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시온주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과 서아시아 전쟁의 또 다른 얼굴
장석준(배곳 산현재 기획위원)
민주적 파시즘 체제?
민주주의이면서 파시즘인 체제가 있을 수 있는가? 이것은 마치, 무생물이면서 생물일 수 있는가, 하고 묻는 것과도 같다. 파시즘의 정의 중 핵심이 ‘민주주의의 실질적 파괴’인데, 어찌 ‘민주적’ 파시즘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국가가 이런 상식을 비웃으며 ‘민주적 파시즘’이라는 신조어 말고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상태로 치닫고 있다. 국내 제도는 민주정이지만, 국경 안팎에서 지난 세기 최악의 파시즘, 즉 독일 나치즘이 벌인 인종 학살을 반복하는 국가. 이스라엘이다.1
국내 제도만 보면, 이스라엘은 견실한 민주 국가다. 이 나라는 의회정부제(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크네세트(의회)는 전국이 단일 선거구인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구성된다. 이런 선거제도 덕분에 이스라엘에서는 10여 개가 넘는 정당이 원내에서 활발히 활동한다. 네타냐후도 이런 다당 구도에서 정치적 곡예를 부리며 어렵사리 우파 연립정부를 꾸려가는 것이지 독재자는 아니다. 비록 사법부 권한 축소를 시도했다가 대규모 반대 시위와 맞닥뜨리기도 했지만, 네타냐후 일가의 부패에 대한 법원의 재판이 의연히 계속되고 있다. 야당들은 곧 다가올 총선에서 네타냐후를 심판하겠다고 벼르는 중이고, 실제로 정권교체 가능성이 크다.
지난 2월 28일,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 침공으로 시작된 서아시아 전쟁이 100일이 넘게 진행된 끝에 6월 12일 종전 양해각서 체결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네타냐후를 비롯한 이스라엘은 이에 반발하며 종전 양해각서의 이행항목인 레바논 남부 침공 중단을 거부하고 있어 종전 협상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도 2025년 10월 “휴전” 이후에 1,005명을 살해했다. (누적 사망자 수 73,016명, 6월 18일 기준)
문제는 네타냐후 정권에게만 있지 않다. 이스라엘 사회 전반의 유대인들이 이란 침공을 비롯해 가자지구 학살에 대해 동조하고 있으며 이는 진보·좌파라고 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 근원에 이스라엘의 시온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이번 글을 통해 극우화된 이스라엘의 근본 원인인 시온주의 문제의 전반적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또한 시온주의에 근거해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의 중단과 서아시아 지역 평화를 위한 연대의 전망을 모색하고자 한다.
– 편집팀
이 정도면 차라리 ‘모범적’ 민주 국가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범적’ 민주 국가가 일상에서 어떤 식으로 존립하는지 보자. 이스라엘은 지구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확정적 국경선이 없는 나라다. 1947년에 유엔이 정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할선이 있지만,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이 분할선을 넘어 점령지를 확장했고 이후 팔레스타인 등에서 집요하게 불법 점령지를 넓히고 있다. 생존하려면 지금보다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스라엘 사회에 널리 퍼져 있고, 그래서 일부러 국경을 확정하지 않은 채 지금도 곳곳에서 군사작전을 벌인다. 이 대목에서, 생존 공간을 확보해야겠다며 동쪽으로 진군하던 나치 독일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기란 힘들다.
그런데 과연 ‘누구의’ 생존 공간인가? 당연히 ‘이스라엘 국민’이겠지만, 이게 보통의 ‘국민’과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성문헌법이 없는 이스라엘에서 헌법을 대신하는 기본법은 이스라엘을 ‘유대인-민주 국가’라 규정한다. ‘유대인’ 국가이기에 유대인으로 인정받기만 하면 세계 곳곳에서 이스라엘로 몰려와 새로 확보한 공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또한 ‘유대인’ 국가이기에 그렇게 확보한 공간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아랍어를 쓰는 주민은 시민권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다. 이스라엘 안에서 이미 인구 20% 이상을 차지하는 아랍계 주민처럼 2등 시민으로 살아가거나, 아니면 서안지구나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처럼 인종 청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까지 이른 것 자체가 이스라엘의 침략적이고 폭력적인 태도 탓이다.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이스라엘은 지속적으로, 이 협정의 기본정신인 ‘두 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의 평화적 분립)조차 방해하고 후퇴시키는 방향에서 움직였다. 협정에 서명한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암살당했고, 서안 지역에 줄기차게 불법 유대인 정착촌이 건설됐을 뿐만 아니라, 베냐민 네타냐후 현 총리를 중심으로 정치권 전반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이런 체제에 어울리는 말이 바로 ‘민주적 파시즘’이다. 제도는 민주정이지만, 그런 제도보다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 민주주의의 핵심을 이루는 보편적 평등의 원칙, 즉 타자 역시 권리의 평등한 주역임을 부정하며 존립하는 체제는 그렇게 불려야 마땅하다.
‘이스라엘은 유대인 국가여야만 한다’는 이념
그럼 이스라엘 안에는 이런 흐름에 저항하는 세력이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최근까지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부 장악 시도에 맞서는 격렬한 시위가 계속됐고, 이를 이끈 정치세력, 사회운동들이 있다. 그중에는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중도파뿐만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좌파도 있다. 20세기 내내 이스라엘은 ‘좌파’가 주도하는 나라였다. 이스라엘 건국2에 앞장서고 아랍 국가들과 전쟁을 불사하면서 이를 성사시킨 세력은 네타냐후가 속한 리쿠드당이 아니라 좌파정당들이었다. 이스라엘 좌파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는 세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 문제의 뿌리 깊은 근원 중 일부다. 이스라엘 좌파의 전부는 아니나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이스라엘 좌파는 그러한 상황이다.
이스라엘 주류 좌파를 살펴보면, 건국 당시에는 마파이당(이스라엘 땅의 노동자당)과 마팜당(통합노동자당)이라는 두 정당이 정계를 양분했었다. 첫 총선에서 리쿠드당의 전신인 헤루트당(자유당)은 제4당에 불과했다. 마파이당과 마팜당은 20세기 말에는 각각 노동당과 메레츠(활력)당으로 이어지며 의회에서 좌파를 대표했다. 이들의 사회적 토대는 노총인 히스타드루트와 키부츠 공동체들이었다.
한데 이러한 이스라엘 주류 좌파에게는 다른 나라 좌파에는 없는 독특한 공통 이념이 있었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그것은 바로 시온주의다. 즉, 이스라엘의 사회민주주의/사회주의 세력은 단순한 사회민주주의/사회주의 세력이 아니다. 시온주의와 결합된 사회민주주의/사회주의 세력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좌파는 서유럽 어느 나라의 사회민주주의정당이나 라틴아메리카 어느 나라의 좌파정당과 동렬에 놓고 관찰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 다른 어떤 나라에도 없는 이념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면, ‘좌파’ 시온주의다. 영어로는 흔히 Labor Zionism, ‘노동 시온주의’이라 한다. 2,000여 년간 팔레스타인 바깥에서 디아스포라를 이루며 살아가던 유대인의 국가를 팔레스타인 옛 땅에 다시 세운다는 이념이다. 다만 ‘좌파’ 시온주의자들은 이 유대인 국가가 처음부터 노동계급 중심의 ‘세속적’, 민주적 국가가 되길 바랐다. 그리고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이런 ‘좌파’ 시온주의가 시온주의 전체의 주류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스라엘 좌파가 유별나다는 게 좀 과장인 듯 느껴질 수도 있다. 시온주의를 단순히 유대인 민족주의로 피상적으로 이해한다면 그렇다. 어느 나라든 우파뿐만 아니라 좌파 역시 어느 정도는 근대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스웨덴을 ‘인민의 가정’으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여기에서 민족주의의 뉘앙스를 배제하기란 불가능하다. 이탈리아 공산당이 ‘사회주의로 가는 이탈리아적 길’을 선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민족주의란 비록 정도 차이는 있더라도 근대 정치의 기본 형식이다. 그러나 시온주의는 다르다. 근대 민족주의의 범주 안에 놓기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것은 유대인의 오랜 이주 역사가 낳은 비극적 운명이며,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비극을 낳고 있는 요소다. 시온주의는 지구상의 숱한 민족들이 근대 민족주의의 요소들을 서로 모방하며 만들어 낸 근대 민족주의 현상의 일부이되, 그런 ‘근대’ 민족주의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시온주의와 이스라엘의 모순
근대 민족 관념은 지리, 언어, 역사, 문화 등 여러 요소들이 얽혀 구성된다. 여기에는 종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종교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요소다. 오히려 종교적 정체성은 근대적 민족 정체성과 충돌하는 측면까지 있다. 근대적 민족 정체성은 오랜 종교적 정체성을 포용하면서도 이와 경쟁한다. 그리하여 결국은 특정 종교에 복속되지 않으며 도리어 종교적 정체성 전반에 대해 우위를 주장하는 근대적 민족 정체성이 형성된다. 그리고 근대 국가는 이러한 근대적 민족 정체성을 그 안정적 토대로 삼는다.
그러나 유대인은 이런 일반적 경로에서 이탈하는 유일하면서도 결정적인 사례다. 2,000년 동안의 이산 역사 속에서 유대인은 근대적 민족 정체성을 구성할 어떠한 지리적, 언어적, 문화적 공통 요소도 갖출 수 없었다. 이 점에서 ‘유대인’을 말하는 것은 언어상의 온갖 모순을 감내하는 행위였다. 다만 그럼에도 ‘유대인’을 실체로 만드는 단 한 가지 요소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유대교였다. 사실 유대교를 기독교, 이슬람과 같은 맥락의 종교로 봐야 하는지 자체가 논쟁거리이지만 아무튼 근대에 들어 유대교는 그런 ‘종교’ 중 하나로 분류됐다. 그리고 유대인이란 유대교도, 즉 유대교를 믿고 실행하는 사람들이었다.

여기에서 모든 모순이 비롯되었다. 시온주의자들은 유대인의 근대 국가를 세우길 원했다. 많은 이들은, 시온주의자들이 하필이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만들려 한 데에서 비극의 씨앗을 찾는다. 하지만 비극의 씨앗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유대인의’ ‘근대 국가’라는 목표 자체가 비극을 불러오는 요소였다. 시온주의자들이 ‘유대인’ 국가를 수립하려면, 우선 ‘유대인’을 호명하고 그들을 결집시켜야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유대인’이란 ‘유대교도’였다. 즉, 유대교라는 종교적 정체성을 근거로 하나의 국가를 건설해야 했다.
‘좌파’ 시온주의자라고 하여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좌파 시온주의자들은 대개 유대교 리버럴파에 속하거나 아니면 아예 유대교 신앙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세운 신생국은 ‘유대인의 국가’, 즉 ‘유대교 국가’일 수밖에 없었다. 제1차 중동전쟁 와중이던 1948년에 선포한 ‘독립선언’은 이스라엘이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근대 국가임을 천명했고 또한 신생국의 성격을 ‘유대인 국가(Jewish State)’라 규정했다. 종교에 구애받지 않는, 유대교 국가. 누가 보더라도 불안한 모순어법이었다.
근대 국가에 미치지 못하는 ‘민주 국가’
좌파 시온주의자들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성문헌법 없이 독립선언과 기본법으로 헌법을 대체했는데, 1985년에 기본법 일부 조항을 수정하면서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문구를 새로 넣었다. 당시에 이미 목소리를 높이고 있던 유대교 근본주의 세력에 맞서 좌파가 주도한 개정이었다. 좌파는 ‘유대인 국가’라는 규정에 ‘민주주의 국가(Democratic State)’라는 규정을 추가함으로써 ‘유대인 국가’가 내포한 위험을 방지해 보려 했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자기규정은 ‘유대인-민주 국가(Jewish and Democratic State)’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전혀 방지책이 될 수 없었다. ‘유대인-민주 국가’는 다른 ‘민주 국가’와 달리 결혼을 비롯한 여러 사회 제도를 민법을 통해 운영하지 않는다. 유대교 랍비가, 그것도 국가가 공인한 유대교 정통파에 속한 랍비에 한해, 민사재판이나 가사재판의 역할을 떠맡는다. 물론 리버럴 혹은 좌파 이스라엘인들은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 왔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특이성을 증명한다. 이스라엘은 태생적으로 ‘근대’ 국가에 미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특이성 탓에 이스라엘 건국 주역이었던 좌파 시온주의자들은 쇠퇴했고, 팔레스타인 충돌은 악화하기만 했다. 건국 당시 주류였던 유럽-북미 출신 인구가 상대적으로 줄고 중동 출신 그리고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 출신이 늘어나면서 이스라엘 사회에 대한 유대교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그럴수록 노동당이나 메레츠당 지지율은 하락하는 반면 극우 유대교 근본주의 세력들의 지분은 늘어났다. 또한 그럴수록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과 식민통치는 더 잔인하고 가혹해졌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걸어온 역사의 큰 줄기다.
오슬로 협정 이후에 국제사회 대다수가 공인한 대안은 ‘두 국가 해법’이다.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허용하고 더 나아가는 독립국가 수립을 인정하는 것, 그래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두 국가가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간 이스라엘 정부는 두 국가 해법을 원천 봉쇄하는 방향에서 갖은 노력을 다했다. 노동당 소속 라빈 총리의 암살 이후 리쿠드당과 유대교 근본주의 세력들의 극우 연합이 정계를 주도한 탓이다. 노동당, 메레츠당 같은 좌파 시온주의자들은 이 분위기에 끌려다니며 평화 정책을 스스로 후퇴시켰다. 지지 기반도 줄어들고 이념-노선도 흔들린 좌파정당들은 반극우연합의 주도권을 중도우파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급기야 2022년 11월 총선에서 노동당은 3.69%만을 득표하며 의석이 4석(총 의석은 120석)으로 쪼그라들었으며 3.16%를 얻은 메레츠당은 아예 원외정당으로 밀려났다.
시온주의를 벗어난 민주주의는 가능할 것인가.
이스라엘 사회의 탈-시온주의화는 가능할 것인가? 이는 “대한민국이 분단반공국가의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과도 비슷하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탈-시온주의화 역시 지극히 어려운 과제이고, 또한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진지하게 돌파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다만 일단은, 이스라엘 사회 안에 이 과업을 직시하는 흐름이 미약하나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이스라엘 좌파가 좌파 시오니즘 일색만은 아니라고 했는데, 그 결정적인 사례는 노동당, 메레츠당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지닌 이스라엘 공산당이다. 오늘날 이스라엘 공산당은 이스라엘 내 아랍계 시민을 대변하는 정치세력들과 함께 하다쉬(‘평화와 평등을 위한 민주전선’의 약칭)라는 정당연합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하다쉬는 2022년 총선에서 노동당보다 많은 3.75%를 득표해 5석을 확보했다.
공산당은 다른 좌파정당들과 달리 오랫동안 ‘유대인 국가’라는 규정에 반대해 왔고, 하다쉬는 현재 이스라엘 안에서 한 국가 해법에 가장 가까운 대안을 주창하는 정치세력이다. 유대계와 아랍계가 내부에서 공존하며 협력하는 하다쉬 자체가 미래의 통합 세속-민주 국가를 예시한다. 노동당 소속으로 크네세트 의장까지 역임한 원로 정치가 아브라함 버그는 노동당의 퇴행을 비판하다가 2015년 하다쉬로 당적을 옮겼다. 본래 좌파 시오니스트로 출발한 버그는 오슬로 협정의 약속이 깨져나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점차 시오니즘의 기본 내용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하다쉬 입당이었다.
지금 이스라엘 사회는 극우화하고 있다. 그러나 버그의 행보처럼 이에 맞서는 정반대 변화도 있다. 비록 폭력의 스펙터클 속에서 눈에 잘 띄지 않더라도, 희망은 오직 이런 이스라엘 내부의 탈-시온주의화에 있다. 어렵고 또 어렵지만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될 대한민국 내부의 변화처럼 말이다.
- 이 글은 편집팀이 필자의 허락을 구하여 다음의 칼럼들을 정리하여 편집한 글이다. – 장석준, 「가자지구 문제의 근원, ‘이스라엘은 유대인 국가여야만 한다’는 이념」, 《프레시안》,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3102310022911216, (2023.10.25.) – 장석준, 「민주적 파시즘 체제, 이스라엘」,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59595.html, (2026.05.20.) ↩︎
- 편집자 주: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1948년 5월 15일 건국했지만 80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원주민에게는 천년이 넘게 살아온 땅에서 난민으로 내몰리고 죽어가는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의 시작이었다. 이스라엘 건국 전후의 유대인 정착민들은 환대해야 할 이주민이 아니었으며 오랜 기간 팔레스타인 땅에 살아온 유대인 원주민과도 무관했다. 19세기 말부터 유럽에서 건너와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추방하고 땅을 빼앗아 유대인만을 위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시온주의자들은 식민주의자들이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