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 외유내강 선비의 현신, ‘이동백 선생님’을 만나다

[회원 인터뷰] 외유내강 선비의 현신, ‘이동백 선생님’을 만나다

편집팀

이상저온현상이 계속되어 가을을 건너뛰고 겨울로 직행하는가 싶더니, 날씨가 풀려 햇살이 따뜻한 10월의 어느 아침에 3년 만에 완산중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교장실은 권위적이지 않고 소박했습니다. 흐트러짐 없는 난과 꽃들이 창가를, 수묵화 세 점이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중 두 점은 직접 그린 작품이라고 합니다. 교장실을 잠깐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이 방 주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2023년 2월 퇴직을 앞두고 있는 이동백 완산중학교 교장선생님을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 1988년 교단에 서고, 전교조 조합원으로서 첫발을 내딛다

원래 꿈이 선생님이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교사나 문필가가 꿈이었습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하던 1980년에는 꼭 사범대에 가지 않아도 교사가 되는 길이 열려 있었기에 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영어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영어교사로 20여 년, 그 후로 상담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상담교사로 5년, 전교조 전임 활동가로 3년, 완산중학교 교장으로 3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전교조에 가입하게 되었습니까?

저는 학생운동은 하지 않았지만, 80년대 전반을 학생으로 지내면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교단에 서기 시작한 1988년은 전 사회적으로 민주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사회가 변화했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제가 중고등학교에 다녔던 그 시절이나 거의 달라진 것이 없이 여전히 권위적이고 줄 세우기 교육이 횡행할 뿐이었죠.

그때는 ‘전국교사협의회’라는 자주적인 교사 단체가 1987년에 결성되어 있었고, 저도 자발적으로 가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정읍에서 모임을 했는데, 신태인에 근무하면서 동료 교사 1명과 함께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교육과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가득 찼고, 그 모임을 기다리면서 일주일을 생활했습니다. 그 뒤로 전국교사협의회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으로 전환되면서 자연스럽게 전교조 활동을 하게 되었지요.

전교조 활동을 하면서 기억나는 일과 안타까운 일이 있으면 이야기해주세요.

가장 기억나는 일은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나서 우리는 교육이 아주 적극적으로 민주화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지옥 같은 입시교육이 해소되고 교육민주화의 새날이 열리리라 기대했었죠. 그런데 김대중 정권 역시 교육의 줄 세우기, 학교 간 경쟁 등 이런 정책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국 지회장급 활동가들이 평일에 서울로 상경해서 정부 종합청사 점거 농성, 청와대 진격 투쟁을 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에 와서는 청와대 부근까지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 근처도 얼씬할 수 없었던 시절에 400여 명 정도의 교사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청와대로 달려가서 길바닥에 드러누워 교육민주화를 외쳤습니다. 모두 연행되어 닭장차를 타고 각 경찰서로 분산 수용되었죠. 그때 끌려가는 닭장차 속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뉴스를 들었죠. 참 역사의 아이러니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전교조 결성과 더불어 1,500여 명의 교사들이 해직되었습니다. 후에 복직이 되기는 했는데 해직 기간 동안의 봉급과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화유공자라고 하면서도 봉급과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이 분들의 경력과 지급하지 못한 봉급을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노조가 출범하면서 전교조가 지난 30년 동안 지키고 발전시켜온 가치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주로, 젊은 교사들도 교사노조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전교조 운동의 방향은 어떻게 가야 할까요?

어떤 운동이든 (정세 또는 시공간 및 조건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겠지요. 전교조가 그동안 교육개혁과 교육민주화에 공헌을 해왔지만 새로운 세대들에게 약간은 외면받는 것도 사실인 듯 합니다. 예전에는 사범대가 전교조 조합원의 양성소였고, 교사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 집단적 지성이 강조되었습니다. 교사 임용제가 시행되면서 성적에 따라 교사를 채용하니 교사 내부에서도 ‘능력주의’와 ‘개인주의’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들은 현재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여러 혜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해에 따라 대응이 손쉽고 재빠를 수 있지요. 그런데 전교조는 30년 동안의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인해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가 힘듭니다. 전교조가 좀 더 가슴을 열고 교사노조 같은 젊은 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대립하기보다는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을 모색하고, 서로 협력할 것은 협력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그래도 젊은 세대가 어용의 상징이었던 교총으로 가지 않고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요.

‘참교육’의 가치를 지켜가고 있는 전교조 교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우리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애를 쓰고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은 힘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지만 교육과 사회의 진보를 위해 애를 쓰다 보면 사회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리라 확신합니다.

교사가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학생들이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전교조 교사로 산다는 것은 학생들과 함께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 가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혼자의 행복에 머무르지 않고 더불어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이야말로 삶의 보람이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시대를 묵묵히 헤쳐가시는 전교조 선생님들에게 동지애와 응원을 보냅니다.

2. 2020년, 사학재단의 비리로 얼룩진 완산중학교에 교장으로 취임하다

완산중학교가 사학비리문제로 시끄러웠습니다. 그 경과를 설명해주세요.

2019년에 재단의 비리가 사회에 공개되었습니다. 재단의 소유주가 횡령한 금액이 57억 원에 달했다고 하고 현재도 감옥에 있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전라북도교육청의 감사와 검찰 수사로 많은 교직원들이 학교를 떠나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현재도 재판이 진행 중이고 일부 교원들은 재판에서 승소하여 학교로 돌아오고 있기도 합니다.

교장으로 재직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세요?

처음 부임해서 어려웠던 점은 학교 내부의 갈등의 골이 상당히 깊게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교직원들이 파면, 해임되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아픔이었죠. 그런 마음들을 치유하고 달래고, 서로 공감하고 화해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시간도 흐르고, 새로운 교사들이 채용되면서 분위기는 많이 완화된 것 같습니다.

교장으로 재직하시면서 평교사였던 시절과 차이점을 이야기해주세요.

평교사는 어떤 좋은 개혁적인 방안이나 아이디어가 있어도 교감, 교장이 거부를 해버리면 학교 내에서 구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자기 수업시간이나, 학급 내에서 실천 하는 정도에 머물고 말죠. 학교 전체의 사업으로 승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장은 그런 개혁적인 사안이 생기면 교사들의 동의를 얻어서 학교 전체의 사업으로 시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의 간섭을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실례로 완산중학교 학생들은 복장이 아주 자유로운데, 일부 학부모들은 교복착용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일부 동조하는 교사도 있고요. 저는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복장과 용의가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장과 용의의 자유에 대해서는 전라북도 학생인권조례에서도 명시하고 있고요. 학교 교칙에 인권조례 조항을 준용하여 시행하면서 학부모들을 설득해오고 있습니다.

3. 2023년 퇴직을 앞두고, 교사에서 생활인으로의 인생 2막을 준비하다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스스로를 버티게 했던 좌우명이 있을까요?

교직 생활 35년을 거쳐오면서 저를 지탱해준 것은 ‘전교조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정신이라고 볼 수 있겠죠. 학생에게 대입하면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고, 일반 사람들에게 대입해 본다면 ‘교육’, ‘주거’, ‘의료’,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걱정없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는 신념입니다.

취미는 무엇이고,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시나요?

취미는 젊은 시절에는 테니스를 조금 쳤고, 지금은 시간 날 때마다 자전거를 타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리고 집에 꽃과 나무를 기르는 일(가드닝)이 취미이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는 평소에 거의 받지 않는 편입니다. 스트레스가 생기는 일이 있으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는 편이죠. 그리고 그 일과 관련 없는 시간이 되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고 노력합니다.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최근에 기뻤던 일은 완산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함께 마을교육과정으로, ‘기후위기와 평화동’이란 주제로 1년 동안 환경보호·지구살리기 수업과 실천활동을 해온 일입니다. 1년 동안의 과정을 거쳐 학생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일이 자기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부터 실천하자라는 마음을 갖게 된 것 같고, 협력과 상생의 정신을 배운 것 같아 기쁩니다. 바람이 있다면 이렇게 일구어놓은 마을교육과정을 제가 떠난 후에도 잘 이어갔으면 합니다.

임기가 얼마 안 남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후 계획이 있으세요?

2023년 2월에 명예퇴직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어떤 일을 하겠다고 일정을 세워둔 건 없지만, 아내가 2022년에 퇴직을 하여 집 앞에 정원 꾸미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정원 만드는 일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일 외에 정읍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뒤에서나마 지원하는 일은 계속해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사 시절엔 가입할 수 없었던 진보정당에 가입하여 지역에서 그리고 우리나라 전체에 진보정치가 피어나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전북노동연대 회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과 환경 속에서 좀 더 인간적인 사회,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애쓰시는 노동연대 회원들에게 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는 늘 어둡고 힘들게 느껴지지만 굴하지 않고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사회는 조금씩 진보해나간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역사는 그렇게 전진해왔고요. 지치지 말고 긍지와 보람을 가지고 함께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씀해주세요.

역사가 앞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어두웠던 일제강점기 시대에도 우리 선배들은 총을 들고 만주로 떠났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보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늘 함께하는 동지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4. 인터뷰 후기

주위에서 교장 중임을 권유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학교도 많이 안정화되었고, 사립학교의 특성상 당신께서 후배들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명예퇴직을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평생 동안 활동했던 ‘전교조’가 처한 어려운 현실들을 감안할 때, 그리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고 하십니다. 부드러운 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만, 인터뷰를 통해 강직한 신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교직을 떠나서도 항상 ‘전교조 정신’을 잃지 않고 활동하실 거라 믿기에 이동백 선생님의 인생 2막을 응원합니다.

Post Author: agent AI U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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