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군산공장 매각과 상생형 일자리
3월 29일, MS콘소시엄이 GM군산공장을 인수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같은 날 MS오토텍은 GM군산공장 부지를 1,130억 원에 자산취득 할 예정임을 공시했다. 공시에 따르면 잔금 지급과 자산취득은 6월 28일에 이루어진다. 한국GM이 지난해 5월 31일자로 군산공장을 폐쇄하고서 10개월만이다. MS콘소시엄은 ㈜명신, MS오토텍 등 MS그룹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세종공업 등 여타 업체들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라북도, 군산시, MS컨소시엄은 2020년까지 라인을 신설한 뒤 전기SUV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21년에는 연간 5만대 생산에서 2025년에는 연간 15만대 생산이 목표다. 초기에는 위탁생산을 하고 5년 내 자체 모델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전라북도·군산시는 이를 바탕으로 상생형일자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장밋빛 전망이 넘실대지만 우려되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MS컨소시엄의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향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제외하고서는 MS그룹 컨소시엄 참여사가 정확히 확인되고 있지 않다. GM군산공장 부지를 전기자동차 생산공장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공장 부지 대금에 더해 2~3천억원에 이를 라인 신설 비용을 감안하면 4,000억 원의 자금이 소요되는 대형 사업이다. 추진주체가 불명확하다보니 이 막대한 자금이 어떻게 조달될 것인지도 깜깜이다.
2018년 말 기준으로, MS오토텍의 현금성 자산은 9억 원에 불과하다. 전라북도,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필요한 자금 중 일부는 산업은행에서 조달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자기 자산 없이는 차입금에 의존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이미 한국신용평가는 2018년에 MS오토텍을 “해외공장 설립, 핫스탬핑 설비 구축 등 중장기 수익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활동으로 인해 차입금이 증가하여 외형 및 수익창출력 대비 재무부담이 과중한 수준”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만약 MS오토텍이 GM군산공장 인수 및 라인 시설 자금을 전액 차입금에 의존할 경우, 차입금의존도는 2017년 58.3%, 2018년 54.6%에서 68.2%로 대폭 상승하게 된다.
사업 계획의 현실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현재 MS오토텍은 어떤 업체의 제품을 위탁생산할 것인지 정해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GM을 제외한 글로벌 업체와 접촉중이라고만 언급하고 있고, 업계에는 중국을 포함한 해외 자동차 업체들로부터 투자 유치 중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결론적으로 현재로서는 생산계획 자체가 수립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표면적으로만 놓고 보면 자금력과 생산계획이 없는 업체가 이런 무리한 사업에 뛰어든 모습을 두고 ‘기획부동산’이 연상된다는 평도 있다. 실제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MS그룹, 세종공업 등 MS컨소시엄 참여 업체와 현대기아자동차그룹과의 관계도 주목해야 한다.
MS그룹은 MS오토텍을 지배기업으로 하여 국내 8개, 해외에 5개 법인을 종속회사로 보유하고 있다. 이들 법인은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1차 협력사(협력사코드 UP19)로, 국내 · 해외 법인 모두 현대·기아자동차 생산공장 근처에 입지하고 있다. MS오토텍은 차체를 생산하는 업체로 2018년 MS그룹 매출의 70.3%(MS오토텍은 매출의 66.3%)는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으로부터 발생했을 정도로 현대기아자동차 의존도가 높은 기업이다.
이런 높은 의존도는 MS오토텍(舊 태명산업)의 설립자와 현대자동차 사이의 관계에서부터 출발한다. MS오토텍 설립자인 이양섭 회장은 현대자동차 임원 출신이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고려대 동문이자 현대건설에서도 동료로 지냈다. 현재는 2세인 이태규 대표에게 회사를 승계했지만 선대의 특수한 관계는 존속하고 있다. 2018년 MS그룹 영업이익률은 3.1%(MS오토텍은 –0.02%)로 전체 제조업 영업이익률 7.6%에 크게 미달한다. 그만큼 독자적 기술로 성장을 추구해왔기 보다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안정적 도급에 의존하여 중간 수수료를 이윤으로 챙겨온 구조인 셈이다.
그래서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자신의 1차 협력사가 다른 업체의 완성차를 위탁생산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을 쉽사리 용인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MS컨소시엄에 참여한다고 알려진 세종공업(협력사코드 U014, 정읍 소재 세움은 세종공업의 자회사) 역시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의 1차 협력사이다. MS오토텍 창업주와 현대자동차와의 관계, MS오토텍 주매출이 현대자동차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현대자동차그룹의 동의 없이 GM군산공장 매입을 추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의 묵시적 동의인지, 혹은 적극적 개입인지에 따라 다소 상황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MS오토텍을 내세워 차세대 모델의 위탁생산을 확대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광주형일자리를 전국으로 확대시키겠다는 정부의 정책과 맞물려 볼 때, GM군산공장이 광주빛그림산단처럼 현대자동차그룹의 위탁생산 공장으로 활용될 소지가 높은 상황이다. 다수 노동자의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신규채용은 없다고 연거푸 강조하는 것과도 연관지어볼 필요가 있다. 요약하면 차세대 전기 ㆍ 수소 자동차 생산라인을 아웃소싱하는 산업 구조조정 시도라는 것이다. IMF위기 이후 구조조정이 정리해고와 같은 인위적 인원감축을 동반하며 추진되었다면 이번에는 자동차 산업 자체의 변화에 고용인원 자연 감소와 맞물린 피흘리지 않는 구조조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전체 노동자 계급을 놓고 보면 불안정 일자리가 확산되며 노동조건의 하향화(자본주의 아래에서 평준화는 없다. 하향평준화가 아닌 하향화다)가 명약관화하다. 소위 미래형 자동차 생산공장은 동희오토(기아자동차 모닝을 생산하지만 기아자동차 소속 노동자는 1명도 없는) 모델로 대체되는 결과다.
청와대 ㆍ전라북도가 GM군산공장 부지의 생산시설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상생형 지역일자리 사업은 위탁생산 기업에 대한 예산지원ㆍ세금감면과 같은 내용으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광주형 일자리에서도 지자체ㆍ정부의 사회임금, 사회적 책임은 기껏 150명 규모의 공공직장어린이집을 건립하겠다는 수준으로 축소됐다. 광주형 일자리 계획대로 실현된다면 신규일자리만 해도 3,000개인데, 노동자들의 보편적 복지는커녕 신규일자리만큼의 복지도 담보하지 않는 것이다. 위탁생산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상생형 일자리 사업의 결론이 된다면 국가·지자체가 나서서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장려하고 양산하는 꼴이 된다. 위탁생산은 기본적으로 노동의 불안정성을 높여 기업의 비용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방편이므로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담보하기도 어려울 터다. 우리는 이미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과정에서 자본의 반사회적 행태를 목도했다.
게다가 정부는 공모를 통해 지역을 선정하고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역형 일자리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역별로 알아서 기업을 유치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원을 신청하라는 것이다. 일자리정책이 지역 간 기업 유치 경쟁으로 귀결되는 것은 지역양극화 ㆍ 노동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노동 ㆍ 산업정책 없는 일자리 정책은 중복투자와 이로 인한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미 지자체들은 아무 기업이나 일단 유치하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결국 정부와 지자체의 일자리 정책은 기업지원정책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2018년 5월, 현대기아차 2차 협력업체인 가진테크의 대표가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1차 협력사는 가진테크의 어음 지급을 거절하고, 단가를 후려치고, 심지어 거래처를 다른 업체로 일방적으로 변경하면서 가진테크에 큰 피해를 입혔다. 이 1차 협력사가 바로 MS오토텍이다. 이런 기업을 지원하는 ‘상생형 일자리’ 사업의 ‘상생’은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GM군산공장 매각 후 펼쳐질 미래는 노동자들의 피와 희생이 물든 장밋빛이 가능성이 높다. 산업 구조조정, 노동의 불안정화라는 거시적 조망을 바탕으로 GM군산공장 매각 이후를 살펴야 한다. 동시에 정부의 기업친화적 일자리 정책에 날카로운 비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