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꿈꾸기를 위하여
김정훈(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대표)
지속 가능한 사회를 생각한다. 지구생태계는 지속이 가능해야 한다. 그 어떤 생태계 구성원 중에서도 이기적인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지구생태계가 지속이 가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제는 인간의 사회경제적인 체제 또는 구조이다. 자본 구조와 체제는 그 자체로 지속 가능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현재 자본 체제는 상시적인 경제 위기, 불평등, 자원의 고갈, 성장의 한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것이 생태계의 위기를 더불어 몰고 온 것이다. 자본을 대변하는 ‘OECD 교육 2030’조차도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사회는 급격하고 완전하게 변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자기증식적인 과학기술의 맹목적인 발전은 포화 상태에 이른 자본의 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노동자 민중에게 지속 가능한 사회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며, 누구나 평등하게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회가 아닐까? ‘급격하고 완전하게 변하는 사회’에서 다시 그들만의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게 놓아둘 수는 없다. 자본의 세계체제는 단순히 땜질 방식의 변화를 지향하고 있지 않다. 완전한 형태 전환적인 변혁(Transform)으로 위기를 현실로 받아들여 새로운 지배 질서를 구상하고 있다. 그 질서가 노동자 민중에게도 지속 가능한 사회일 것인가를 살펴보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사회운동이 절실하다.
한국 사회도 지속 가능성의 위기 앞에 늘 내몰려 있다. 형식적인 민주주의조차도 시시때때로 위협받고 있으며, 사회경제적 불안정성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그 위기와 불안정성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자본과 권력이 그들만의 ‘지속성’을 설계하고 꿈꾼다. 특히나 자유주의 포퓰리즘이 만연하는 시기에는 노동자 민중의 사회운동 세력조차도 좌표와 전망을 잃게 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코로나19와 2021년 사회정치 지형이 참으로 답답하다. 그렇다고 가슴만 내려치고 있을 것인가!
그들은 ‘지금, 이대로!’가 좋다. ‘급격하고 완전하게 변하는 사회’도 ‘지금, 이대로!’의 질서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따라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대로!’에서 머물지 않고 ‘급격하고 완전하게 변한 노동자 민중 세상’, 그런 변혁(Revolutoin)을 꿈꾸고 실천해왔다.
점점 다가오는 부르조아 대선 일정에서도 현재의 진보정당운동을 넘어서는 노동자 민중 후보를 내세울 포부가 과연 없겠는가. 흩어지고 있는 열망을 모아 노동사회운동의 구심과 진지를 다시 세워낼 정치의식의 확산에 불을 지필 수도 있다. 노동법 개악에 대항하는 노동법 전면 개정 투쟁, 알맹이가 빠진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대한 개정 투쟁, 코로나19에 따른 재정지원을 불평등 해소 재정으로 바꿔내기 등 투쟁 대상과 목표는 목에 차오를 만큼 있다. 그럼에도 전망의 부재를 호소하는 현실에서 살필 것은 우리 자신이다.
지역 토호들의 성벽이 날이 갈수록 굳건해지고 있다. 이 성벽, 무너뜨리지 않으면 변혁은 물론 변화도 요원하다. 지역에서의 정치적 노동사회운동의 복원이 시급하다. 전선체를 넘어서는 계급 연대, 조직 밖의 노동자 민중과의 연대의 구축이 토호들의 성벽을 무너뜨리는 무기가 될 것이다. ‘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회원 동지들의 새로운 각오와 역할이 요구된다. 파편화된 전망은 모여서 찾으면 된다. 다시 자기 단위와 연결된, 자기 단위를 넘어선 지역 연대와 투쟁 실천의 계기를 만들 때다. 얼굴 좀 보자! 함께 꿈을 꾸자! 노동자 민중에 의해 ‘급격하고 완전하게 변하는 사회’를 꿈꾸자. 그 지속 가능한 꿈꾸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