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론을 둘러싼 쟁점
기본소득 도입 주장 확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민주노총에서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라는 소책자를 발행하여 자본주의체제 위기 극복의 방안으로 기본소득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이후에도 강남훈교수 등 학계 일부와 진보세력 일부가 지속적으로 기본소득제의 실시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왔으나, 파급이 크지 않았다. 그러던 중, 성남시에서 지역의 청년들에게 청년수당을 지급하고, 뒤이어 경기도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의 청년수당을 지급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2020년 1월에는 기본소득당이 출범하기도 했다. 2020년 초부터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대유행하고, 경제위기에 대한 대책으로 전국민에게 재난기금이라는 기본소득과 유사한 형태의 기금이 지급되면서, 일회성이 아닌 정기적이고 보편적인 복지정책으로 기본소득 도입이 공공연하게 제기되고 있다.
기본소득당은 “모든 국민에게 조건없이 주어지는 충분한 기본소득은, 선별적 복지제도로 인한 사각지대와 불필요한 행정 비용을 없애면서도 현재 헌법이 보장하는 것처럼,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 것이다.”라며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청년수당을 도입했던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지금까지 노동은 생존을 위해 돈을 버는 수단이고 삶은 생존투쟁이었지만, 기본소득이 시행되면 노동은 자기실현 수단이고 삶은 행복을 추구하는 여정이 된다”라고 말하며 기본소득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심지어 김종인, 안철수씨 등 정당 지도자들도 기본소득 도입을 제기장하고 있으니, 기본소득 도입이 21대 국회 및 차기 대선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기업 경영자들도 꽤 적극적이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본소득과 같은, 모든 이에게 ‘쿠션’이 되어 줄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나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 등 미국 실리콘밸리의 주요 인사들도 기본소득을 지지한다. 사람들이 비록 일자리를 잃더라도 꾸준히 소비를 할 수 있어야 경제가 계속 굴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개념 및 역사, 그리고 기본소득에 대한 여러 주장들을 개괄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기본소득 개념 및 역사
기본소득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정부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을 말하는데, 세 가지 점에서 기존 사회보장제도와 다르다. 첫째,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는 보편적 보장소득이다. 둘째, 자산 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지급하는 무조건적 보장소득이다, 셋째, 가구 단위가 아닌 구성원 개개인에게 직접 지급하는 개별적 보장소득이다.
이런 기본소득을 도입하자고 주장했던 역사는 그렇게 짧지 않다. 자본주의가 출연하기 시작하면서 기본소득 도입 제기도 함께 시작하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한 인물로 토머스 모어가 있다. 그는 1516년 <유토피아〉에서 “도둑질이 음식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지구상의 어떤 처벌로도 도둑질은 멎지 않을 것이다”라며 “끔직한 처벌 대신 모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 생활수단을 주는 것”이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정치사상가 토머스 페인은 1796년〈토지정의〉에서 토지 보유로 얻은 지대소득에서 국가 기금을 거두어 50세 이상 노령층에게 매년 10파운드스털링의 소득을 주고, 21세가 된 성년에게 15파운드스털링을 주자는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
80여년 후 미국의 정치경제학자인 헨리 조지도 1879년 〈진보와 빈곤〉에서 “토지는 모든 사람의 공유유산이며, 모든 사람은 거기서 나오는 지대소득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헨리조지의 주장은‘토지 소유자에게 적정 수준의‘토지보유세’를 징수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자.’는 이재명경기지사 등의 제기에 역사적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그 후 영국의 사회비평가 겸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1918년에 출판된 <자유로 향하는 길>에서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의 장점들을 결합시키는 사회모델에 관해 논하면서 “이것 중 하나의 핵심요소는 ‘필수품을 마련하기에 충분한’조건 없는 기본소득이다.”라고 하면서, “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필수품을 마련하기에 충분한 일정한 금액의 적은 소득은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한다.” 며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였다.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사용한 인물은 옥스퍼드대학교의 경제학자 조지 D. H. 콜 이었다. 그는 자신의 책 <사회주의 사상사>(1953년)에서 처음으로 “기본소득”이라는 영어 표현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기본소득”이란 표현은 1980년대에 국제적인 토론이 이루어지면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현대적인 이론적 체계를 갖춘 것은, 네덜란드의 판 더 벤과 벨기에의 빠레이스가 1986년에 공동으로 쓴 논문 <코뮌주의에 이르는 자본주의적 길>을 통해서이다. 철학적·경제학적 틀을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Basic Income Earth Network)’창설을 주도하였다. 1986년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BIEN)로 출발한 연대체는 2004년 9월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제10차 대회에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로 확대되었다.
한국에서 기본소득 논의는 1990년대 후반부터 간헐적으로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본격화된 것은 2006년부터 철학·사회복지학·경제학·법학ㆍ사회학 연구자들이 기본소득론을 소개하며 주창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라는 것에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2007년에는 사회당이 부분적인 기본소득을 대선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논의 및 운동의 확산과 호응이 급격히 증폭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초 민주노총에서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라는 소책자를 출간하고, 인터넷 사이트 ‘기본소득네트워크’가 출범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2009년 여름에 열린 ‘맑스코뮤날레’와 ‘한국사회포럼’을 통해 진보적인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에게서 대안적 아젠다로 부상했다.
기본소득의 실행 사례
500여년 전부터 주장되었던 기본소득 도입은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세계 곳곳에서 집행되고 있다. 가장 먼저 미국 알래스카주는 알래스카영구기금을 설치해 1982년부터 모든 주민에게 1년에 1회 1,000달러~3,000달러 정도의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나미비아 오티베로-오미타라 마을에서는 60세 이하 모든 거주자에게 100나미비아달러(약 19,000원)를 지급하였다. 핀란드의 경우 2017년~2018년 실업자 2,000명을 대상으로 직업을 구하든, 구하지 못하든 상관없이 2년간 매달 560유로(약 76만원)를 지급하였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2017년 일정 소득 이하 저소득층 4,000명에게 3년간 매달 1,320캐나다달러(약 115만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시,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에서도 비슷한 제도가 운영되기도 하였다.
가장 완벽한 방식의 기본소득 실험은 2016년 스위스가 시도했다. 전 국민에게 조건없이 매달 2,500스위스프랑(약 320만원)을 지급하는 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근로의욕을 떨어뜨리고 막대한 재원 부담만 안겨 줄 것이란 우려 탓에 국민투표에서 부결되고 말았다.
국내에서도 2016년 경기 성남시에서 청년배당이라는 이름의 청년수당을 지급하고, 이것이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달고 경기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비슷한 성격의 청년수당과 농민수당이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등장했다. 서울시는 일정 요건을 갖춘 미취업 청년들에게 6개월간 매달 50만원, 경기도는 만 24세가 된 청년에게 1년간 100만원을 준다. 전남 해남군에서는 농가당 연간 60만원을 주는 농민수당을 도입했고, 전남, 전북, 충남, 강원, 울산도 농민공익수당을 지급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했다.
기본소득이 주장된 배경
‘지금 폐업을 앞두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어떤 대책이 있을 수 있는가? 사업주는 수출도 안되고 납품할 길도 막혀서 도망가버렸다. 이런 기업의 노동자들에게 어떤 가능한 방안이 있는가? 우선 실업수당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제도로는 1년도 버틸 수가 없고 수당도 50%가 안되는 현실이다. 사장이 도망갔는데 누구에게 고용을 보장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경기가 앞으로 좋아질 가능성도 없다. 눈높이를 낮추어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치킨집이나 분식집을 알아보지만 이미 포화상태인데다 임대료도 너무 높다. 자! 이런 노동자에게 총고용보장이라는 요구는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 폐업을 앞둔 노동자. 장기 실업자. 적자상태에 돌입한 영세상인들. 취직을 못하고 있는 젊은이들 수백만의 당장 생계가 걱정인 대중들에게 자살말고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적 요구가 있다면 그것은 국가가 기본소득을 책임지고 실시하라는 단체행동이다. 적어도 기본적 생존권리는 보장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아닌가?’ –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2009. 민주노총) 中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실업 및 불안전노동의 증가와 경제 위기를 불러 왔으며 소득 불평등을 심화 시키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 할 방안으로 유력하게 거론 되고 있는 것이 기본소득의 도입 주장이다.
기본 소득을 제안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어렵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들의 확대로 노동소득이 줄어들면서 상품에 대한 구매력 저하는 만성적인 수요부족을 유발하고 이는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통해 최소한의 구매력이라도 유지시켜줘야 일정한 성장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일자리 부족과 노동의 불안정 심화이다. 플랫폼 방식의 공유경제가 확대되고 서비스경제로 진입하면서 법과 제도로 규정될 수 있는‘노동’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비전형적 일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일자리들은 몇 년간 임금이 감소하고, 고용과 사회보장 측면에서 모두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있다.
셋째는 기존의 복지제도가 지니고 있는 행정적 비효율 문제다. 무조건 지급되는 기본소득 제도에서는 재산 조사나, 부양가족 조사, 노동 능력의 판정, 비자발적 실업의 입증, 부당수급자의 적발 등을 위한 행정적 낭비가 상당히 해소된다. 또한 현재의 복지 시스템은 자격이 있는 사람마저도 자신이 해당자인지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난해한 각종 사항들로 채워져 있다. 따라서 어떤 복지시스템이 있는지를 알리고 운영하는 데만도 엄청난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반면 기본소득 제도는 별다른 조사나 행정적 조치 없이 간단하게‘입금’하는 것만으로 모든 사람이 수혜자가 될 수 있어, 복지사각지대를 줄이면서 행정적 비효율도 제거할 수 있다.
넷째로 노동강제로부터 벗어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고용에 목을 매는 것은 다르게 먹고 살 수 있는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른 조건이 없다면 나쁜 일자리(저임금, 장시간 노동, 위험한 일)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굳이 오랜 시간 일하지 않아도 되고, 임금이 적거나 위험한 일은 거부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렇게 된다면 사람들이 더 많은 시간을 문화 활동, 돌봄 노동, 정치 활동 같은 활동에 쏟을 수 있게 되어 이른바 문화 사회로 이행할 수 있고, 민주주의도 더욱 확장될 가능성이 열린다.
기본소득에 대한 여러 가지 쟁점들
기본소득을 실시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다양한 쟁점들이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사람에게 지급한다는 것에 대한 찬반의 문제다. 무상급식 논쟁에서도 발현되었듯이 “왜 부자들에게까지 돈을 주어야 하는가?”와 “왜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른바 베짱이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가?”라는 강한 거부감이 존재한다.
둘째, 기본소득을 현금(화폐)으로 지급하는 것에 대해서 일부 진보세력은“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존속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유지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또한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기업이 그만큼 임금을 덜 주어도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도 있다.
셋째, 지속가능성에 대한 내용이다. 일정한 액수 이상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소득이나 자산에 상당한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한국과 같이 조세부담률이 낮은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 그럴 경우 (보통, 보수세력아 많이 주장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경제 활동 자체가 위축되어 세원 자체가 소멸하여, 기본소득을 계속해서 지급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외에 다양한 입장에서의 비판적 의견이 존재한다. ‘생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물질적 소비를 줄여야 하는데,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소비를 늘릴 수 있다.’거나,‘국가가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때문에 국가주의가 강화되며, 이는 자율주의·무정부주의·비국가주의 등을 약화시켜 민주주의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등의 의견이다.
결
2009년 기본소득이 제기되면서, 보수진영은 공산주의 정책이라고 볼온화하였고, 대다수 진보진영은 무시하거나, 국민에게 돈 몇 푼 쥐어주고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감소시켜 체제를 유지하려는 정책이라고 폄하하였다.
10여년이 흐른 지금, 자본주의 구조적 경제위기 심화에 따른 성장 둔화와 경제적 불평등 심화, 인구의 고령화 및 감소, 4차 산업혁명과 기후위기, 전염병등으로 인한 비정규직 및 실업인구 급증 등 노동환경의 급격한 변화 등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기본소득 도입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기본소득 도입은 코로나19에 의한 피해의 보상으로 제공된 1회성 재난소득과는 달리 영구적으로 지급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나라의 북지체제의 근간을 바꾸는 일이 될 것이다. 사회적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 복지에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로 국가 사회보장제도의 틀 자체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에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전면 도입보다는 현행 사회복지제도와 절충하는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바로 기본소득을 지급하기에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 국민에게 일정한 기본소득을 주는 대신에 국민연금, 근로장려금, 기초연금, 실업급여 등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통합하고 기준 이하 소득을 얻는 국민에게만 보충적으로 소득을 지원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제도와 비교해 행정비용이 적게 들고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동시에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고 기본소득이 낮게 책정되면 평균적인 복지 수준이 하락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현재 세계 어느 나라도 기본소득 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해 운영해 본 나라가 없기 때문에 현재로선 그 실효성을 가늠하기도 어렵다. 그만큼 충분한 논의와 이를 바탕으로 도입 여부에 대한 입장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