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경제분쟁의 원인과 이후 과제
아베의 역습과 역사적 계급화
1. 과거청산의 역습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로 “친일과거청산”이 있다. 과거청산은 일본군국주의에만 해당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역사왜곡이 벌어진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역시 “친일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해방 이후 남북전쟁이 발생했고, 친일파들은 반공이데올로기를 대변하며 극우세력으로 성장하여 기득권 집단으로 한국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번 한일경제갈등의 핵심에는 “역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발목 잡혀 미래를 포기할 셈이냐?‘ 라고 질문할 수 있다. 이 말은 ’과거는 그만 잊고 미래를 지향해가자,‘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역사에서 피를 부른 자들의 주장이다. 친일파, 4.3항쟁 학살자, 군사독재정권에 부역한 자, 5.18광주학살자 등등. 너무 많은 역사에서 나온 얘기들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한국사회에서 이런 사고를 갖는 사람은 너무 많다.
한일경제갈등 내지는 한일경제분쟁에서 아베가 선택하는 것 역시 “역사”라고 생각한다. 너무 건조하게 “그건 우리 정부의 책임이다.”라고 넘길 문제는 결코 아니다. 역사는 ‘과거의 복기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현재의 투쟁’이다. 즉 인류는 수많은 비인간화, 반인권적인 전쟁이 보여주고 있는 야만의 시대에 대한 준엄한 비판과 청산을 통해 새로운 미래사회를 맞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 가해자들의 불손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대한 비판은 단호해야 하며,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런 역사적 가치를 뒤로 하고, 과거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피해국 민중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과거청산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아베의 역습을 당연한 것으로 보는 관점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앞뒤가 바뀐 인과관계를 갖고 결과를 유추하여 내 탓으로 돌린다면, 오류를 범하게 된다. 과거청산을 온전히 하지 못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지만 과거를 만든 자들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도 당연히 우리이기 때문이다. 나치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나치에 부역한 자국의 국민까지도 서슴없이 처단하는 피해국들과 또한 자국의 위정자들이 벌인 과거의 만행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가해국, 이를 잊지 않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유럽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이유일 것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과거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 현대사를 왜곡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 이승만은 한국의 국부가 되어 있고, 박정희는 한국의 영웅이 되어 있듯이 말이다. 이승만과 미군정은 한국 민중들을 탄압하며 일제 부역자들을 다시 데려다 썼고, 한국 사회 기득권으로 자리잡게 했다. 부역자에 대한 처벌은 고사하고, 적산재산은 미군정이 주도하며 또 다시 친일 세력에게 넘겼다. 여기서부터 다시 점검되어야 한다. 미국이 적산재산 청산을 주도한 것도 문제지만, 친일파에게 넘긴 이유가 더 큰 문제이다. 기업 운영경험 부족과 노동자 파업으로 인해 적산재산을 친일파에게 넘겨 줄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은 기가 찰 노릇이다. 노동자들의 파업 때문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노동자들은 일제 및 친일파들의 강도 높은 착취와 지배에 맞서기 위해 투쟁한 것이다.
2. 아베의 역습 “역사”
이번 한일 경제 갈등의 원인은 무엇인가? 여러 언론에서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어느 것이 정답인지 잘 모르겠다. 아베정권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럴 리 없다. 또한,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로 인한 아베의 경제보복’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 리 없다. 분명한 것은 두 주장의 공통분모가 바로 “역사 문제”라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얘기가 서로 달라지기 시작한다. 아베는 한국이 국가 간 협약을 위반했다고 했다. 그게 바로 강제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일 것이다. 아베 정권이 국가 간 협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박근혜 때 맺은 ‘위안부협정’과 박정희 때 맺었던 ‘한일청구권협정’일 것이다.
아베는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개인의 청구권도 소멸되었다고 주장하고, 한국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자 개인들은 그것과 상관없이 사과와 배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후자가 맞다고 생각한다. 한국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는 개인의 청구권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법률적인 용어만으로 치환될 수는 없다. ‘이것이 왜 정치적인 문제인가?’라는 반문에 동의할 수 없다. 당연히 정치적 문제다. 국가 간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한국 정부는 당연히 강제징용 문제나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본은 가해국으로 당연히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 이미 끝난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지속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일청구권협정의 한계로 인해 한국 피해자들이 그냥 머리 숙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일청구권협정이 잘못되었다면, 당연히 문제제기하고 투쟁해야 하며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라!’고 주장해야 한다.
아베가 말하는 역사 문제가 아니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좀 더 확장한다면 박정희가 맺은 한일청구권협정에 문제가 있으니 강제징용 문제는 한국 내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이 문제를 과거 청산이라는 역사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제기하며, 투쟁해야 한다. 아베 정권에 대한 심판은 일본 민중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건조하게 말을 뱉어서는 안된다. 아베 정권을 무너뜨리는 주체는 당연히 일본 민중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한 편으로 우리는 일본 민중들의 투쟁에 대한 실질적인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그 결과가 ‘불매운동’이라면, 해야 하지 않겠는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아베정권에 대한 투쟁이 한국 정부에 대한 면죄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고문과 협박, 죽임과 탄압, 강제징용이 없었다고 할 수 있는가?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로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친일파를 등에 업고, 온갖 정치 술수로 한국 민중들을 속이고, 탄압해 왔다. 이제는 말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행동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가에 대한 문제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아베의 역습은 역사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가혹한 역사는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역사를 바로 잡아 가지 않는다면 한국 근현대사는 또 다시 우리 민중들에게 가한 국가 폭력과 쿠데타 세력에게 면죄부를 줄 것이며, 베트남 민중들을 학살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과 동일한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 인류가 살아가야 할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선임을 확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것이 바로 아베 정권에게 물어야 할 책임임과 동시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3. 애국주의1애국주의로 표현한 것은 한국 사회의 독특한 이념적 전선 때문이다. 그래서 (배타적) 민족주의가 용인되지 못하도록 더욱 강한 표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자는 (배타적) 민족주의라는 말보다 애국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고자 한다. 결국 동일한 개념임을 미리 밝혀 둔다. (=배타적 민족주의) 역습과 국제주의
요즘 길거리 현수막을 보면 마치 독일 히틀러가 주창했던 “독일 민족 만세”가 보인다. 즉 나치즘이 보인다는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의 역겨운 짓거리가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나치를 따라 가려고 한다. 우린 이런 정치를 파쇼라 한다. 일국의 국회의원, 정치 좀 한다는 세력들이 일본에 대응하는 방식이 참으로 가소롭고,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그렇게 대중추수주의에 편승하며, 모든 것을 애국과 민족으로 귀결시키려 한다. 그리고 그들은 표를 얻는 정치적 타당성을 획득하고자 한다. 한국 민중들의 분노가 애국주의에 기대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만, 기득권 세력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애국으로 둔갑시키고, 경제 전쟁으로 인해 일본을 넘어야 한다고 선동하며, 노동자 권리를 후퇴시키려 한다. 한국 민중들의 실천은 일본, 더 정확히 말하면 일본군국주의 세력의 준동을 막기 위한 행동이어야 한다. 언론 · 정치인은 바로, 이것을 지적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운동진영도 일본군국주의 부활을 막고, 보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저항을 강화해야 한다.
일본 군국주의는 전쟁을 통해 자신의 기득권을 확장하고, 전 세계를 그들에게 충성하게 만들려고 한다. 이것은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영원한 가치일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군국주의와 애국주의를 절멸시키는 것은 우리 운동의 가치여야 하기 때문이다. 애국주의에 기대어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려 하고 있는 정치세력과도 당연히 투쟁해야 한다는 뜻이다. 애국주의가 안고 있는 불편한 진실은 전쟁도 불사하며 한 사람에게 충성하는 전체주의에 동의하는 말과 같다. 애국주의는 이렇게 시작해서 전체주의로 귀결되고, 어떤 문제제기도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한다. 한국 정치인들의 안일하기 짝이 없는 포퓰리즘(Populism, 인기영합주의)이 무모한 애국주의를 만들고 있음을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현재 전개되고 있는 한국 민중들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단순히 애국주의로 폄하해서는 결코 안된다. 더 냉정하게 한국 민중들의 태도를 지지하고, 한국 정치인들을 향해 엄중한 경고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운동 진영의 냉소적 태도 또한 버리자고 제안한다. 우리가 물건을 사지 않으면 일본 노동자가 죽는다는 식의 주장은 근거 없는 낭설일 뿐이다. 일본 민중들이 아베 정권과 싸울 수 있는 동력을 부여하고, 아베와 군국주의자에게 일격을 가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우선적으로 찾아야 한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이런 실천을 촉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일본 경제를 망쳐서 일본 민중들이 아베 정권 타도 투쟁으로 들고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운동을 통해 일본 사회가 얼마나 극우적인가를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는 있기 때문이다.
4. 한일 노동자 연대와 아베 타도 투쟁
한국 민중은 역동적이다. 반대로 일본 민중은 매우 수동적이며, 비정치화 되어 있다. 일본 사회는 이런 점에서 한국 노동자•민중들과 더욱 긴밀하게 연대해야 한다. 한일 노동자 연대는 자국의 군국주의세력과 단호하게 투쟁해야 한다. 우리는 위정자들의 패러다임에 포섭당해 일본 노동자들을 배척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우리의 동지이고, 그들은 일본 군국주의를 타도할 유일한 주체이다. 일본 노동자들에게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동력을 줄 수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 일을 해야 한다. 전쟁을 하자고 달려드는 자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연대해야 한다. 한일노동자들은 연대를 더욱 공고히 하고,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과 협력을 동시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우리는 일본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당신들이 당신들의 나라를 바꾸라고’ 말이다. 일본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당신의 나라가 더 철저한 과거 청산을 하기 위해 한국 노동자가 앞장서서 투쟁하라고’ 말이다. 한일 노동자들은 군국주의를 배척하고, 애국주의를 배척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임을 자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다. 우리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국 민중들의 자연스런 저항을 존중하고, 이것이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 변질되어 또 다른 “파쇼”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통제해야 한다. 또한, 일본 노동자들은 전쟁 가해자인 자국 정치인들에게 반성을 촉구하며, 평화를 존중하지 못하는 모든 세력과 투쟁해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인류에 대한 평화, 인간에 대한 존중, 모든 사회의 평등한 가치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생성되고 단련되고 정착됨을 확인할 수 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