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 노동정책의 쟁점과 〈전라북도 노동기본조례〉

지방정부 노동정책의 쟁점과

〈전라북도 노동기본조례〉

강문식(민주노총전북본부 정책국장)

〈전라북도 노동기본조례〉(이하 기본조례)가 4월 28일 전라북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제정되었다. 민주노총전북본부를 비롯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작년 5월 1일 세계노동절을 맞아 기본조례발의운동을 선포한지 1년 만이다. 그간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전북을 포함한 5개 시도(대구, 경북, 세종, 대전, 전북)에서만 노동기본조례가 제정되지 않았었다. 전북의 기본조례 제정이 늦은 것은 ‘무노동 행정’에 가까웠던 지난 도정의 결과였다.

그동안 지방정부는 노동탄압으로 노동자들의 장기투쟁이 이어져도 노사 당사자의 문제로 치부하며 개입을 극도로 꺼려왔다. 전라북도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정부가 노사관계를 비롯한 노동행정을 외면한 데에는 국가사무와 지방사무의 공고한 이분법이 놓여 있다. 전국적 통일적 기준이 필요한 전문적 사무는 국가사무로 규정되어 있어 노동 사무 역시 마치 지방정부의 역할이 아닌 것처럼 여겨온 것이다. 지방정부의 제한적 노동정책 권한은 기업별 노조 형태가 우세하여 지역노조·교섭과 같은 초기업노조·교섭 구조가 미비한 한국 노사관계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노동 규율이 전국적 기준에 해당하더라도 그 규율이 작동하는 구체적 노동현장은 지역에 존재한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이 사업장 문 앞에서 멈추는 현실을 종종 목격한다. 기준의 수립만큼 중요한 것이 그 기준의 적용이다. 물론 기준의 적용은 각 지역의 정치·경제·사회적 조건과 밀접하다. 전라북도 노동자 중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노동자 비중이 높은 것은 노동 배제적 정치·사회 여건과 전국 최하수준 경제 현실 모두가 관여된 문제다. 노동관계 문제에 있어 거시적으로 결정되는 요인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지역에서의 사회적 관계, 개입의 중요성 역시 낮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지방정부에도 노동정책 수립과 모범적 사용자 역할을 요구해왔다.

한국에서는 2010년대 들어 중앙정부와 정치적 기조를 달리하는 지방정부가 독립적인 노동정책을 수립하는 흐름이 본격화되었다. 이 같은 지방정부의 노동정책은 중앙정부의 정책으로 반영되기도 하면서 다양한 평가항목을 남겼다. 지방정부의 노동정책은 크게 정책형성자 역할과 모범적 사용자 역할로 양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그간 지방정부 노동정책은 대개 노동센터 설립, 노동상담 지원, 노동교육 시행, 생활임금제, 노동전담 부서 설치, 노동관계 조례 제정, 노동정책기본계획 수립 등으로 집행되었다. 모범적 사용자 역할로는 고용 주체로서 노동조건의 안정화를 목적으로 한 정규직 전환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노동정책 수립이 앞섰던 국내 지방정부(서울특별시, 경기도, 광주광역시, 충청남도) 사례를 살펴보면 몇 가지 시사점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노동정책기본계획을 선도적으로 수립한 지방정부는 그 정책 수립 추진이 선행되고 그 결과로서 조례, 행정조직 등 제도화가 후속되었다. 지방정부에 종합적 노동사무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현행 사무 분장 체제 아래에서는 법·제도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지방정부의 적극적 정책의지가 필요하며, 법에서 정한 지방정부의 사무만을 수행하려는 수동적 태도에서는 노동정책 수립이 지방정부의 의무가 아님을 들어 외면하게 된다. 조례 제정, 행정조직 신설과 같은 제도화는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도출되거나 정책 시행의 결과로서 나타났다.

둘째, 노동정책기본계획을 선도적으로 수립한 지방정부는 민주노총 지역본부·산별노조와 노·정 교섭을 시행하면서 동원적 성격이 강한 노사민정협의회를 대체하는 민주적 노·정 관계가 추진되었다. 민주노총은 지역 노사민정협의회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였기에 지방정부와 민주노총 사이의 노·정 대화는 노사민정협의회를 벗어난 형태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민주노총과의 노정교섭을 추진한 지방정부는 노사민정협의회라는 형식적 기구의 운영에 갇히지 않고 노동단체와의 실질적 관계를 중요시했다는 의미이다. 이들 지자체에서는 노동정책기본계획의 수립도 외부 용역에 의존하지 않고 노총·노동단체가 참여한 기구에서 진행되었다. 여기에는 해당 지역사회에 노동자 및 노동단체를 지역 경제·사회·정치의 주요 구성원으로 상정하는 컨센서스가 형성되어 있는지 여부가 반영된다.

셋째, 단체장의 정책 추진 의지와 단체장을 둘러싼 정치지형 및 정치인식이 노동정책 수립의 중요한 변수였다. 행정부의 권한이 입법부에 비해 강력하고 비대한 한국 정치구조의 문제는 지방정부-지방의회의 관계에서 더욱 크게 작동한다. 단체장의 변동이 정책 방향을 전면적으로 뒤흔드는 문제는 거버넌스가 취약한 한국 정치·시민사회 구조에서 기인하는 측면도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노동 정책 수립에 있어 제도화 자체보다 지역사회에서 노동 주체와의 정치·사회적 관계도가 보다 중요하게 작동한다. 노동배제적 전북의 정치·사회 풍토가 각종 노동지표의 후진성을 설명한다. 단지 집권 정치세력만의 문제는 아니다. 조직 노동을 터부시하며 사회개혁의 주도세력으로 바라보지 않는 지역 시민사회의 보수성, 폐쇄성도 작동한다. “사회개혁 동력이 발생할 수 있도록 노조 조직률 제고를 위한 지방정부의 역할을 하겠다”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발언 수준이 우리 지역의 정치·사회 컨센서스로 형성되기에는 간극이 상당하다. 직접발의 운동의 끝에 노동기본조례가 제정되었지만 노동배제적 환경이 그대로라면 그 자체로 노동정책의 진일보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노동정책 제도화가 갖는 양면성이다.

한편 지방정부의 노동행정 수행자로서 책무가 점차 확대되어 온 세계적 추세를 점검할 필요도 있다. 국내에서 노동정책 수립을 추진한 지방정부와 관련 논의를 주도해온 단체 및 연구자들은 독일 브레멘, 함부르크, 뮌헨, 스웨덴 예테보리, 미국 위스콘신 등 다양한 지방정부에서 시행된 노동정책과 고용정책을 모델로 삼아 논의를 전개해 왔다. 이들 해외 사례를 검토하면 지방정부의 노동정책을 크게 노동표준 마련과 취약 노동 층의 고용증대를 포함하는 지역 고용정책으로 나눠볼 수 있다. 대개는 후자가 상대적으로 강조된다. 국내, 국외를 막론하고 지역 고용정책이 강조되는 배경에는 신자유주의적 국가의 재구조화와 이에 따른 분권화가 놓여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지방자치 담론의 확산 역시 정부의 개입 축소와 지역의 자원 활용을 강조하는 지역 주도 성장 전략이 배경에 있다.

2021년 131주년 세계노동절 기념 기자회견. 노동기본조례 주민발의운동 선포(사진: 민주노총전북본부)

한국에서도 1990년대 말부터 고용정책의 책임이 지역으로 이관되었고 여기에 지방‘자치’라는 민주적 외양을 입히기 위한 거버넌스로서 노사민정협의회가 활용되었다. 지역별로 노동조건의 상한선을 따로 정하여 기업을 유치하도록 하는 ‘지역형 일자리’ 사업도 이와 같은 흐름의 연장선이다. 지방정부에 노동정책을 수립하라는 요구가 ‘지역 고용정책’으로 수렴되지 않도록 긴장하며 대립해야 할 것이다.

전라북도 노동기본조례의 내용을 보다 자세히 살피면 다음과 같다. 기본조례는 지방정부와 단체장에게 노동정책을 수립하고 노동문제에 개입하도록 책무를 부여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일터에서 노동권을 존중받으며 차별 없이 일할 권리가 있고(4조), 도지사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증진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5조). 기본조례가 노동행정의 책무가 도지사에게 있음을 명시한 만큼 전라북도는 노동행정이 국가사무라는 명목으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노사관계의 문제에 있어서도 노동자들은 조례를 바탕으로 지방정부 단체장에게 더 구체적인 책임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조례에서 지방정부에게 가장 직접적이며 구체적으로 부여되는 과제는 ‘노동정책기본계획’ 수립이다. 9개 광역단체에서 기본계획이 수립되었고 대구, 경북을 포함한 6개 광역단체에서는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 토론회 등이 진행되었다. 노동정책기본계획 수립 준비가 한 걸음도 이루어지지 않은 광역단체는 대전과 전북에 불과하다. 전국에서 처음 기본계획을 수립한 서울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주요 과제로 꼽았고 후에 중앙정부 정책과제로도 반영되었다. 전라북도에서도 전북의 노동현실을 반영하여 선도적인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수립될 기본계획의 첫 번째 고려 사항은 불안정 노동자가 많고, 청년 인구 유출이 심각한 전북의 현실이다. 전북은 청년실업률이 높지만 빈일자리율도 높다.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한 기존의 일자리 정책이 무용했음을 뜻한다. 이와 같은 실태를 면밀히 살펴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노동자, 도민의 직접발의 운동으로 시작하여 제정된 기본조례인만큼 전라북도는 향후 조례에 부여된 과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당사자와 보다 주의 깊게 소통해야 한다. 열악한 노동 지표, 뒤늦은 노동행정 출발이 전라북도의 객관적 상황이다. 다른 지방정부보다 몇 곱절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도 기본조례가 사문화된 조례가 되지 않도록 관심 갖고 관여해야 할 것이다.

Post Author: agent AI U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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