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하반기 정세와 한국 사회

2019년 하반기 정세와 한국 사회

김정훈 (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공동대표)

한일 경제 갈등의 성격과 노동자 민중

한일 경제 갈등이 소환한 ‘국가 동원 체제’의 망령이 스산하게 활보하고 있다. 그 망령을 박정희 시대가 아닌 문재인 정부가 불러내는 모양새다. 위험한 그 망령은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와 그로 인한 공황 또는 심각한 위기의 징후 앞에서 프랙탈(자기유사성)한 복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프랙탈 조각 안에서 노동자 민중은 거세되고 전체적인 형상만 사유된다. ‘국가와 민족이 처한 현실적 위기’라는 협박은 ‘국가의 명에 따르는 국민’이라는 한 몸이 되기를 강요하기도 한다. 자본의 이익과 성장이 국가와 민족 번영의 초석으로 쉽게 치환되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속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미국, 제국주의 학습에 몰두하는 중국, 제국주의 복원의 환상에 몸부림을 치는 일본 사이에 낀 현재 한국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민족’ 문제를 마냥 외면할 수도 없다. 민족을 ‘주의’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오랫동안 역사를 공유한 구성체로 볼 때의 문제이다. 지금 급격하게 다가온 한일 갈등의 문제는 대중적인 처지에서 올바르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파시즘적 또는 애국주의적 경향으로 흐르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진행해야 한다.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식민지)를 거쳤다. 이에 대한 가해자는 명백하게 일본(제국주의)이다.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도 반성도 없이 시간을 보내온 것이 일본(제국주의) 자민당 일당 독재이다. 오히려 일부 시점의 반응 말고는 역사 왜곡으로 점철된 것이 일본(제국주의)과 극우세력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선전포고에 의한 참전국 지위를 적극적으로 부정한 막후 주역도 일본(제국주의)이었다. 한국의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의 참가를 무산시키고, 그 부산물인 한일협정을 유도한 것도 일본(제국주의)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그리고 강제 징용 노동자 문제를 풀 때 이 점은 분명하게 할 일이다.

국가와 자본이 제시하는 한일 경제전쟁/역사전쟁의 프레임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실제 현실이다. 세계 경기 침체의 반복과 심화의 와중에 펼쳐지는 국제 경제 질서의 재편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미중 경제전쟁 등으로 출구도 해답도 잘 보이지 않는 국제 경제 질서의 재편은 일부 품목에 편중된 수출 주도 한국 경제의 위기이기도 하다. 일본 경제 역시 호전될 기미가 없다. 이 와중에 발생한 한일 경제 갈등은 양국 모두 손익이 계산되지 않는 갈등이기도 하다. 국제 분업 체제가 일시에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을 때 한일 경제 갈등의 지속성은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한반도를 둘러싼 한미일, 북중러 각각의 또는 상호간의 국제정치적인 불안정성과 대치가 한일 긴장관계의 연속성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좋으나 싫으나 매우 역동적인 국가다. 자본도, 정권도 역동적이다. 일본에서 발생한 건이든 그것이 북한이든 국내 민주당이든 자한당이든 한국을 일시에 휘감아 돌고 사회와 정국을 요동치게 만든다. 정치적 의도와 맥락이 스며들면 더욱 심하다. 그러나 노동 문제만큼은 지루하기 이를 데 없다. 노동 파괴 정책에는 신속한 반면 노동권을 바로 세우는 일에는 이제 ‘밥 짓는 시늉’도 하지 않으려 한다. 한일 경제 갈등 속에서 나타난 피해 현상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 민중의 등골을 더 빼먹겠다는 것을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꼴이다.

문재인 정부는 친자본 정권이다.

문재인 정부의 두 얼굴이라고 한다. 노동존중이라 말하면서 친자본 정책으로 일관하는 현상을 빗댄 말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문재인 정부는 이제 두 얼굴이 아니다. 국가주의 색깔을 덧칠해가는 친자본 정권일 뿐이다. 박근혜식 적폐청산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이었으며, 촛불항쟁이 요구한 적폐청산은 민주주의를 살려내라는 거대한 함성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의 파시즘적 지배 행태와 국정농단에 반대하여 일어난 노동자 민중의 저항과 투쟁 끝에 성립된 정권이다. 박근혜 탄핵 앞에서 크게 흔들렸던 민주당은 촛불항쟁의 급진적인 전개 과정에서 탄핵을 발의하고 그 결과 집권에 이르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집권 2년이 넘도록 촛불항쟁 당시의 비상국민행동 10대 요구1재벌특혜 청산/세월호 진상규명/백남기 농민 살인진압 진상규명/국정교과서 폐기/노동개악 폐기-한상균 석방-전교조 법외노조 철회/의료민영화-철도민영화 중단/ 사드 배치 철회-위안부 합의 무효-한일협정 폐기(동아시아 평화위협 반대)/개성공단 원상복귀와 남북관계 개선/민주주의 헌정유린 중단/언론장악 중단 중 제대로 실천한 것이 없다. 자신의 공약2재벌개혁 정책 공약 : 황제경영 방지를 위한 법적 기반 구축/재벌 총수 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강화 방지 및 투명한 지배체제 구축/일감 몰아주기-납품단가 후려치기-부당 내부거래-기술 탈취에 대한 규제 및 처벌 강화/금융 계열사의 의결권 제한 및 금융그룹을 통한 감독시스템
노동정책 : ‘노동기본권 및 노사관계 분야’의 ILO 핵심협약 비준/특수고용노동자 등 비정규직 권리보장/초기업단위 교섭 추진/‘비정규직노동 및 차별 해소 분야’의 사유 제한 제도 도입 등 정규직 채용 원칙 확립/도급-파견 구별 기준 재정립/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규정
마저도 무용지물로 내팽겨 치는 처사가 노동/교육/경제 분야 모두에서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경제운영 기조는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였다. 이마저 세계 경제침체와 극우 또는 보수 야당의 요구를 핑계로 하여 무늬로만 기능했던 소득주도 성장/공정경제 기조마저 사실상 폐기했다. 국정 기조라고 했던 노동존중 사회도 실종되었다. 눈앞에 박근혜식 적폐청산이 아른거리는 것은 지독한 배반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한 정책과 판박이 모습을 띠는 것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일이다. 여기에 남은 것은 도로 친재벌 친자본의 얼굴뿐이다.

2년 넘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과 그 양상

1) 남북관계

북한 비핵화를 두고 형성된 북미 간 협상 국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게 정치경제적 난국의 유일한 실질적 출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동치는 북미 협상의 파고에 따라 남북 관계의 개선 또한 롤러코스터에 탑승하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 경제 갈등 국면에서 대안으로 남북 평화경제를 주창하고 나섰지만 그 한계만 곱씹어야 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같은 일면 단순한 과제조차도 주체적인 협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대미 외교력의 부실함 앞에서 그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한미연합훈련에 더하여 흡수통일을 염두에 둔다는 빌미마저 제공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가장 우선적인 것은 전쟁 없는 평화공존이라는 점에서 남북 대화국면의 정착과 장기적인 평화공존경제의 지향은 지속되어야 한다. 여기에서도 대전제는 노동착취 없는 남북 평화공존경제 구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얼빠진 극우세력을 제외한 남한 자본들의 북한 진출 욕구가 내재적으로 넘쳐나고 있으며, 수시로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면 더욱 그렇다.

2) 경제와 노동

재벌을 규제하고 감시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은 살점도 떨어지고 뼈마디도 부서진 상태이다. 소득주도 성장론과 내수경제 성장론을 앞세우며 최저임금을 인상했으나, 자본과 보수 세력에 밀려(?) 개악에 더한 개악으로 치달았다. ‘최저임금산입범위 확대’와 ‘최저임금 결정체계 및 결정기준’이 그것이다. 그것이 2019년 최저임금 협상에서 실질적인 최저임금 감소로 나타났다. 공정경제를 주창했으나 ‘인터넷 전문은행’에 한한다는 구실로 기어이 금산분리 완화 조치를 내렸다. 최근에는 한일 경제 갈등 대책의 일환으로 동일 기업 내 일감 몰아주기를 허용함으로서 대기업의 공정거래 파괴 행위를 인정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재벌 위주의 자본 성장 정책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일자리 정책조차 단기적인 성과에만 급급하여 그 중장기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노동정책은 그 후퇴 양상이 가관이다. 공약의 불이행을 넘어섰다. 문재인 정부는 행정부의 권한으로 가능한 핵심 노동정책3근로기준법 시행령 7조 개정을 통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전교조 법외노조화 관련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 폐지/전교조 법외노조화 직권취소//파견-도급 구별 기준 재정립/공무원 해직자 원직복직 등도 전혀 개선하지 않았다. 전교조 법외노조화 철회/특수고용노동자 노동조합 설립 등이 그것이다. 주52시간 상한제마저도 단계별 실시로 후퇴하고 있으며 탄력근로제의 확대를 공언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ILO 핵심협약을 비준한다고 했다. 그러나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하는 것도 아니다. 비준대상인 ILO 결사의 자유 협약(제87호, 제98호)은 노동조합 설립, 활동, 단체행동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ILO의 권고는 무시하고, ILO 협약과 무관한 노동법 개악안4사업장 내 생산 주요 업무 시설에 대한 전부 또는 일부 점거 금지/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을 3년으로 연장
・ILO 권고 무시 :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노동조합 설립 신고제도 개선/교사-공무원의 단체행동권 및 정치활동의 자유 보장/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 등의 형사처벌 금지/전임자 급여, 근로시간면제제도 등은 노사 자율교섭/간접고용 원청 사용자 책임 인정
・ILO 핵심협약을 정면 위배하는 개악안 : 실업자 해고자의 사업장 단위 노조 임원 및 대의원 선출 불가/실업자-해고자-간접고용 노동자의 사업장 내 조합활동 사업주 허가
을 제시하며 노동자 농민을 우롱하고 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으로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은 아직도 너무 미흡하고, 발전 노동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생명의 위협과 차별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 존중 사회’는 지워졌다.

3) 교육

고교 무상교육이 단계적인 실시에 들어간 것은 그나마 교육공공성 강화에 있어서 의미 있는 정책이다. 그러나 전국적인 특권학교인 자율형사립고(구 자립형 사립고) 유지, 대학 서열화 해소를 위한 국립대학교 네트워크 구축 과제 실종, 경쟁 위주의 교원 정책 지속, 입시 경쟁교육 해소를 위한 절대평가 확대 폐기 등에서 보는 것처럼 문재인 정부의 공약 대부분이 이행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자유주의 정치 세력의 강력한 영향 아래 문재인 정부의 교육 공약도 현실에서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과 보육, 공공성과 민주주의에 기반한 교육체제 개편을 공약화 했으나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농단, 보수 세력의 반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회적 의제보다 공감대가 큰 교육개혁 의제조차 집행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정치적인 계산법이 교육의제에도 횡행하고 있다.

전망 – 지금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제도 정치권이 분주하다. 그들끼리의 이합집산 행태는 먹잇감을 놓고 바라보는 금수의 눈처럼 날카롭다. 그러나 그 눈에 결코 노동자 민중의 삶과 현실은 깃들어 있지 않다. 심지어 진보에 한발 걸친 정당의 간헐적인 이상 행보도 있다. 극우-보수 연합의 극단화가 자유주의 정치 세력의 완승과 진보 정당의 약진으로 나타난다면 그나마 차차악을 선택한 것일까. 선거제도 ‘패스트 트랙’이 주목 받을 시간이 성큼 다가왔다. 작은 변화라도 그 변화만큼의 전진이 있다면 그것도 나름 성과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유한국당의 장외정치와 국회 무시 정치가 노동개악의 방어막이 되는 상황이다. 이 상황이 그렇게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한일 경제 갈등을 내세워 노동자와 작업장의 안전조차 내팽겨 치려는 정권과 여당, 그것에 낄낄댈 극우-보수 정당이 눈에 선하다. 어떻게든 장시간 저임금 체제를 고수하려는 재벌과 한편을 먹겠다는 문재인 정권의 현란한 말잔치에 놀아날 시기는 애시당초 지났다.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가 정권과 자본에 의해 방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ILO 협약 비준과 관련하여 조건 없는 ILO 협약 비준을 요구해야 한다. 단결권을 놓고서 노동을 분열시키려는 어떤 시도에도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노동개악을 저지하기 위해 ‘노조할 권리’ 내걸고 총노동의 총단결 투쟁이 절실한 시기이다. 공공부문 및 제조업 분야의 비정규-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이 곳곳이다. 투쟁의 중심으로 나서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직접 고용, 제대로 된 정규직화 요구에 함께 하면서 하반기 투쟁에 나서야 한다. 현 민주노총 지도부가 정파 간 연합 집행부의 한계를 보이면서 대정부 투쟁에 전면적이지 못하다면, 이를 견인해야 하는 것은 노동자 대중이다. ‘노조할 권리’조차 짓밟힌 노동현장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다시 2020 총선. 지금 정치꾼들에게 노동자의 삶과 분노를 보여줘야 한다. 노동개악안의 국회 상정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선제적이고 전면적인 공세에 나서야만 더 이상 물러날 자리가 없는 이 자리에서 전진할 수 있다. 한일 경제 갈등도, 남북 문제도, 세계 경제 위기도 노동자 민중의 삶 보장과 노동 존중 없이는 단 한 올의 실타래도 풀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때다. 그 길이 노동자 민중의 2020 총선 승리의 길이다.

한국 사회 개혁 전망, 별 다른 전망 없다. 투쟁이 전망이다!

Post Author: 전북노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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