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탐욕적 세계 앞에서, 동지를 위하여
김정훈(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대표)
동지여, 우리는 이 탐욕적 세계 앞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광기 어린 파시즘이 탐욕적인 자유주의의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자본에 휩싸인 대중의 파도에 올라서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해오고 있었단 말인가. 한반도 남쪽 민중의 반세 기에 걸친 투쟁의 맨 앞에 서온 동지들이여. 세대와 세대를 잇는 투쟁에서 대중운동의 터를 이루고 바닥을 다지고 그운동의 물결을 찬란히 이루어온 동지들이여,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다시 묻고 답할 때다. 떠나지 않고, 떠나지 못하고 한길을 달려온 동지여, 세대를 이어 지금 그 길의 한가운데로 들어서는 동지여, 우리는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어느새 나이를 먹어버린 동지여, 쓸쓸한가. 운동·대중 조직의 기득권을 쥐어왔다는 터무니 없는 비난 속에서 자괴하며 어느 외진 곳에서 ‘싸가지’를 되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선 선배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청춘을 보낸 동지여, 억울한가. 세상은 변할 것 같지 않고 지친 몸과 마음 어디 기댈 데가 없다는 하소연으로 문을 걸어 잠그려고 할 것만 같다.
섬과 섬으로만 존재할 것만 같은 청년 동지여, 두려운가. 붉고 푸르고 빛나던 대중운동의 마지막 대열에 들어섰다고 생각할 것만 같고, 생존과 정의의 함수를 풀기 위한 몸부림으로 새벽 고통을 이어갈 것만 같다.
하지만 이 내면의 갈등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동지들이 모두 안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지금, 여기, 동시대가 품고 있는 우리들의 아픔이다. 결코 거창하지 않은 나와 세계와 동시대의 변혁을 위한 길 위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자화상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깊게 학습하고 넓게 조직하며 뜨겁게 투쟁하며 살아내고 있는 동지다.
동지여 우리는 출생과 성장 배경과 계급적 위상을 넘어서서 동지가 되었지 않은가. 오로지 이 세계의 야만적 수탈과 잔인한 폭력을 멈추고 해방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만난 동지가 아닌가. 우리는 “내 이웃인 노동자와 빈민과 농민과 숱한 약자들을 외면하는 것”은 저들의 주구가 되는 것과 같다는 스스로의 판단과 결단으로 함께 살아내는 동지다.
우리 사회와 세계는 더욱 복잡하고 폭력적이고 탐욕적인 자본주의로 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에 대항해 싸우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그 투쟁만이 사람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 투쟁 속에서 대안이 일어나고 세워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렵고 힘들기는 하다. 앞길도 뿌연 안개 속이다. 도대체 전망을 찾기가 힘들고 힘든 시대이다. 엉성한 것투성이다.
그래서 계급적 단결, 다양한 부문의 투쟁 속에서도 대동단결의 투쟁, 대중운동과 변혁운동 사이의 긴장 유지 등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활동가 대중의 생존권도 민중의 생존권과 같다는 현실도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자기만의 원칙을 세우고 자기만이 옳다고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안에서도 서로의 차이를 원칙의 잣대로 재단하는 일이 횡행하 는지도. 그래서 우리 안의 사소한 차이가 대립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는 안다. 탐욕적 자본주의의 욕망이 우리 서로를 분절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늘 경계하며 살아오고 있지 않은가. 더욱 서로를 보아야 한다. 서로 말해야 한다. 생존의 절벽과 투쟁의 벼랑 위에 서 있는 동지들 서로를 보듬어야 한다. 운동한다는 것은 함께한다는 것이다. 토론과 차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를 믿는 것이 이 탐욕적 세계 앞에서 우리가 동지들이 먼저 할 일이다. 민주노총 선거를 바라보는 일이 이제는 버겁다. 동지여, 그래도 우리는 가슴 속의 불을 피워야 한다. 가슴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용융하여 그 어떤 자본의 권력도 끌 수 없는 프로메테우스의 마그마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날들처럼.
우리는 20세기의 그 숱한 전쟁과 분열과 그리고 차별의 세계화를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세계가 변혁될 수도 있다는, 변혁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러나 21세기에도 전쟁과 야만적인 수탈과 인종말살(제노사이드)의 현실을 더 생생하게 보고 있다. 미국 일극 체제가 무너질 수 있는 전환기의 세계는 불안하다. 러-우 전쟁과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탐욕적 세계, 폭력적 자유 자본주의가 낳은 뻔뻔함의 극치이다. 한반도의 불안도 근래에 들어서서 최고조다. 한국 내탐욕적 자유 자본주의도 파시즘적 행태로 질주하고 있다. 이 사실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에 대항하는 여러 갈래 길이 있다는 것도.
“너희들 잘못이야, 네 잘못이야, 네 잘못이야”하다가 결국 “내 잘못이야”라며 내파(內波)되어 스스로 무너질 수는 없는 일이다. 동지들이여, 현실에서 발을 딛고 이 탐욕의 세계를 뚫고 나아가자. 노동 현장과 전쟁터에서 잔혹하고 잔인한 죽음이 펼쳐지고 있다. 사람으로 살아내기 위하여, 살기 위하여 숨을 쉬자. 서로 숨을 쉬자. 동지가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