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 신규회원 민영기 동지를 소개합니다
편집팀
올해 들어 전북노동연대에 가입한 신규회원 대부분이 익숙하고도 반가운 분들인데, 낯선 회원이 있습니다. 민영기 회원을 소개합니다. 노동운동에서 잔뼈가 굵은 활동가입니다. 앞으로 보시면 반갑게 인사해주세요.

1. 2022년 1월 3일, 전북지역 활동가로 전주에 첫발을 내딛은 날이예요.
노동연대 회원들에게 처음 공식적으로 인사하는 자리인데요. 자기소개 해주세요.
1976년 서울에서 출생했습니다. 서울에서 초중고를 졸업했고, 한신대 문예창작과를 입학해서 2004년에 졸업했습니다. 가족은 부모님과 남동생이 있습니다. 남동생은 현재 시화공단에서 화공노동자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선반공이었는데, 외국인노동자들로 인해 업종을 전환했습니다. (그래서,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반감이 있습니다.)
집안 형편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 단칸방에서 전세로 살았는데, 월세로 바꾸자는 집주인의 성화에 부모님은 거액의 대출을 받아 구로의 14평(방 2개) 아파트에 입주했습니다. 동생과 둘이 누우면 꽉 차는 방이었지만, 내 방이 생긴다는 기쁨이 컸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88년에 전화와 칼라TV를 구입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학창시절 내내 별다른 꿈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빨리 돈 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첫사랑이 일년 어린 친구였는데, “대학 어디 갈거냐?”는 질문에 생각을 바꿔서 대학을 갔습니다. 하지만, 결국 헤어졌습니다. 그 친구는 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했거든요.
전북지역에서 활동하게 된 배경은 뭔가요?
2009년부터 12년 동안 활동했던 공공운수노조를 2021년 7월에 정리하였습니다. LG타워 투쟁 중 넘어져서 십자인대가 파열되어 무릎 수술을 앞두기도 했고, 인간관계와 활동과정에서 지치기도 했습니다.
10월부터 평등지부 이태식 지부장에게 같이 활동하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태식 지부장을 만나러 전주에 왔는데, 임성희 실장의 제안으로 육아휴직 중인 전임자를 대신해 전북문화예술지부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지역이 많이 낯설 텐데, 여유시간에는 뭐 하면서 보내세요?
많이 낯섭니다. 몇 사람을 제외하고 일면식이 없어서 외롭습니다. 평일 6시 이후, 주말에는 지부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건물을 폐쇄하기 때문에, 딱히 집 말고는 갈 데가 없습니다. 주로, 집에서 영화와 미국 드라마(주로, 첩보 및 추적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느낀 지역(운동)에 대한 솔직한 소감은?
사람으로 인한 갈등과 스트레스가 없어서 좋습니다.
2. 투쟁하는 사람은 패배할 수 있다. 하지만 투쟁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패배한 것이다.
운동을 접하게 된 배경과 지금까지 경로를 알려주세요.
군대 가기 전, 경찰폭력으로 인해 1996년 4월 노수석의 사망, 1997년 조선대 류재을의 사망, 그리고 철거촌 규찰대 경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는 운동권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2000년 연말에 군대에서 제대했는데, 총학생회장으로 당선된 과 선배의 제안으로 2001년 총학생회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지역의 학생운동조직은 ‘경기남부학생투쟁연합’이라는 연대체를 구성하여 함께 활동했었는데, 대우자동차 정리해고에 항의하는 의미로 수원노동청 타격투쟁을 전개했고, 많은 구속자와 수배자가 발생했습니다. 한신대에서도 총학생회장이 수배되고, 투쟁국장이 연행되었습니다. 총학생회 사업 안착화와 공안탄압에 대한 대책위 활동을 동시에 진행해야 했습니다. 대책위 활동을 담당하면서 만난 학교 출신 선배들을 통해 2002년 노동자의 힘을 소개받고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04년 2월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수배 중인 선배가 대전에서 활동하다가 연행되면서 그 후임으로 10월부터 ‘충청지역 노동건강협의회’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 정용재 동지의 제안으로 민주노총 조직활동가로 선정되어 공공연맹에서 활동하였고, 3년 후 2009년 공공운수연맹에서 고용이 승계되어 2021년 7월까지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활동하면서 아쉬운 사례와 보람을 느낀 사례가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공공운수연맹에서 처음 받은 보직이 미조직비정규부장이었습니다. 신규사업장과 비정규직 사업장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아쉬운 사례 중 첫 번째는 철도물류승무지부 건인데, 철도물류지부 사업장은 철도공사의 하청인 코레일 네트웍스 하청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섭과 투쟁이 힘들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사측의 회유와 협박으로 모두 탈퇴하고 2명만 남았습니다. 2명이서 버텨보았지만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한 사례는 군인공제회 상담직지회입니다. 원래 직영이었는데 위탁으로 전환을 추진했고, 이에 대응하여 노조를 결성했습니다. 국방부를 압박하여 국방부에게는 재고하겠다는 답변을 들었으나, 이사회에서 추진했습니다. 희망퇴직 후 용역 전환인데 보상 조건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2명을 제외하고 모두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노조를 탈퇴했습니다. 마지막 2명은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보람있는 일은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에게 연락을 받는 것입니다. 2017년 정동극장 해고투쟁을 함께 진행해서, 전원 복직과 단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이후, 정기공연에 잊지 않고 초청을 해줍니다. 코로나 이후 정기공연을 못했는데, 올해는 개최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활동하면서 가치관(원칙)과 소망이 있을까요?
투쟁하는 사람은 패배할 수 있어도, 투쟁을 포기한 사람은 이미 패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운동하면서 운동권을 자부하던 사람들이 위기에 처하니 내빼는 것도 봤고, 노동운동하면서도 명분이나 신념보다 이해관계에 따라 배신하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활동가로서 기본은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동안 활동하면서 제일 참기 어려운 것이 일하지 않고 자리만 지키는 사람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활동가는 능력이 없을 수는 있어도 게으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스스로 능력을 키우려고 하지 않는 것도 게으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책, 영화, 취미는 무엇인가요?
좋아한다기보다는 내게 충격을 준 책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읽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입니다. 대학 와서 이문열의 실체를 알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문예창작과를 지원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임철우 작가의 《붉은 방》을 읽고 나서였습니다. 영화는 〈죽은 시인의 사회〉입니다. 취미는 미국 드라마 시청입니다.
앞으로 전북지역에서 하고 싶은 운동은 무엇인가요?
노동조합운동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활동으로 확대하는 것입니다. 노동조합운동이 양적으로는 성장하고 있지만, 질적으로는 추락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조합운동이 어떤 활동을 해야 할 것인가?’보다는 어떤 효율적 구조를 구축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고민해 온 것 같습니다. 저는 산별, 본부, 지부, 지회가 각각 지역에서 지역민에 녹아내릴 수 있는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지자체와의 교섭과 투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한 희망연대노조를 예로 들면, 희망씨라는 이름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동네에서 공부방 사업을 전개합니다. 그리고, 열악한 처지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합니다. 최근에는 안양시와 협약을 맺어 공동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진보정당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상적인 지역사업 없이 선거 때만 후보를 내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술자리든 밥자리든 언제든지 불러주시면 달려가겠습니다. 자주 뵀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연대는 어떻게 가입하게 되었습니까?
전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가입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노동연대 회원들과 하고 싶은 활동 또는 취미가 있습니까?
(노동연대의 연령층과 활동하고 있는 소모임을 질문해와서 사무처장이 답변했습니다.) 드라마·영화 감상 인터넷카페에 2개 가입했습니다. 혹시, 노동연대 회원 중 같은 취미가 있는 회원들이 있다면, 오프라인에서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노동연대(또는, 회원)에게 바라는 점
아직은 잘 몰라서… 술자리든, 밥자리든 함께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주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