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김연탁(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사무처장)

29년 전, 나는 군인이었다. 문민정부라고 칭하던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군은 개혁의 중심에 있었다. 복무기간이 30개월에서 26개월로 단축되었고, 식사도 국 포함 1식 3찬에서 석식은 1식 4찬으로 바뀌더니, 다음 해에는 모든 식사가 1식 4찬으로 바뀌 고, 버거와 쌀국수가 등장했다. 하나회 소속 일선 지휘관이 교체되었다. 휴가 기간에는 사복이 허용을 넘어 권유되기도 했다. 6·25 행사도 바뀌었다. 6·25 참사지 방문, 반공교육과 훈련 대신, 웅변대회, 글짓기대회, 사생대회, 퀴즈대회 등이 진행되었다.

병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분대원들이 모두 하나씩 선택하여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했는 데, 나의 가치관과 가장 상충되지 않을 것 같은 퀴즈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분대원들이 가장 꺼리기도 했다.) 중대 대표로 대대장이 주관하는 대회까지 참여했다. 일등을 확정지을 수 있는 시점에 제출된 문제가 역사발전 5단계를 차례로 나열하는 문제였다. 고민을 했다. 휴가증을 받고 빨갱이로 찍힐 것인가? 아니면, 포기할 것인가? 정답자는 없었다. 아마, 다른 참가자들도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당시는 매주 정기적인 보안점검과 헌병대, 기무사 등이 갑자기 들이닥쳐 진행하는 불시점검이 일상적으로 시행되었다. 받는 편지와 보내는 편지 모두 검열 대상이었고, 부대 내 공중전화 역시 도·감청되고 있었다. 어느 날, 뜻밖의 일이 발생하였다. 당시 부대를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사병은 PX병밖에 없었다. 그런데, PX병이 디스크를 소지하고 있다가 적발된 것이다. 디스크 안에는 테트리스 게임이 들어 있었다. 그 일로 PX병은 영창을 갔다. 테트리스 게임을 만든 사람이 소련 프로그래머라는 이유였다.

또 하나의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다. 당시에는 앨빈 토플러가 유행이었다. 상병이 되면, 자유 시간에 독서가 허용되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앨빈 토플러의 책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어느 날 대대본부에서 급히 호출이 왔다. 그래서, 가보았더니 내가 부탁한 책이 검열에 걸린 것이다. 책 제목은 ‘권력이동’이고, 겉표지가 빨간색이었다. 소식을 듣고 놀란 중대장까지 와서 설명한 끝에 겨우 책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 책은 여행 서적인 줄 알고 검열에 통과하고, 막스베버 책은 칼맑스와 혼동되어 검열에 걸리는 시절이었다.

군대와의 악연은 제대 후에도 있었다. 동아리 후배가 강원도 인제에서 군생활중이었다. 전주에 내려가면 가기 어려울 것 같아서, 제대하고 그 주 토요일에 면회를 갔다. 후배의 부대는 독립 중대였고, 보급병이어서 거취가 자유롭다고 했다. 후배가 시간이 많이 남으니, 책을 좀 보내달라고 했다. 그래서, ‘동양철학 에세이’와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라는 책을 보내주었다. 이후, 후배는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었고, 그 책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 비해 형이 가중되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20년 이상을 군사독재 정권 치하의 레드컴플렉스와 학생운동과 군대에서 ‘국가보안법’의 위협 속에서 살아온 경험들은 자기검열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현실 자본주의 속에서 전개되는 온갖 구조적인 문제와 부조리에 대해서는 침을 튀겨가며 비판하지만, 그 대안에 대해서는 선뜻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2019년으로 기억한다. 노동연대 진로와 소식지 ‘아래로부터’의 성격과 관련한 토론회에서 일부 동지들이 이제 우리의 정체성을 대내외적으로 커밍아웃하자는 주장을 했다. 당시, 여러 조직들이 사회주의를 선언하던 때였다. 동지들의 주장이 옳다는 생각을 했지만, ‘노동연대에서 「사회주의」 라는 용어가 편견 없이 용인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오랫동안 사회주의에 대해 이중의 오해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사회주의는 이미 역사 적으로 실패한 프로젝트였다는 오해, 두 번째는 사회주의는 사회 전체를 하나의 이념으로 구현해야 하며, 그래서 사회구조를 바꿔야만이 이루어진다는 오해이다. 저자는 이 두 가지의 오해에 대해 질문을 통하여 화두를 던진다.

저자는 일상에서의 사회주의와 사회주의자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하고, 평범해서 놀랄 수도 있다. 저자는 사회주의는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운동을 통하여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서술 한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는 어떤 특정한 분파가 아니라, 이러한 운동에 뜻을 같이하고, 함께 실천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소주 아닌 ‘와인’을 먹는 사람이 사회주의자가 아닐 이유는 없다.

맑스는 ‘모든 사물은 모순(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이 있으며, 양질전화와 부정의 부정을 통해 변화, 발전한다.’고 보았다. 현재의 자본주의 내에도 대립하는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자본주의에 대립하는 (사회주의적) 요소들이 영향력을 넓혀가면서 사회는 발전할 수 있다. 이윤 창출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착취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 보다 사회주의가 대중화되고, 사회주의자가 보편화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대의명분에는 100% 공감한다. 하지만, 일관적인 가치관을 갖기 위해 정진해오며, 자본과 권력을 상대로 투쟁해온 활동가들의 입장에서는 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과 생활에 쫓기는 평범한 사람들이 다차원적인 모순들이 존재하는 시공간 속에서 온전히 진보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홍세화 작가가 쓴 책에 ‘두 자녀가 나누는 대화’를 서술해 놓은 대목이 있다. 아들이 누나를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비판하며, 자신은 사회주의자라고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거리낌 없이 자신의 지향을 서슴없이 밝힐 수 있는 프랑스가 부러웠다. 우리 사회도 자신의 가치관을 아무런 자기검열 없이 당당히 밝힐 수 있으면 좋겠다. 사회의 진보와 공동체 및 나의 삶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사회불온세력으로 치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사회주의라는 용어가 지금보다 훨씬 대중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레드컴플렉스와 편견에서 벗어나고, 보다 용기를 내는 데 일조하지 않을까?’라는 희망이 많은 고민 끝에 이 책을 소개하게 한 가장 큰 이유다.

Post Author: 전북노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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