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역 인권제도화의 현황과 문제점을 통해 고민하는 인권보장체계의 방향

채민(회원,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상임활동가)
2007년 경남 진주의 조례제정운동을 시작으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인권제도화(또는 인권의 지역화)가 추진되었다. 결정적으로 2012년 4월 국가인권위가 ‘인권기본조례 표준안’을 제시하고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에 조례 제정을 권고하며 인권제도화의 전국적 확산의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이 동시적으로 추진되지 않았지만 각 지역별로 인권제도화는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또한 인권제도화와 다른 범주지만 지역인권보장체계를 함께 구성해야 하는 성희롱·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등 4대 여성문제 지원 기관과 단체를 비롯해 장애인·어린이·청소년·노인·이주민·비정규직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 지원 기관들의 확대도 이뤄졌다.
지역별 인권운동은 인권제도화의 추진 과정의 상이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인권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 추진 속도만큼 지역사회 안에서 내실 있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각 지역의 인권운동은 많은 비판적인 질문을 받고 있다.
1현재 인권의 제도 또는 관련분야의 제도들이 실효성 있게 만들어지거나 운영되지 못하고 있음이 전반적인 의견으로 보인다. 이러한 와중에 인권시민사회운동 역시 미진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제도는 끊임없이 혐오·차별세력의 공세 속에 있는 어려운 상황과 마주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전북지역 역시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지난 기고를 통해 살펴봤던 것처럼 문재인 정부 인권정책이 사실상 간판만 남은 상태에서 혐오·차별 공세를 방관하고 있는 지자체가 앞장서거나 나서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도록 하는 것이 지역사회운동의 역할일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른바 중앙정부만이 아닌 지방자치단체의 인권제도화의 단면을 통해 지역사회 인권보장체계가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전라북도 내 지역인권보장체계를 둘러싼 환경들
최근 몇 년간 전라북도 인권제도화 역시 양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전라북도 도민 인권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이하 전라북도인권조례)」가 올해 기준으로 제정 10주년이 되었다.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전주, 익산, 군산에도 인권조례가 제정되면서 인권제도화가 도입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전북지역의 인권제도화가 어느덧 10년의 역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자체 내부에 전담부서가 설치되어 인권 정책과 사무가 시행되는 등 내용적으로도 확대되었다.
<2019년 기준 전라북도 각 시·군 인권조례 내용>
2그러나 확대된 인권제도화의 내실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운 지점도 있다. 단적으로 2019년 4월에 있었던 익산 시장의 ‘다문화 구성원 차별 발언’에서 볼 수 있다. 당시 익산 지역 다문화 주민행사에서 익산 시장이 공개적으로 다문화 주민에 대한 차별·혐오 발언을 한 것이 6월경에 알려지며 지역시민사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당사자들은 차별 시정 요구를 넘어 시장 퇴진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규탄에 나섰다. 또한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이주민들과 다문화 단체들이 익산시청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권과 정부를 향해서도 다문화 차별을 시정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6년에 익산시 인권조례가 제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점은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인권제도화에 대한 현실을 드러낸 계기이기도 했다.
아울러 인권제도화의 양적 확대 또한 중지된 상황이다. 전주, 군산, 익산을 제외한 전북의 기초지자체는 조례조차 없으며, 행정의 인식과 필요성의 체감 수준도 낮은 것으로 파악된다. 일례로 전북평화와인권연대가 2018년 6월에 진행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한 전북 지역 기초지자체장 후보들에게 인권조례 제정 등을 비롯한 인권제도화에 대한 정책 질의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44명의 후보들 중 18명의 후보만이 질의에 답변하여 인권제도화에 대한 관심이 낮은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권 관련 조례에 대한 혐오·차별세력의 공격 역시 인권제도화의 확대를 멈추게 된 계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장수군의 인권조례 제정 추진이 보수기독교 세력의 반발로 중단된 사례, 2017년 보수기독교계의 반발로 인해 후퇴된 전라북도 인권조례 시행규칙 등이 대표 사례다.

이렇듯 내실 있는 확대가 되지 못한 상황에서 최근에는 광역지자체인 전라북도의 인권위원회도 인권 친화적이지 않은 인사들이 지속적으로 인권위원으로 위촉되며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되고 있다.
전라북도 인권위원 위촉 문제를 통해 본 인권보장체계의 한계
2019년, 전북지역 인권시민사회는 전북기독교총연합회의 A임원이 2017년에 위촉된 제2기 전라북도 인권위원임을 파악하며 강력한 문제제기를 진행했다. A위원이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혐오선동의 주체인 전북기총의 임원인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A위원 스스로도 적극적인 혐오선동 주체로서 역할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A위원은 2015년 6월의 한 행사에서 “국민 건강과 정서를 깨트리고 시민들을 동성애에 노출시키는 퀴어축제에 절대 반대한다”는 성명을 낭독하고, 2018년엔 대외적으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 대체복무제가 들어가 있어 문제다, 성소수자 혐오는 한국에서 합의되지 않은 부분이다”는 발언을 했던 전력도 있었다. 전북지역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제2기 전라북도 인권위원의 임기가 끝나가던 작년 5월경에 뒤늦게나마 상황을 파악한 뒤에 해당위원에 대한 규탄 및 재위촉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등을 진행했다. 그 이후 A위원이 연임을 거부하며 재위촉 되지는 않았다.
이후, 2019년 7월에 구성된 제3기 전라북도인권위원회는 시민사회의 참여 비중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12명의 위촉직 위원 중 전라북도장애인체육회 관계자 B가 위원으로 위촉된 점이다. 광역지자체의 장이 해당 기관의 장을 맡고 있고, 지자체의 예산과 지원을 받는 기관의 임원을 인권위원으로 위촉한 것은 인권위원과 위원회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위촉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재차 인권시민사회의 문제제기가 있었으나 전북도는 문제제기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올해 들어 B위원이 과거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전북지회(이하 지장협 전북지회)의 임원으로 재임 중이던 기간에 발생했던 문제가 드러났다. 지장협 전북지회는 보건복지부에서 위탁받은 ‘2013 장애인편의시설 전수조사’사업(이하 전수조사 사업)을 진행하던 과정에서 16명의 허위조사원을 동원해 조사수당 5,500여만원을 부당 수령했다. 이 부당 수령 문제가 보건복지부 감사를 통해 확인되었고 전액 환수 조치가 진행되었다. 부당 수령 문제가 발생했던 당시 B위원은 지장협 전북지회장을 맡고 있었기에 보조금 부당 수령과 무관할 수 없었다. 더구나 당시 B위원의 측근 중 한명이 보조금 5,500여만원중 일부 금액인 1,400만원을 B에게 전달했으나, B위원이 이를 부정하여 측근과 직원들이 1,400만원을 변상했다고 호소하는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B위원이 장애 분야의 몫으로 전라북도 인권위원으로 위촉된 것은 용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지역 진보적 장애인단체를 비롯한 인권시민사회가 B위원의 사퇴 촉구와 전북도의 무책임을 강력하게 규탄했다. 결국 해당 B위원이 사퇴의사를 밝혔고, 전라북도는 사퇴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문제제기를 함께한 인권시민사회는 제3기 전라북도 인권위원회와 의견제기와 상황을 공유하는 간담회를 진행하려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전라북도 인권담당관실의 부적절한 태도와 인권위원회의 소극적인 자세로 인해 추진되지 못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2년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인권조례에 따라 인권위원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과 시민사회의 참여가 가능하여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권고에 따르면, 지자체의 인권위원회 구성에 있어 인권 기본조례의 목적을 충실히 달성할 수 있도록 시민의 직접 참여를 보장하기 위하여 위원 중 인권 관련 시민사회단체가 추천하는 사람을 자격으로 할 것을 인권조례 표준안으로 명시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전라북도는 이러한 권고와는 무관하게 비공개적인 방식으로 인권위원을 모집하고 위촉했다. 전라북도의 비개방적이고 투명하지 못한 행정절차와 방식이 이와 같은 논란과 사태를 불러왔다는 비판과 평가가 있었다. 전라북도는 제4기 인권위원 위촉부터 공개모집 등의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했지만, 제2기와 제3기의 무자격 인권위원 위촉 과정의 문제점 공개 및 이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지역인권보장체계, 어떻게 가야할까.
많은 문제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인권시민사회들이 지속적으로 지역사회의 인권보장체계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역사회에서 인권조례 조례 제정 등 인권제도화를 비롯한 인권보장체계는 점차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에서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함께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권력관계로 인한 권리를 침해당하는 존재, 차별과 혐오의 위협을 받는 존재는 먼 곳이 아닌 지역사회의 이웃으로 살아가는 주민들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인권침해와 문제를 겪는 당사자들이, 가능한 가까운 지역사회에서 인권보장체계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적으로 주민의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지자체의 행정에서도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전북평화와인권연대가 피해자 상담을 통해 2018년 인권위 진정을 진행하고, 이후 피해자 측의 소송 제기를 통해 올해 4월 항소심 선고에서도 벌금형이 확정된 ‘고창군수 부인 갑질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피해자 측은 상담 과정에서 가해자의 지역사회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 등으로 인해 지역사회의 관계망에서 고립되어 지지와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태임을 호소했다. 이 사건은 인구 규모가 작은 지역사회일수록 인권상담과 지원이 중요하다는 것을 재확인한 사례다.
지역사회는 인구유출 규모는 큰 반면 유입이 적으며 오랜 역사와 경험에 기초한 전통, 문화, 관습이 강하게 작동한다. 이는 새로운 인권 영역의 확장과 인권 보호체계를 발전시키려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공동체의 이름으로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또한 지역공동체는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공동체적 특성을 가지는데 이런 특성으로 지역공동체는 구성원들의 자유와 권리보다는 공공의 질서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게 되어 인권의 가치와 갈등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에 기초한 지역공동체의 관행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인권의 개념과 충돌하게 되어 인권침해의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3이렇듯 지역공동체 내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성격들을 극복하고 인권보장이 되는 지역사회를 위해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인권조례 제정 및 운영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인권제도화의 내실 있는 확대와 함께 인권보장체계의 구축을 위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 또한 필요하다.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서 지역사회의 다양한 인권시민사회 주체들이 참여하는 ‘인권보장 및 증진을 위한 지역협의체’ 구축을 위한 국가인권기구인 인권위원회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4지역인권사무소가 지역의 인권시민사회단체와 상호소통을 통한 참여를 만들어내고, 인권보장을 위한 협력체계가 가능하도록 지방자치단체 인권기구 및 인권부서, 관련 기관, 법률가를 비롯한 관련 전문가 집단 등의 활용 가능한 자원들을 확보하고 내실 있는 연결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지역사회 인권보장체계의 효과가 발생하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지역인권사무소가 자기 과제로 가져가야 하며 그럴 책임도 있다. 각 지역에서 인권제도화가 양적으로 확대되는 것을 촉진하는 것 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인권보장체계의 한 축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역할이 중요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역의 인권시민사회 역시 주체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연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 이 기고문은 울산인권운동연대 창립 20주년 토론회<지역사회 인권보장체계 구축 현황과 과제>의 발제문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