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현 정권의 유사 파시즘을 부수고 나아갈 때
헌법 그리고 윤석열 정권과 자유민주주의
김정훈(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대표)
현 정권의 외교 수사학이 ‘가치기반 동맹’과 ‘규칙기반 질서’에 함몰되고 있다. 이 기조는 국가적인 실리 확보를 위한 수사학을 넘어 국제 정세 전망에서 스스로를 고립화시키는 맹종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집단 서방의 요구에 편승·굴종하면서 한반도 지정학적 구도의 현재와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있다. 신냉전체제로 구조화되는 다극적 질서로의 변화가 진행됨에도 중·러의 표적이 되기를 자청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가치’와 ‘질서’는 철저한 그들의 패권 유지 전략임을 모를 사람이 없을 것이나, 현 정권은 ‘민주주의 동맹’을 외칠 뿐이다. 한국은 그 동맹의 맹주에게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등 주요 산업 생산 체계를 강탈당하면서도 무엇 하나 제대로 챙긴 것이 없다. 어떤 실익도 보이지 않는 대일 굴종 외교의 결과, 한국은 미국의 일본 하위 파트너로 고정되고 있다. 한반도 긴장은 칼날 위를 걷는 듯하고 평화와 통일의 시계는 멈추었다.
자본주의 아래 민주주의는 좋게 말하면 자본주의 모순의 보완재이다. 달리 심하게 말하면 자본주의의 폐해와 비인 간성, 반사회성을 덮어주는 포장지이기도 하다. 제도정치, 대의제 민주주의는 자본·권력과 살뜰한 공생 관계를 유지 하는 축이다. 그마저도 국제 관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함에도 1987년 체제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변화시 켜온 원동력이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지키기 위한 투쟁에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권력과 자본이 겉으로나마 ‘상식적인 민주주의 가치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는 자본과 권력의 횡포에 맞서는 유일한 무기이자 이념이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 민주주의가 노동자 민중의 민주주의일 때만.
윤석열은 ‘민주노총 집회를 국민이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을 에두른 윤석열 자신 생각이다. 집회·시위·결사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기본권이다. 이를 무시하고 야간 집회 금지 및 불법 집회·시위 전력을 빙자한 집회 불허 검토, 거리 문화제 불허는 집회를 허가제로 하겠다는 정권의 반헌법적인 불법 선언이다. 집회와 큰 관련이 없는 도로교통법을 들이대며 불법 운운하는 정권과 그 하수견 경찰의 막무가내가 선을 넘고 있다. 경찰의 과잉 대응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방안도 찾고 있으며, 물대포와 최루액을 동원한 기동 진압 훈련도 재개했다.
이것은 공권력의 테러다.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다.
작년 화물연대 파업에서 시작된 민주노총 죽이기, 노동조합을 파렴치한 사기꾼으로 만들기는 대규모 간첩단 조작을 염두에 둔 공안몰이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전교조에 이르기까지 윤석열 정권과 그에 부역하는 극우 언론이 협잡하여 근거 없는 색깔 공세를 자행하고 있다. 오랫동안 노동과 시민사회단체가 염원한 ‘노란봉투법’ 이 국회 본회의에 직접 회부되자 대통령실과 집권당은 대놓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집권당 국민의힘은 아예 ‘시민단체 정상화 TF’라는 희귀한 조직을 가동한다고 한다. 이 정권이 한국의 모든 시민사회 세력을 줄 세우겠다고 하는 것이다.
집권당은 윤석열의 직접적인 하수인이 되어 어떤 작은 비판도 하지 못한다. 국회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실질 기능이 마비되었다. 내년 총선만 염두에 둔 여야 정당은 부패와 패거리 정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견제와 대안 기능을 잃어버렸다. 검찰·경찰과 언론은 유사 파시즘의 도구로 전락하여 노동자와 민중을 토끼몰이하는 타격대와 나팔수로 전면에 나서고 있다. 노동자는 주당 69시간 돌려도 상관이 없다는 정권이다. 노동권은 민주사회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다. 따라서 노동유연화를 기치로 반노동, 반노동조합, 반노동자를 분명히 하는 정권을 어찌 파시즘 정권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오직 자본과만 연합하여 이 땅 인민을 현혹하고 분열시키는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자본주의’일 뿐이다. 권력과 자본만이 자유다. 그것이 파시즘이다. 강력한 무소불위 권력자, 의회 무시, 노동자 적대화, 인권의 실종, 헌법에 보장된 민주주의 파괴 그것이 파시즘이다. 윤석열이 자유를 한 번 외칠 때마다 노동자 민중은 아스팔트 바닥에 바짝 엎드려야 하는 처지가 된다. 윤석열이 민주주의를 외칠 때마다 공안 탄압의 망령에 시달려야 한다.
지금 한국은 공공요금 인상, 물가 폭등, IMF 이후 최대 무역 적자, 세수 부족 등으로 최악의 경제 상황에 몰려 있다.
이를 책임져야 할 정권이 이 상황의 최대 피해자인 노동자 민중에게 오히려 그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노동자 민중을 적으로 규정하고 달려드는 윤석열 정권이 민주주의의 적이요, 민주주의를 침탈한 죄인이다. 이 시대에 나타나서는 안 될 유사 파시즘이 활개를 치도록 방치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삶일 수가 없다. 건설 노동자를 폭력배로 만들어 죽게 해놓고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이 탄압으로 일관하는 정권이다. 밑바닥에 퍼져 있는 분노를 조직해야 한다. 함께 움직이는 발걸음은 치밀해야 한다. ‘윤석열 정권 퇴진 투쟁’을 선언한 이상 그 투쟁이 구호로 끝나서는 안 된다. 투쟁이 없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제도정치에 대한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혹여라도 ‘윤석열 정권 퇴진 투쟁’을 2024년 총선을 의식한 전술적 단위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에 머문다면, 그 자체로 노동자 민중에 대한 배신이다. 이투쟁은 우리 모두가 전략적인 목표 아래 나서야 한다. 윤석열과 그 추종 세력들의 유사 파시즘을 뿌리 뽑을 때까지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헌법을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짓밟는 유사 파시스트 일당의 입에 재갈을 물리자. 그들을 권력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노동자 민중의 자유, 곧 해방이다.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참답게 보장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들의 진정한 민주 주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