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개악의 역사
민주노조운동의 처절한 피와 땀 투쟁의 역사
문재인정부가 노동법개악을 꺼내들었다. 노무현정부가 좌회전 깜박이를 켜고 급우회전을 했던 것과 같이 자유주의(좌파 신자유주의)철학을 공유한 문재인정부 역시 입으로는 ‘노동존중사회’, ‘공공부문비정규직 제로시대’를 떠들며 다시금 노동자와 민주노조운동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본과 수구세력과의 연대를 구걸하고 있다. 하지만, 버틸수록 더 바싹 무릎꿇고 고개를 조아렸던 노무현정부의 경험이 있었던지라, 오히려 자본과 수구세력은 개악의 강도를 더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노동유연성강화라는 명목하에 전개된 노동법개악의 역사를 더듬어보고, 자유주의세력의 노동법개악에 맞서 노동권을 지켜낼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글은 제 129주년 세계노동절 투쟁대회에 배포된 선전물을 통해 제기된 글을 보완한 글입니다.)
김대중정권: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도입
1997년 11월 21일 김영삼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11월 22일 입국단 IMF협상단은 구제금융을 댓가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12월 5일 김영삼정부가 이를 수용하여 외환시장은 안정되었으나, IMF의 요구로 실시한 금리인상 및 금융구조조정으로 기업이 줄도산하게 된다. 12월 18일 대선에서 IMF재협상과 고용안정을 공약으로 내건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2월 24일 자정에 체결된 협약은 “노동시장 유연화 및 정리해고 시 노사 간 고통분담에 대한 정부 입장 발표”를 1998년 1월 말까지 하도록 적시했다. 김대중 당선자는 12월 27일 민주노총 지도부를 따로 국회 귀빈식당으로 불러 정리해고제 도입과 노사정협의체 출범을 설득했다. 1월 13일에는 IMF 캉드쉬 총재까지 나서 노사정 합의를 압박하였다. 특히, 캉드쉬 총재는 “정리해고제 법제화가 아니라 고통분담에 관한 노사정 합의가 추가구제금융의 선결조건”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1월 14일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결정하였고, 1월 15일 노사정위원회는 출범하여 1월 20일 민주노총이 합의한 선언문이 발표하였다. 선언문의 제목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간의 공정한 고통분담에 관한 공동선언문”이었다.
위원회가 합의 채택한 의제들은 10개 의제 37개 항에 달했는데, 재벌개혁, 사회안전망, 노동기본권 등 한국 사회 개혁 과제 대부분이 합의과제에 포함됐다. 하지만 미사여구와 국회에서 처리 불가능한 항목들을 빼고 나면, 협약은 실상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해고제와 관련된 것들뿐이었다. 이후, 2월 6일 정리해고제 즉각 시행, 파견근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노사정위원회 사회협약이 체결되었다. 하지만, 2월 9일 개최된 민주노총 8차 임시대의원대회는 88대 184로 사회협약안을 거부했고, 지도부는 총사퇴했다. 이후 구성된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리해고제 법제화반대 및 재교섭을 결정하였으나, 김대중정부는 “민주노총이 부결을 한 것은 내부 문제요. 대타결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하며, 민주노총에 대한 강력한 탄압으로 이어졌다.
노무현정권: 변형근로제 확대실시, 비정규악법(파견법 개악, 기간제법), 노사관계로드맵 법제화, 복수노조·전임자임금지급금지 3년 유예 법제화
노무현후보가 선거를 앞두고 제시한 노동정책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5대차별(학벌,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노동자, 이주노동자)을 시정한다는 항목의 하나로 ‘임금과 근로조건을 동일하게 대우하겠다.’, ‘근로소득자의 소득 공제 폭을 확대하고 종업원 지주제와 성과분배제도를 정착시켜 근로자의 재산형성을 지원하겠다.’는 언급이 전부였다. 이러한 정책은 사회 각계각층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시급하게 추가한 공약이 “비정규직 노동자 남용을 막고 균등대우를 보장하기 위해 관계법을 개정하겠다.”, “학습지, 교사, 레미콘 노동자등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노무현정부는 민주노조운동세력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탄압하였고 우롱하였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비정규직법 개악반대, 손배가압류 폐지, 노동탄압분쇄를 요구하며 5명의 열사들의 시신을 앞에 두고 민주노조운동이 치열하게 투쟁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발언했다고 한다. “노동운동, 그 사람(애)들은 전략이 없어, 생명을 무기로 투쟁하는 것이 언제까지 통할거라고 생각하나?”
김대중정부는 2000년 5월부터 한국노총과 함께 노사정위원회 내에 ‘근로시간단축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노사정위원회 내에서 합의에 이르지 않았으나, 정부는 독단적으로 입법안을 추진했다. 2002년 10월 안건으로 상정되었으나, 대선을 앞둔 정권 말기라는 상황과 민주노총의 강력한 반대투쟁에 의해 정부입법안은 무산되었다. 하지만, 노무현정부 출범 후 논의를 시작하여 민주노총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3년 8월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민주노총이 강력하게 반대한 이유는 근로기준법 개악안이기 때문이었다. 법정노동시간이 4시간 줄어드는 대신, 유급월차휴가가 폐지되고, 연차 가산기준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되고, 상한도 25일로 축소되었으며 연차사용촉진제도가 신설되었다. 여성유급생리휴가도 무급으로 바뀌었으며, 연장·야간근로에 대한 보상휴가제가 도입되었고, 1996년 재도입된 변형근로제 (탄력적근로시간제)가 현행 기준으로 확대되었다. 주40시간 노동제는 노동시간단축이라는 제 역할을 못하게 되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장시간노동에 신음하게 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1987년 폐기되었으나, 1997년 3월 2주단위, (합의시) 1개월 단위로 부활되었다. 하지만, 노무현정권은 주5일제 근무에 따른 사용자 보상차원에서 9월 15일 개악안을 통과시켰다. 기간은 2주단위 3개월 단위로 확대되었고, 직종은 금융, 보험 등 모든 서비스업종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재량근로제를 신설하여 PD, 취재기자, 제조업까지 확대실시하였다.
노무현정부는 2004년 9월, 비정규직 관련 노동법 개악계획을 발표했고, 2006년 11월에 약간 수정된 채 통과되었다. 그 핵심은 ‘파견허용업종은 포지티브 방식을 유지하되 확대한다. 파견근로에서 직접고용의무를 부과하는 기간을 3년에서 2년으로 조정한다. 기간제는 2년 초과시 무기계약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 보호법’은 보호라는 미명으로 파견제, 기간제 고용형태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하기 위한 구름판의 역할을 했다.
노무현정부는 2003년 8월 주5일제를 미명으로 한 근로기준법 개악을 통과시킨 후 곧바로 9월 노사관계로드맵을 발표했다. 노사관계로드맵은 전면적인 노동권 제약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2004년 5월 청와대에서 노무현대통령과 양대노총 위원장, 경총과 대한상의 회장이 만나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2005년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는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석을 쟁점으로 찬반으로 나뉘어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한다. 결국, 민주노총은 비정규직법안과 노사관계로드맵에 관한 논의를 위해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가한다. 하지만, 2006년 9월 11일 한국노총, 경총, 노동부가 기습적 야합을 감행했다. 기업단위 복수노조 도입, 전임자임금지급 금지 3년 유예한다는 조건으로 노사관계로드맵의 상당부문을 합의한 것이다. 결국 법안은 2006년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노사관계로드맵은 이명박·박근혜정권에 있어서 노동법개악과 노동탄압의 지침서가 되었다.
이명박정권: 복수노조창구단일화,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제도, 법령과 행정지침(사내하도급가이드라인, 임금 및 근로조건 차별개선 가이드라인), 민주노조 파괴를 통한 노동탄압
이명박정권은 2010년 1월 1일 복수노조창구단일화 및 노동조합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등을 명문화하는 노동법개악안을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해 기습적으로 통과시켰다. 뿐만 아니라, 법률안 제출과는 별도로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대통령령, 장관령등 법령과 행정지침(사내하도급가이드라인, 임금 및 근로조건 차별개선 가이드라인, 공공부문 가이드라인)을 이용해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고 민주노조운동을 탄압했다.
이명박정권은 단협해지와 용역깡패와 경찰력을 이용한 물리적폭력으로 민주노조를 직접 파괴했다. 민주노조파괴에는 기업, 노동부, 노조파괴컨설팅집단, 용역깡패가 긴밀히 연계되었다. 특히, 제조업과 공공부문노조를 철저히 짓밟았다. 만도, 쌍용자동차, 유성기업, 한진중공업 등 수많은 제조업 사업장과 발전노조 철도노조등 수많은 공공부문사업장들이 이명박정권 하에서 치열하게 투쟁하였고, 이를 견디지 못한 사업장에서는 민주노조가 무너지기도 했다.
박근혜정권: 전교조, 민주노총 탄압, 법령(단체협약 시정명령)과 행정지침을 이용한 탄압 탄압
박근혜정권은 해임 또는 파면조합원의 조합원 자격유지를 결정한 전교조에 대하여 2013년 10월 24일 노조설립을 취소시킨다. 또한, 12월 22일에는 철도지도부 검거를 이유로 민주노총을 강제침탈한다.
2014년 전경련이 내놓은 ‘2014년 규제개혁종합건의’인 △정당한 해고사유 명확화(일반해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시 근로자 동의 의무 완화 △기간제 사용기간 규제 완화, △파견업종 및 규제완화 등의 모든 내용을 수용하여 2015년 9월 13일 노동부, 경총, 한국노총이 노사정이 합의한다. 이후 한국노총은 합의를 파기했지만, 이는 그대로 정책에 반영된다. 특히, 박근혜정부는 초법적 행정지침들을 남발하였다. 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 저성과자 퇴출제(일반해고지침),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요건완화(취업규칙지침)제였다.
또한, 2015년부터 그동안 실질적으로 사문화되었던 단체협약시정명령제도를 꺼내들었다. 일단, 단체협약시정지도지침을 강행하고, 이에 불복한 노조에 대해 강제적 명령을 통해 단체협약까지 개입하려 했다. 또한, 임기말까지 서비스발전기본법을 통과시키려 하는 등 자본의 이해에 충실한 정권이었다.
문재인정권: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를 다 합한 노동개악 끝판왕
5월 9일 대선에서 승리한 문재인정부는 촛불혁명의 승리라고 공언하며, 촛불혁명의 계승자임을 자임했다. 공약에도 ‘노동존중사회’를 명기하였고, 5월 11일 취임식 후 5월 12일, 제일 먼저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방문하여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였다. 하지만, 모든 공언은 일자리정책으로 귀결되었다. 한마디로. “기-승-전-일자리”이다. 노동존중도 비정규직제로도 결국은 뒷전이고, 공공부문 일자리 80만개가 본질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선언에 따라 각 부처는 합동으로 공공부문비정규직 정규직화 계획을 제출하였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용역위탁사무에 대해 지자체에 결정권을 위임하여 사실상 손을 털고 있다.
최저임금은 문재인정부 출범 후, 2017년 6,470원에서 2018년 7,530원(16.4%), 2019년 8,350원(10.6%)으로 인상하였지만, 2018년 5월 28일 상여금 월 환산액 25% 및 복지후생임금의 7% 초과액에 대해 최저임금 산입법위에 포함시켰으며, 2019년 2월 27일 민주당 신창현의원의 대표발의를 통해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된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된 최저임금 결정체계개편을 통한 최저임금개악안이 상정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계속 자본측에서 제기해온 제도개악안이 20여개나 상정되어있다고 한다.
2018년 3월 20일 주52시간한도 노동시간제로 근로기준법이 개정된 이후, 노무현정부는 경색된 정국을 타개하려는 목적으로 탄력근로제를 이용하였다. 11월 5일, 대통령과 여야5당 원내대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회의 진행, 이에서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등 보완입법조치를 마련한다고 했으며, 2018년 12월 20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동시간 제도개선 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논의를 시작하여 2019년 2월 19일, 근로시간제 제도개선에 합의하였으나, 3월 7일, 11일 본위원회가 무산되면서 의결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경사노위는 3월 13일 입법요청하였으며, 이에 앞서 3월 7일 본회의 무산 직후, 3월 8일 민주당 한정애의원이 법안을 대표 발의하였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2주단위, 3개월 단위에 추가하여 6개월 이내의 기간에서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 서면합의로 탄력근로제를 시행하게 되어있다. 근로자대표의 정의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자본이 마음대로 탄력근로제를 시행할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준 것이다.
한정애의원은 2018년 12월 28일 단결권에 관한 2018년 11월 20일의 공익위원 합의안을 토대로 해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였다. 발의안은 산별노조·상급단체 상근자의 사업장 출입을 제한하고 노조활동을 가로막도록 하고 있다. 사실상 제3자 개입금지 제도의 부활이다. 게다가 파견·하도급 등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사업장에서의 쟁의행위도 불가능해진다. 한정애는 ILO핵심협약을 비준해도 공무원 · 교원의 노동3권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까지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4월 15일에 발표한 경사노위 공익위원의 입장에는 경총의 ‘노조 공격권’요구가 대거 수용했다. 부당노동행위 처벌 조항 삭제,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 연장, 쟁의기간에 대한 대체고용 허용 등의 내용이다.
문재인정부와 자유한국당은 노동개악을 향한 양보 없는 경쟁을 질주중이다. 지금까지의 노동개악의 역사에서 살펴보았듯이 오히려 김대중, 노무현등 자유주의정부에서 훨씬 악랄한 노동개악들이 이루어졌다. 또한, 노동개악의 중심에는 이목희, 추미애, 홍영표와 같은 민주당의원이 앞장서왔다. 문재인 정부 역시 그 전철을 벗어나기 힘들어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빼앗긴 것은 되찾을 수 있지만, 내어준 것은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2018년, 한말, 의병들의 투쟁을 스토리로 만들었던 미스터 선샤인의 대사이다. 경사노위와 같은 협의체에서 아무리 민주노총이 발악을 해도 그들의 질주는 막을 수 없다. “청년, 여성, 비정규직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며 노동자측 위원으로 위촉하였지만, 그들이 정부와 자본의 뜻에 반대하자 결국 경사노위법을 개정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노동개악이 결국은 (한국노총일지라도) 노총의 참여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끝으로 십년도 더 된 노무현 정부 시절의 일이다. 대구와 경주지역의 노동자교육에 강사로 불려간 적이 있었다. 노무현정부의 실책에 대해 떠들었다. 강의가 다 끝난 후, 한 노동자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항의성 질문을 하였다. “노무현이가 그렇게 싫습니까?, 신한국당보다도 더 싫습니까?, 왜 이렇게 싫어합니까?”, 호남이나 수도권에서는 많이 들어봤어도 영남에서 그런 질문을 받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나중에 사정을 들어보니, 열린우리당, 민주당이 영남권에서는 야당이라, 민주노총과 함께 투쟁을 해서 친밀도가 높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간 노무현은 싫어하지 않습니다. 또, 그들이 속한 열린우리당도 신한국당보다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짓이 신한국당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계속 반노동반민중적인 정책을 편치는 한 저에게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신한국당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 노회한 선배의 강의를 얼마전 들었는데, “문재인정부의 자유주의세력은 한국사회에서 주류가 이니므로, 우리의 주적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류인 (자본을 포함한) 수구보수세력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한다면 주적일 수 있다,” 는 말을 들으며, 격하게 공감했다. 이제, 남은 것은 문재인정부에 대한 인정사정 없는 투쟁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