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에 미달하는 문재인정부

자유주의에 미달하는 문재인정부

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정책교육국

세계경제가 둔화세로 돌아서면서 양적완화 정책에 기대던 짧은 온난기가 종료되고 있다. 한국은 이미 2018년 말부터 각종 지표가 하향세로 돌아섰고, 그만큼 정부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 큰 문제는 경제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을 모색하기 보다는 ‘분식이라는 수단을 택하려는 정부의 태도다. 통계 논란이 대표적이다.(이번호 12페이지) 각종 정책 수단을 사용하는데 있어 국회를 우회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니다. 이전 정권에서도 유독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에는 경제성장율 예측치와 실제 성장률 사이의 차이가 몇 배씩 벌어지곤 했다. 뒤집어 말하면 문재인 정부의 정책 운용이 이전 정부와 차이를 찾기 힘들고, 자유주의에도 미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재벌개혁 방향 모호

분배와 재벌개혁을 주창해온 인사들(장하성, 김상조 등)이 청와대 경제 정책의 중심에 있었지만 집권 2년이 가까워지도록 재벌개혁과 관련된 구체적인 로드맵은 제시되지 않았다.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비가역적인 재벌개혁 조치가 이루어졌다고 자평했는데,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은 스튜어드십 코드, 금융그룹 통합감독, 불공정 하도급 규제 등이다. 기업이 재벌총수의 사익편취 수단으로활용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순환출자 해소가 완료되었다고 진단하고 있는데, 지주회사로 전환된 재벌기업의 총수일가 지배력을 인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진단을 동시에 내놓는 셈이다.

스튜어트십 코드의 경우 국민연금이 다른 기관투자자들과 달리 단기적 지표에 매몰되지 않고 기업경영에서의 사회적 기준을 마련하여 적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연기금 수익률로 실적이 평가되는 현실에서 단순히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의지 표명정도로 큰 변화가 일어나기는 어렵다. 연기금 운용 주체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다시말해 정권에 따라서도 서로 상이한 스튜어드십 코드가 적용될 것이다. 당장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구성부터 손대야 할 문제이다.
불공정 하도급거래 규제는 단가 후려치기를 막고 하도급업체가 원청업체에 협의요청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인데, 생산성과 거리가 먼 다단계 하도급 구조 자체를 해소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헌법에서 보장하는 단체교섭권도 무력화되기 일쑤인데 ‘협의를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으로 하도급 업체가 원청과 실효성 있는 협의를 진행하기는 어려워보인다

한편 참여연대 류에서 지배구조 개선(주주자본주의)을 재벌개혁의 우선과제로 주창하는 것 역시 대단히 우려스러운 요소이다. 이미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53.28%(2017.6.30. 기준)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통신3사 역시 외국인 지분이 40% 이상이다. 삼성전자는 2017년 10월 31일,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약 29조원을 배당금으로 지불하는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 정책이 이행되면 최소 15조 원 이상의 국부가 유출되는 결과가 된다. 참여연대 류의 지배구조 개선 주장과 삼성전자의 ‘주주환원’ 정책이 공명하는 셈이다.

민주노총이 재벌개혁 과제로 제시한 ▵지주회사제도 개편 ▵재벌 순환출자 해소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일감몰아주기 규제 ▵사내유보금 과세 ▵사외이사제도 개선 ▵주주대표소송 원고적격 확대 등은 참여연대 식의 제안과 차별성을 찾기 어렵고 내용도 추상적이다.

재벌개혁 의제와 관련해서, 정부가 이윤을 배당으로 쏟아내는 재벌의 행태를 규제하며 경영에 사회적(-노동의) 통제가 이루어지는 재벌개혁을 추진하도록 하고, 동시에 ‘주주자본주의’ 방향의 개악을 저지하는 사회적 압력을 형성해야한다.

소극적 재정정책

자료:기획재정부

재정정책 역시, 일각에서 제기되는 확대재정이라 비판과는 달리 실상은 긴축재정을 완고히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언급되던 최저임금 인상, 사회복지 강화는 방향을 돌리거나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다. 재정정책을 준비해놓지 않은 ‘소득주도’성장론은 애초부터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지적을 받을만 하다.

2017년은 13조5천억원 규모의 추경을 실시했음에도 초과세수가 23조 4천억에 달해 국가 채무가 증가하지 않았고, 2018년에도 25조~30조원 규모의 초과세수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재정수지 추이에서 보듯이 재정수지는 지난 수년 간 우상향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초과 세수로 예정했던 국채 발행 계획의 28조 8천 억 중 13조 8천 억을 발행하지 않게 되었고, 4조원을 조기 상환했다며 자화자찬하는 실정인데, 정부·관료들이 ‘긴축’, ‘균형재정’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이상 양극화 심화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이는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 논란에서도 확인된다.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은, 청와대가 2017년도 국가채무 비율을 악화시키기 위해 적자국채 발행을 추진했었고 이를 반대했다는 것인데, 긴축 · 균형재정을 추구하는 정부내 집단과 청와대 사이의 긴장도 상존했던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청와대는 적자국채 발행은커녕 추가세수만큼도 세출을 증가시키지 못하는 긴축재정을 택했다. 참여연대가 신 전 사무관에 대한 정부의 조치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참여연대 계 인사가 신 전 사무관 발언 옹호 입장을 내는 것 또한 주목할 지점이다.

정부는 2018-2022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상에서도 조세부담률 인상 없이 현행 20.3~20.4% 수준을 유지하는 재정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법인세 증세는 회피했지만 고임금/소득층 증세라도 시행했던 박근혜 정부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에는 아예 증세 계획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분식으로 일관하는 일자리정책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부를 자임했고, 2017~2018년 일자리 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50조에 육박하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비정규직 비율은 2014년 이후 증가 추세이고, 최저임금 미만률도 꾸준히 상승중이다. 청년실업률은 2008년 7.1%에서 2017년 9.8%로 증가했고, 여성의 경력단절은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로의 유입으로 완화하는 실정이다.

자료:국회예산정책처

정부의 일자리 사업은 이전 정부의 방향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보조금 투하’(조선일보)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기부터 정부의 일자리 사업을 통해 신규 창출된 일자리의 상당 부분(43.3%)은 공공부문이었고, 이들 중 다수는 여성·비정규직 일자리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는 그마저도 확장 재정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비정규직 일자리에도 미달하는 초단기 일자리가 마구잡이로 양산되고 있다.

일례로, 정부가 노동시간단축을 핑계 삼아 추진했던 대중교통 인력양성사업은 전세버스업체로의 마구잡이 취업알선에 불과했고 이런 허울 뿐인 사업도 취업 성과로 집계되었다. 심지어 충남에서는 무급 수습기간 후 해고하는 방식으로 실적만 채우는 사례도 있었다. 2018년 말, 공공기관들이 대규모로 2일~1달 기간의 인턴 채용 공고를 냈고 이것도 모두 일자리 실적으로 집계되었다.(이번호 30p 참고)

청와대는 일자리 개수라는 지표에만 매몰되면서 저임금·불안정 일자리 양산에 더해 일자리 분식까지 일삼고 있는 셈이다.

또 다시 토건사업

정부는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모든 공공시설 SOC에 (재벌)대기업의 민간투자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생색내기 식으로 추진했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으로, 공공시설의 민간운영은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을 늘리게 될 것이다. 고 김용균 님의 죽음 이후 민영화·외주화의 문제점이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민영화 정책에 힘을 싣겠다는 것이다.
2019년 들어서는 지자체별로 1~2건 씩 총 23개의 대형토건사업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면서 토건사업을 통한 경기부양 기조를 보다 구체화시켰다. 예산 규모로는 SOC에만 20조5천억원에 달하고, 이는 4대강 사업에 투입됐던 24조에 육박하는 규모다.

경기침체의 활로를 또다시 토건사업에서 찾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효과를 거두기도 어려운 발상이다. 토건사업 확대는 불로소득 확대, 간접고용 구조 확대, 양극화 확대와 동의어이다.

나가며

문재인 정부의 정책 향방은 상당히 모호하다. 방향이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솔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 근저에는 자신들을 절대선이라고 착각하는 오만함이 깔려 있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각종 정책에서 법개정 대신 행정 수단을 이용하고 있다. 예를들어 정부는 공시지가를 인상시키면서 세수를 증대시켰는데 이는 세율 조정 없이, 즉 국회를 우회하고서 세수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이었다. 신 전 사무관 논란에서도 핵심은 청와대에 국가채무 비율 조정 의도보다는 국회를 우회하여 사용할 수 있는 재정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법치를 중시했던 진시황의 법가사상은 대륙을 통치하는데에는 실패했다고 평가하며, 재벌개혁 의제에서 입법에 매달리는 것은 구시대적 방식이라는 비판을 덧붙인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이원화도 정부가 임금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노동계의 개입력을 약화시키겠다는 의미이다.

자유한국당을 설득의 상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정서야 심정적으로 이해하지만, 그것이 대의기관을 우회하는 행정부의 독선으로 귀결되는 것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현 정부는 민주주의의 성숙과 확산보다는 인기영합적 정치에의 의존을 택하고 있다. 그래서 우회의 대상은 단지 국회, 정당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거리의 민주주의까지 넓어질 것이다.

이 점에서 문재인과 트럼프는 닮아 있다.

출처:청와대

Post Author: 전북노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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