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윤석열 내란과 퇴진 투쟁 1년을 지나며

12.3 윤석열 내란과 퇴진 투쟁 1년을 지나며

김정훈(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대표)

우리는 사회의 자화상을 보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 누군가는 내란의 징후를 읽어냈다고 하지만, 우리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그 한밤중에 벌어졌다. 그것도 거의 1년 전부터 꾸며온 일이란 것도 드러나고 있다. 피와 눈물로 세워내고 지켜낸 민주주의 기반 위에서 모든 가치를 정쟁화 시켜오며 한 짓이 권력을 영구 파쇼화 하려는 것이었다.

지극히 개별적인 이윤과 권력의 그물이 우리 사회를 삼키려 한 것이다. 그들의 망령된 생각은 결코 한겨울밤의 꿈만은 아니었다. 시민이 일어서고 의회가 공식적으로 계엄을 해제하여 내란을 진압하고, 윤석열을 퇴진시키고 새 정권이 들어서서 내란 특검이 가동되는 지금까지도 그것은 꿈이 아니라 무서운 현실로 우리 사회 한 편에 자리하고 있다. 2025년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2024년 겨울부터 2025년 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광장에서 기득권 지배집단의 파쇼화로 치닫는 폭주를 걷어내기 위한 다양한 공동체와 개인의 물결을 만들었고, 그 속에 있었다. 그리고 87-97 체제의 한계를 넘어서는 7공화국을 향해 나아가자고 했다. 그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타오르며 번지기를 소원했다. 그러나 ‘일상성’의 회복은 너무 나도 빨랐다. 그리고 ‘광장’은 광장에 갇혀 찾을 수 없는 ‘광장’이 되었고, ‘광장’ 안에 모였던 사람들이 중도 보수정당 민주당의 호루라기 소리에 흩어졌다. 우리의 꿈은 허공 속의 메아리로 맴도는 것만 같다. 이재명 정권이 과거의 민주당 정권에 비해 노동자와 노동 정책에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이자, 그것만으로도 가던 길에서 주저앉아 간식을 먹으며 황홀해하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여전히 노동 현장에서는 노동자가 죽어 나가고, 비정규직에 대한 중장기적인 대책도 없고, 새로운 형태의 비정규 노동자의 생존을 보장하는 정책도, 제도도, 투쟁도 묘연하다. 정권이 국가의 생존을 말하면서 추진하는 AI산업 시대가 코앞인데도, 산업 생산 현장의 재편성에 따른 노동의 정책, 노동자들의 전략은 걸음마도 떼지 못했다. 부동산 건설 경제에서 주식 자본 경제로의 전환이라는 구호 앞에서 코스피 주가가 5000을 바라보는 시대의 경제지표는 오히려 암울하다. 환율의 불안정성은 자유주의 경제조차 부정하는 트럼프식 제국주의 경제와 그것에 끌려가는 나라들의 현실 반영이다. 국제 평화질서는 상시 위협을 받고 있으며, 그 분쟁의 주요 축 중의 한 곳이 한반도이다. 공공연히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고 조장하는 현실도 무섭다. 일부라고 하지만 일부라고 치부하기에는 한국 사회의 청년, 노년의 많은 수가 돌변해 있다. 그래서 더 두렵다. 평등 평화의 가치를 외면한 선동의 극단화는 극우 파시즘으로 가는 지름 길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불안을 감춘 채 ‘일상적’이다.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동지들도, 공동체도 ‘일상적’ 이다.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려보자.

12.3 내란을 배양했던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분열의 근본 원인을 찾아내고 변화의 동력을 ‘시끄럽게’ 만들어내야 할시기에 지배집단의 보수화된 정치 그물망에 갇혀버린 꼴이 아닌지 너무나 염려스럽다. 원래 ‘일상’은 시끄러워야 하는 것 아닌가! 전망의 부재와 활동가 세대의 부재만을 탓하며 조용한 ‘일상’의 운동에 자족하는 것이, 한국 사회를 모조리 무너뜨릴 뻔한 12.3 내란과 윤석열 퇴진 투쟁의 결과이고 교훈일 수는 없다.

초국적 부자들을 제외한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모두 자본의 빨대 아래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잘 살아야 돼”라는 돈의 수렁에 빠져 있다. 청년, 특히 남성 청년의 생존 전망의 부재가 혐오와 차별의 언어로 공동체를 공격한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 청년들뿐이랴. 모든 세대가 ‘나의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권력’으로 휘둘러대며 강요한다. ‘공정’의 허울 아래 파편화된 개인만 존재한다. 이 지점에서 연대에 기반한 새로운 공동체 구상은 필연이다. 가치와 지향의 회복으로 서로를 다독이는 작은 실천부터 소외된 개인과 공동체를 연결하는 단단한 끈을 이을 때다. 주변 생활에서 일어나는 작은 상처부터 함께 해결해 나가는 연대의 골목길부터 만들어 내보자.

답답하지만 혁명은 한 번에 오지 않고,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 12.3 윤석열 내란과 퇴진 그 1년을 앞두고 드는 생각은 파시즘의 괴물은 언제라도 사회를 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안이 사회에 내재화될수록 그렇다. 이 불안을 공동 체에서 걷어내는 일도 시급하다. 그 일이 7공화국을 향한 여정이다. 정치권력의 분산과 헌법 기구에 대한 소환권 확보를 위한 개헌 논의의 불씨를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은 사람들이 살려내야 한다. 노동자와 시민의 기본권, 사회권을 7공화국 헌법에 담아야 한다. 그보다도 먼저 한국 정치의 지역 분산 고립화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점이 필요하다. ‘지역 균형발전’ 운운하지만 중앙 정치에 예속된 상태에서의 지역의 고립화와 소멸은 예정된 수순이다. 정당법과 선거법을 바꿔 ‘지역 정당’ 운동이 날개를 달아야 한다. 노동자, 민중, 시민의 기초 단위 정치적 권리가 지역 정치 운동에서 숨을 쉴 때 공동체 연대의 골목길이 뚫릴 것이다.

<아래로부터> 통권 50호다. 어려울 때일수록 한 사람이 소중하다. <아래로부터> 노동자 민중의 전망을 세워나가는 정책 방향을 다져나갈 때이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또는 다른 어떤 중앙 단위가 이 시기의 전망과 방향을 제시 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지금보다 더 단단하게, 한 사람이 전망을 만들고 한 사람이 방향이될 때다.

끝나지 않은 내란을 ‘평등 평화의 물결’로 끝장내자.

동지여, 이 세상을 어둠에서 구하소서!

2025.11.19.

Post Author: 전북노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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