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 – 전북버스지부 호남고속지회 최상수 회원
인터뷰: 김연탁 사무처장
1.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1964년 전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초ㆍ중학교를 서울에서 다니고, 전주로 내려와 고등학교(전 주고)를 다녔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후 1987년 삼양사를 입사하였고, 민주노조운동을 하다가 1996년 해고당 했습니다. 해고투쟁과정에서 폭력으로 4개월동안 구속되었습니다. 이후, 4∼5년을 방황하다가 가족들을 보 며 마음을 잡고 직장생활과 자영업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폭음이 원인이 되어 2009년 12월 간경화말기 판정을 받고 전북대병원에서 두달여동안 투병생활을 하였습니다. 2010년 1월 퇴원 후 우연히 시내버스기사 로 일하고 있는 옛 삼양사 동료를 만나고 난 후, 그 분의 도움으로 3월 20일 호남고속에 입사하게 되었습니 다. 2010년 민주노조가 처음 결성할 당시에는 가족과의 약속과 사정을 아는 옛 삼양사 동료의 만류로 노조 는 가입하지 않고 후원을 하다가 2011년 7월 민주노조를 스스로 가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민주노 조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가족관계는 1990년 결혼하여 두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2. 버스지부에 가입하기 전에 노동조합을 경험했다고 들었습니다.
1987년 7월 27일 삼양사를 입사하여 관리직으로 일하다가 현장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거기에서 현장활동 가 한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을 통해서 노동운동을 인식하게 되고 접하게 됩니다. 1988년 대의원활 동을 시작으로, 현장조직「민주노조를 세우자(약칭, 민노세)」를 결성하는데 참여하여 활동하였습니다. ‘민 노세’는 결성 당시 15∼16명이었지만, 곧 100여명으로 확대할 정도로 현장은 ‘민주화’에 대한 열의가 높았습 니다. 1995년 말, ‘민노세’는 노동조합선거에 출마하게 되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당선됩니다.
사측은 이미 이전부터 구조조정과 업종전환계획을 세우고, 걸림돌이 되는 ‘민노세’를 와해시키려는 음모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측은 선거 직전에 본인에게 (일반적으로 연수기간이 14일이었음에도) 일본연수 3개월을 제안하였습니다. 임금과는 별도로 활동비까지 지급하는 파격적인 대우였습니다. 하지만, ‘민노세’
회의를 통해 회사측의 제안을 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민주집행부가 세워지고 난 후, 사측은 사전작업을 통해 대의원회를 장악하여 집행부의 팔다리를 묶습니다. 그리고, ‘민노세’ 회원들을 인사를 통해 현장에서 격리시킵니다. 이로 인해 민노세 회원들은 명예퇴직을 통해 회사를 떠나거나, 회사에 복종하게 됩니다.
1996년 9월, 회사측은 일본연수를 핑계로 인사명령불복종의 명목으로 본인을 해고하였습니다. 그래서, 1996년 9월부터 1997년 4월까지 회사 앞에 천막을 치고 복직투쟁을 전개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우호적이었 던 현장분위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무관심으로 바뀌고,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모두 패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측 인사부장과의 면담이 성사되었으나, 면담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으로 인해 구속되고, 삼양 사에서의 민주노조 활동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3. 인생을 관통하는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진실, 의리, 인권입니다.
4. 인생에서 변곡점이 되었던 시기를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세 시기가 있습니다. 첫째는 삼양사에 입사해서 노동운동을 처음 접했을 때, 두 번째는 간경화에서 기적적으 로 회생했을 때, 세 번째는 버스 민주노조에 가입했을 때입니다.
5. 아픈 기억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버스노동자로서 민주노조에 가입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모엇입니까?
‘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남고속에 입사해서 얼마 되지 않아서 민주노조가 결성하게 되고, 12월 8일 파업 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족과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민주노조의 파업으로 한국노 총 조합원들은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고 수입이 증가하였습니다. 그래서, 민주노조 동료들과 함께 나누려고 후원했습니다. 그리고, 휴일에는 집회와 행진도 참여하고,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차파업이 끝난 후에 현장 민주노조가 조직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같이 하고 싶어서 스스로 찾아가서 가입하였습니 다.
6. 버스 민주노조 10년차를 경과하면서 기억나는 투쟁 있습니까?
버스 2차파업과 진기승열사투쟁, 그리고 세월호 도보순례일정 참여가 기억납니다.
2차 파업은 ‘버스노동자가 이렇게 조직적일 수 있구나‘라는 점에서 기억이 납니다. 매일 사업장을 바꿔가며 집결투쟁을 전개했습니다. 그런데, 그 지침이 번개팅처럼 당일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버스노동자들 이 그 지침을 충실하게 따랐습니다.
진기승열사투쟁은 연대의 힘을 확인하는 투쟁이었습니다. 민주노총 지역본부, 공공운수노조, 지역시민사회 단체들이 함께 했기 때문에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도보순례는 세월호유족이 십자가를 메고 단원고를 출발하여 진도 팽목항을 거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가 열리는 대전월드컵경기장까지 900km를 38일간 도보순례를 진행했는데, 전주일정을 함께 결합하였습니다. 버스 문제를 넘어 사회적투쟁에 함께 참여했다는 점에서 기억이 납니다.
7. 지금 버스에서 가장 큰 쟁점은 무엇입니까?
제도적으로는 ‘준공영제 실시에 따른 후속조치’입니다. 전주시는 청주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기로 했는데, 코 로나로 인해 8월27일 예정되었던 설명회가 연기되었습니다. 준공영제 실시에 따른 복지, 근로조건을 포함한 요구안 준비, 그리고, 준공영제가 제도적으로 공공성을 강화하는 차원으로 안착하고, 준공영제 실시에 따르 는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와 대책이 필요합니다. 특히, 준공영제로 인해 버스노동자는 자연감소되고, 이 를 마을버스가 대체합니다. 마을버스와 해당기사는 시설관리공단에 소속됩니다. 마을버스 조직화 등 대책 이 중요합니다.
8. 스트레스는 어떻께 해소합니까?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가 가장 잡념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간의 부담을 적게 하기 위해서 근육을 기르는 것이 좋다.‘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시작했는데,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못하고 있습니다.
9. 전북버스지부 또는 현장활동을 하면서 가장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무엇입니까?
민주노조가 만들어진 이후 많은 것이 변화했습니다. 임금 및 근로조건뿐 아니라, 사측과 관리자의 폭언과 각 종 차별, 비인간적인 대우도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투쟁’과 많은 동지들의 ‘연대’의 결과라는
것을 버스노동자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노동자들은 일 상적인 노력과 투쟁이 필요합니다. 조합원들에 대한 의식 교육, 현안에 대한 현장대처, 투쟁과 연대에 대한 결합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10. 아래로부터 전북노동연대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버스노동자들 주위에서 함께 고민하고, 투쟁하고, 열심히 연대하는 동지들이 노동연대 활동가들이었습니 다. 특히, 진기승열사 투쟁때 많이 느꼈습니다.
11. 노동연대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버스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연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2. 민주노총(또는 전북지역노동운동)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개선해야 할 점은.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13. 어떤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경제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인간답고 평등하고, 공정하게 사는 세상, 14.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지금 버스노동자들을 보며 실망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동지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 도록 거듭나기 위해 버스 동지들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