거가 있음을 보여줬다. 시설에서 수백 m 이상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이렇게 악취, 소음, 분진 피해를 호소한다면 종일 그 시설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처우는 어떨까? 리싸이클링타운 노동조건 실태조사는 이런 질문에서 출발했다.
리싸이클링타운 노동자의 심각한 건강 수준
조사 결과는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이번 연구에서는 전체 임금노동자나 타 폐기물 처리시설 노동자와 노동환 경의 수준을 비교할 수 있도록 선행연구에서 사용된 문항을 이용하여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조사한 모든 항목에서 전체 임금노동자의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했고, 폐기물 처리 시설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비해서도 현저하게 열악한 수준임을 보여줬다.
주관적 건강 조사에서 노동자들의 평균 점수는 3.1점으로 우리나라 전체 임금노동자(3.78)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작업 중 유해·위험요인 노출 시간은 모든 항목에서 전체 임금노동자에 비해 1.7~3.7배 길었다.
두통, 눈의 피로 등의 건강 문제는 전체 임금노동자에 비해 7배 높은 비율로 경험했고, 전신피로도 4.1배 높은 비율로 겪었다. 피부 문제, 청력 문제는 각각 70.7배, 35.5 배 더 높은 비율로 경험했다. 직무스트레스 점수는 상위 25% 이내에 해당했고, 전체 임금노동자에 비해 우울증 상은 2.2배, 수면장애는 3.4배 경험하고 있다.
이상의 결과는 면접조사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되었다.
노동자들은 작업 환경이 열악하며, 개선될 가능성이 낮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불안과 우울 등 스트레 스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러한 건강상 문제는 다양한 유해 물질이 발생하는 노동환경, 높은 노동강도, 교대작업, 미흡한 노동자 보호 및 지지 등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불안, 그러나 충족되지 않는 알권리
무엇보다 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악취, 분진, 유해가스가 자신들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라고 염려한다. 준공된 지 5년도 지나기 전에 음식물 폐기물 등에서 발생하는 부식성 가스가 시설의 천정을 부식시켜 천정을 모두 교체했을 정도다. 시설에 설치된 에어컨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매년 고장 나 교체를 반복한다. 방수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이 고장 나 서비스센 터를 찾았더니 기판이 부식되었다는 설명을 듣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 가스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에 대해 회사로부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며 보호 대책을 강구 할 따름이다.
다양한 유해인자가 존재하는 현장이기 때문에 작업환경 측정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노동자들은 측정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측정에서는 단 한 번도 기준을 초과했다는 결과가 나온 적이 없고, 무엇을 측정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험성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 지침은 해당 작업의 노동자를 평가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정하지만 정작 리싸이클링타운의 위험성 평가는 모두 관리자들만 참여했고 노동자들은 위험성 평가 시행 여부도 알지 못했다. 노동자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게시되어야 할 평가 결과는 노동조합의 요구에도 제공하지 않다가 기초의원의 자료 제출 요구를 거쳐서야 가까스로 받아볼 수 있었다.
주민 피해가 강조될수록 지워지는 노동자의 권리
애초 폐기물 처리시설은 폐기물 발생지 시민의 시야에서 감춰지기 마련인데(리싸이클링타운도 인적이 드문 숲 한가운데 지어졌다), 그나마 폐기물 처리시설 인근 주민의 생활·건강상의 피해는 때로 사회적 문제로 제기 되곤 해왔다. 법에서도 3년마다 폐기물처리시설의 환경상 영향조사를 실시하도록 정했고 주요 지자체들은 그결과를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주민의 생활·건강상의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가시화 되는 데비해, 역설적으로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오히려 사회적 시야에서 감춰지고 있다.
리싸이클링타운 노동자들은 회사가 주민들의 민원을 우려해 시설의 문을 닫아두고, 배기시설을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선 악취나 먼지가 밖으로 유출 되면 안 되니까 셔터를 다 내리라고 해요”, “민원이 생긴 다고 셔터를 닫으라고 그래요. 그 셔터를 닫으면은 우리는 죽으라는 거예요. 막말로.”, “민원이 발생하니 셔터를 내려라. 문 다 닫아라. 직원들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얘기 죠”, “배기 팬은 거의 다 안 쓴다고 보시면 쉽게 될 것 같아요. 그 배기 팬이 돌면 그 악취가 그대로 외부로 나가기 때문에” …
노동환경에 대한 회사의 태도가 무관심이 아닌 의도적인 무시일 수 있겠다고 여겨지는 대목이다. 혐오시설로 여겨지는 폐기물 처리시설의 비가시화는 대개 지하화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리싸이클링타운도 가장 악취가 심한 설비인 슬러지 저류조·저장조 등이 지하에 위치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야에서 감춘다고 폐기물 처리시설에서 발생하는 각종 유해인자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바깥과 차단된 채 지하에 머물며 농도가 짙어진 유해인자들이 그 공간 내부의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20대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작년 6월 평택에코센터 폭발 재해다. 회사가 리싸이 클링타운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시설에서 발생하는 유해인자의 실태를 바깥으로 드러내거나, 이를 원천 저감하도록 설비개선에 투자 해야 한다. 회사는 어느 쪽도 선택하고 싶지 않다.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는 경합하지 않는다
회사가 은폐와 고립을 선택한 배경에는 작업장 노출 기준이 환경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현행 제도의 맹점이 있다. 리싸이클링타운 부지 경계에서 측정한 악취물질 농도는 환경 기준을 초과했지만, 정작 각종 악취물질, 분진이 모여 있는 시설 내부에서 측정한 유해 물질 농도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한 기준을 초과하지 않았다. 게다가 환경 기준에서 정한 지정악취물질 중에는 측정 대상 유해인자에 포함되지 않은 물질이 대다수이고, 여러 선행연구가 폐기물 처리시설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하는 다이옥신, 벤조피렌 등의 발암물질도 측정 대상 인자에서 누락되어 있다. 회사가 노동환경 개선을 포기한 채 환경 기준만을 충족하는 길을 선택해도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은폐된 문제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전가될 뿐이다. 리싸이클링타운 노동자들은 주야 맞교대 노동을 하며 하루 12시간 이상 악취와 분진에 시달리다 두통, 눈질환, 호흡기질환, 피부질환을 겪고 있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에 적응해서 괜찮아진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견뎌내고 있는 것이라고 호소한다.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는 경합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노동안전보건 의제보다 환경보건 의제의 수용성이 높은 편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가운데 노동자의 피해는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다. 고용노동 부는 문제가 불거져 제품 생산이 중단된 지 5년이 지나 서야 가습기살균제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 일부를 찾아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 참여자들은 호흡기 증상을 경험했고 이 증상이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얼마 전 전북 익산 장점마을의 집단 암 발병이 사회적 논란이 되었다. 조사 결과 마을 인근에 있던 비료공장이 발암물질의 진원지로 지목되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보건 당국이 문제 발생 초기에 비료공장에서 일하다 퇴사한 노동자들을 찾아 역학조사를 시행했다. 마을을 떠난 노동자들도 암 투병 중이었다.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보장 되었다면 이 사건들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노동자가 안전하면 시민도 안전하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쉽게 간과하는 진실이다. 리싸이클링타운도 마찬가 지다. 폐기물 처리시설의 작업장 노출 기준에 환경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퇴근 후 가족들을 안아주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소박한 소망마저 외면한 채 이들이 제공하는 사회서비스로 유지되는 도시는 그 자체로 부정의하다. 노동자의 권리를 도외시하는 회사가 시설의 공적 성격을 존중할 리도 없다. 회사는 수익을 올리기 위해 협약에 정하지 않은 음식물 폐수를 외부에서 반입해 악취 피해와 시설 노후화를 부추기기도 했다. 혐오시설이라는 이유로 이를 지하로, 숲속으로 숨기려 들 게 아니라 노동자가 건강하고 안전 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려는 노력이 앞서야 한다.
여기에는 정부·지자체의 관여가 절대적이다. 폐기물 처리시설 안전보건 기준의 강화는 지역 주민들의 행복권과 건강권을 보장하는 길이다.
- 본문에 별도 인용표기를 하지 않았으나 본 글을 작성하 는데 주요하게 참고한 문헌을 아래에 기재하여 놓는다.
자세한 내용은 보고서를 참고 바란다.
•강영중 외. (2018). 가습기 살균제 제조 공정 근로자 건강영향 조사. 한국환경보건학회지, 44(5).
•김세훈 외. (2021). 환경정책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장점마을 백서제작 최종보고서. 익산시.
•남우근 외. (2022). 생활폐기물처리 관련 종사자 노동 인권상황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박철용 외. (2021). 폐기물 소각장 근로자의 유해요인과 건강영향조사, 산업안전보건연구원.
- 본 원고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관지 「일터」 2023년 9월호 특집으로 게재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