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대우모빌리티 30주년 기념식을 바라보며

타타대우모빌리티 30주년 기념식을 바라보며

유준(금속노조 타타대우상용차지회 전 지회장)

올해 회사 30주년 기념식을 지내며 타타대우상용차에서 타타대우모빌리티로 사명이 바뀌었다. 사명이 바뀐 것은 처음이 아니다. 60년대 신진자동차에서 시작해 꽤 많은 이름을 거쳤다. 군산에 공장 자리를 튼 그것이 95년이고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0주년 기념식에는 AI로 구현한 김우중이 기념사를 하였다. 망령을 보는 듯해 실소가 나왔다. (이 글에서는 타타대우모빌리티라는 이름이 아직도 입에 붙지 않아서 타타대우라 하겠다.)

지난 시간 노동조합도 많은 투쟁으로 성과를 내었다. 2000년 군산 누비라 공장 노동조합 설립보다 앞서 1998년 22명이 대우상용차사무연구직 노동조합을 결성 했다. 99년에 이르러 현장까지 통합된 노동조합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시작과 동시에 사측의 희망퇴직과 무급휴직이 단행되었다. 사측이 발행한 30년사에는 ‘회사를 살리기 위한 노사의 합의가 노사협력의 틀을 다졌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노동자의 희생뿐이었다. 초기의 이러한 희생이 노동조합엔 큰 상처이자 한편으로 건강히 자랄 수 있는 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출처 : 타타대우상용차지회

타타대우하면 모범조직이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모범조직이 된 배경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이 큰 역할을 했다. 2000년 초반 경영 상황이 호전되면서 생산량은 빠르게 늘었다. 사측은 도급 형태의 비정규직을 현장에 투입하기 시작했고 도급 업체는 3개로 늘어 공장 안의 많은 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나는 2006년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고 그땐 300여명이 넘는 비정규직이 있어, 비정규직 투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았다. 비정규직이 비조합원이어도 정규직노동조합은 비정규직의 기본급을 비롯해 성과금을 따왔다. 2008년에는 선배들의 통 큰 결단에 힘 입어 비정규직을 전원 조합에 가입시켰다. 금속노조가 내세운 1사 1조직 원칙을 실현한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이었다. 노조차원에서는 통상임금확대, 타임오프, 톡스프리, CCTV 저지 등 안에서도 크고 작은 투쟁이 많았고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직투쟁은 물론 미군기지 오염수 사건, 한국펠저 투쟁, 이명박 정권 광우병위험쇠고기 수입 강행, 박근혜 정권 탄핵 등 군산지역에서도 연대를 이어 나갔다. 하지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으면 어떠한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전북의 완성차공장 노동조합은 지역노동운동에 기여하고 있을까? 분명 예전에는 지역 노동운동의 동력이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지 생각해 본다. 금속노조는 2년마다 노동조합 선거를 치른다. 임기 2년 동안 단협과 임협을 거치면 또다시 선거가 도래한다. 공장 밖보다 공장 안 표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전북의 상용차 완성공장이 들어서고 30년이 지난 지금은 내부의 관성에 갇혀 있다고 생각된다. 조직을 만들고 지키는 일은 익숙해졌지만, 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장과 지역 등의 관계를 여전히 바꾸지 못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많은 투쟁으로 쟁취했듯이 이제는 우리의 투쟁과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 가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바꾸는 용기가 필요하다.

Post Author: agent AI U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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