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위기-암살ㆍ폭격, 거리의 저항자들, 그리고 파병

중동의 위기

암살ㆍ폭격, 거리의 저항자들, 그리고 파병

하성안(이윤보다 인간을)

 

0. 경악의 일주일

2020년 1월 3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 인근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내 쿠드스군1이란 군은 정규군과 혁명수비대, 경찰로 구성된다. 정규군과 혁명수비대가 모두 육해공군을 보유하고 있다. 혁명수비대 안에는 육해공군 외에도 별도로 ‘쿠드스군’과 ‘바시즈 향토군’이 있다. 대외작전을 맡고 있는 쿠드스는 레바논의 ‘헤즈볼라’나 이라크 내의 ‘시아파 민병대’ 등 친 이란 조직들을 지원하며 소위 ‘이슬람혁명을 수출하는 역할을 해 왔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의 ’이슬람국가‘(IS) 격퇴전도 앞장섰다.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가 미군의 드론공격으로 폭사했다. 이 공격은 미 대통령 트럼프의 ‘참수작전’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이란 뿐 아니라 온 세계가 경악했다. 변명할 여지없는 명백한 주권침해일 뿐 아니라, 국제법 위반이었다. 이란은 보복을 다짐했으나 ‘도발자’ 트럼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오히려 “테러리스트를 제거했을 뿐이다”라든지, 이란이 보복하면 다시 보복할 목적으로 “문화적으로 중요한 52곳의 목표물을 타격점으로 정해놨다”고 말하는 등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언행을 지속했다. 사람들의 뇌리에 전쟁이라는 불길한 단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불행히도 ‘경악할 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암살사건의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1월 8일, 이란은 이라크 서부 안바르주의 아인 아사드와 북부의 아르빌에 있는 미군기지에 보복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긴장은 한층 더 높아졌다. 전 세계 언론이 다투어 이란의 보복공격을 전하던 그 때, 테헤란 공항을 출발한 우크라이나 여객기 한 대가 추락했다는 뉴스도 함께 전파를 탔다. 이란 당국은 ‘기체 결함’ 가능성을 언급하며 근접한 시간에 있었던 보복 미사일공격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이후 여기저기에서 하나 둘 드러나는 증거 앞에 결국에는,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방공군이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적군의 미사일공격으로 오인하고 미사일로 격추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이란이 장기 두듯 주고받은 전쟁 놀음 중에 수많은 억울한 민간인들이 희생된 최악의 비극이었다.

세계는 다시 한 번 경악했고, 솔레이마니 추모와 반미구호로 가득 찼던 이란의 거리는 “하메네이2이란 신정체제의 최고지도자. 종교지도자이면서 동시에 실질적인 이란 최고권력자.는 살인자”, “적은 미국이 아니라 이곳에 있다”라는 반정부 구호로 뒤덮였다. 단 1주일 만에, 전 세계를 경악시킨 일대 사건의 파문이 중동에서 출발해 전 세계를 두 번씩이나 휩쓸고 지나갔다. 전쟁, 유가급등, 경기침체 같은 불길한 단어가 창문 밖에 어른거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의 사건의 전개를 볼 때, 그렇게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던 위험한 파고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잦아들었고, 적어도 즉각적인 전쟁개시라는 최악의 국면은 피해 지나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터지지 않았다고 폭탄이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금 중동은 뇌관이 제거되지 않은 폭탄과 같다. 그렇다면 이 폭탄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지금 그 앞에서 위험한 불장난을 벌이는 자들은 도대체 어떤 자들인가?

1. 이란 비핵화를 위한 노력과 실패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과 ‘미 대사관 점거 · 인질사건’ 이후로 미국은 이란과 적대관계를 이어왔다. 외교관계는 단절되었고, 미국은 이란을 경제적으로 봉쇄하는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 수십 년 간 두 국가 사이의 대립과 긴장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고, 2002년 부시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그 정점을 찍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이란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렸고, 석유 금수조치와 ‘세컨더리 보이콧’을 포함한 더 강력한 전방위적 경제봉쇄를 가했다. 암암리에 알카에다에 맞서는 대테러전쟁에 힘을 보태왔던 이란으로선 미국에게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되었다. 어쨌든 감당하기 힘든 제재로 존망의 위기에 처한 이란은 체제수호를 위해 ‘핵 개발’이라는 금단의 카드를 꺼내들고 말았다. 핵무기 개발을 위한 우라늄농축공정 개시와 사거리 수 천km에 이르는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올인한 이 선택은, 뜻한 바와는 달리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이지 못했다. 오히려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대한 징벌로써, ‘유엔 안보리의 결의’라는 형태의 (국제사회가 동참하는) 더 강화되고 폭넓은 경제제재가 들이닥쳤고, 이란 경제는 도저히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게 되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심각한 경제난과, 일상 깊이 미치는 종교원리주의적 · 퇴행적 억압정책은 이란 민중들의 불만과 저항을 불러왔다. 그 결과 협상을 중시하는 온건개혁파가 조금씩 세를 얻기 시작했으며, 강경보수파의 분열과 퇴조 속에 대미 협상파인 하산 로하니가 대통령 당선되기에 이르렀다.

로하니로 대표되는 온건협상파가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전면에 나서게 되자 극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의 기회가 열리게 되었다. 로하니와 오바마의 전화통화라는 극적인 계기로 물꼬를 튼 뒤 협상은 급진전을 이루었고, 그 성과물로 탄생한 것이 2015년에 체결된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3유엔 안보리상임이사국(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과 독일의 6개국(P5+1)과 이란 간의 합의로, 이란이 민감한 핵활동을 자제하고 이를 국제사회가 점검할 수 있도록 하는 대가로 미국 등이 제재 일부를 해제하는 것이 골자다.이다. 이후 석유 금수조치가 제한적으로 풀리고, 시리아와 이라크에서의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서 미국과 이란의 ‘암묵적 동맹’이 형성되면서 양국 간의 긴장은 현저히 완화되는 듯이 보였다.

허나 해빙기는 짧았다. 2017년, 미국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 파국의 첫 신호였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모든 정책을 뒤엎는 것에 몰두하던 그는, 2018년 5월에 JCPOA에서 미국을 일방적으로 탈퇴시켰다. 미국의 대 이란 전면적 제재가 재개되었고, 양국 간의 긴장은 또다시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에서 유조선을 나포하는 일이 있었고, 이란이 자국 내를 비행중인 미국의 무인정찰기를 격추시키는 군사적 충돌까지 발생했다. 정찰드론이 격추된 직후, 트럼프는 이란 폭격을 명령했다 바로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이기까지 했다. 전쟁 직전까지 간 것이다.

최근의 일련의 갈등과 긴장고조는, 이란을 위협해 새로운 합의를 강요하고자 하는 트럼프의 정치 · 군사적 의도와, 경제재재로 극단적 위기로 몰린 이란 수뇌부의 대미 적대행위 간의 충돌양상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탈퇴에도 JCPOA의 큰 틀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던 유럽국가들도 우크라이나 민항기 격추사건 이후에는 점차 이란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유럽국가들은 현재는 JCPOA합의의 유효성을 재검토하는 분쟁조정절차 착수를 선언했다. 미국은 유럽국가들의 즉각 탈퇴를 압박하고 있지만, 영국 프랑스 등은 (아직은) 합의 준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제, 합의를 유지할지 깰지는 다시 이란의 선택으로 넘어왔다.42020년 1월 5일, 이란은 핵합의에서 정한 핵 프로그램 동결 제한 규정을 더 이상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의 합의 폐기로 볼 수 있으나, 이것이 곧바로 이란의 ‘핵합의 탈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러나 지금도 긴장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1월 20일에는, 경우에 따라서는 이란이 NPT(핵확산금지조약)마저 탈퇴할 수 있다는 이란 외무장관의 선언도 있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아직 전쟁의 불씨는 완전히 죽지 않았다.

2. 또 다른 변수: 패권 경쟁

이 지역 위기를 증폭시키는 또 하나의 변수는 이란-사우디 간의 ‘패권 경쟁’이다. 중동의 이슬람지역은 민족적으로나 종파적으로나 크게 둘로 나뉘어 있다. 먼저, 민족적으로는 ‘아랍계 민족들’과 ‘아리안계 페르시아민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란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국가들은 아랍계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이란만이 아리안계 페르시아민족이다.

이어서, 종파적인 구성은 크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 있다. 중동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수니파가 절대적 다수를 이루고 있으며, 소수파인 시아파는 이란에서만 절대다수를 형성하고 있다. 이란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이라크 남부와 시리아와 레바논 등에 분포하고 있다.
이렇게 중첩적으로 복잡하게 나뉘어 있는 중동의 이슬람세계에서 ‘수니파의 맹주’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차지하고 있고, ‘시아파의 맹주’는 이란이 맡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이해를 돕기 위한 평면적, 도식적 분석에 머무른다. 실제의 대립구도는 결코 단순하지 않고 종교적 · 민족적 · 역사적 배경이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어서 총체적인 이해도, 궁극적인 해결의 모색도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근대 이후, 서구 제국주의열강에 의한 중동 침략과 식민주의의 결과로 종파적 · 민족적 대립구도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처럼 복잡한 구도 아래에서 잠복하던 두 패권국 간의 경쟁이 수면 위로 떠올라 폭발하게 된 계기는, 수니파 세계에서 사우디를 위협하던 준(準) 패권국 이라크를 미국이 전쟁으로 쑥밭을 만듦으로써 시작되었다. 후세인(수니파)정권이 전쟁으로 몰락하고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힘의 공백지대가 생겼고, 그 틈을 이슬람극단주의세력이 치고 들어왔다. 그것이 바로 ‘이슬람국가'(ISIL)다.

이후 이라크지역의 안정화를 위한 미국의 노력은 IS격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그 과정에서 ‘남부 시아파-북부 쿠르드 자치정부’의 연합정권으로 힘의 공백을 간신히 메웠다. 결과적으로 이라크가 수니파의 세력권에서 시아파 세력권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양 강국의 패권대결의 균형추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더구나 IS격퇴전의 주전선이 시리아로 옮겨가면서 이란의 영향권은 이라크 국경을 넘어 시리아, 레바논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란 세력 확대의 최선두에 선 것이 바로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이었고, 암살당한 솔레이마니 사령관이었다.

국제적 포위공격 속에 시리아에서도 IS 최종격퇴가 임박하게 되자, 미국-사우디-이란-러시아의 암묵적 ‘공적(共敵)’은 소멸되었다. 한시적으로 손을 잡았던 이들이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돌리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그러나 이미 지역 내 세력균형은 크게 흔들렸고, ‘시아파 초승달지대’(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가 형성되면서 패권경쟁에서 사우디가 수세로 몰리는 형국이 되었다. 더 나아가, 이란은 사우디와 국경을 맞댄 남쪽의 예멘에서 내전이 발발하자 시아파 후티반군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사우디를 남북 양쪽에서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더 이상 밀릴 수 없었던 사우디는 예멘내전에 전면적으로 개입하여 후티반군 소탕전에 나섰고, 예멘내전은 사우디 대 이란의 대리전으로 비화했다.

패권경쟁의 불티는 페르시아만에도 옮겨 붙었다. 2019년 9월, 페르시아만 연안에 위치한 사우디 국영석유기업 아람코의 유전과 정유시설이 드론공격에 의해 파괴되는 일5사우디 산유량 반토막 낸 드론 테러…美 “이란이 공격했다”(2019.9.15. 중앙일보)이 발생했다. 예멘 후티반군은 즉시 자신들이 공격을 실행했다 자인했으며, 사우디와 그 동맹국인 미국은 즉각적으로 공격의 배후조종자로 이란을 지목하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특히, 미국은 이 공격을 직접 프로그램한 인물로 이란 쿠드스군의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지목하고, 그때부터 구체적 제거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나의 불씨가 또 다른 불씨의 원인이 되고 있었다.

3. 이라크, ‘미-이란 대리전’의 전장이 되다.

이라크는 지금 ‘반정부시위’와 ‘반이란시위’, ‘반미시위’가 교대로 일어나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있다. 어제는 이란영사관이 습격당하고, 오늘은 미국대사관에 로켓탄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미국의 침공 이후로 지금까지, 내전과 IS격퇴전 등으로 전쟁의 포화가 멈추지 않던 이 불운한 나라는, 이제 극심한 내부분열로 인해 국가해체의 직전의 단계로까지 몰리고 있다.

미-이라크전쟁이 후세인정권의 몰락으로 마무리되자, 북부의 쿠르드자치정부는 유전지대를 장악하여 이라크 국부의 대부분을 거머쥐었을 뿐 아니라, 미군의 주둔을 용인하는 대가로 안정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중부와 남부지역은 오랜 전쟁과 내전의 과정에서 황폐해졌을 뿐 아니라, 남부를 근거로 한 시아파정부가 권력을 독점한 뒤 부패와 무능에 빠져 민중들은 생필품마저 구하기 힘든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전쟁으로 붕괴된 경제질서 위에 권력자들의 부패로 생필품 품귀와 가격 급등이 이어지자, 결국 참지 못한 이라크 민중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작년부터 수도인 바그다드와 주요 도시로 격렬한 반정부시위가 번져나갔고, 이라크정부군과 각 지역 민병대는 최루탄을 난사하고 총기발포도 서슴지 않으면서 잔인하게 진압했다. 머리에 최루탄이 박히고, 등에 총을 맞은 사망자가 거리를 뒤덮었다. 단기간에 (비공식집계로) 1천여 명이 진압과정에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가공할 폭압 속에서도 거리로 나온 시위대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를 규탄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부패 무능한 시아파 정권을 지지하고, 저항하는 시민을 마구잡이로 학살하는 민병대를 후원하는 이란이야말로 이 사태의 진정한 원흉이라 지목했다. 여기에는 민족적 · 종파적 반감이 강하게 작용했음도 분명하다. 이라크 민중의 반이란 감정의 폭발을 상징하는 장면이 시위대가 이란영사관을 방화 공격했던 사건6이라크,’이란 영사관 방화‘에 강경 진압…“30명 이상 숨져”(2019.11.29. 뉴스1)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에 의해 침략당한 나라로서 반미감정 역시 이라크 민중들 사이에 엄연한 현실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권력의 중추에서 밀려난 다수 수니파세력 뿐 아니라, 친 이란적 성향의 소수 시아파세력이 모두 미국을 증오한다. 이들에게 미군은 침략군이며, 이라크의 진정한 해방은 모든 미군을 이라크에서 몰아내는 일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라크 민족주의’ 내부에서, ‘반이란의 축’과 전혀 다른 방향과 맥락 속에 ‘반미의 축’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와 같은 반미투쟁이 촉발한 일련의 사태의 흐름과 연쇄 속에서, 솔레이마니 암살사건이 직접적으로 엮여 들어가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간단히 그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이라크 북부의 키르쿠크에서 친이란 시아파민병대 ‘카타이브 헤즈볼라’가 미군기지에 로켓포 공격을 가해 미국인 1명 사망(2019.12.27) → 미군의 보복공격, 카타이브 헤즈볼라 거점 공습으로 민병대 포함 25명 사망(12.29) → 헤즈볼라 대원과 친이란 시위대가 바그다드의 ‘그린존’ 내의 미국 대사관을 습격하고 점거 기도(12.31) → 미군 드론폭격으로 솔레이마니 암살(2020.1.3)

그 결과 이제 이라크는, 미국과 이란의 격렬한 대립과 긴장이 ‘미-이란 직접 전쟁’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우회하는, 묘한 대리전의 전장이 되어버렸다. 미국과 이란의 대립이 표면적으로 더욱 격렬해질수록 이라크의 혼란과 폭력의 정도는 심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란을 대리한 시아파 민병대는 미군 기지를 더 자주 습격할 것이며, 시아파정권의 실정에 항의하는 민중의 저항은 미국과 그 동맹세력의 암묵적 지지 속에 격화될 것이다.

IS를 최종적으로 절멸시키고 지역을 안정화하는 조건으로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수를 공약했던 트럼프의 계획과는 달리, 이라크는 미국에게 또 다른 아프간, 또 다른 베트남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런가 하면, 이란은 권력과 체제의 위기를 외부의 적에 대한 증오와 폭력으로 돌리는 일에 이웃나라 이라크를 ‘희생양’ 삼는 일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격렬한 외교적 수사와는 달리, 현 시점에서 미국과의 전면전은 체제붕괴를 불러올 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과 이란의 격렬한 대결구도에서 비롯된 폭력과 증오와 전쟁의 암운은, 지정학적 불운(!)에 처한 이라크의 머리 위에 보다 더 짙고 어둡게 드리우고 있는 셈이다.

4. 하나가 아닌 이란: 민중의 투쟁

1979년 이슬람혁명의 결과로 이란에는 신정체제가 들어섰다. 팔레비정권의 친미-세속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종교적 권위를 앞세운 퇴행적 억압정치가 이란을 지배했다. 사회주의자를 비롯한 모든 반정부인사는 재판 없이 체포, 투옥, 고문, 살해되었다. 지식인과 저항세력은 지하로 숨거나 국경을 넘어 탈출했다.

‘미대사관 인질사건’ 이후 개시된 경제제재로 촉발된 경제위기는 비판자가 사라진 신정체제를 더욱 억압적이고 군사모험주의적인 방향으로 이끌었고, 미국의 사주로 후세인정권의 이라크가 도발한 이란-이라크전쟁의 영향은 이란 권력 내부에서 군부의 힘이 강해지는 계기되었다. 그중에서도 이슬람혁명을 수출하는 첨병이었던 혁명수비대와 산하의 쿠드스군은 보수적 종교권력과 굳건한 동맹을 형성했으며, 이란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권력의 양대 축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퇴행적 신정체제는 이란 민중의 삶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자유와 인권을 짓밟았다. 신정경찰이 거리를 배회하며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체포했다. 경제봉쇄로 일반시민은 생필품마저 부족한데, 권력 핵심의 일부 부패세력은 온갖 사치품과 향락을 즐겼다. 음악도 마음대로 들을 수 없었으며, 문학이라도 예외 없이 검열되었다. 인터넷과 방송, 통신이 검열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시위라도 벌어지는 날에는 인터넷이 먹통이 되는 일이 빈번했다. 거리에는 살벌한 반미구호와 순교자를 기리는 문구, 최고지도자를 찬양하는 문구만 가득했다… 이렇게 시대를 역행하는 황당한 일들이 우리와 21세기 동시대를 사는 이란 민중들에게는 일상이었다.
이런 억압 아래에서 민중의 불만이 누적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신정체제는 민중의 불만을 더욱 강력한 억압과 외부의 적에 대한 선동 · 동원으로 회피해 왔다.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반정부시위는 잔인하게 진압되었고, 그 배후에는 이슬람혁명의 적, 미국의 스파이가 암약하고 있다고 선전되었다.

그러나, 권력의 강력한 억압에는 꼭 그만큼이나 끈질긴 인민의 저항이 있었다. 수많은 이란 인민이 거리에서 외치다 죽어갔다. 죽음을 무릅쓴 민중의 끈질긴 저항은 미약하나마 제도권 내 온건개혁세력을 키워내는 밑거름이 되었다. 극단적 종교통치를 완화해 경직된 사회분위기를 개선하고, 미국과 협상해서라도 경제제재를 풀고 경제난을 해결해 가자는 주장이 목소리를 얻기 시작했다. 마침내 개혁세력이 선거에서 승리하고 하산 로하니가 이란의 대통령이 되었다. 앞서 보았듯 로하니는 미국과의 극적인 협상을 이끌어냈고,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협상과정은 지루할 정도로 길게 이어졌고, JCPOA가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면적인 경제제재 완화는 지연되었다. 대통령은 개혁파 로하니였으나 실질적인 최고권력자는 종교지도자 하메네이였고, 종교권력과 혁명수비대의 권력동맹은 굳건했다. 대미협상의 정체와 함께 의욕적인 개혁정책도 번번이 좌절되었고, 이란 민중은 무능한 로하니정권에 대해서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트럼프에 의해 미국이 핵합의에서 이탈하는 돌발상황이 벌어지고, 일시 완화되었던 경제제재가 다시 강화되어 경제난이 다시 심화되자, 이란 민중들의 실망과 불만은 급속도로 커져갔다. 이란 민중의 화살은 로하니정권의 실정에 대한 비판에만 머물지 않았다. 경제봉쇄가 지속되는 원인을, 이란 종교권력과 혁명수비대의 권력동맹이 사우디와의 패권경쟁과 반미적인 군사모험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에서 찾기 시작했다. 패권 강화를 위해 이라크와 레바논에 쏟아 붓는 혁명자금을 지금 당장 이란 국내 경제난 해결로 돌리라는 요구였다.

이런 험악한 상황에서 작년 11월 14일, 이란정부가 갑자기 휘발유값을 최대 2배 인상하는 조치를 취하자 급기야 이란 인민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7이란, 유가인상 항의 시위 ‘폭동’ 규정…”1천명 체포”(2019.11.18. 연합뉴스)했다. 수도인 테헤란을 비롯해 주요도시에서 전에 없던 격렬한 반정부시위가 벌어졌고, 정부는 외부세계와의 인터넷 연결을 차단한 채 잔인하게 시위를 진압했다. 단순히 정권의 안위에서 머물지 않고, 이란 이슬람공화국 신정체제 자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심각한 위기8일부 시위대가 이슬람혁명을 상징하는 ‘아야톨라 호메이니’와 관련된 상징물을 불태웠을 뿐 아니라, 공공연히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비난하는 구호와 ‘신정체제를 타도하자’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였다.

상황을 급반전시킨 것은 미군의 솔레이마니 암살이었다. 이란 종교권력은 신속히 솔레이마니를 순교자로 지정하고 성대한 장례식을 거행했다. 얼마 전까지 반정부시위대로 가득했던 거리가 순교자를 추모하고, 미국에 대한 즉각적인 보복을 다짐하는 인파와 구호로 메워졌다. 이란 신정체제에게는 인민의 불만을 ‘순교자에 대한 보복’이라는 명분으로 미제국주의라는 외부의 적에게로 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어떤 운명의 장난인가… 이런 이란 지도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멀미나는 속도의 급반전이 또 다시 일어났다. 앞서 보았듯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에 미사일 보복 공습을 하는 과정에서, 이란 군부의 끔찍한 실수로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격추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황한 군부는 사건을 은폐 조작하려다, 결정적인 증거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시인해야만 했다. 희생당한 176명의 무고한 시민은 우크라이나, 캐나다 등의 다른 여러 나라의 국적을 가졌으나 대부분 경제난을 피해 일자리를 구하러 떠난 이란인들이었다. 다시 거리는 분노한 반정부시위대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하메네이는 살인자”와 같은 구호가 울려퍼지며 이란 신정체제는 또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이슬람을 혐오하며 편협하고 극단적인 사고를 하는 트럼프 같은 자의 생각과는 달리, 이란은 하나의 단일한 덩어리도 아니다. 또한 ‘이슬람’, ‘반미’, ‘독재’와 같은 한 두 단어로 온전히 규정될 수도 없다. 이란 인민들은 팔레비 샤의 독재에 맞서 이슬람혁명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그 혁명정부가 다시 자신들의 억압자로 군림하자 거리에서 끈질기게 싸워 오기도 했다. 근대 이후 이란의 복잡다단한 역사 속에서, 외세의 침략과 권력의 압제에 맞서는 인민의 투쟁이 하나하나의 계기 속에서 구체적이고 역동적인 이란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앞으로도 변함이 없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다. 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5. 지속되는 위기와 커지는 불확실성: 그런데, 전투부대 파병!?

현재 미국과 이란은 전쟁에 대해서는 일정한 선을 그은 채로 긴장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앞서 살펴 본 것처럼, 미국도 이란도 현 상황에서의 전면전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은 올 11월에 대선을 앞두고 있으며, 이란은 다가오는 2월에 총선이 있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입장에서, 중동에서의 전면철수를 공언한 자신의 공약을 깨고 전쟁을 개시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란 역시, 압도적인 군사력의 격차를 알면서도 미국과의 전면전을 개시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란의 2월 총선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2개월 전과는 달라진 국면 속에서 혹시라도 온건개혁파가 다시 부상하게 된다면, 미국과의 협상에 다시 새로운 계기가 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미국의 강경한 입장 북한에 요구한 것과 같은 기준, 즉, ‘핵 동결’과 ‘장거리 발사체 폐기’ 등을 요구하고 있다. 체제수호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이란도 북한과 같은 입장이다. ‘체제 보장’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이 ‘방패’를 스스로 걷을 수 있을까? ‘리비아식 해결’은 결단코 피하고자 할 것이다. 이 협상의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있어 합의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면전을 회피하기 위한 반작용으로, 지역 내에서의 국지적 군사행동과 충돌은 오히려 급증할 우려가 있다. 이라크나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에서 친이란조직에 의한 미군시설을 공격하는 일이 잦아질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그 지역 내에서의 반이란 움직임이 강화되고 해당 국가의 정세가 불안해질 가능성도 크다. 뿐만 아니라, IS 격퇴전 과정에서 암묵적으로 형성되었던 국제적 공조(미국-사우디-이란-러시아)가 느슨해지거나 해체되는 과정에서, 죽어가던 IS나 알카에다와 같은 수니파 극단주의세력이 다시 대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북-미관계에 미치는 영향도 생각해 봐야 한다. 북한 입장에서도, 비슷한 처지인 이란을 다루는 미국의 태도나 전술 등을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미국의 입장에서는, 당분간은 북한 문제를 이란 문제에 비해 후순위에 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정세의 변화가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정착’이라는 과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살펴야 할 것이다.

긴장은 페르시아만에서도 높아질 것이다. 세계 원유수송물량의 상당 부분이 통과하는 이 해역에서 긴장고조는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파급효과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미 미국은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의 원유수송로를 봉쇄할 경우를 대비한 ‘국제해양안보구상’(IMCS · 호위연합체)을 구성하고 동맹국의 동참을 압박해 왔다. 영국과 호주가 이에 참가한 가운데, 프랑스와 독일은 참가를 거부하고 유럽차원의 독자적인 호위부대 편성을 추진 중이며, 일본은 해상자위대 독자파병을 결정했다.

주한미군 방위비협상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했던 한국은 궁여지책으로, ‘호위연합체’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 아덴만에 주둔했던 ‘청해부대’의 작전범위를 페르시아만까지 확장하는 형식으로 ‘독자파병’이라는 선택을 했다. 미국은 환영했고, 이란은 반발했다.

청해부대의 ‘작전범위 확대’라는 편법파병을 통해, 국군병력의 해외파병 시에 반드시 거치도록 되어 있는 ‘국회 동의절차’를 건너 뛴 것이 위헌적 조치라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군사충돌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진 해역에 당사국 이란의 반발을 무릅쓰고 무장병력을 파병하는 것이 오히려 해당지역 내에 주재하는 자국민의 안위를 위협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중동지역에는 현재 약 2만5천여 명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전투병 파병 결정은, 국제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전쟁위기를 불러일으킨 ‘깡패국가’ 미국의 더러운 침략행위에 적극 동조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지적해 두고 싶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16년 전 자이툰 부대 파병으로 희생된 ‘김선일’을… (끝)

Post Author: 전북노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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