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의 즐거움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고 답답함을 달래는 휴식처는 텃밭이다. 마음이 복잡하고 몸이 무겁고 피곤할 때 식물과 대화하면서 자생초 하나하나 뽑으며 빠져들면 몸의 항상성은 균형을 이룬다. 어릴 적 시골에서 부모님과 생활하면서 농사일을 도울 때는 대량생산을 위한 노동의 강도가 높아 육체적으로 힘이 들었다. 하지만 텃밭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완벽하진 않지만 부족한 과정을 거쳐 결실을 볼 때 흐뭇함을 느낀다. 농부들은 한 해 농사 거두어 곳간에 가득 채울 때 만족감과 다음해를 준비하는 희망이 머릿속을 풍부하게 한다.
“농(農)(曲(田의 변형)과 辰(신))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별이라 상징되는 우주의 기운이 밭을 갈아 작물을 키운다는 의미와 새벽 별을 보고 나가서 허리 굽혀 일하는 고달픈 노동이라는 의미이다. 교육적으로 작물을 키우는 길이지만 그 안에 하나하나 자라나는 작물의 소중함을 느끼며 결국 자연에 맞게 각자의 모습으로 자연을 닮은 아이들로 커나가는 것을 믿고 지켜봐 주는 것이다. 씨를 받는 일은 다음 세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옛 농부들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종자는 먹지 않았다고 한다. 학교는 우수한 형질을 가진 씨앗으로 대량생산을 해내는 종자 공장이 아니라 소득이나 생산량, 그리고 시장의 수요에 흔들리지 않는 다양한 씨를 만들어 내는 곳이어야 한다. 씨를 받아 다시 씨를 뿌리는 것이야말로 인간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입증하는 증거이다. 落葉歸根(낙엽귀근)으로 잎이 떨어져 바람에 흔적없이 사라지면서 새봄을 준비하고 떠나는 것처럼 밝은 날을 만들어 가면서 생활하였으면 한다. 가끔은 객토가 필요하다. 새로운 세상에서 꿈꾸는 것을 배우고 그동안 이루어 내지 못한 노동의 세상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부지런함이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틈나는 대로 고추 겹 싹도 따고 토마토에 붙은 벌레도 잡고 호박 넝쿨도 바로 잡아주고 잡초도 뽑아주고 주인의 관심을 전해준다. 처음엔 욕심으로 여러 가지 먹거리(고추 고수 오이 호박 도라지 토마토 머위 등)를 심었는데 잠깐 소홀한 틈을 타서 생명력이 강한 자생초들이 자라 태평농법으로 농사를 지을 때도 있었다. 잡초가 된 들깨 밭은 피아를 구분하기 힘들었다. 제초제를 뿌려 쉽게 지을 수 있지만 일일이 잡초를 뽑다가 손가락에 수지건증이 발병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적도 있다. 너무 부지런하여 호박묘를 일찍 파종해서 서리를 맞아 망치기도 하였다.
그래도 무농약, 자연친화적인 농법으로 소량 생산된 먹거리를 함께 나눠 먹는 재미가 땀의 댓가와 노동의 가치를 느끼는 보람된 시간이었다. 학생들에게 상추와 고추 등을 직접 따고 씻도록 해서 삼겹살 파티를 할 때 행복은 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고 상상해 보길 바란다. 특히 고수는 다른 분들이 좋아하지 않아 맘껏 즐겨 먹었다.
모든 생물은 개성을 갖고 있다.
식물마다 저마다 갖고 있는 쓴맛, 신맛, 특유의 향과 냄새, 꺼칠하고 질긴 것등은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일도 있었다. 식구가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 꽃게를 몽땅 사다가 온갖 양념과 정성을 다해 요리를 하였다. 거기에다 텃밭에 있는 호박을 따다가 넣어 맛있게 끓여 먹을려고 맛을 보는데 쓴맛에 아까운 꽃게를 버린적이 있었다. 원인을 알아봤더니 쓴맛이 나는 호박을 넣은 것이다. 이유는 호박에 들어 있는 쿠쿠르비타신 때문인데, 쿠쿠르비타신은 오이, 수박, 참외와 같은 박과 식물들이 해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드는 천연 살충 성분이라 한다.
전문가에 따르면 독성 호박증후군을 일으키는 쿠쿠르비타신 독소는 동물 실험 결과로 환산하면 0.1g만으로도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쓴맛이 나는 호박은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영양식이라 하여 아이들 간식으로 먹는데 요리하기 전에 호박의 맛을 보고 요리를 해야 낭패를 보지 않을 것이다.
보통 먹거리는 환경에 적응해가며 본능적 생명력으로 자신의 강한 개성이 있어야 맛도 있는데 농약과 화학비료로 키우다 보니 개성이 없어 맛도 달기만하고 개체가 부드러울 수 밖에 없다. 적당한 쓴 맛은 보약이 될까?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산행을 하면서 맑은 공기를 호흡하고 근육 운동을 하면서 자연에 적응하며 자생하는 산더덕 산삼 등을 채취하여 더덕막걸리와 백숙을 먹으면서 세상사는 이야기할 때가 하나의 낙으로 습관이 됐다. 내 인생의 중간역에 잠시 정차하면서 천방지축 갈지자 생활을 하다가 더불어 생활하는 공간에서 삶의 널브러짐을 정리하고 종착역까지 차분하게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는 제 위치를 분류한 계기가 되었다. 부지깽이 역할을 함께한 한연아, 정훈아 그리고 친구들 고맙고 감사하다.
농사는 기다림이다.한평생 생명을 잇을 배와 배젖을 품은 生氣 덩어리, 겨울의 水氣와 봄의 溫氣에 자랄 수 있는 조합을 기다리며 때때로 온갖 정성을 주지만 수줍어서 숨박꼭질을 한다. 연약한 새싹이 두터운 이불을 제치고 모습을 보일 때 기다림의 보람을 느낀다. 험한 세상 헤쳐 갈 첫 공기 햇볕, 쓰러질 때 회생할 수 있는 단비, 비바람과 함께 자양분을 공급하며 무럭무럭 생장하여 열매가 맺는다. 이것이 온 세상에 퍼트러져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참세상을 만들기 위해 튼튼한 뿌리를 뻗어 다시 싹을 틔우기를 희망한다. 또 다른 멋진 삶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