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왼손에는 사기, 오른 손에는 삼국지를 들어라
김연탁(사무처장)
들어가며
중국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절대 못해 보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땅이 너무 넓어서 모든 땅을 다 밟을 수 없다, 둘째, 음식 종류가 너무 많아서 모든 음식을 다 먹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책이 너무 많아서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고, 한식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앞에 두 가지는 부럽지 않으나, 책이 많다는 것은 좀 부럽다. 한국은 조선 이전의 책들이 거의 대부분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에서도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회주의 이후 문화혁명 때에도 많은 사료들이 소각되었으나, 전반적으로 한반도보다는 사상과 출판의 자유와 다양성이 보장되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사기’와 ‘삼국지’의 소개
‘사기’와‘삼국지’는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서이다. 하지만 사기는 정사임에 비해, 삼국지는 역사소설이다.
사기는 사마천이 기원전 105년 무렵 집필을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하여 기원전 90년에 완성하였다. 사마천은 집필 도중에 일련의 사건에 휘말려 한무제의 뜻을 거스른 죄로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궁형(거세형)의 치욕을 자처하면서 사기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사기는 총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기(왕실), 세가(제후국), 열전(인물들의 전기), 서(행정문물, 천문역법, 사회경제), 표(연대별 역사적 사건)이다. 사기는 대상 시기가 3천 년에 이르는 충국 최초의 기전체 통사의 성격이면서, 황실 등 지배층과 권력자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인물과 사건까지도 함께 기술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삼국지는 서진시대에 진수에 의해 지어진 ‘삼국지’를 원말명초 시기에 활동했던 나관중이 고전역사소설로 재구성한 책이다. 대상 시기가 서기 184년 홍건적의 난에서부터 280년 진이 삼국을 통일한 시기까지 약 100여 년이고, 조조, 유비, 손권과 세 인물을 중심으로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영웅담을 담은 책이다.
왜 “왼손에는 사기를, 오른 손에는 삼국지를 들어라” 인가?
동양의 예법은 왼쪽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 예로 합동제사를 차릴 때, 웃조상들의 신주를 왼쪽부터 배열한다. 그리고 제사상도 홍동백서, 어동육서 등 선호하는 것을 왼쪽에 배열한다. 따라서 장구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인간사회의 도리를 서술하는 사기를 패업을 이루기 위해 권모술수가 난무한 삼국지보다 높이 평하고 있다.
본 책은 사기와 삼국지를 압축하여, 사기의 경우 의리(義理), 탐욕(貪慾)·관용(寬容)·인욕(忍辱)·심세(心勢)·처세(處世)·응변(應變)·겸양(謙讓)등 8개의 장으로, 삼국지는 계획(計畫)·차력(借力)·기승(奇勝)·용인(用人)·적응(適應)·원견(遠見)·허실(虛實)·진퇴(進退)·신의(信義) 등 9개의 장으로 나누어서 기술했다. 사기에서는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관계에서의 원칙과 태도에 관한 내용을, 삼국지에서는 고난과 고통에 직면했을 때, 이에 대처하고 극복하기 위한 방안과 방법을 중심으로 기술하였다. 필자는 이 책의 의의를 옮긴이로 참여한 홍순도의 서문에서 인용하고자 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면 결코 짧지 않은 평생을 편안하고 의미있게 보낼 수 있다. 예컨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원리를 알면, 인생에 필요한 지혜를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이 이 덕목을 그다지 적극적으로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것을 가르쳐야 할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학교와 가정부터가 무엇보다 그렇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세상이다 보니 이런 덕목에는 눈을 돌리려 하지 않는다. 학생은 공부를 잘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가장은 경제적으로 유능하면 훌륭한 남편, 아버지, 자식으로 평가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사회가 갈수록 천박해질 수밖에 없다.
책의 가벼운 소개
책에는 많은 사례들 속에서 주옥 같은 교훈들이 들어 있다. 이 중 내 마음에 와 닿았던 내용을 몇 개 소개하고자 한다.
겸양편에 기술되어 있는 사례이다. 남월국의 왕인 조타는 광동성 지방에서 자치를 행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중앙 조정의 명령에 따를 이유가 없었다. 이에 당시 한나라 실권자인 여후는 이를 철저하게 응징했다. 여후가 세상을 떠난 다음 문제가 즉위했다. 한 문제는 남월에 파견돼 있는 한나라 병사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조타의 직계조상들의 묘가 있는 진정을 영지로 하사했고, 제사까지 지내주고 그 친척까지 찾아 극진한 예우를 아끼지 않고 조정의 고관으로 임명했다. 조타는 이런 사실을 알고는 크게 감동했다. 문제를 향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의 마음도 가지게 되었다. 그는 급기야 문제에게 편지를 올려 앞으로는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이 내용은 《남월 열전 제 53》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한 문제는 주변 소수 민족들을 정복하는 데 비교적 무력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세상일이라는 것은 정벌을 통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이기는 상황에서도 반드시 마음으로 복종하도록 해야 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는 제갈량이 남만의 왕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고 진정한 복종을 받았다는 ‘칠종칠금(七縱七擒)’의 고사와도 비슷한 내용이다.
계획편에 기술되어 있는 사례이다. 조조는 원소와 관도에서 천하의 패업을 건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객관적인 전력은 조조가 열세였고, 조조 휘하의 많은 제장들은 전쟁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조조는 싸우고 싶었으나, 부하들의 만류에 곤란한 상황이었다. 이때 곽가가 나서서 ‘이미 열 가지를 이기고 있으니 우리가 이긴다.’고 조조가 일전을 결심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다.
곽가가 말한 이른바 십승(十勝)은 정치 지도자의 우열을 나타내는 열 가지 표준에서 이미 원소에게 이기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이 열 가지 중 첫째는 사람을 대하는 예절입니다. 원소는 형식을 따져 번잡한 예절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군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고 전혀 꾸밈이 없으니 도(道)에서 이미 이기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는 정치적인 호소력입니다. 원소는 땅을 마구 떼어가서는 스스로 영웅을 자칭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에 반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군은 천자를 잘 받들고 있습니다. 말과 명분에서 모두 앞서니 의(義)에서도 이기고 있습니다.
셋째는 관리방법입니다. 원소는 법령 등을 아주 가볍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공권력이 빛을 발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주군은 기율을 엄중하게 생각하고 제도를 항상 입에 올립니다. 이것이 바로 치(治)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넷째는 인재를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원소는 외면적으로는 관대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의심이 많고 질투가 심합니다. 아랫사람들을 잘 믿지 않고 그저 자신의 친척이나 자식들만 요직에 등용합니다. 그러나 주군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가가기 쉽고 뛰어난 예지도 돋보입니다. 사람을 쓸 때는 재주만 물어보지 출신 성분이나 배경은 묻지 않습니다. 등용한 후에도 한없이 신뢰할 뿐 의심하지 않습니다. 도량, 즉 도(度)에서 이미 이기고 있습니다.
다섯째 모략과 결단에서도 주군과 원소는 차이가 납니다. 원소는 심모원려해 무슨 일을 당하면 결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러다 기회를 잃습니다. 그러나 주군은 행동이 과감합니다.
여섯째는 지도자로서의 매력입니다. 원소는 고담준론을 좋아합니다. 겸손하고 양보를 잘하면서도, 그럴듯한 외형을 갖춘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무 내용 없이 떠들거나 거들먹거리는 사람만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군은 허명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사람을 대합니다. 충성스럽고 정직하면서도 식견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휘하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덕(德)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일곱째는 도덕과 명망입니다. 원소는 다른 사람들이 배고프거나 추위에 떨면 참지를 못합니다. 말과 행동에서 그대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백성들의 고통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면 주군은 눈앞의 작은 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하의 대사는 훤히 내다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주도면밀하게 살핍니다. 은혜와 덕망이 널리 퍼져 백성들의 명망을 얻고 있습니다. 인(仁)에서도 이긴다는 말입니다.
여덟째 사람을 보는 능력입니다. 원소 좌우의 관리들은 서로 드러내놓고 싸웁니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죠. 사소한 일도 서로 고자질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습니다. 반면 주군은 사람을 쓰는 데 일정한 원칙이 있습니다. 교묘한 변설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명(明)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아홉째는 법치제도입니다. 원소는 시비를 제대로 가리지 못합니다. 잣대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군은 시비가 분명합니다. 아랫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하면 예의로 대합니다. 그러나 일을 잘못하면 법령으로 제재를 가합니다. 바로 문(文)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가장 중요한 군사적 능력입니다. 원소의 용병은 허장성세에 가깝고 실제로 그것을 좋아합니다. 이는 병법에 맞지 않습니다. 반면 주군은 적은 병력으로도 적의 대군과 맞설 수 있으며 용병이 신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武)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이는 지도자의 자질과 능력의 중요성과 함께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중요성을 의미하고 있다. 지피지기는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을 뜻한다. 무엇보다도 장단점을 객관적인 관점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신의편에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기술되어 있다. 조조가 촉을 공격할 때의 일이다. 조조는 동천을 점령한 다음 서천까지 위기로 몰아넣고 있었다. 이에 제갈량은 형주의 세 개 군을 미끼로 손권에게 조조 근거지의 심장부인 합비를 기습 공격해줄 것을 요청한다. 이에 손권은 합비를 공격하게 된다. 합비는 장료가 주장, 이전과 악진이 부장으로 성을 지키고 있었다. 장료는 이전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공사를 구분해야 한다는 장료의 말에 대해 사이가 안좋은 이전이 적극 찬동하면서, 결국 손권 부대에 대승을 거두게 된다.
책에는 이 사례의 교훈을 잘 기술해놓았다. 일을 할 때에는 지나치게 자신의 다름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전체적인 국면에서 보고 구동존이의 정신으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러면 무엇이 구동존이인가? 간단하다. 개별적인 다름이 전체적인 방향에서 일치하는 것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위대한 교육 사상가 공자는 일찍이 ‘군자는 화합하나 같지 않고, 소인은 같으나 화합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한 바 있다. 구동존이의 철학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듯하다. 바로 이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뛰어난 사람은 화합을 추구하면서 다름을 포용해 다채로운 화합을 이끌어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오로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일치단결만 추구하는 탓에 모순과 충돌을 유발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맺으며
사기 열전편의 첫 번째 장이 ‘백이와 숙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장의 마지막 문장에 사마천은 이렇게 기술했다. “노자는 말했다. 하늘의 도는 사사로움이 없어 늘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 그런데 백이와 숙제는 어질고 깨끗해도 굶어 죽었다. 반면, 도척은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살을 육포로 먹었지만, 천수를 누렸다. 나는 매우 당혹스럽다. 이것이 하늘의 도라면 이 도는 옳은가? 그른가?” 사마천 사후, 2천 년이 넘었지만, 이 물음은 아직도 숙제로 남아 있다. 마르크스는 이 답을 말과 글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로 여겼다. 우리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