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1만원 투쟁,무엇을 남겼는가
2020년 최저임금은 올해 대비 2.87% 인상, 시급 8,59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실질GDP 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삭감과 다름없는 결정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하는 과정에는 법 상 결정기준인 생계비,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등도 반영되지 않았다. 그저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를 망친다는 ‘감정적’ 선동만 난무했을 뿐이다.
그러나 올해 노동자편에서 내세웠던 요구 역시 ‘최저임금 1만원’이 거의 전부였다. 최저임금 대폭인상이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적 합의였음을 감안해도, 그것이 왜 ‘1만원’이어야 하는지는 찾을 수 없었다. “생일케이크”1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 발언 “아이 생일날 제일 작은 생일케이크를 사며 울어본 적 있는가” 가 노동자의 처지를 전달할 수는 있겠으나, 그러한 도덕적·감정적 호소 외 다른 근거와 내용도 채웠어야 했다. 정부가 자본의 편에 섰다는 상투적 비판은 왜 유독 올해 ‘최저임금’ 의제의 주도권을 자본가가 가져가게 됐는지를, 그리고 이대로라면 내년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임을 설명하지 못한다.
올해 최저임금 투쟁이 무력했던 이유를 민주노총 혹은 사회운동 세력이 준비를 잘하지 못해서, 자본의 반격이 너무 거세서 등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지난 수년간 진행해 온 ‘최저임금 1만원’ 투쟁의 누적된 효과와 관성이 올해 더 극적으로 발현된 것이다. 최저임금 의제의 주도권을 상대편에게 넘겨주게 된 것은 노동자계급이 최저임금 ‘1만원’ 요구를 전면에 내걸었던 시점부터 예견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은 2016년 전북노동연대 하계수련회에서 제출했던 글에 담긴 문제의식의 연장이다.
‘최저임금 1만원’ 요구의 배경과 경과
‘최저임금 1만원’ 요구는 (구)사회당 계열 단체들의 제기로 본격화됐다. 사회당계는 2012년 대선에서 김순자 후보 선거운동본부를 구성하며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2당시 김순자 후보는 진보신당 당원이었으나 대선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 결정을 불복하고 (구)사회당계의 지원을 받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2013년에는 현 알바노조의 전신인 알바연대가 출범하면서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한다.
‘최저임금 1만원’이 노동운동 내 주요 구호가 된 것은 2015년 민주노총이 이를 전면적으로 수용하면서다. 2015년 출범한 한상균 집행부는 최저임금 1만원을 민주노총의 주요 사업으로 배치하였고, 그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노동계는 최저임금 시급 1만원을 요구안으로 냈다. 2015년 초,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인상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지배계급 내에서 내수 중심의 ‘소득주도성장론’을 제기하는 정세도 노동계가 최저임금 대폭 인상 투쟁을 강화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2015년 당시 민주노총과 (구)사회당 계의 “최저임금 1만원”은 결이 꼭 같은 건 아니었다. (구)사회당 계가 최저임금 1만원을 주창한 데에는 “알바연대가 만나고 있는 알바들의 삶이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구호의 중요한 근거이자 이유”3최저임금 1만원 미션 파서블, 월간 좌파 창간호라는 감정적 호소 이외 별다른 근거가 없었다. ‘기본소득’을 조직의 주요 입장으로 삼고 있는 (구)사회당 계는 사회변혁의 주축세력으로 ‘알바노동자’로 통칭되는 비정형 노동자를 내세운다.4이들은 올해 7월 노동당 당대회에서 당명을 ‘기본소득당’으로 개정하려다 실패한 이후, 기본소득당 창당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히며 집단 탈당하고 있다.5알바데이 5대 기조
– 시급 4,860원을 멈추자_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 부의 독점을 멈추자_대기업의 이윤을 알바들에게
-나쁜 일자리를 멈추자_우리에게 좋은 일자리를
– 바닥을 향한 경쟁을 멈추자_경쟁을 멈추고 다른 미래를
– 바쁜 삶을 멈추자_우리에게 휴식을
기본소득론도 마찬가지지만, 그 요구를 실현시키기 위한 물적 토대에 대한 분석은 부차적이고 저항 그 자체를 우선순위에 두며 모든 저항이 근본적 변화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의지주의적 입장에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아나키즘과 상통하는 면이 적지 않다. ‘최저임금 1만원’ 요구가 제기된 배경은 이러한 운동론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1만원’ 요구가 사회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상징적 요구임을 전제하면서도 초기에는 그 근거를 구성하려 노력한다. ‘미혼 단신근로자 생계비’ 기준을 지양하고, 노동자 평균 가구원 수(2.5인)의 ‘가족 생계비’를 기준으로 삼아 아래와 같이 2016년 최저임금 요구안을 산정한다.
– 식료품, 의류, 주거·수도·광역, 보건, 통신, 교통, 교육, 오락·문화 등
② 한국노동패널 자료에서 최저임금 이하의 노동자의 평균 가구원 수를 고려하여(2.5인), ①에서 가구균등화 지수를 적용해 최저임금노동자의 평균 가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출규모를 산출함
③ 최저임금이 내년(2016년)부터 적용된다는 점을 감안하여, 2015년 경제성장률(3.4%), 물가상승률(1.9%), 소득분배 개선치(2.9%)를 반영함.
즉, [도시근로자가구 1인당 소비지출(가계지출-비소비지출) * 2.5인 가구 적용(가구균등화지수)]*2015년 물가상승률 등 반영.
(1,221,200*1.581)+ (1,221,200*1.581*8.2%) = 2,089,035원 / 209시간 = 시급 9,995원 (원 단위 절상), 10,000원.
그러나 근거에서 구호를 도출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구호에 근거를 맞춘 데서 출발하는 곤란은 해가 갈수록 확대된다. 2016년에는 4~7분위 2인 가구 가계지출 평균 추정값이 약 220만원이라는 점을 최저임금 1만원의 근거로 들었고, 2017년에는 평균 가구원 수(2∼3명)를 고려한 가구 생계비가 평균값 기준으로 월 2,707,573원∼3,437,488원이라는 근거를 들었다. 2018년에는 아예 최저임금 요구 근거가 별도 발표되지 않았고, 2019년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 위원들은 “최저시급 1만원은 비혼단신 노동자 및 1인 가구의 생계비 수준이며 복수의 소득원이 있는 가구 실태를 고려하더라도 가구 생계비의 80∼90%를 충족시킬 수 있다”며 최저임금 1만원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해가 지날수록 근거는 추상화되었고, 지양하겠한다던 ‘비혼단신 노동자 생계비’를 다시 주장의 근거로 끌어왔다.
결국 2019년 현재, 최저임금 1만원은 구호만 남아버린 상태다. 최저임금 투쟁을 국민임투라 부르면서 5년 째 임금요구안이 똑같다는 현실도 넌센스다.
2018~2019 최저임금 인상 이후
최저임금 1만원 요구는 여러 측면에서 파산을 맞이했다. 한 측면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한계기업, 자영업자의 경영악화와 고용감소가 일어났다는 공격을 방어하지 못했다. 오히려 업종별, 지역별 차등적용 카드까지 공세적으로 날아오고 있다. 자본의 공세를 방어하기 힘겨운 데에는 최저임금 1만원 요구의 근거가 너무 허약했던 점이 한 몫을 차지한다. 내년에도 올해와 같이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안으로 삼고서 그 근거를 긁어모으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왜 최저임금 1만원인지가 불분명했다는 사실의 연장선상에서, 운동 진영은 최저임금 1만원이 정말 ‘지금 당장’ 실현되었을 때 그것이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지도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았다.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 비중은 2012년 9.5%에서 2018년 15.5%로 늘었고, 최저임금 영향률 역시 2012년 13.7%에서 2019년 25%로 크게 증가했다. 최저임금이 16.4%, 10.9% 인상됐던 2018~2019년에는 그 증가폭이 다소 가파르긴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사회적 쟁점이 되었던 최근 시기 이전에도 최저임금 미만률, 영향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6이 문제는 2016년에도 제기했지만, 당시 지역순회 간담회를 주재했던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우선 과제라며 일축했었다.
노동자 가구 소득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전체 노동자가구의 중위 노동소득이 2017년 1분기 3,611,898원에서 2019년 1분기 4,018,261원으로 상승하는 동안, 같은 기간 1분위 가구 노동소득은 오히려 감소했다. 중위 노동소득과 그 아래 각 분위 노동소득 사이의 격차 역시 확대되었다.(상위 20%와의 소득 격차 확대는 말할 것도 없다) 2015년으로 시계열을 확대하면 중위소득 미만 노동자 가구의 소득 증가 효과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2년 동안 최저임금이 28% 인상되고 나서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소한 지난 10년 간은 최저임금 영향률 · 미만률이 상승해왔고, 저소득 노동자가구의 노동소득은 정체했다.
노동계에서 내세운 ‘최저임금 인상->양극화 완화’라는 도식은 현실과 괴리되면서 점점 대중의 지지를 잃어갔다. ‘창’이 신통치 않았던 것에 비례해 ‘최저임금 인상->고용위기’라는 반격을 막아낼 ‘방패’도 부실했다. 기실 2018~2019년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사이의 관계는 영향이 없거나 거의 미미하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7가장 최근의 논쟁을 살펴보자면, 김대일 · 이정민(2018년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효과)은 2018년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지만, 황선웅(2018년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감소를 초래했는가?)은 해당 연구가 표본에서 최저임금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청년층을 제외했기 때문에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비판했다. 덧붙여 김대일 · 이정민은 해당 연구에서 여성노동자 집단에서 나이에 비례해 최저임금 적용률이 높아지는 현상(단조증가)에 대해 “고학력 여성일수록 비근로소득(남성 배우자)이 높아 경제활동 참여 유인이 낮기 때문에 30대 이상에서 연령이 높을수록 여성 근로자 가운데 저임금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향”이라고 설명한다. 같은 문제에 대해 사회운동은 출산 · 육아에 따른 경력단절, 여성 노동의 주변화가 원인이라고 제기해왔다. 저임금 여성노동자 비중 증가의 이유를 ‘고학력 여성의 경제활동 비참여’에서 찾는 것이 타당한지 따져볼 일이다.8그러나 노동시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후속 연구결과를 지켜봐야 하겠다. 황선웅의 분석(최저임금 인상 효과 분석)에 따르면, 연구 모형에 따라 2017년 9월~2018년 5월 기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분적 노동시간 감소효과가 확인된다. 최저임금 인상에도 저임금 노동자의 노동소득이 정체되어 있는 것은 저임금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감소했거나 보다 불안정한 일자리로 대체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 언론이 떠드는 것처럼 최저임금 인상이 대규모의 고용위기를 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선동이 대중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상식적 차원에서 봐도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자영업자의 반발을 불러올 것은 당연하다. 최저임금 정책에서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간 계급적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9‘소득주도성장론’ 비판, 송명관, 2015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도덕적, 당위적 방어 이외에 운동세력의 전략은 준비되어 있었는가? 장기 저성장이라는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자본주의 위기 국면에서 최저임금 대폭인상이 저임금 노동자의 노동소득 증가로 이어진다는 필연도 없었다. 얻은 것 없이 쥐어터지기만 한 것은 정세를 외면한 포퓰리즘적 구호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왜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 노동소득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했을까.
장기 저성장이라는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자본주의 위기를 인정해야 한다. 위기론은 지배계급의 엄살이 아니다. 다양한 지표가 세계 경제의 위기,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실증한다. 애초 문재인 정부의 각종 정책 역시 자본주의 위기가 초래한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자본은 하락하는 이윤율을 만회하기 위해 노동몫에 대한 공격의 강도를 높인다.
여기에 중소영세사업장의 지불능력 문제가 겹쳐진다. 이미 한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는 OECD 국가 가운데에서도 최상위이고 그 격차가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재벌 기업 중심의 원하청 구조 아래에서 재벌의 지배력은 확대되고 중소기업의 종속성이 심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 중소기업이 스스로 지불능력을 확대하기란 어렵다. 최저임금 영향 노동자 비중이 높을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우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자영업자 중 상당수는 노동시장에서 강제로 밀려난 사람들임도 염두해야 한다.물론 노동운동은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재벌에게 지워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현실성 있는 구체 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10사내유보금을 이용하자는 주장은 사내유보금의 상당부분이 고정자본의 형태로 존재함을 간과하고 있고, 사내유보금의 정의가 불명확하다 보니 그것에 대한 환수가 금융자산에 대한 거래세 · 보유세를 부과하자는 것인지, 순이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자는 것인지, 고정자본(생산수단)을 국유화하자는 것인지 등 실행 방안이 무엇인지도 모호하다. 정부가 제시한 대안은 하청업체 · 가맹점주가 원청 · 본사에 최저임금 인상분을 반영하여 납품단가 인상을 요구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제도 시행을 밝힌 지 불과 몇 개월 뒤, 하청업체가 납품단가 인상을 요구하면 94%의 원청이 이를 수용했다며 불공정거래가 개선되었다는 진단을 내놓는다.11공정거래위원회 전속거래 실태조사, 2018.11
정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재벌 기업이 다 떠안은 것인데 그러고서도 최저임금 인상속도 조절을 주장하는 정부의 태도는 형용모순이다. 공정위의 최저임금 인상 원사업자 분담 정책이 실효성 있는지 여부를 떠나, 더 큰 문제는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이런 제도적 방안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최저임금 인상 원사업자 분담 정책에 대해 질의서라도 보낸 단체가 참여연대라는 현실은 씁쓸할 따름이다.
결국 정부가 역점을 둔 것은 구조변화가 아닌 일자리 안정자금이라는 보조금 투하였다. 정부도 최저임금 두자리수 인상률이 적용되기 위해 어떤 조처가 필요했는지 준비해두지 않았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면피용으로 택한 것이다. 앞으로 최저임금이 보다 큰 폭으로 확대된다 해도 고용보조금을 덩달아 확대하여 뒷받침시키는 것 외에 뚜렷한 정책을 내놓지 않으리라 예측된다. 정부가 세금으로 민간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지급하는 형태가 되었는데, 중소영세사업장의 생산성 확대에 기여할 가능성은 아주 없고 경제구조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 문재인 정부의 보조금 투하식 일자리 정책이 공공부문의 저임금 · 불안정 일자리 양산으로 귀결되는 상황과 맥을 같이 한다.
경제 위기 국면에서 재정정책이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보조금 투하식 최저임금 인상이 바람직한 방향인지에 대한 노동운동의 입장은 전무했고, 저임금노동자-영세자영업자에게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운동단체들이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며 최저임금 인상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저임금 노동자 임금 상승, 양극화 완화로 연결될 것이라고 간주했다면 무지다. 혹은 정부가 어떻게든 방책을 내놓겠거니 했다면 무책임이다.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적 태도에 노동운동의 의지주의적 구호가 만나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변심으로 최저임금 공약을 파기하고 도리어 후퇴시키고 있다는 비판은 절반의 진실이다. 위기가 심화될수록 관성적인 주장과 활동으로는 도리어 후퇴를 면하지 못한다. 현 정세에 대한 책임은 최저임금 1만원을 주창했던 제세력이 같이 져야 한다.
최저임금 투쟁을 둘러싼 논쟁
최저임금 투쟁의 방향, 의미를 쟁점으로 한 논쟁이 지면상에서 진행되었다. 필자는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 임금상승, 임금격차 축소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한지원(사회진보연대)12저임금 · 임금격차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접근방향,2019의 지적에 동의한다. 그러나 상위 계층 노동자의 임금 삭감을 통해 임금격차를 축소하자는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글에서 언급한 ‘2017년 임금근로 일자리별 소득’ 통계로는 분위별 소득을 추산할 수 없는데, 아마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자료를 참고했으리라 짐작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원시자료를 가공하여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2017년 연봉 중위소득은 2,507만원, 평균연봉은 3,475만원이다. 평균연봉 이하인 노동자들의 임금을 평균연봉 수준으로 일괄 인상하는 데는 대략 146조 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10분위 소득자 연봉 총액이 146조 원이다. 지금 다룬 임금 통계에는 전문경영인 등 실질적 사용자가 받는 임금이 포함되어 있음을 상기하자. 10분위 계층 중 상당수는 실질적 사용자다. 임금을 나누자면 이들의 몫을 먼저 뺏어야 한다. 임금격차 축소를 위해 뭉뚱그려 상위 계층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계급관계를 희석시키는 것이고 강동훈(노동자연대)13계급 단결은 비현실적 도덕주의로는 이룰 수 없다,2019의 비판처럼 ‘비현실적 도덕주의’이기도 하다.
그러나 강동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이 함께 오르내렸다고 항변하며 애써 ‘임금격차’ 확대를 외면한다. 수십 년 간 1세계 국가 노동자의 임금과 3세계 국가 노동자의 임금은 함께 올랐지만 그것이 1세계 국가와 3세계 국가 노동자 사이의 임금 격차가 확대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규직 노동조합의 경제투쟁이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한 것은 아니겠으나 격차 축소에 기여하지 못했음도 사실이다. 노동자연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이 함께 (기울기가 다른) 우상향 했다고 항변하는 것은 임금 격차 축소를 운동의 ‘주된’ 의제로 삼는데 동의하지 않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임금격차 확대는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가로막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저임금 ·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고임금 ·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인상 투쟁이 전체 노동자 계급의 몫을 늘리는 투쟁이니 연대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 역시 ‘비현실적 도덕주의’이다. 게다가 낙수효과 이론도 아니고, 고임금 ·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인상이 자동적으로 저임금 · 불안정 노동자 처지를 개선할 개연성은 없다. ‘임금격차’ 축소는 병렬적인 의제 중 하나여서는 안 된다.
백종성(사회변혁노동자당)14 최저임금, 만악의 근원?: 최저임금은 정말 ‘과도’한가,2019은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 임금 증대나 임금격차 완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을 ‘최저임금 인상 투쟁은 … 고용 감소로 이어지는바’, ‘최저임금제도가 비자발적 실업을 발생시킨다는 자본가들의 주장과 같다’ 등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악화를 초래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오독한다. 논점을 잘못 짚고 있다. 이주용15최저임금, 만악의 근원?: 문제는 최저임금이 아니라 자본주의다,2019은 “비혼 단신근로자 실태생계비 분석” 보고서를 다시 인용하는데, 앞서 언급한 대로 2015년 당시에는 지양하자고 했던 기준이다. 최저임금 1만원 구호의 근거가 얼마나 자의적인지를 방증한다. 더 나아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실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도 나온다’며 국가의 책임을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 소득 증가로 이어졌느냐는 쟁점을 훌쩍 뛰어넘어, 고용에 부정적 효과가 실증되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전제하며 대안을 제시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실업 증가로 이어져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요구로 귀결한다고 생각한다면, 구태여 최저임금 인상부터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가? 애초에 모든 노동에 대한 국가 책임을 요구하며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주장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는가? ‘지난 2년의 경험 이전’에도 최저임금 인상은 최저임금 영향률 · 미만률 확대로 귀결되고 있었다. 지난 기간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보완책으로 제시한 “중소 사업장의 노조할 권리 쟁취 투쟁, 취약층이나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보장하기 위해 재벌·대기업의 이윤을 환수하는 투쟁, 양질의 공공부문 일자리를 확충하고 대기업의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늘리는 투쟁”은 일부 타당한 부분이 있으나, 각론은 여전히 모호하다. 그리고 “자본이 축적하고 있는 천문학적인 이윤”16최저임금 회피하고 자본주의 극복한다?,2019을 볼 때 그 이윤량/이윤률의 추세가 어떠한지를 같이 눈여겨 봐야함을 덧붙인다.
현실을 면밀히 파악하자
문제의식은 많이 토로했지만, 정작 구체적 방안으로 내놓을 말은 많지 않다. 어디에 방점을 찍을지 차근차근 다시 점검하자는 게 요지이다. 2020년에도 ‘최저임금 1만원’을 외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최소한 향후 5년간 일관되게 적용할 기준을 마련해 최저임금 요구안을 다시 구성하자. 근거를 갖추지 않는 싸움은 위험하다.
더 신경 써야 할 것은 근래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 노동자 임금 상승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깊이 천착해서 이유와 대안을 분석하는 것이다. 근로감독의 해태와 같은 의지의 문제로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 영향권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어떤 분야에서 많이 일하고 있는지, 각 분야 별로 최저임금 인상을 어떤 방법으로 우회하고 있는지17산입범위 확대는 제조업 사업장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서비스업종은 주휴수당 지급을 회피하기 위해 주 15시간 미만 고용과 같은 꼼수를 사용하고 있다. , 지불능력의 상향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부터 자료를 찾아 모으고, 없으면 만들자. 이 질문은 자본주의의 위기, 특히 저성장이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음을 드러낼 것이다.
한편 경제 위기가 심화되어갈수록 오히려 과학적 비판 없이 감정 호소에 의존하는 운동이 약진하고 있다. 이들은 ‘이념’이 사라진 빈자리를 채우면서 성장한다. ‘대안사회’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이 역시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들은 생략한 채 희망사항만 담긴 추상적 담론이 대부분이다. ‘지도부 타격’과 ‘운동을 위한 운동(영구적인 농성/파업)’을 자기 운동의 최대 과제로 삼는 생디칼리즘 경향 운동의 고조도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런 흐름에 경각심을 갖고, 현실을 파악하고 분석하려는 의식적 노력이 중요하다.
마르크스, 레닌 등 쟁쟁한 이들의 글을 한 토막 즈음 인용하고 싶었지만 과문하여 마땅한 구절을 찾지 못해, 오며가며 주워들었던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한다. 국제노동자협회는 창립총회에서 규약을 정하며 총평회의의 주요 역할 중 하나로 각국의 사회 상태에 대한 조사를 꼽았고, 제1차 대회에서 “만국의 노동자 계급의 상황에 대해 노동자 계급 스스로 시행하는 통계 조사”18https://www.marxists.org/history/international/iwma/documents/1866/instructions.htm 수행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뒤 그 후로 꾸준히 진행했다고 한다. 작년에 출간한 레닌 전집의 출판사(아고라) 서평에는 “사마라의 도서관 열람 기록을 보면, 1893년에 레닌은 그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모든 정부 통계자료와 경제 관련 논문, 출판물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열람했다고 한다”는 구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