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중단을 넘어 탈식민으로
뎡야핑(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2009년 오바마 전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은 군사·외교 정책의 중심축을 중동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이동시킨다는 기조를 확립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중동 질서를 ‘안정’시키기 위해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라는 오랫동안 지연된 유엔 등 국제 사회의 계획을 실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1948년 이래 팔레스타인 전역을 식민 지배하고 원주민을 인종청소해 온 이스라엘은 이에 반발했습니다. 오히려 피점령지 서안지구에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더욱 확대 건설했습니다. 한편 미국과 이집트의 협조 속에 2007년 이래 가자지구의 육·해·공을 완전히 봉쇄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해방 운동 세력들이 식민국가 이스라엘에 반격을 가한 것을 기회로 이스라엘은 가자 주민 집단학살을 시작했습니다. 유엔 팔레스타인 인권특별보고관 프란체스카 알바네제는 “국제형사재판소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자행한 범죄를 진지하게 수사한다면 10월 7일 단 하루 동안 자행한 일을 수사하는 데만 십 년이 걸릴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 10월 7일이, 수사하는 데 수십년씩 걸릴 매일매일이, 2년 넘는 시간 동안 이스라엘의 가자집단학살2년 규탄 제15차 전북집중행동

반복되며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인 10월 10일에 세번째로 휴전이 발효됐지만 끝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매일 협정 내용을 위반하며 지금도 저강도의 집단학살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휴전 협상을 어그러뜨리고 전면적인 집단학살을 재개할 기회도 끊임없이 노리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만이, 언제나 그랬듯이 휴전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홀로코스트가 다시는, 누구에게도 자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아 “Never Again”을 외쳐왔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도 집단학살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로힝야, 콩고, 수단… 그런데 가자지구 집단학살은 다른 집단학살들과 대별되는 특징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해자들이 집단학살의 고의를 숨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집단학살은 단순히 민간인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것을 넘어 인종에든 종교에든 기반해 한 인구 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물리적으로 파괴하고 절멸시킨다는 의도를 필요로 합니다. 집단학살을 명령하는 이스라엘 지도부부터 직접 수행하는 일선의 병사들까지 한결같이 230만 가자지구 주민 중 “무고한 사람은 없다”고 크게 외칩니다. 이 때문에 2023년 12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소로 시작된 국제사법재판소의 이스라엘 집단학살 재판의 결과를 대체로 낙관적으로 예상합니다. 어떤 가해자도 자신들이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재판에서 고의성을 입증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데, 이 난제가 해결됐기 때문이죠.
이렇게 집단학살의 의도를 크고 투명하게 드러낸다는 점과 연결되는 두번째 특징은 일선의 가해 병사들이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직접 촬영해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며 자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신들이 살해했거나 최소 강제 추방한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주택에 들어가 그들의 속옷이나 드레스를 입고 찍은 사진과 영상을 경쟁적으로 공유합니다. 구호품을 받으러 온 민간인들을 겨냥한 채 언제든 쏠 수 있는 상태의 조준경을 찍어서 올립니다. 아이들의 장난감을 부수고, 인형을 목매달아놓고, 아기 침대에서 자고, 아동용 자전거를 탑니다. 이런 사진들을 데이팅앱 프로필 사진으로 올립니다. 다른 나라에 휴가 갔을 때, 혹은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처벌받을 수 있으니 이런 전쟁범죄 증거 사진을 내리라고 충고하는 이스라엘인들도 있지만 지금도 계속 올라옵니다. 덕분에 개별 병사의 전쟁범죄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아주 쉽습니다. 가해자들이 이런 ‘기념 사진’을 찍는 일은 다른 곳에서도 흔하지만, 자신들끼리 비밀리에 간직할 뿐 이렇게 전시하는 일은 이전엔 없었습니다. 어떤 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권장되거나 칭송된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어지는 세 번째 특징은 바로 인류가 보고 겪은 중 “가장 민주적인 집단학살”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자녀인 한 유대인 학자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요.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는 산업적인 규모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자행됐습니다. 당시 외부에 살던 유대인들조차 홀로코스트가 루머일 거라고 믿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집단학살은 이스라엘 국민의 총의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인구의 20%를 점하는 팔레스타인 원주민들 말고, 이스라엘 유대인의 82%가 가자지구에는 무고한 사람이 없다는 집단학살적 믿음을 공유합니다. 때문에 전쟁범죄 사진이 유행할 수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 시민들은 가자지구로 유입되는 적은 양의 구호품도 허용할 수 없다며 밤낮 없이 가족 단위로 나와 온몸으로 구호 트럭을 저지하고 구호품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시민들은 민병대를 꾸려 이스라엘 점령군 노릇을 하고 있고, 지금 올리브 수확 중인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을 구타하고 집과 차와 밭에 불을 지르며 민간 차원의 집단학살(“포그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특징은 이스라엘 일국이 아니라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서방의 첨단 자본주의 국가들이 이 집단학살을 공동으로 자행하는 주범이라는 점입니다. 보스니아 집단학살의 생존자이자 집단학살 연구자 한 분은 서방 강대국이 소극적으로 방관했을지언정 이렇게 직접 무기를 대며 가담하진 않았다며 충격을 토로합니다. 사실 이스라엘이라는 정착민 식민주의 국가는 유럽의 반유대주의와 시온주의, 식민주의의 합작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전면 지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간 행해온 그 어떤 잔혹행위와도 비견할 수 없는 강도로 집단학살을 저지르자, 모든 제국주의 국가의 정권과 언론, 학술 기관 들은 이전에 이스라엘에 대한 그 어떤 옹호 행위와도 비견할 수 없는 수준으로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가히 제국주의 국가들의 총력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도 하지 않던 비행 행위를 자행하며 그간 수립해 온 모든 기준을 무너뜨리고 최소한의 위선조차 집어던졌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단순히 서구 제국주의의 산물이라서만은 아닙니다. 집단학살을 통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시리아, 예멘, 이란 등 중동 전역의 저항 운동을 무너뜨리고, 이를 통해 경제적인 패권을 유지한다는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친미 아랍국가 간의 정상화(normalisation) 협정을 확대하고, 인도와 아랍국가, 이스라엘, 유럽을 잇는 해상 및 육로 회랑을 건설하고, 가자지구 앞바다에서 천연가스를 수탈하고, 자신들이 초토화시킨 가자지구 ‘재건’ 사업을 통해 부동산업자들의 배를 불리는 것 따위를 논하고 있습니다.
중동에서, 특히 팔레스타인에서, 특히 이 집단학살에 대해 미국은 여전히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것이 제국주의의 후퇴라는 장기적인 흐름 속에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은 인류사에 전례 없는 규모로 폭탄을 쏟아부은 집단학살을 통해서도 군사적인 목표를 단 하나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시온주의 프로젝트는 붕괴되는 중이고, 식민주의의 마지막 종말 과정은 언제나 가장 잔혹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자연 소멸 중이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서국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중동 지역 첨병을 무너뜨리는 최전선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모든 저항 세력과 정치 세력들은 어느 때보다 오랜 분열을 딛고 민족적인 단결을 통해 해방을 가져오려고 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국주의에 맞선 싸움은 팔레스타인만의 것일 수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시작합시다. 이스라엘부터 무너뜨립시다.
한국 시민사회는 2023년 10월 집단학살 후 집단학살 종식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군사점령과 식민지배라는 근본 원인이 종식되어야 한다는 공동의 입장에 기반해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라는 연대체를 구성했고 현재 310개 단체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집회와 기자회견, 포럼, 일인시위나 직접 행동 외에도 특히 BDS를 주요 운동 방법론으로 도입해 집단학살로부터 이윤을 얻고 있는 기업이라고 유엔 특보가 지목하기도 한 한국 기업 HD현대와, 가자지구 앞바다에서 가스를 수탈하고 있는 공기업 한국석유공사를 상대로 한 운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 정부에 포괄적 무기 금수 조치 등 이스라엘에 대한 독자 제재를 가하고 헤이그 그룹에 가입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BDS 운동이 대중화되며 2024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보이콧 선언이 이뤄졌습니다. 작가와 출판인들이, 과학기술인들이, 무용인들이, 퀴어들이, 비건들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집단학살 국가 이스라엘과 공모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제가 속한 단체인 팔레스타인평화연대(영문명 BDS Korea)는 2014년에도, 2021년에도 한국 시민사회에서 BDS 운동을 조직하려다 실패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엄청난 변화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의 노동 운동 세력은 긴급행동이라는 연대체에 가입해 기본적인 지지를 보여주는 것 외에 적극적인 연대 투쟁을 조직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노동 의제 자체가 많고, 국제연대를 위한 파업 등의 경험이 없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들에서 노동자들이 베트남 전쟁이나 남아프리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철폐하기 위해 파업했던 역사적 경험이 지금 팔레스타인 연대 파업으로 이어졌듯이, 한국도 노동운동이 적극적인 팔레스타인 연대 투쟁에 결합한다면, 이후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 노동자 국제연대를 쌓는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글은 <2025 APEC 반대! 트럼프 반대! 국제민중컨퍼런스> 세션2 ‘다극화, 신냉전, 신파시즘’에서 발표된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