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스트가 돌아왔다?

파시스트가 돌아왔다?

–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 –

하성안(이윤보다인간을 활동가)

반갑지 않은 소식

이탈리아는 파시즘의 발상지이다. 무솔리니가 조직한 ‘검은 셔츠단’이 세계 최초의 파시스트 조직이었다.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의 영도 아래, 일치단결한 국민국가가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 민족의 영광과 번영을 달성한다.’를 약속으로, 전간기(戰間期)와 세계 대공황의 혼란기에 기성정치에 대한 불신을 파고들어 대중의 공포를 자극하는 선동과 기만술로 권력을 잡았다.

그 운동의 지도자 무솔리니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대중 선동술로 집권한 후, 노동조합과 공산주의자를 압살하고 정당민주주의를 정지시켜 이탈리아 전체를 일상적 전시동원체제로 묶어 세웠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나마 경제가 재건된 것처럼 보였고, 히틀러가 등장해서는 추축국 동맹을 맺으며 패권을 노렸다.

그 이후의 역사는 알다시피, 수천만의 인구가 스러져간 대(大) 전쟁이 전 세계를 휩쓸었고, 최종적으로는 ‘나치 독일-파시스트 이탈리아-군국주의 일본’의 패망으로 귀결되었다. 무솔리니는 패전이 임박했을 때, 자기 조국의 북부를 무력으로 점령한 나치독일에 부역하여 일시적으로나마 괴뢰국가의 수장 노릇을 하는 추태까지 보였다. 그의 최후는 처참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몰려 독일로 도주하던 도중, 항독 파르티잔에 체포당하자마자 총살당해서 도시의 중심가에 그와 그의 부인의 시체가 거꾸로 매달려 전시되었다.

그 이후 오랫동안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를 언급하는 것과 파시스트 정당의 창당은 공공연한 금기였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참극을 자행한 파시즘에 대한 사죄와 반성으로 일관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1960년대에 이탈리아의 극우들은 ‘MSI(이탈리아 사회운동)’라는 이름으로 암약하고 있었고,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 전 영역에 세력을 침투시켰다. 그때까지 파시스트 정당이 의회에 입성하는 것은, 이탈리아의 정당민주주의가 지키고자 했던 어떤 ‘선’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지난달이다. ‘이탈리아의 형제들(Fdi)’이라는 극우정당이 주도한 우익정당연합1이 총선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이 극우연정이 출범하게 된다면 그 총리가 될 인사는 제1당이 된 ‘이탈리아의 형제들’의 당수 ‘조르자 멜로니’라는 여성이다. 공공연하게 무솔리니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이민자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며, ‘유럽의 일원으로서의 이탈리아’보다는 ‘EU로부터 주권을 회복한 당당한 이탈리아’를 외치는 그의 총리 취임이 임박한 것이다. 이 소식을 받아든 지금,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놀랐다. ‘무솔리니 이후 100년 만에 극우정치인이 권력의 핵심부로 진출’, 금기가 깨어진 것이다.

이탈리아는, 그리고 유럽은 지금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

권위주의적 극우 포퓰리즘의 확산 배경

사실, 유럽에서의 극우 포퓰리즘의 부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반이민 정책으로 힘을 키운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의 대통령 후보 마린 르펜은 단골로 결선투표에 오르고, 최근 총선에서는 의석수를 대폭 늘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제3당이 되었다. 북유럽 복지국가의 모범이었던 스웨덴에서도 최근 총선에서 반이민 극우정당 ‘민주당’이 일거에 제2당으로 올라서면서, 우익연정이 탄생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우익연정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그들의 노골적인 반이민 정책에 다른 우익정당들이 그들과 함께 정부를 구성하는 일에 난색을 보였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역시 반이민정당 ‘대안당(Afd)’이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연방의회 및 주의회에서 꾸준히 그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다. 이런 식으로 민족주의 또는 반이민/반이슬람 정서를 기반으로 힘을 키워가고 있는 극우정당은 서유럽에서 동유럽, 남유럽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국가에 존재하고 있는 형편이다. (헝가리 ‘피데스’, 폴란드 ‘법과 정의’, 오스트리아 ‘자유당’, 그리스 ‘황금새벽’ 등) 한편으로 이런 경향이 유럽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다. 미국의 트럼프 집권과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집권, 필리핀의 두테르테 집권, 터키의 에르도안 장기독재 등…….

유럽의 정치지형, 나아가 세계 주요국들의 정치지형이 어째서 이렇게 극우화되고 배외적 민족주의 선동에 휩쓸리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세계화, 정치적 양극화, 주요 기관에 대한 신뢰 붕괴로 시민들이 기성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인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짚고 있다.

80년대 말 이래, 정통 우익뿐 아니라 중도 사회민주주의 세력들까지 ‘신자유주의 질서’를 전면적으로 수용하고 ‘긴축’을 실행하는 데 별 차이가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정부지출을 줄인다면서 복지를 삭감하고, 사회안전망을 자본주의 경쟁논리에 굴종시켜 흔드는 일에 더욱 열중했던 세력은 ‘제3의 길’을 공공연히 추구한 기존 사민당들이었다. 이와 동시에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체제는 노동자 간 경쟁을 강화하고 존재조건을 파편화해, 노동조합의 조직률 하락 등 노동자계급의 사회적-정치적 힘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 사민당들은 집권을 위해 더욱더 자신들의 정강·정책의 중심을 노동자계급에서 중산층으로 이동시키고, 여성·이민자 등 소수자권리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기존의 우익정당들은 노동계급 및 중간계급의 삶의 질 하락과 불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보였다. 극우세력이 이민문제 등에서 기인한 배외주의적 대중정서를 기반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자, 이에 부화뇌동해 자신들의 정치력을 확대하려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까지 했다. 극우 포퓰리즘이 표방하는 극단적 주장들을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단호히 배격하지 않고 방치했을 뿐만 아니라, 은근슬쩍 그 위에 올라타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땔감으로 삼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우익정당들(동맹, 전진하는 이탈리아 등)이 집권을 위해 한때는 ‘오성운동’을 이용했다가, 이제는 ‘이탈리아의 형제들’을 이용하는 측면이 크다. 그들의 방조와 활용 속에 극우가 틈새를 파고들어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 몰락과 소련·동구권 해체의 충격 속에서 좌파정치세력들은 사분오열하여 약화되거나, 점차 우경화하여 개혁주의정당이 되어갔다. 서유럽에 가장 강력한 공산당 중 하나였던 ‘이탈리아 공산당’은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주류는 중도개혁정당인 ‘민주당’이 되고, 비주류 좌파는 여러 소수정당으로 쪼개져버렸다.

한편 일부 국가들에서는 2008~2009년 금융위기에 대한 대중적 저항과 반란이 확산하는 속에서 새로운 좌파세력(그리스 시리자, 스페인 포데모스, 프랑스 엥수미즈 등)이 성장하고 있기는 하다.

2008~2009 금융위기 이후, 극우의 세력 확대와 새로운 좌파의 성장은 유럽의 정치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하나의 경향이었다. 교대로 권력을 주고받으면서도 ‘신자유주의’를 공유했던 중도우파-중도좌파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지속해서 하락했다.

그러나, 2019년부터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 팬데믹’은 반지성적 ‘탈진실(post-truth)’을 근거로 힘을 얻어가던 극우가 주춤하는 계기가 되었다. 각종 음모론과 반과학적 선동을 자신들의 성장에 활용했던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각국에서 극우세력의 성장과 지지율은 정체되거나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새로운 변수로 돌출했다. 한편으로는 러시아의 권위주의적 독재자 푸틴이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극우 포퓰리즘세력들의 ‘롤 모델’이거나 ‘후원자’이기도 했다는 점이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이번에 승리한 이탈리아 우익연정의 경우, ‘이탈리아의 형제들’의 멜로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의 군사적 지원을 확고하게 찬성하는 반면, 연정의 일원인 ‘동맹’의 살비니나, ‘전진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는 친 러시아-친 푸틴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향후 연정 붕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안전’에 대한 관심과 ‘외부의 적’에 대한 증오가 다시 한번 전 유럽을 휩쓸고 지나가는 계기가 된 것이다. 더불어,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에서 비롯한 ‘에너지 위기’가 코로나 팬데믹 완화 이후 세계를 덮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유럽적 맥락에서 더욱 증폭시키면서 유럽 각국이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한 것이 정치적 불안을 키웠다. 그 결과 극우세력이 다시 힘을 키워가고 있다.

경제적 정치적 양극화, 삶의 질의 지속적 하락, 대내외적으로 증대되는 안보 불안에 대해 기존의 정치세력은 효과적으로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모든 문제의 원인을 명쾌하게 지적(이민자들 탓이다, 외부의 적들이 우리를 노리고 있다, 소수의 특권층이 이익을 독점하는 탓이다……)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세력에 대중의 지지가 쏠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들은 우리가 힘들어진 것이 ‘내외의 적들의 공격과 음모 탓’이라며, ‘적vs우리’라는 간명한 세계관으로 몰고 간다. 적은 다양하다. 부를 독점한 0.1% 특권층일 수도, 우리의 일자리를 호시탐탐 위협하는 이주노동자일 수도, 유럽적-기독교적 가치를 위협하는 이슬람 음모세력일 수도 있다. 해결책도 간단하다. 그들을 국경의 밖으로, 정상적인 삶과 사회활동의 영역 밖으로 척결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만 하면 일자리는 돌아오고 삶은 더욱 안전해질 것이다. 복잡하지도 어려워보이지도 않는 해법에 대중들은 차차 설득되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지도자의 개인적 인기 또는 카리스마가 결합하면서, 각종 여론조사나 선거에서 지지세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음울한 정치정세는 언제까지나 유럽에 한정된 특수한 사정일 수 없다. 당장 우리 주변을 돌아보라.2

그렇다면, 앞으로도?

극우 포퓰리즘이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주목받고, 때에 따라서는 권력의 핵심으로 진출하게 되는 일은 하나의 확고한 경향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포퓰리즘은, 그중에서도 극우 권위주의에 기댄 형태로는 우리 앞에 놓인 그 어떤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대두하게 된 배경으로 돌아가 그들의 약속을 다시 되새겨 보자. 그들이 약속한 것은 ‘일자리’와 ‘안전’이었다.

반이민, 반세계화가 저숙련-비정규직 노동자계급에게 일자리를 다시 돌려줄 수 있을까? 이민노동자가 늘어가고 금융화로 이미 자본 이동성은 높아졌다. 고용의 불안정이 일상화되는 일은 사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불과하기에, 이에 대한 즉자적 대응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뿐이다. ‘브렉시트’가 영국의 노동자계급에게 일자리를 돌려놓았던가? 우리나라가 지난 팬데믹 때 겪었던 일2에 비춰보아도, ‘축출과 배제’가 내국인 일자리를 획기적으로 늘릴 것이라는 선동은 아무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한편으로,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정치력을 확대하기 위해 택했던 전략으로서 ‘혐오’의 무차별적 확산은 결코 경계나 한계가 없다. 이민자와 이주노동자를 쫓아내고, 성 소수자와 여성을 배제한 뒤 혐오와 배제가 딱 거기서 멈출 거라고 단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상으로 선택된 이들만의) 사회’를 지키자는 혐오와 배제였으나, 그 결과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존재근거는 더욱 불안해지며 위태로워진다. 혐오와 배제가 터 잡은 존재론은 철저하게 분자화되고 고립된 ‘개인주의’다. 누구도 그 안에서 궁극적으로 안전할 수 없다. 인간은 홀로 완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와 관계를 맺고, 돌봄을 나누고, 연대하지 않으면 단 한 시도 온전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다. ‘사회’는 존재의 근거이자 전제조건이다. 이를 부정하고서는 파편화와 양극화를 극복할 수 없다.

그들은 오랜 역사 속에 구성된 인류의 지적 성과물을 부정하고, 진리와 정의의 기준을 ‘탈진실’이라는 무기로 흩트려왔다. 기후위기를 부정하고, 의학과 면역학의 지식을 부정하고, 인종주의나 진화심리학과 같은 사이비과학을 되살리면서, 인류 앞에 놓인 수많은 난제를 해결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탄소배출을 줄여야 할 때 무한성장을 이야기하고, 백신 음모론으로 팬데믹의 고통을 연장했다. 인류가 가야 할 길을 어지럽히는 것에 머물지 않고,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이끌어 위기를 한층 더 키워왔다. 이들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평화와 번영도, 인류의 미래도 없다. 이것은 그들의 명백한 한계이자, 우리가 그들을 한시라도 빨리 무력화시켜야 할 이유이다. 시간이 없다.

정의와 이성, 자유의 길로

현 체제의 위기는 점점 더 증대되고 심화하고 있다.

– 부정의(不正義).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축적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로만 가능하다. 착취 자체에 부정의가 내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재생산과 축적과정에서 심화하는 ‘양극화’는 부정의를 견딜 수 없는 수준까지 밀어간다. 양극화의 진짜 원인은 자본의 착취다.

– 비이성(非理性). 자본의 생산-재생산-축적방식은 스스로 그 존재근거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그 안에 내재한 ‘무한성장’의 논리는 생산(-재생산-축적)의 전제조건인 ‘자연’과 ‘노동(자계급)’을 동시에 황폐화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위기’로 내몰린다. 금융화나 기술혁신 등으로 우회를 시도하지만, 그조차도 주기적 경제위기 앞에 무력해진다. 삶의 전제조건을 끊임없이 뒤흔드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 그 자체다.

– 부자유(不自由, 비민주(非民主)). 자본주의는 계급권력에 의해 지탱된다. 정치의 영역에서 부분적이거나 형식적인 자유-민주주의가 보장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생산의 영역, 재생산과 체제의 유지 존속의 영역에서는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이윤이 위태로운 곳에서는 늘 폭력과 독재가 작동하는 체제가 자본주의이다. 자본은 명령하고 노동자는 복종하는 한에서만 자유와 민주가 허용될 뿐이다. 자본주의는 자유와 민주를 좀먹는다.

우리 눈앞에서 짙어지고 있는 부정의와 비이성, 부자유(비민주)를 해결해주겠다는 정치세력들이 그 원인으로 무엇을 지목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봐야 한다. 그 해결을 위해서 어떤 방책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자세히 살펴야 한다.

극우와 권위주의에 기댄 포퓰리즘의 성장이라는 현상 역시도, 이 모든 사태와 위기의 원인이 아닌 결과일 뿐이다. 그 어떤 분석, 그 어떤 배후 지목도 ‘자본주의’ 그 자체를 정확히 짚어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 앞에 정의와 이성, 자유의 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다. 극우 포퓰리즘과의 미룰 수 없는 대결 속에서도, 우리가 진정으로 맞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한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다.

  1. 이탈리아의 형제들+동맹+전진하는 이탈리아. ↩︎
  2.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의 수가 급감했을 때, 그것이 내국인 노동자의 지위 향상이나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 ↩︎

Post Author: agent AI U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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