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및 서평] 홍세화의 공부

[책 소개 및 서평] 홍세화의 공부

— 천정환 묻고 홍세화 답하다 —

김연탁(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사무처장)

3·9 대선과 6·1 지방동시선거 결과 민주당이 추락하고, 국민의 힘이 부활했습니다. 2016~2017년 촛불투쟁을 주도한 노동자·민중운동진영은 그 공을 민주당에게 통째로 빼앗기고, ‘진보’라는 이름도 강탈당한 채, 5년이 지나고 다시 ‘수구세력’에게 권력을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민주’, ‘진보’라는 가치를 지켜온 민주시민(?)은 지난 수십 년의 신념을 송두리째 부정당한 듯 체념과 상실에 빠져 있습니다. 뉴스나 신문을 피하게 되고, 웃음이 줄어든 채, 하루를 견뎌내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책을 소개하는 것에 대해 어느 때보다 조바심이 났습니다. 고민 끝에 홍세화 선생님(이하, ‘저자’)의 ‘공부’라는 책을 선정했습니다. 이 책은 2017년 7월 24일 출간되었습니다. (주로 신간을 소개하는 저에게는 다소 이례적입니다.) 박근혜 정권을 침몰시키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모두가 들떠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떠들 때, 저자는 대안으로 ‘공부’를 제안합니다. 그리고, 저자의 의도는 바로 책의 초반에 서술됩니다. ‘한국사회를 구성하는 우리 각자가 바뀌는 딱 그만큼 한국 사회가 바뀔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회구성원이 보이는 일반적인 모습은 자기는 바뀔 생각이 없으면서 한국 사회가 바뀌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1979년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 체류 중 망명하게 됩니다. (김남주 시인도 남민전 사건으로 9년 3개월을 복역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에야 귀국하게 됩니다. 어떤 점에서 박노자 교수와도 비교됩니다. 박노자 교수가 이방인으로서 한국사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했다면, 저자는 이방인으로서 프랑스 사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제시합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등 저서는 한국사회에 ‘톨레랑스’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진보정당운동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장발장 은행장 등 적극적으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한국사회는 공부중독사회다.”라고 단언합니다. 누구나 공부를 강조하지만, ‘무엇을 위한’이 생략된 공부 자체가 목적이 되는 ‘공부주의자’를 양산할 뿐이라고 안타까워합니다. 그 결과는 ‘처지나 존재에 대한 의식의 배반’입니다. 가장 근원적인 책임은 한국의 교육시스템 탓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를 바꾸기 위해서 ‘나를 바꾸는 공부’, ‘세상을 바꾸는 공부’, ‘인문학과 마음공부’가 필요하다고 정리합니다. ‘공부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하여 ‘겸손, 겸허, 회의=나를 위한 마음공부’로 마치는 아홉 개의 여정을 차례차례 따라가 보면, 나에서 시작하여 다시 나로 끝나는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나(개인)로부터 사회로, 다시 확대된 나(인간)으로 나아가는 나선형적인 행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부 〈나를 바꾸는 공부〉에서 저자는 ‘진심으로 말과 교육(공부)의 힘에 의해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그래서 세상이 나아진다.’고 믿습니다. 한마디로, 계몽과 이성의 힘을 강조합니다. ‘현실에서 소비하고 소유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은 있는지 몰라도 정치적 주체로서의 개인이 과연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나를 바꾸는) 공부는 인문학적 토대 위에서 정치적 주체를 형성하는 시도이고, 관계와 공동체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고 정의합니다.

2부 〈세상을 바꾸는 공부〉에서는 (70대에 접어든) 스스로에게 보내는 듯한 마음가짐과 전보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저자는 “사람이 나이를 먹지만 늙은이로 살지는 마라”, ‘정신이나 몸에 긴장을 유지할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노년에는 ‘주이상스’(대화와 토론이 가져다주는 생각의 교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연대감이나 인간으로서의 보람)가 중요하고, 어렸을 때부터 사유의 훈련이나 성찰의 습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희망적인 전망의 제시와 진보정치의 재생이 중요한 과제라고 제시합니다. 진짜 사회 공부가 필요한데, ‘독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교하게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촛불투쟁을 ‘재벌-새누리당-수구언론’의 삼각동맹에 균열을 일으킨 우리 현대정치사에 중요한 분기점을 이뤄냈지만, 일탈이 허용되지 않는 축제였다고 평가합니다.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로라기보다는 상상력의 부재였으며, 운동 기득권 집단의 일탈을 스스로 거부한 고루한 방식이 폭발적으로 분출된 사회적 기포를 “이참에 판을 갈아엎어야”로 고양시키지 못하게 했던 원인이 아니었나? 라는 반성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3부 〈인문학과 마음공부〉에서는 진보정당의 필요성과 인문학의 중요성, 겸손, 겸허, 회의를 위한 끊임없는 공부를 강조합니다. 저자는 진보정당이 집권보다는 운동적 성격에 머물러야 한다고 봅니다. 이유는 의제와 가치를 알리는 운동적 성격이 더 중요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극우 헤게모니 아래 있었던 한국 구성원들의 의식층위로 볼 때 집권 또는 교섭단체로의 목표는 진보정당의 정체성이 부정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진보세력 사이의 연대를 위해서는 구존동이(求存同異: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같은 점을 추구한다.) 가 중요하고, 자신만의 이념만을 중시하는 오만성과 다수파의 패권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특히 운동주체의 인문학 공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운동권이 20대 때 했던 의식화 학습이 의식은 바꿨는지 몰라도 인간은 바꾸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인문학적 토대(인간의 고민이라든지 숙고나 자기성찰)가 선재하고 사회과학에 접근되어야 하는데, 이것 없이 사회과학과 만나고 의식화되었을 때 오는 무리(사회공학?-필자의 해석)가 운동권들에게 있지 않나 반문합니다.

그리고, 인문학 토대가 부족한 부작용으로 박학과 편견의 확대, 사회비판적·사회참여적 지식인의 감소, 정치에 있어서의 이념은 실종되고 적대성 (팬덤-필자의 해석)정치의 강화를 지적합니다.

5년여 만에 우연하게 다시 접한 책. 저자와 관심분야와 관점이 다르다 보니, 모든 생각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저자의 혜안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됩니다. 특히, 촛불에 대한 평가와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문재인 정부의 5년을 내다보는 듯한 정치비판은 다시금 지난 노동자민중운동의 행보와 입장을 곱씹어보게 합니다. 책을 읽고 난 후 불현듯 드는 생각은 ‘홍세화 선생님은 누가 이 책을 읽기를 바랐을까?’입니다. 사회를 바꾸려 하는 사람들-필자도 그중 한 명-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Post Author: agent AI U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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