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정세 전망
작성 : 강문식(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정책교육국장)
1) 들어가며
1970년대 이후 최고 수준이었던 인플레이션, 그에 대응하는 금리 인상, 만성화된 저성장과 늘어나는 부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 중심의 경제 블록화, 기후-에너지 위기 등 우리가 직면한 전지구적 현실은 그동안의 자본주의 체계를 무엇으로 정의하든 그것의 경제‧정치‧사회 질서의 재조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3년을 관통하는 주요 주제는 여전히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경제의 연착륙 여부에 있다. 미국 주도의 경제-정치 블록화의 향방도 중요 주제이다. 대선 및 지방선거 이후 한국 정치지형이 노동 및 사회운동에 미치는 영향도 쟁점적이다.
2) 둔화되는 인플레이션, 증가하는 불안정성
(1) 인플레이션 둔화와 자기실현적 경기침체 예언
세계경제는 2020년 상반기에 공황을 겪고 그 해부터 2021년까지 빠르게 회복되었다. 경제의 빠른 회복은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재정정책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완화적 통화정책은 자산 거품을 크게 부풀리는 결과를 낳았고 조세 없이 부채에 의존한 확장적 재정정책은 수요압력으로 돌아와 1970년대 이후 최고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1. 경기둔화와 인플레이션 등 세계 경제가 직면한 일련의 현상의 배경에는 낮아진 자본의 수익성, 즉 만성화된 장기저성장 체제가 있다. 2022년 들어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은 통화긴축(금리인상)을 통해 노동계급과 주변국에게로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했다.
2023년 세계경제는 2022년에 비해 크게 낮아진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성장률이 2022년 3.4%에서 2023년 2.9%로 낮아지고 미국은 1.4%, 한국은 1.7%일 것으로 전망한다(IMF, 2023). 미국의 경우 긴축정책의 결과로 실물경제가 연착륙에 실패하고 경기침체2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존재한다. 비관론자 중 대표격인 래리 서머스는 2023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중앙은행이 가격안정에 초점을 맞추던 데서 섣부르게 이탈하면 인플레이션과 반복되는 전쟁을 해야만 하며 그것은 최악의 비극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1970년대 통화긴축 후 인플레이션이 완화되자 정책을 완화했던 것이 실패 요인이었다는 진단에 근거를 둔다.
뉴케인지언 경제학 모델에서는 기대 인플레이션이 인플레이션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높은 실업률(경기침체)을 감수하더라도 높은 금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폴 볼커의 반인플레이션(disinflation) 의지(와 그에 대한 백악관의 지지)가 대중들에게 전달되어 1980년대 인플레이션을 잠재웠다는 해석이 미 경제학계에서 통용된다. 이를 따르는 미 Fed는 경제주체들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에 도달할 때까지 Fed가 통화긴축을 지속한다는 강력한 기대를 가져야 인플레이션을 완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문제는, 과장하여 표현하면, 인위적 경기침체를 통해서라도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겠다는 미 Fed의 기조 자체에 있다. 기대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는 정책적 접근은 노동자 임금을 향한 공격으로도 연결된다. 사회주의 세력과 노동자 계급의 조직력이 건재했던 1970년대에는 긴축정책의 관철에서 노동자 계급의 저항을 꺾는 일이 중요한 과제였다. 오늘날의 세계는 50년 전과 판이하지만 낡은 교리는 반복된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질 경우 물가-임금 간 상호작용이 강화되면서 고물가 상황이 고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김정성 외, 2022)이라고 주장하고,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임금 인상으로 물가가 오르는 상황은 물가 인상 국면에서 가장 나쁜 시나리오3”라고 밝힌다. 이른바 나선효과(spiral effect)다. 이들의 우려와 달리 2022년 이후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서 나선효과는 관찰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노동자 계급은 실질임금 하락에 직면했다. 그 배경은 1980년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훼손되어 크게 낮아진 노동자계급의 조직력‧협상력에 있다.
현재까지는 커다란 피해 없이 인플레이션이 진정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수준은 고인플레이션 시기 전으로 복귀했고, 공급 측 요인(원자재 가격, 주거비 등)은 대부분 해소되었다.
최근 경제 논쟁의 쟁점은 2023년 미국 경제의 연착륙과 경기침체(스태그플레이션) 사이에 형성되었다. 미국 10년물 국채와 2년물 국채의 금리차는 마이너스 0.8% 수준4으로 확대되었고 설비가동률은 작년 9월 이후 하락세로 돌아섰다. 통화정책의 파급에는 시차가 있어 통화긴축의 효과는 올해부터 본격화될 것이다. 기업의 실적 악화, 고용 축소에 대한 우려도 있다.
자료 : Fred |
주 : 산업생산은 2017=100 자료 : Fred |
그러나, 경기침체 혹 스태그플레이션을 예측할 만한 경제 지표 역시 뚜렷하지 않다. 실업률은 여전히 낮고 구인률은 완만히 감소 중이다. 인플레이션이 둔화되면서 실질임금이 상승하게 되면 소비 여력도 양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공황 이후 자본의 신규 투자를 과잉 수준으로 진단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또한 긴축정책은 경기침체에 대한 ‘기대’를 동시에 확산시킨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경기침체의 주요 선행지표로 다뤄지는 장단기 금리차, 다시 말해 10년물 국채 금리 하락(가격 상승)에는 경제주체들이 긴축정책이 생산에 손실을 입힐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된다. 비관론자들의 경기침체 전망이 자기실현적 예언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자본 수익성을 장기 평균 수준으로 회복시킬 계기는 찾아볼 수 없지만, 2023년 내 미국에서 경기침체 혹은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래한다는 전망은 과도하다. 특히 운동 진영 내에서 위기를 예견하는 인사, 단체가 다수 있으나, 객관적 근거를 갖추지 못한 위기 전망은 노동‧사회운동에 긍정적 효과를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2)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
시야를 미국 및 주요 선진국에서 남반구 국가와 신흥국으로 넓히면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이 눈에 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달러화를 강세로 만들어 신흥국에서는 수입물가가 올라가고, 대외 채무의 상환 부담이 증가한다. 반대급부로 미국은 달러화 가치가 상승한 만큼 더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수입할 수 있다. 이같이 다른 나라의 경제를 희생시켜 자국의 경제를 보호하는 정책을 ‘근린궁핍화 정책’으로 일컫는다. 국제금융협회(IIF)가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20곳을 조사한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달러 표시 부채 비율은 작년 1분기 평균 24.6%로 2019년 말보다 1.1%p 높아졌다. 또한 미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 인상) 이후 세계 각국은 환율과 자본유출을 방어하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선 바 있다. 미국과 주요 선진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긴축정책은 자국 노동자 가계의 실질임금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낳음과 동시에 신흥국의 금리인상과 긴축정책을 강요한다. 신흥국은 미국과 주요 선진국의 통화‧재정 정책에 종속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부채위기 역시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 1980년대 미 연준의 공격적 금리 인상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 발생한 외채위기와 이를 계기로 남반구 국가들에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이식되었던 역사는 여전히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신흥국들은 금리 인상에 따른 대외 채무 부담이 크게 증가했고, 포르투갈‧그리스‧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도 부채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신흥국이 직면한 부채 위기는 근린궁핍화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각국 정부는 부채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 지출을 축소하는 긴축 정책에 나서고 있는데, 수입 의존도가 높고 국가 재정이 취약한 신흥국일수록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피해가 더 클 것이다. 장기저성장 체제에서는 미래의 성장을 가불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긴축 정책에도 불구하고, 정부 부채가 위기의 계기가 될 가능성은 상존한다.
주 : 2022년은 추정치 / 자료 : IMF(2022) |
민간 부채의 위험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민간부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부동산 연계 부채다. 2021년 말, 한국의 가계대출 중 주택시장과 연관된 대출 비중은 67%에 달했다. 금리 인상과 부동산 가격 하락은 가계부채의 취약성을 증대시킬 우려가 있다. 최근 한국에서 두드러지게 문제가 되는 것은 부동산과 연계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기업대출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미국의 부채담보부증권(CDO5)의 부실에서 촉발되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2008년 위기 이후에도 ‘금융의 증권화’는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 왔는데 PF 자금 시장 역시 그 일부로 볼 수 있다. PF 자금시장의 대략적인 구조는 [그림Ⅰ-4]와 같다. 금융회사들은 미래의 분양 수익을 담보로 부동산 개발 시행사에 자금을 공급하고 대출채권은 유동화회사(SPC)로 넘긴다. 신용이 낮은 영세한 시행사가 많으므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시공사의 채무보증으로 신용을 보강하는 경우가 많다. 유동화회사는 대출채권을 기반으로 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여 투자금을 모으고 이 때 증권사는 신용을 제공한다. 투자금은 1금융권 은행사 뿐만 아니라 저축은행, 상호금융에서 조달된다.
PF유동화증권의 발행 매커니즘
전 세계에서 2010년대 이후 오랜 기간 이어진 저금리 경제가 금융자산, 특히 부동산 자산의 가격을 상승시키면서 이와 같은 건설 기업과 금융 기업의 불건전한 공생을 심화시켰다. 2022년 6월 기준 한국의 전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은 112조 2천억원으로 2014년에 비해 189.2% 급증했다. 이 가운데 금리 인상, 부동산 가격 하락 및 미분양은 유동화증권의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 유동화증권의 부실은 PF 대출금을 댄 은행과 시행사의 채무를 보증한 보증공사나 시공사로 파급된다. 레고랜드 개발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가 유동화회사가 발행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상환하지 못하면서 채권 시장으로 금융 경색이 확산되기도 했다. 다만, PF 유동화증권이 파생상품과 달리 제2, 제3 유동화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실이 전체 금융시장으로 파급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점쳐진다. 정부가 채권시장안정펀드로 PF-ABCP 등을 매입한다는 정책을 발표한 후 금융 경색은 완화되었으나, 건설 기업과 금융 기업에 아무 비용을 지우지 않고서 정부가 부실을 책임지는 것은 온당한 정책이 아니다.
회사채에 의존해 온 중국의 부동산 기업의 부실도 쉽사리 해결될 수 없는 뇌관이다.
1990년대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던 중국은 미약한 자본축적의 해결 방법으로 적극적인 회사채 시장 육성에 나선다. 여기에 2010년대 이후 지속되어 온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자산 가격을 상승시키며 부동산 개발 회사들이 회사채 발행을 통해 개발사업에 나서게 하는 유인이 되었다(강문식·조용화, 2022). 2022년 1~11월, 중국 부동산 회사의 역외 채권 디폴트 규모는 259억 달러로 직전 해에 비해 360% 증가했고, 디폴트율은 20.1%까지 높아졌다(한국은행, 2023).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들이 부도를 맞거나 자금 압박으로 주택 공사를 중단하면서 주택 구매자들이 대출금 상환 거부에 나서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의 3연임 결정 이후 민심을 달래려는 목적으로 종합부양책(`22.11.11.)이 발표되었지만 부실 부동산 기업을 존치시키는 대책은 위기를 일시 지연시키고 그 규모를 키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3) 미국 헤게모니의 약화와 전후 체제의 퇴조
(1) 고립주의로 회귀하는 미국의 대외정책
미국 바이든 정부 집권 이후 WTO, FTA로 상징되던 다자간 세계질서는 미국의 동맹을 중심으로 구성된 경제블록으로 전환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와 비교하면 ‘미국 우선주의’의 일방주의적 대응보다 동맹으로 제한된 다자주의를 내세운다는 차이가 있으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서 드러나듯 고립주의‧자국 우선주의 기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자주의에서의 후퇴는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라던 오바마의 발언에도 함축되어 있다.
미국이 구성 중인 경제블록은 안보와 경제를 결합한 형태이며, 구체적으로는 안보를 매개로 중국을 공급망에서 제외하는 구상이다. 미국은 세계를 민주주의 대 권위‧독재 체제의 대립으로 이분하며 민주주의의 위기에 맞서 가치 중심의 결집을 호소한다. 권위‧독재 체제로 지목된 나라는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이다. 그러나 미국 대외 정책의 핵심은 중국에 있으며 각종 동맹 간 다자기구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형태다.
대표적으로는 CHIP4(2022),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2022)가 있다. CHIP4는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이 설계와 장비, 원천기술을,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일본은 소재·부품을, 대만은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을 담당한다는 구상이다. IPEF는 포괄적 경제협의체로 설계되었으며 한국을 포함해 13개 인도-태평양 국가들이 참여했다. 이 외에도 군사동맹인 쿼드(QUAD)(2017), 오커스(AUKUS)(2021)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상징한다. QUAD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국이 안보를 주제로 갖는 체제로 초기에는 외교장관급 회담이었으나 현재는 정상급 회담으로 격상되었다. AUKUS는 미국·영국·호주의 삼각동맹으로 미국은 오커스 창립과 함께 호주에 핵잠수함 연료를 공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외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외에도 중남미 국가와의 관계 강화를 위한 미주경제번영파트너십(APEP)(2023)을 구성 중이다.
쿼드(QUAD)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국
외교안보연구소의 보고서(강선주, 2022)를 참고하면, IPEF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IPEF는 시장 접근(관세 인하)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전의 자유무역협정(FTA)와 차이가 있다. 또한 IPEF는 경제 연결성, 경제 회복력, 청정 경제, 공정 경제라는 4개 필라(기둥)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국은 모든 필라에 참여할 것을 권고하고는 있으나 이를 의무사항으로 두지 않았다. 참여국들은 협상에 참여할 필라를 선택할 수 있다. 미국은 IPEF를 의회 비준이 수반되지 않는 행정협정으로 추진하고 있다. IPEF 참여에 따른 경제적 이점이 명시적이지 않고 합의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참여국들이 높은 수준에서 규제에 합의할 인센티브가 낮다.
사회운동은 대체로 IPEF가 “미국의 패권을 위한 대중국 경제포위망”6이라는 점을 비판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IPEF는 미국의 전략에 따라 대중국 포위망에 참여한 국가들에 제공할 뚜렷한 인센티브를 제시하기 어려운 만큼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되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실정은‘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란 용어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이 주장하는 ‘가치와 규범 중심의 연대’는 동맹을 중심으로 블록화된 질서이다. 그 ‘가치와 규범’ 역시 선택적 정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
(2) 중국 부상의 한계
미국의 대중국 봉쇄와 군사적 긴장의 증가에는 지경학(地經學)적 의미가 있다. [그림Ⅰ-5]에서 보듯, 대륙국가인 중국은 해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일본, 대만, 필리핀, 베트남 등의 앞바다에 항로를 확보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일본‧대만‧필리핀 등에 미군을 주둔시켜 왔으며, 최근의 인도‧태평양 전략 역시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한다는 함의가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대륙 서부로 진출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쳐왔으나 동시에 해양으로의 진출도 도모해왔다. 2012년에 첫 항공모함을 취역했고 남중국해‧센카쿠 열도‧대만해협 등에서 영유권 분쟁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체제 하에서 헤게모니를 가졌던 국가는 모두 해양국가였고, 중국 입장에서는 중국몽(中國夢·중국인의 꿈) 부활을 위해 해양 진출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는 헤게모니 국가가 될 가능성은 낮다. 우선 「2022년 정세전망」에서 다뤘던 바와 같이 중국 경제는 성장 및 투자 둔화, 기업 부채, 인구 고령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 내 지역 간, 계층 간 빈부 격차 확대도 심각하다. 그러나 중국에서 저하된 자본의 생산성을 만회할 새로운 기술 혁신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 또한 중국식 사회주의로 일컬어지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는 20세기 초 영국(가족 기업) 헤게모니를 대체했던 법인 혁명의 경험과 달리 현재의 성장성 하락을 만회할 새로운 자본 형태를 제시하지 못한다.
정치적 측면에서도 중국은 전후 미국 주도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비해 수용성 있는 표준적 제도와 가치를 제시하지 못한다. 오히려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회의에서는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결정해 격대지정(隔代指定: 세대를 뛰어넘어 차세대 최고지도자를 지정하는 합의방식) 불문율을 깨트렸고 태자방을 제외하고 상하이방‧공청단계도 지도부에서 퇴출했다. 덩샤오핑 이후 성립된 집단지도체제의 종말이다7.
1인에게 권력을 집중시킨 정치제도로의 전환은 향후 중국의 경제적 성과가 불투명하다는 점과 떼어놓고 이해할 수 없다. 중국의 통제적‧억압적 사회 체제도 마찬가지다. 중국 정부는 노동자‧시민의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제약한다. 중국은 2000년대 이후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을 시민 감시에 활용해왔다. 인터넷 검열 장벽인 ‘그레이트 방화벽’, AI를 이용한 안면인식 감시 시스템인 ‘스카이넷’이 대표적이다. 2015년에는 대대적으로 형법을 개정해 시민의 목소리를 억누를 수 있는 근거를 확대했다. 특히 테러 위협과 소수민족의 독립 의지 분출을 개정 사유로 들어 형법의 공공위해죄 조항이 집중적으로 개정되었다. 2017년 무렵부터 신장‧위구르 자치구 지역에서 이루어진 심각한 폭력과 기본권 제약은 이 형법 개정과 무관하지 않다. 노동운동 탄압도 강화되었다. 중국노공통신에 따르면 중국 전역에서 벌어진 노동쟁의는 2015년 2,776건에서 2022년 829건으로 감소했다. 쟁의 건수의 감소 역시 통제‧억압 체제의 강화와 무관할 수 없다.
2015~2022년 중국 노동쟁의 건수
자료 : 중국노공통신
중국의 억압적인 기본권 제약은 COVID-19 대응 과정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중국 정부는 이른바 ‘제로코로나 정책’을 표방하며 확진자 0명을 목표로 방역정책을 펼쳐왔다. 대표적인 내용은 국경과 도시의 봉쇄다. 항공편이 제한되면서 중국 시민은 해외로의 입출국이 사실상 불가능했고, 2021년 1월 23일 우한 봉쇄를 시작으로 감염병이 확산되는 도시는 전면 봉쇄와 해제를 이어갔다. 모든 시민은 3일 주기로 PCR검사를 의무적으로 받았고, 검사 결과 양성이 나온 시민은 집단 수용 시설에 격리되었다. 또한 모든 시민은 휴대전화에 헬스코드(健康码)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여 PCR검사 결과와 14일 간의 방문기록을 입력한 뒤 QR코드를 발급받아야만 대중교통 이용이나 건물을 입장할 수 있었다.
중국 정부의 COVID-19 방역 정책은 감염병의 확산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통제·억압적 방역 정책을 바탕으로 독재적 지배 체제를 공고하는 효과가 있었다. 중국은‘제로코로나 정책’에 힘입어 2021년에는 8.1%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2022년 들어 방역정책의 강도는 더욱 높아져 일부 지역에서는 확진자가 1명이라도 발생한 공동주거시설의 출입구를 봉쇄하여 해당 시설에 거주하는 모든 시민의 출입을 막는 데까지 이르렀다. 공장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자 중 확진자가 발생하면 생산시설을 통째로 봉쇄하는 통에 노동자들이 봉쇄 전 탈주하는 풍경이 전 세계에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의 ‘비과학적’ 방역정책은 결국 감염병의 확산을 막을 수 없었으며, 3년 동안 이어진 극단적인 기본권 제약에 고통받던 시민들이 저항에 나서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저항은 통제·억압을 유지의 동력으로 삼는 체제의 불안정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시켜 준다. 중국 정부는 2022년 10월에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회의를 앞두고 ‘제로코로나 정책’에 전력을 다했다. 2022년 11월 들어서는 봉쇄와 통제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쓰촨성 청두를 전면 봉쇄하는 등 기존의 체제를 이어갔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주거시설의 입구를 봉쇄하는 방역 정책 때문에 시민들이 화재에도 대피할 수 없어 커다란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중국 전역에서는 정부의 검열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백지를 든 ‘백지시위’가 전개되었다. 그 영향으로 중국 당국은 2022년 12월 이후 방역정책을 빠르게 완화했으나, 동시에 ‘스카이넷’과 휴대전화 추적으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체포·구금하여 저항을 잠재웠다.
중국의 정치·사회 제도가 통제·억압에 의한 지배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은 결국 경제성장이 둔화하는데 따른다. 통제·억압을 기초에 두는 정치·사회제도는 새로운 국제 질서로도 수용하기 어렵다. 여기에 시진핑 주석이 4연임을 넘어서는 장기 집권을 시도한다면 통제·억압의 강화만으로 늘어나는 불만을 잠식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새로운 사건이 필요해질 것이다. 여러 전문가들은 그 사건이 대만을 향한 군사 행동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3) 전후 세계 질서의 퇴조
미국과 서방 국가는 이런 점을 들어 세계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구도로 양분하고 각국에 민주주의 진영에 참여할 것을 주문한다. 여전히 ‘자유’를 외치지만,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구가하던 50-60년대의 자유와 다르다. 미국은 반도체 가치사슬에서 중국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명분 삼아 자국의 무역정책을 보호주의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운동 진영 역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퇴조하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경험을 되짚으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의 과잉축적과 낮은 이윤율이 지속되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한다. 각국은 자국 산업과 일자리를 우선하며 보호주의를 취했고 국제 무역이 축소되었다. 공황의 여파로 금본위제가 붕괴되었고 제국주의 국가들의 통화권(파운드, 마르크, 엔, 달러)별로 경제 블록이 형성된다. 각 블록 내에서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지배는 더욱 견고해졌다. 후발 국가이던 독일‧이탈리아‧일본은 경제위기 대응책으로 보호주의와 함께 군비 확장에 나섰다. 나치의 집권을 비롯한 파시즘과 군국주의가 대두된 것도 이 시기이다. 결국 전세계의 보호주의, 블록경제화, 군비경쟁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전간기를 반성하며 서구에는 자유주의 세계질서가 수립되었다. 전후 미국과 영국의 노동조합 역시 보호주의 입장을 폐기하고 후발국, 후진국에 국제적인 노동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임영일, 2017). 사실 국제 노동운동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이미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이 계급적 연대 대신 애국심을 택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1919년에 설립된 국제노동기구(ILO)는 모든 나라와 공장에 적용되는 국제노동법을 제정하는 조직으로 제안되었다. ILO는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반성하며 필라델피아 선언을 발표한다. 각국의 노동조건 및 생활수준을 끌어올려야 평화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후 자본주의는 유례없는 장기 호황을 구가했고, 사회주의권 세력 및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강세도 전후 세계 질서의 중요한 단면이다. 노동운동 역시 성장했으며 주요 선진국에서는 노총의 노동대표성을 승인하며 노사 관계의 제도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1970년대에 도래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그 이후 지속되는 장기적인 저성장 체제는 상황을 바꾸고 있다. 구조적 위기에 대한 자본 측의 대응으로 노동자 계급의 조직력과 동원력은 크게 약해졌다. 이는 전후 수립된 노사관계 제도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토대가 훼손되었음을 의미한다. 각국에서는 대대적으로 분열과 고립을 선동하는 극우 정치 집단이 그 나라의 정상 정치세력으로 사회적 승인을 얻었다. 미국‧브라질‧한국에서 벌어진 극우세력의 의사당 난입,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연합의 약진, 이탈리아 극우정당 이탈리아형제들의 집권 등 극우 정치 세력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거기에 이제는 보호주의‧고립주의가 ‘자유’라는 가치의 외피를 쓰고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미국의 헤게모니를 중심으로 한 자본의 착취 체제를 지탱해온 것이 사실이나, 보호주의는 자유주의보다 퇴보한 이념이라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 반면 노동운동‧공산주의 운동의 국제적 결속은 미약하다. 결국 현 국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 가까이 유지되어 온 전후 체제의 퇴조로 정리할 수 있다.
(4) 한국의 정치 지형과 사회운동
한국의 정치 지형은 이념적으로 퇴보하는 전 세계의 상황을 반면교사한다.
보수 양당의 편가르기 정치 – 이른바 내로남불은 이념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를 보여준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자신은 ‘자유주의자’이며 권위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회를 무시하는 대통령실의 고압적 태도, 간첩 조작사건 연루 검사의 대통령실 임용, 대통령(실)의 여당 대표 경선 개입, 공안통치기구를 이용한 공안 몰이 등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의 그간 행보는 ‘자유’와 거리가 멀다. 전광훈 및 태극기 부대와 행보를 함께 한 인사를 장관급 자리에 인선하고, 극우 인사와 유튜버들을 대통령실에 채용하며, “종북 주사파와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소리 높이는 장면에 이르면 보수주의를 넘어 극우적 색채도 농후하다. 상대를 절멸해야 할 세력으로 규정하면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으로서 정치는 포기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가 총력을 다해 전 정권 지우기에 나서는 태도 역시 여기에 연관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사회운동 일각은 현 정권의 속성을 ‘검찰독재’로 규정한다. 검찰독재론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그동안 검찰이 조국, 윤미향 등 더불어민주당 주요 인사에게 행한 수사가 편향적이거나 조작되었다는 인식에 바탕을 둔다. 검찰의 선택적 기소, 사건 무마, 과잉 수사 등 권력 남용은 오랜 기간 검찰개혁 요구의 근거가 되었다. 검찰의 기소독점을 제한하는 방편으로 특별검사제도가 도입되기도 했고,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 역시 오랜 쟁점이다. 검찰이 불기소 결정을 내린 사건에 대한 공소 제기 통로를 넓히는 것, 검찰 조직의 독립성과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방안도 개혁 담론을 구성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이후 민주당 세력의 검찰개혁 담론의 초점은 수사‧기소의 과잉에 맞춰졌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론의 뿌리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의 초점은 수사‧기소의 과잉이 아니라 선택적 불수사‧불기소에 있었어야 했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역시 법무부장관에 의한 수직적 통제가 아니라 선택적 불수사‧불기소에 대한 민주적 통제여야 했다. 검찰은 2019년 8월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파괴 공작을 기소하며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업무방해죄 등으로 강하게 처벌해 온 반면,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법정형이 상대적으로 가볍게 규정되어 있고, 사측에 유리하게 해석·운영되어온 경향”이 있었다고 인정한 바 있다. 검찰개혁 담론은 그 방향으로 확장되어 갔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권 유력자들을 겨냥한 수사‧기소를 막는 것이 검찰개혁이 되어버렸다.
특히 이들은 민중운동의 구도를 차용해 자신들의 수사 방어를 정당화시켰다. 조국 일가, 윤미향, 이재명 등은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피해자이고, 권력에 맞서는 행위는 그 자체로 정당한 저항운동이라는 도식이다. 임기 평균 50%를 넘는 지지율의 문재인 정부, 21대 총선에서 163석을 획득한 더불어민주당은 자신들이 악화시키거나 회피한 각종 사회 의제를 두고서도 기득권의 저항으로 책임을 돌리곤 했다.
조국, 윤미향, 이재명 등의 수사와 재판을 방어하는데 사용되는 사회개혁 담론의 결론은 편가르기와 내로남불일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와 문재인 정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물으며 상대는 악마화하고 있다. 보수 정치 세력의 공생 관계야 근래의 일이 아니지만,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사회운동 일각의 동조가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점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이들이 저항운동의 오래된 도식을 차용하면서 사회운동의 독자적 영역은 축소되었고, 대중의 조롱은 사회운동 전체를 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사회운동 일각의 태도는 조국 일가, 이재명이 저지른 사회적 비위의 쟁점을 법률 위반 여부로 국한시키며 사회 구조의 문제를 다룰 기회를 차단한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조국‧이재명 구명운동에 다름 아닌 검찰개혁‧검찰독재론의 반작용은 ‘상식’, ‘공정’에 기초한 성역 없는 수사를 주장하는 것이 되는데 그 안에서는 예를 들면 조국 일가의 비뚤어진 욕망이 비롯하게 된 한국 사회의 입시구조와 학벌‧직업 서열이 논의될 공간이 없다.
사회운동 일각이 검찰독재론을 외치는데 이르는 과정에서 사회운동 전반이 그간 외쳤던 구호와 정책을 반성적으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 탄핵 정국에서 사회운동은 검찰개혁‧언론개혁‧OO개혁 등 각종 개혁을 외쳤다. 사회운동 세력이 제기했던 각종 개혁 담론은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고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로도 입안되었으나 그 방향과 내용은 충실히 채워놓지 못했다. 문재인 정권이 이니셔티브를 취한 검찰개혁의 방향은 앞서 다뤘듯 정권 인사를 향한 수사‧기소의 축소, 그리하여 기득권층의 보호였다. 문재인 정부가 다뤘던 다른 개혁 담론들 역시 구체적 전략이 부재했던 탓에 역효과를 내거나 방향을 상실했다. 그러나 사회운동 세력은 개혁 담론에 합의된 전략, 전망을 갖추지 못했었기 때문에 민주당 세력의 혼돈, 혹은 반동에도 전면적 비판을 제기하지 못했다. 오히려 민주당 세력과 차별하기는 커녕 기득권세력이 스스로를 피해자-저항자로 가짜 정체화하는데 가담하는 데 이르렀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세력들은 2016-17년 촛불을 소환하여 윤석열 정권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극우적 경향을 보이는 윤석열 정권의 태도는 사회운동에도 선택의 시간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 퇴진’이라는 구호 아래 합종해서는 안된다. 2016-17년 이후의 혼란과 실패의 반복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운동에서 제기해온 각종 구호, 요구부터 점검하고 정비해야 한다8. 무엇보다 조국의 강, 이재명의 강을 건너지 못한 세력과 한 자리에 서서는 안된다.
4) 윤석열 정부 주요 정책 비판
윤석열 정부는‘자유’를 정부의 기조로 삼고 있으나 그 ‘자유’는 자유주의의 ‘자유’가 아닌 하이에크‧프리드먼 등 보수주의의 그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여러 차례 밝힌,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 공급 중심으로 경제를 운영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은 통화주의와 ‘세의 법칙’ 언저리에 있다. 모두 현대의 주류경제학에서조차 경험적으로 논파 당한 이력이 있는 경제이론이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는 색깔론에 편승한 지지율 정치에 골몰한다.
윤석열 정부는 자신의 기조에 맞춰 법인세, 부동산 취득세, 보유세 및 양도세, 증권거래세 등 각종 세제를 일제히 인하하고 나섰다. 정부의 법인세 감세는 과세표준 3,000억 원을 초과하는 법인의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하는 대기업 표적 감세다. 흔히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유발하기 위해 감세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감세 근거자료에서는 법인세율 인하의 혜택의 75~82%가 배당을 통해 주주에게 돌아간다는 실증연구 결과를 소개한다9. 또한 기획재정부가 내세우는 선택적 근거와 달리 여러 경험적 연구에서 법인세 인하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논쟁적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1.3 부동산 대책은 강남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서울 전지역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하고, 주택 중도금 대출 규제를 완화하며, 분양주택의 실거주의무를 폐지하고 전매제한을 완화한다는 내용이다. 결국 레버리지를 활용해 아파트를 분양받고 매도 시세차익을 추구하라는 투기적 지침이다. 게다가 1.3 대책은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을 구원하려는 의도의 맞춤형 대책이라는 점에서도 문제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 대응은 극우적 공격을 전면에 내세우며, 동시에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을 들어 노동운동의 명분을 공격하는 이중적 형태를 띤다.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을 내걸고 사문화된 자율점검제도를 활용하는 것은 1990년대 초 전노협을 탄압하려는 목적으로 전노협 소속 사업장에 이뤄졌던 당국의 업무조사를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국정원과 검찰, 보수언론이 합작하여 민주노총에 공안몰이까지 자행하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을 파괴하며 내비친 노동3권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정권의 태도 역시 프랑스의 르 샤플리에 법(1791), 영국의 단결금지법(1799)에 견줄 만하다. 현재 민주노총을 향한 정권의 탄압은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개인 대 개인의 계약 관계로 다뤘던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낡은 자유주의 사상(현재의 보수주의)에 기댄다. 현대적 자유주의에 크게 미달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경제관은 시대착오적이며, 국제 표준과도 어긋난다. 화물노동자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며 강제노동을 금지한 국제 표준을 대놓고 무시하는 정권의 태도는 대통령이 입에 담는‘자유’의 가치가 대단히 퇴행적이며 이율배반적임을 보여준다. 노총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협상력을 저해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노총의 노동대표성을 포함한 전후 세계질서의 퇴조라는 흐름과도 맞물린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은 노동자 조직력을 약화시키려는 목표를 담고 있되, 극우이념적 공격과는 사뭇 다른 형태다.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직무성과급제를 제시한다. 직무급을 통한 직무별 임금 기준 마련은 기업 내 격차와 기업 간 격차의 해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부의 임금제도안은 크게 세 가지 문제를 비판할 수 있다. 첫째, 연공급제가 노동자간 임금 격차를 늘린다는 주장의 근거가 미흡하다. 한국에서 연공급을 시행할 수 있는 대기업 및 공공기관에 재직하는 노동자는 전체의 10%가량이고, 이들 중에서도 연공급 외의 임금체계를 택한 사업장이 많다. 나머지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이미 근속·경력에 따른 보상이 미미한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해석해도, 일부 사업장의 연공급을 해체하는 것은 노동시장 격차 문제를 총노동시장 내지 산업의 범위에서 개별 사업장 단위로 축소시키는 제한적 해법에 불과하다. 둘째, 정부의 직무성과급제의 방점은 직무급이 아닌 성과급에 있다는 점이다. 성과급제는 임금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명분과 달리 기업 내 임금 격차를 확대시킬 뿐만 아니라, 기업의 지불능력에 따른 기업 간 임금 격차도 필연적으로 확대시킨다. 셋째, 노동자 계급의 조직력·협상력 확대가 전제되지 않는 직무급제는 격차 완화에 기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임금을 결정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는 임금형태보다 협상력에 있다. 하지만 정부는 직무성과급제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노총의 협상력이 약해지길 바란다. 또한 직무급제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직무의 난이도와 가치를 무슨 기준으로, 누가 평가할 것인지에 있다. 따라서 협상력이 담보되지 않는 직무급제는 사회적 차별을 고착화시킬 위험이 다분하다. 예를 들어 정부의 직무급제는 사회적으로 저평가된 노동, 특히 여성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재생산노동의 저임금체제를 고착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와 같은 윤석열 정부의 공세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민주노총은 노동대표성을 자임하고서, 오히려 공세적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의 해결을 주장하고 나설 필요가 있다. 초기업 교섭, 단결권의 확대는 전 조직적 과제로 결의해야 한다.
5) 기업 유치·토건 사업에 몰입하는 전라북도
2022년 지방선거 결과 전라북도, 전라북도교육청, 전주시 등 도내 주요 단체장이 교체되었다. 전라북도, 전주시의 새 단체장들은 기업 유치와 토건 사업에 발전의 비전을 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대한방직 부지, 종합경기장 개발을 공약했으며 취임 이후 개발 사업에 적극 나서는 중이다.
전라북도는 대기업 유치를 주요 도정 목표로 삼으며 기업유치지원실을 신설하기도 했다. 전라북도의 기업 유치 전략은 과거와 같이 노동의 양보, 기업 인센티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라북도는 기업 유치를 위한 노·사·정 선언을 노·사 단체에 제안하는 등 노·사·정 관계를 기업 인센티브의 하위 파트너십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와 같은 접근은 그동안 노사민정협의회가 동원적 성격으로 운영되어온 데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를 가진 기업을 유치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무엇보다도 지역 간 격차의 문제는 전라북도의 의지와 능력을 초월하는 쟁점이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 간 신자유주의적 국가 재구조화의 일부로서 지방 분권·자치 제도가 확장되었고, 지방 간 격차도 마찬가지로 확대되었다. 지방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기업 유치 전략은 사실상 기업의 비용을 줄여주는 인센티브 정책밖에 없지만, 다른 지방정부와 차별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바닥을 향한 경쟁’이 될 뿐이다. 특히 지방의 인구가 감소하는 구조적 문제가 대두되는 실정에서 장기(long-run)를 계획하는 기업이라면 지방 투자는 매력적이지 않다. 그동안 기업 유치 전략 결과로 전라북도에 들어온 기업이 적절한 조건의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거나 사업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군산형일자리 사업이 대표적이다. 군산형일자리의 가장 큰 문제는 협약 내용에서의 노동권 제약보다 군산에 전기차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산업 계획의 현실성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본래 계획에 따르면 명신, 에디슨모터스, 대창모터스, 코스텍 등의 기업이 2024년까지 5,171억 원을 투자하고 1,704명을 고용해야하며 24만대의 EV SUV, 버스, 트럭, 화물차를 생산해야 한다. 그러나 군산시가 2022년 9월에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2,806억 원이 투자되었고 고용은 466명, 생산은 1,649대 이루어졌다. 2024년이 도래한다 해도 목표치만큼의 고용, 생산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명신은 곧 위탁 생산을 시작할 수 있을 것처럼 홍보하지만 내용은 의심스럽다. 명신은 중국 바이튼 사의 제품을 위탁 생산하겠다는 계획이었으나 바이튼 사가 채무 위기를 겪고 있어 무산되었다. 이후에 패러데이퓨처스 사의 제품을 위탁 생산하겠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 불투명하다. 패러데이퓨처스 사도 바이튼 사처럼 중국의 전기자동차 제조업체이고 패러데이퓨처스의 CEO가 2019년 10월 15일자로 미국에서 파산신청을 한 전력이 있다. 또한 페러데이퓨처스는 불확실한 공시를 한 의혹을 받고 있다. 2021년 10월 초, J캐피털 리서치는 패러데이퓨처스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핸포드에서 전기 자동차 양산을 시작할 수 있는 생산 능력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명신이 생산한 1호차는 대창모터스의 다니고밴 제품이었고, 이 다니고밴은 중국 모델이다.
에디슨모터스도 SKD 형식의 중국산 버스를 조립·판매해왔고 차량 제작, 생산 기출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 에디슨모터스 대표는 주가조작 혐의 등으로 구속되었고 현재 군산 공장을 포함하여 회사 자산의 매각절차가 진행 중이다.
군산형 일자리에 참여한 업체들은 이미 국비, 지방비 지원을 받았으며 알려진 바로는 에디슨모터스는 지금 군산 공장을 매각해도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결국 군산형 일자리는 지역 주류 정치세력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사회적 자원을 훼손시킨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군산형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와 소득이 줄어드는 전라북도의 현실 앞에서 기업유치를 지상 과제로 삼는 지방 정치 세력의 합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노동·산업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그에 부합하는 공공·민간의 투자가 이루어졌어야 하나 군산형 일자리는 토대 없이 외형만 만들려는 시도였다.
앞으로 군산형 일자리 사업의 침체를 놓고 지역 기득권 카르텔은 군산형 일자리 사업을 부흥시켜야한다는 여론을 확산시키며 여기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세력으로 낙인 찍을 것이다. 오히려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무용한 사업에 예산을 쏟아 붓는 것이 전라북도 발전을 가로막는 범인임을 지적하고 드러내는 노동·사회운동의 대응이 요구된다.
전라북도 노동·사회운동은 신자유주의적 통치에 대한 문제제기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 지역 간 격차의 문제를 각 지역의 능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기존의 접근 자체를 부정하고 중앙정부의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역 간 ‘바닥을 향한 경쟁’은 결국 부의 편중을 심화시키는 결론에 이를 뿐이다. 기업유치에 있어서도 지역의 인센티브 정책보다 선행되어야할 것은 수도권의 패널티 정책이다. 지역으로 기업 이주를 장려하더라도 그 유인책은 중앙 정부의 거시적 산업정책에 맞물려 진행되어야 하며, 각 지역별로 ‘되는 대로’ 식의 기업 유치 전략은 산업의 지속성, 발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
연결되는 맥락에서 기업 유치에 앞서 노동 표준 도입이 필요하다. 전라북도의 빈 일자리율은 타 지역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일자리 부족은 정확하게는 ‘괜찮은 일자리’ 부족이다. 전라북도의 기업 유치 전략을 비판하는 노동·사회운동의 과제는 ‘괜찮은 일자리’의 기준을 제시하고 전체 노동자의 최저 노동조건을 상향시키는 압력을 형성하는데 있다. 2022년 「전라북도 노동기본조례」 제정에 근거해 올해 수립될 예정인 「전라북도노동정책기본계획」은 개입의 연결고리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논문>
강선주. (2022). 미국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국제정치경제적 함의와 전망. IFANS주요국제문제분석, 2022(17).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김훈·신현열·유종민·김보성. (2008). 금융증권화의 리스크와 대응방향. 한국은행.
임영일. (2017). 한미 자유무역협정 발효 5주년: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연대와 소통, 2017(3).
한국은행. (2023). 최근 중국 부동산시장 동향, 정책대응 및 평가. 국제경제리뷰, 2023(1). 한국은행.
<단행본>
IMF. (2022). World Economy Outlook.
- 물론 이번 인플레이션은 공급망의 훼손, 노동인구의 대퇴직과 같은 공급 충격의 지분이 컸으나, 공급 요인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었다. ↩︎
- 통상 국내총생산(GDP)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하는 것을 이른다. ↩︎
- “7.6% 임금 인상→물가 자극… 인플레이션 최악‘나선 효과’등장”, 조선일보, (2022.7.10.),
https://www.chosun.com/economy/economy_general/2022/07/10/UAQNUT5K6NFHXFTAJ3XIGPDHQ4/ ↩︎ - 1980년대 이후 최대이다. ↩︎
- 부채담보부증권(CDO)는 모기지론을 실물자산으로 하는 자산담보부증권(ABS) 중 가장 등급이 낮은 조각(트란셰)을 집합화한 이후 다시 조각 내 발행한 증권을 뜻한다. ↩︎
- “미국 주도 IPEF 반대한다”, 한국농정, (2022.7.17.), 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8021 ↩︎
- 중국 공산당은 3대파벌이 있다. 첫번째는 태자방으로 국공내전 전공자 출신 자손들이 모인 집단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시진핑주석이다. 두 번째는 상하이방, 상하이방은 장쩌민 전 주석의 고향 양저우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상하이 지역에서 금융과 사업으로 돈을 번 부자들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세 번째는 공청단으로, 명문대를 졸업하고 당성이 뛰어난 집안 출신의 엘리트 청년 조직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후진타오 전 주석과 리커창 총리다. 덩샤오핑 이후 3대 파벌이 집단지도체제를 이루며 지금까지 이어져왔으나, 2022년 10월 16일부터 22일까지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시진핑 3연임과 함께 구성된 (7인) 상무회원중에 상하이방과 공청단계가 모두 사라지며 집단지도체제는 붕괴되었으며, 시진핑 1인 독재시대가 개막하였다. ↩︎
- 전국민 난방비를 지원하자는 의제가 일례다.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서 이번 겨울 난방비가 오르자 더불어민주당과 대중추수적인 사회운동 일각은 전국민에게 난방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난방비 상승은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예견되어 있던 문제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에너지는 필수재이기는 하나 제약 없는 사용이 가능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손을 놓고 있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현금을 배포하자는 대중추수적 구호를 제출하는 대신, 난방비 상승을 경고하고 에너지 사용량 절감 방안을 도모했어야 했다. 가스요금의 일률적 인상 대신 누진제를 적용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2조 원에 달하는 가스공사의 2022년 영업 이익, LNG직수입사에서 가스공사로 이전된 손실도 다뤘어야 했다. 이 점에서 전국민 난방비 지원 요구는 진보적인 대응이라고 보기 어렵다. ↩︎
- “법인세 인하의 투자‧고용 기대효과, 여러 실증연구결과서 나타나”, 기획재정부, (2022.7.22.),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903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