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이후 사회운동의 과제

노란봉투법 이후 사회운동의 과제

이환춘(민변 노동위원회, 법무법인 지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개정법률안(개정안)이 2025년 6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26년 3월 10일부터 시행된다. 개정안의 핵심적 내용은 노조법 제2조 제2항의 사용자의 정의에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는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비록 원청이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로 인정된 것은 아니나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되면서 하청노동조합에게 교섭력이라는 도구가 주어졌다. 다만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라는 문구에 대해 정확한 기준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환춘 변호사

시간을 돌려보면 노조법 제2조 개정 과정은 하청노동조합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남한 자본이 선택한 방법은 ‘외주화’다. 노동법을 개정해 해고의 자유를 확대하려는 시도는 민주노동운동 진영의 거센 저항 속에 실패했고, 남한 자본은 제조업에 ‘사내 하청’이라는 방식을 도입해 하청노동자들이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다가 하청업체를 폐업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노동법상 엄격한 해고 규정을 회피해왔다. 하청노동노동조합의 투쟁도 하청업체 폐업의 방식으로 무력화했고 이러한 원청의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인지 여부가 법률적으로 문제가 됐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2010년 이른바 현대중공업 사건에서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해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부당노동행위의 주체로 인정했다. 적어도 부당노동행위와 관련해서는 원청이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된 것이다. 이후 각 분야의 하청노동조합은 대법원 판결에 근거해 적극적으로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하급심 판결에서 원청의 교섭의무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하청노동조합의 투쟁은 결국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라는 성과를 얻게 됐다.

하지만 노조법 개정안으로 하청노동조합이 처한 어려움 모두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개정안의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라는 문구의 해석을 어떻게 할지는 확정된 내용이 없고, 더 나아가 제조업을 모델로 설계된 노조법이 플랫폼노동 등 회색지대에서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노조법상 사용자가 문제 된 것은 기존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진영이 하청노동조합의 투쟁을 자신의 중심적 투쟁으로 품지 못한 것이 주요한 원인이다. 그것은 단지 보수언론에서 말하는 정규직 노동자의 ‘이기심’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동운동진영은 민주노총 출범 당시에도 기업별 노조냐 산별 노조냐라는 쟁점을 두고 논쟁을 했고, 그 문제는 수십년간 민주노동운동 진영 내에서 활동가들을 괴롭혀온 쟁점이다. 민주노동운동진영은 산별노조로 ‘대전환’을 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현실은 기업단위 노동조합 운동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한계는 법원 판결에도 반영돼 산별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산하 지부가 탈퇴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판결이 최근에도 나온 바가 있다. 한편 하청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요구에 따라 ‘불법파견’을 수단으로 ‘정규직화’를 목표로 하는 법률투쟁을 진행해 왔고, 자동차산업 등 일부 산업분야에 있어서는 성과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결국 하청노동조합운동의 현장성이 약화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보수언론은 원청노동자와 하청노동자의 임금 등 근로조건이 크게 차이가 나는 상황을 놓고 ‘해고의 자유’가 인정돼야 근로조건의 차이가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로 공격해 들어왔다. 또한 직무급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을 주장하기도 하면서 오히려 논쟁을 선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존 노동운동진영은 수세적 자세로 나서며 ‘노동법상 권리’를 지킨다는 기조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금속노조 등 산별노조는 산별교섭에서 하청노동자들의 산업안전에 대한 권리를 교섭 의제로 올리는 등 ‘하청노동자의 생존권’을 이슈화하는 기조로 대응했으나, 여전히 하청노동노동자들의 요구와는 괴리가 있다. 왜냐하면 남한의 산별노조는 독일식 산별노조와는 운영방식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식 산별노조는 산업별, 지역별 동일임금이 적용되나 남한은 철저히 기업별 임금으로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보수언론은 이러한 맹점을 계속 공격하고, 민주노동운동 진영은 이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냉정하게 말해 전통적 노동운동진영은 정규직, 대기업 노조 조합원들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기에 수세적 입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문재인 정부 노조법 2조 즉각 개정 촉구 기자회견 (출처 : 민주노총 전북본부)

이러한 상황에서 하청노동조합운동은 노조법에 있어서 ‘원청의 사용자성’이라는 큰 성과를 이뤄냈다. 이제 하청노동조합은 독립적으로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고, 노조법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하나의 사업장에서 원청노조와 하청노조가 독립적으로 교섭의제를 정해 원청과 교섭하고, 각각 파업권 등 노조법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하나의 산별노조이지만 하나의 사업장에서 두 개의 노조가 교섭권 등 법적 권리를 별도로 행사하게 된 것이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가 하청노동자들을 조합원에서 배제한 아픈 역사를 기억할 것이다. 전통적 노동운동의 무력한 대응은 이제 기업단위에서의 노동운동의 분열이라는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운동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사회운동은 노동자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해왔는데, 지금 상황은 이 과제가 단지 추상적 방향성이 아니라 현실의 산업현장에서 당장 풀어야 할 시급한 주제가 됐다. 보수언론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화두를 악용하게 둘지, 아니면 노동운동 진영이 이 쟁점을 선도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이는 단지 직무급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하나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대기업 원청 정규직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불법파견 소송’으로 노동자 내부의 분열이라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과 다를 것이 없다. 법원은 점점 ‘불법파견’의 인정 조건을 엄격하게 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고 제조업에서도 하청노동자들의 근로지지위확인 청구가 기각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법원에 후견인적 개입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운동진영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고 실현 가능한 방법도 아니다. 이제 노동자 사이의 분열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운동은 어떠한 이념, 어떠한 가치를 놓고 나아갈지를 결단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당장 2026년 3월부터 하청노동조합은 원청을 상대로 ‘법적 권리’로서 교섭을 요구할 것이고,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는 정면 충돌할 수 있는 상황이다. 사회운동이 투쟁의 방향을 제대로 정하지 못할 경우 ‘누구의 편을 들 것인가’라는 일차원적 질문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노조법2ㆍ3조 및 개혁입법 10개항 입법 촉구! 2022 민주노총전북본부 결의대회 (출처 : 민주노총 전북본부)

그나마 이러한 논쟁은 노동조합 설립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제조업 분야에 대한 이야기다. 플랫폼노동 등 회색지대 노동자들의 사용자는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전통적인 노동법 질서에 어떻게 포섭할 것인지라는 법적인 질문은 여전히 정답이 없다. 그러한 법적 쟁점을 넘어서서 그들을 어떻게 노동자로 호명하고 노동운동의 의제 안으로 포섭할 것인지에 대한 기본적 질문에 대해서 사회운동진영은 아직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운동진영은 이제 플랫폼노동자를 위한 노란봉투법 시즌2를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운동진영이 노동운동의 이념과 가치를 찾게 되길 희망한다.

Post Author: agent AI U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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