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길, 폭력의 시대를 넘고 넘어서는

끝없는 길, 폭력의 시대를 넘고 넘어서는

87년 민중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35년

김정훈(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대표)

70~80년대 반공 군부독재는 탄압과 수탈의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총칼 권력은 모든 것을 한 손에 움켜쥐었다. 자신들을 따르지 않으면 사법부까지도 협박과 탈취를 거리낌 없이 자행했다. 먼 바다 건너 큰형님을 모신 국가적인 조직폭력배, 아니 국가 깡패 집단이 ‘정권’의 명패를 달고 있었다. 그러니 숨소리 한번 크게 낼 수 없었던 민중의 한은 얼마나 깊었을까? 그러나 80년 항쟁의 불길이 시대를 관통하며 조폭 통치의 숨통을 조이고, 독재 개발 수탈 경제가 한계점에 이르렀을 때 1987년 6월이 왔다.

87년 민중민주항쟁은 80년 피의 학살 위에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을 때부터 예고된 항쟁이었다. 이해학 목사는 경기도 6·10항쟁 35주년 기념사에서 “권인숙이 취조받다 성폭행을 당하고, 김근태가 발톱을 뽑히고, …박종철이 남영동 치안분실에서 살해되고, 이한열이 최루탄에 쓰러져서야 모두가 소스라쳐 일어났습니다.”라고 썼다. 군부독재의 직접적인 연장에 집착한 자들이 저지른 참혹한 비극 속에서 역사적 전환기를 만든 것이다.

출처 : 6월항쟁 공식 홈페이지

군부독재의 종식으로 이어진 87년 민중민주항쟁은 노태우 정권의 성립으로 빛이 바래긴 했지만, 혁명적인 성격을 지닌 점 또한 분명하다. 이른바 시민운동의 약진과 함께 따라오는 ‘부르조아 혁명’의 성격. 하지만 폭력의 세기에 파열구를 내려는 민중의 열망이 분출한 87항쟁이 어찌 ‘부르조아 혁명’이라는 명명으로 모두 환치될 수 있겠는가. 그것을 넘어서는 열망이 87년 7, 8, 9 노동자 대투쟁으로 터져 나왔으며, 여기에 터를 잡아 전노협·전교협-민주노총·전교조 등을 만들어낸 것이다. 극악한 노동 현실을 스스로 바꾸기 위해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남한 땅 노동자 민중의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선언과 행동이 불길처럼 일어난 것이다.

한편 6·29선언의 기만과 허울에 갇힌 정치체제는 87항쟁을 미완의 항쟁으로 만들었다. 무신정권에서 문신정권으로의 정치교대. 직접적인 폭력통치에서 제도와 절차를 내세운 폭압통치로의 교체. 물론 대통령 직선제 등 각종 선거의 민주적 절차를 획득한 것은 민주주의 역사의 복원이기도 하다. 형식적인 진전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꿈’을 꿀 수 있는 출발점으로 삼기에 충분한 것일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과 권력에 ‘포획된 민주주의’는 분할통치를 행사하기 위한 장식품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87항쟁이 미완이고 87체제가 불완전하다는 것은 민주/반민주와 독재/반독재 구도를 관통하는 지배구조의 민주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87항쟁의 과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세 번의 민주당 정권이 보여준 것은 기만의 토대를 쌓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과 동행해 온 수구 정권에게 절차적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무시당할 수 있으며, 권위적 폭압 통치는 재소환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고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87년 민중민주항쟁의 과제는 민주주의다.

87년 민중민주항쟁의 정치·경제적인 이득은 정치권력과 자본 그리고 사법권력과 언론권력이 협력한 신지배계급에게 돌아갔다. IMF를 거치며 더욱 공고해진 이들 세력 판도에 이른바 ‘민주화 세력’을 자처한 자들도 연합군이 되어갔다. 혹독하게 강요된 신자유주의 경제 지배 질서는 그 ‘민주화 세력’들이 자본과 권력을 세습하는, 그것도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세습’하는 새로운 신분제 사회를 만든 것이다.

극단적인 소득 불평등, 불안정 비정규직의 일상화, 차별을 당연시하는 능력주의가 대기로 전파되는 전염병보다 무섭다. 사람과 노동을 배제하는 4차 산업혁명은 허구이다. 노동의 생산을 발로 밟아 눌러 짜낸 고혈로 들여오는 인공지능 등의 4차 산업혁명은 누구를 위한 산업혁명인지, 무엇을 위한 산업혁명인지 답하지 않는다. 빚투와 영끌의 허황된 세계가 드러난 뒤에도 청년 실업과 청년 노동에 대한 왜곡은 그대로다. 선전 선동의 우경화는 이미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개인용 토지의 55%를 인구 1%가, 99.4%를 인구의 10%가 소유하는 나라, 자살률 OECD 1위, 산재사망률 1위인 나라가 G10이라서 자랑스럽다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산다.

자본과 기업을 일방적으로 편들겠다는 윤석열 정권의 등장을 보며 87년 민중민주항쟁의 과제를 다시 생각한다. 주 92시간 노동 강요 정권의 혓바닥과 그 나팔수들의 낯짝을 본다. 심각한 지역 격차를 개발의 환상으로 속이는 토호 정치권력도 본다. 주눅 든 중장년 노동자의 어깨에서 묻어나는 허세도 본다. 그 안에서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외쳐야 하는, 생존권으로서의 노동권조차 확보하지 못한 21세기 노동자, 87년 민중민주항쟁의 주역과 후예들을 본다. 살아야 한다.

세계는 미국 주도의 일극 체제가 그 수명을 다하고 다극 체제로의 전환이 예정되어 있다. 이에 따른 국제적인 경제 불안정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은 너무도 크지만 우리는 아직 가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긴장까지도 민중을 압박하는 데 이용하려는 세력이 득시글거린다. 2017년 박근혜 탄핵을 만들어낸 촛불이 87항쟁의 이어짐이라면, 2022년에 치러진 선거-연합 순환 권력 사이의 ‘자기들끼리 놀이판’-의 허망과 좌절에서 벗어날 일이다. 일어설 때다. 가볍게 털고!

거리에서 당당했다. 공장에서 현장에서 물러섬이 없었다. 숱한 술자리에서 새로운 앞날을 꿈꿨다. 그렇다! ‘세대론’ 선동에 기울어진 미망을 깨고 역사의 시대를 다시 보자. 별은 가끔 거꾸로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상대적 위치에 따른 착시 현상일 뿐 순행을 한다. 폭력의 시대로 거스르는 역사는 없어야 한다. 해방 이후 한국사는 항쟁과 반동 그리고 항쟁으로 이어진다. 지배계급의 폭력과 폭압으로부터의 해방을 향한 여정이기도 하다. 그 모든 폭력으로부터의 해방, 그 길에 나와 동지는 어디에 서 있는가?

2022년 6월 29일

Post Author: agent AI U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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