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돌아본 한국사회 단면
작년 10월 경 중국 우한 근처에서 발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국에서 지역사회전파(에피데믹) 단계에 접어들었다. 전염병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지만, 경험의 축적이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감쇄해주지는 못한다.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앞에서 공포에 떨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공포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험이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도 공포가 사그라들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해 현재까지 알려진 사항을 간략히 정리하며, 코로나19의 유행이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몇가지 살펴보고자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로 사람과 동물에게 호흡기, 소화기 감염을 일으킨다. 감기를 일으키는 200여 종류 바이러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스(SARS), 메르스(MERS)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에 비해 호흡기 세포에 달라붙는 힘이 강해 전염력이 높다고 한다. 인류가 경험한 감염병은 대개 치명률이 낮아야 전염력이 높다. 숙주가 오래 생존하기 때문이다.
아직 코로나19바이러스의 출발점은 명확하지 않다. 작년 11월~12월 경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수산시장에서 유통되던 야생동물에서 기원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바이러스의 전파속도를 고려할 때 10~11월 경 인간을 숙주로 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출현했을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중국 정부 역시 최초 감염자가 우한 수산시장에 방문하지 않았다고 공식 인정했다. 발원지로 지목되어 온 우한 수산시장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는 생물안전 최고등급(등급이 높을수록 위험성이 높은 바이러스를 다룬다)의 바이러스 연구소가 있다. 코로나19의 인위적인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WHO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치명률은 3.8%다. 그러나 올해 2월로 국한하면 0.7%다. 확진자수와 감염자수는 일치할 수 없다. 유행초기에는 진단기술의 미비로 감염자수 대비 확진자수 비율이 낮을수밖에 없다. 그만큼 치명률이 높게 나타난다. 앞으로 확진자수가 늘어날수록 치명률은 낮아지게 될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가 늘어남에 따라서도 치명률은 낮아질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유행한 독감의 치명률이 0.05%인 것과 비교하면 위험한 질병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지금 한국사회가 경험하는 수준의 공포는 지나치다.
방역은 애초에 정치적 판단과 개입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의 정보와 동선을 신속하게 공개했고 접촉자들을 자가격리시키며 시민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했다. 아마 의도는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처럼 확진자가 다녀간 곳의 상호와 시간까지 공개하여 신원을 특정시키는 나라는 없다. 보통 확진자의 개괄적인 정보만 공개하고,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와 유사한 기관이 접촉자를 파악하여 격리등의 조치를 취한다. 2015년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대응과 대비시키고자 하는 욕심이었을 터다. 2015년 당시에는 확진자 동선을 개괄적으로만 공개했는데, 당시 이러한 방식의 대응이 3차 감염까지 일으켰다는 비판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비판이었고, 문재인 정부의 대응 역시 감염병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시간으로 퍼지는 확진자 동선과 정보는 공포를 확대재생산시키는 효과만 낳았을 뿐이다.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시간을 벌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취지였다면 중국경유자 입국은 내버려둔 채 한국 내 확진자만 좇는 것은 더욱 의미없는 일이었다.1중국경유자 입국을 막았어야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과 중국의 인적, 물적 교류의 밀도는 매우 높아 그러한 조치 역시 비현실적이다.
대구경북지역의 병상부족도 사태를 악화시키며 공포를 키웠다. 중증환자 중심으로 입원치료를 해야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확진되는 대로 입원을 시키다보니 금새 병상이 바닥난 탓이다. 여기에는 공공병상 문제도 결부되어 있다. 2015년 메르스 유행 때 이미 공공병상 부족 문제가 지적됐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도 개선되지 않았다. 도리어 2018년 공공병상 비중은 박근혜 정부 때보다 낮아져서 전체 병상 대비 10.0%에 불과하다.
정부 대응 실패의 최고점은 마스크 대란이다. 공포가 공포를 낳고 시민들은 대책과 정보를 요구하지만, 내놓을 뾰족한 내용이 없으니 정부로서도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마스크를 쓰라는 불충분한 안내였다. 그러나 WHO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에서 이야기하듯, 환자를 가까이에서 대면하는 사람 외에는 마스크를 쓰는 것이 감염병 확산을 막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마스크 가격이 10배 이상 치솟고, 정부가 개입하고 나섰음에도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지라 사람들의 공포심만 더 자라나고 있다. 마스크가 방역에 그리 중요한 물품이었다면 애초에 생산과 공급을 시장에 맡겨놓았으면 안될일이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그나마 운좋게 신천지가 공공의 적으로 떠오르게 되었지만, 문제의 핵심이 거기에 있지는 않다. 무능한 시장주의 정부와 임기응변식 대처의 합작품이다. 문재인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서 메르스 유행 때와 비교 선전하기 위해 공포를 조장했던 것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올해 드러난 정부의 감염병 대응은 메르스 때와 달라보이려 노력했지만 결국 다르지 않았다. 메르스 때와 다른 것도 있다. 메르스 땐 낙타가 책임을 뒤집어 썼지만, 지금 우리는 감염병의 확산이 사회구성원에 대한 혐오와 낙인을 어떻게 확산시키는지를 생생히 목도한다. 대중의 공포는 지배자들의 의도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문파가 자신들이 초래한 결과에 정치적 책임을 질 것 같지는 않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한국사회가 걱정되는 보다 근본적인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