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나는 이육사다』를 읽고

[책소개] 『나는 이육사다』를 읽고

김연탁(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회원)

고은주, 『나는 이육사다』

들어가며

이육사 시인의 생애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청포도’, ‘광야’를 배울 때에도 단순히 저항시인이라는 사실만이 간략하게 소개되었을 뿐이다. 지식을 뽐내기 좋아하던 국어 선생님들도 윤동주 시인과 비교했을 때, 이육사 시인(이하, ‘시인’)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그것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터라, 확인하기 쉽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양면적이었다. 시인 스스로 활동을 숨기기도 했고, 일제식민지와 해방정국, 그리고 오랜 독재시대를 겪으며 진실이 감추어져 있기도 했다.

이 책의 전반적 내용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잘 정리되어있다. 그 분들의 요약 이상으로 필자가 잘 쓸 자신은 없다. 다만, 시인의 생에서 우리가 한 번쯤 생각했으면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시인의 생애는 왜 숨겨져 있었을까?

독자들은 헬렌 켈러의 일화를 교과서에서 보았을 것이다. 생후 19개월만에 병을 앓고 시력과 청력을 소실하고 금쪽이로 지내던 헬렌 켈러가 7세 때 맨스필트 설리반 선생을 만나 장애를 극복하여 케임브리지 레드클리프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내용이다. 헬렌 켈러는 그 후 세계적인 장애인 운동가로 활동한다. 하지만, 헬렌 켈러의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성인의 삶이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시인 역시 다르지 않다. 시인이 마르크스-레닌주의자가 되었던 때는 1924년 일본 유학 시절 박열이 이끄는 흑우회에 가입하면서부터로 추정된다.1 그 후 1927년 10월 18일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투척 사건에 연루되어 첫 번째 옥살이를 한다. 이때의 수인번호가 264였다. 시인은 짧은 생애에 17회의 투옥(체포, 구속 포함)을 당하게 된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투척 사건에는 시인뿐 아니라 형 원기와 동생 원일, 원조도 함께 연루되었다. 의열단의 가입이 폭탄 투척사건 이전인지 이후인지는 알 수 없다. 당시 의열단은 개별적인 폭력투쟁의 한계를 느끼면서 조직적인 무장독립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이하, ‘조선군관학교’)를 설립한다. 이후 시인은 윤세주의 권유에 따라 1932년 조선군관학교에 1기생으로 입학하여 1933년 4월 졸업한다. 하지만, 일제의 고문에 따른 안병철2의 자백으로 인해 시인은 투옥과 동시에 요시찰 인물로 분류되어 일생을 감시받고 사건마다 예비검속으로 탄압을 당하게 된다. 1944년 1월 16일 시인 사망 후 1946년에 육사시집 (발문:이원조, 서문: 신석초, 김광균, 오장환, 이용악)이 편찬된다. 하지만, 해방정국에서 발문인 이원조를 포함하여 서문을 쓴 오장환, 이용악이 월북하면서 육사시집은 판매중지된다. 동생 이원일도 월북하게 된다. 이후, 육사시집은 1956년에 재발간(발문-이동영, 서문-유치환)하게 된다. 이동영 교수는 시인의 장조카로 이후 육사에 대한 연구와 선양을 주도하게 된다. 해방이후 이념갈등 속에서 시인의 신념은 상당 기간동안 왜곡되거나 숨겨질 수 밖에 없었다.

시인은 민족주의자인가? 무정부주의자인가? 공산주의자인가?

시인은 흔히 민족주의자로 여겨진다. 우선, 시인은 퇴계 이황의 14세손이고, 집안 대대로 유학자 집안이었다. 일제의 탄압으로 한글로 시를 쓰지 못하는 때에는 한시를 쓸 만큼 유학에도 능통했다. 또한, 친가와 외가 모두 독립의 뜻으로 하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규모가 그를 선천적 민족주의자로 정의하게 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장조카인 이동영 교수가 육사의 시와 글이 이념에 희생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철저히 ‘민족시인’의 프레임을 공고히 했기 때문이다. 숙부들의 월북3과, 시인의 활동경력으로 연좌제의 서슬퍼런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했다. 해방정국에서 우익청년들에 의해 부인 안일량 여사가 폭행을 당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사례는 현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남주 시인은 ‘혜성단’이라는 단체을 조직하여 악질 부자들의 집을 털어 혁명기금을 마련하려 하고, 아들의 이름을 ‘토일’이라고 지을 만큼 노동해방에도 열성적이었으나, 김남주 시인의 앞에는 ‘민족시인’이라는 호칭이 붙는다.

여러 정황상 시인은 의열단 단원임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1931년 김원봉에 대해 중국 국민당의 지원받음으로써 “중국의 부르주아 계급과 야합”하고, “사상이 애매하고 비계급적”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코민테른의 일국일당주의를 위반하여 “조선인이 중국에서 조선의 혁명 사업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혁명적 정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4 당시 무정부주의자는 공산당 당원으로 드러나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일컫는 일반적인 호칭이었다.

시인이 공산당 당원이라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마르크스-레닌주의자임은 확실해 보인다. 그가 발표한 ‘자연과학과 유물변증법’(대중, 1944년 4월호)이라는 글도 그의 이념적 성향을 잘 보여준다. 또한, 「그가 1933년 중국 남경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졸업식 때 극본을 쓰고 배우로 출연한 연극 <지하실>의 내용도 그와 관련되어 있다. 마침내 공산제도가 실현되어 토지는 국유로 되어서 농민에게 공평하게 분배되고, 식당과 일터와 주거 등이 노동자에게 각각 지정되어 완전한 노동자·농민이 지배하는 사회가 실현되었으므로 크게 기뻐하여 ‘조선혁명 성공 만세’를 외치는 내용이어서 그가 독립운동의 방향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5

「하상일 동의대 교수는 “이육사 연구는 사회주의적 성격에 대해서는 사실상 함구하고 있었다. 반공주의의 감옥에 갇혀버린 우리 현대사의 억압으로 인해 이육사의 민족주의는 보수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주자학적 전통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획일화되어 버리고 만 것”이라고 지적했다.」6

마치며

1904년 5월 18일에 태어나서 1944년 1월 16일에 절명했으니, 이 세상에서 머문 시간은 4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총을 들 수 있을 때는 총을 들었고, 총을 들 수 없을 때는 시를 썼다. 일본제국주의가 한글 사용을 중단시켰을 때 절필이나 은둔이 아닌 독립운동에 나섰던 문필가는 몇 명 되지 않았다고 한다. 시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선비’, 상징하는 꽃은 ‘매화’가 적절할 것 같다. 책 29쪽에는 ‘선비는 양반이나 사대부같은 신분 개념이 아니라 인격적인 개념이다. 지와 덕을 겸비하고, 의리와 범절을 지키며, 자신에 엄격하고 남에게는 후한 박기후인(薄己厚人)의 정신과 겸손의 자세로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라고 쓰여있다. 또한 「광야」에서 ‘매화’는 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 하여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 정신의 상징이자 지조와 절개의 표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매화 향기 아득한 이른 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청포도가 익어가는 8월, 서릿발 칼날진 매운 계절, 시인의 백(넋)이 아직 머물 수 있는 안동 원촌마을을 가고 싶다.

젊은 시절의 이육사의 모습(오른쪽), 사진의 왼쪽 위는 아우 이원일, 왼쪽 아래는 친구 조규인. 출처: 이육사 문학관
  1. KBS 드라마 ‘절정’에서는 박열이 아닌 윤세주를 등장시키나, 윤세주는 당시 투옥중(1920년 6월∼1927년 2월)이었다. 윤세주와는 대구형무소 출옥 후 신간회 활동 과정에서 대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
  2. 안병철은 육사의 처남으로 같은 조선군관학교 1기생이다. 이를 계기로 이육사는 처가와의 연을 끊었으며, 한동안 처인 안일량 여사와도 소원한 관계로 지냈다. ↩︎
  3. 육사의 두 명의 동생은 남북전쟁후 남로당 계열 숙청시 함께 숙청된 것으로 보인다. ↩︎
  4. 윤태옥, “‘초인’은 시인 아닌 투사 이육사의 깃발”, 『월간중앙』, 2017.01.31, https://www.m-joongang.com ↩︎
  5. 김유, “이육사의 삶과 문학”, 『민족사랑』, 2021.07.28, https://www.minjok.or.kr/archives/122118 ↩︎
  6. 조정훈, “사회주의 혁명을 노래한 이육사”, 『통일뉴스』, 2019.01.16, https://www.tongilnews.com ↩︎

Post Author: agent AI U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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