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레이사 3000억 전북 투자? 노동자 피 값!
강문식(전북노동연대 정책국장)
원진레이온을 기억하십니까?
1988년, 인조견사를 만들던 원진레이온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까닭 모르게 쓰러져가는 모습과 그 원인이 기계에서 나오는 이황화탄소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원진레이온’이라는 이름이 크게 알려졌다. 원진레이온은 한국에서 노동재해를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다뤄지는 노동재해의 보통명사 격이 된 기업이다. 지금까지 집계된 것만으로도 127명 생목숨을 앗아갔고, 노동재해 판정을 받은 노동자는 900여명에 달한다. 더 끔직한 것은 원진레이온 사건이 80년대 과거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지금도 700여명의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중독 후유증을 앓고 있고, 2009년에는 한 노동자가 17년을 이황화탄소 중독 후유증에 시달리다 그 괴로움에 스스로 목을 맸다.
도레이사 3000억 원 투자는 누구의 피 값?
이 일련의 재앙은 단지 한 회사가 악독하고 돈에 눈이 멀어서 생긴 일이 아니다. 원진레이온 인조견사 기계는 1964년 일본 도레이레이온사에서 중고로 구입한 것이다. 지금 전라북도가 새만금에 3000억 원을 투자받기로 했다며 자랑하는 바로 그 첨단소재생산기업 ‘도레이’사다. 그런데 이 기계는 이미 일본에서도 이황화탄소 중독 문제를 일으킨 사례가 있었다. 이 기계를 판 사람도, 기계를 구입한 사람도 이 기계가 사람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으리라.
도레이레이온은 한국으로 죽음을 수출한 대가로 30억 엔을 받았다. 이 30억 엔에는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과 지금도 괴로어하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녹아있지만, 돈 앞에 사람의 생명을 내팽개친 도레이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들의 고통에 대해 사과하거나 언급한 적이 없다. 도레이사는 노동자 피 값으로 받은 이 30억 엔을 밑천으로 무럭무럭 성장해 신소재 시장을 선도하는 튼실한 중견기업이 되었고 지금은 연매출 40조를 자랑한다. 한국에 죽음의 기계를 팔았던 도레이사는 아예 한국법인을 설립해 전라북도 뿐만 아니라 경상남도를 비롯해 한국에 1조원 이상 규모의 신규설비 투자를 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더 비극적인 사실은 원진레이온의 기계가 한국에서 문제가 커지자 중국으로 팔려가 운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이 기계는 지금도 사람들의 생명을 갉아먹으며 돌아가고 있을 것이고, 기계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여기저기 팔려 다니며 죽음을 뿌릴 것이다.
이렇듯 원진레이온 사건은 단순히 한 회사의 문제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이윤에 사람목숨을 팔아치우는 자본주의 체제 전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삼성이 한국에 반도체 설비를 들여오기 전, 80년대부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희귀암을 앓고 있으며 이 병의 원인이 반도체 공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었다. 삼성과, 삼성에 설비를 판 기업은 이 사실을 몰랐을까? 지금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희귀병을 얻어 투병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이 반도체공장은 미국에서 한국을 거쳐 이제 제3세계로 이전되고 있다. 이미 삼성 공장이 들어선 3세계 국가에서도 한국, 미국과 마찬가지로 희귀병 환자가 발생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죽음은 세계화되었고, 죽음의 설비들은 노동자 조직이 열악해 저항이 쉽지 않은 곳을 찾아 세계를 떠돌고 있다. 이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원진레이온은 언제까지나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도레이레이온-원진레이온-지금은 중국의 어느 기업에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전라북도가 자랑하는 도레이사 투자 유치는 결코 환영할 수 없다. 도레이 사가 전라북도에 투자한다는 3000억 원 안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슬픔, 좌절, 분노가 스며 있는지 함께 되새기는 것이 세계화된 죽음의 고리를 끊는 첫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