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정세 전망
1. 들어가며
2024년은 포스트 팬데믹 이후 성장을 유지하는 미국과 부진한 경제의 나머지 세계로 특징 지워진다. 우리는 2023~2024년에 인플레이션 완화, 미국 경제의 성장세를 전망했다. 또한 우리는 미국의 보호주의와 근린궁핍화 정책, 주요국의 인구 위기 등을 세계 경제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한국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감세, 긴축 정책 때문에 미국과의 비동조화 추세가 더욱 가팔라질 것이고, 윤석열 정부의 극우화가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의 전망은 대체로 거시 경제 지표에 부합했다.
세계 경제는 올해에도 전년도와 비슷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측한다. 문제는 미국 경제의 호황 이면의 실상이다.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고 성장세가 지속되었는데도 왜 미 대중은 바이든 행정부를 불신했고 결국 트럼프를 선택했는지 질문해야 한다. 미 트럼프 대통령 취임, 한국 윤석열 쿠데타 등 정치적 변화가 가져올 충격도 주요 문제다. 좀 더 중장기적 시간대에서는 미국 주도의 경제 블록화가 가져올 세계질서의 재조정을 대비해야 한다.
2. 미국과 세계
2024년 미 GDP 성장률은 2.6~2.8%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IMF 1.5%, OECD 1.3% 전망을 크게 뛰어넘는다. 음식,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소비자 물가지수(core PCE)는 3.0% 미만으로 안착했고 실업률은 4% 수준에서 유지되었다. 비자발적 실업을 포함하는 광의의 실업률은 완만히 상승하는 추세이지만, 전반적으로 긴축정책의 충격이 기업의 빈 일자리 축소로 흡수되고 노동자 해고에 이르지 않아 연착륙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미 경제 성장은 ‘소비’가 견인했다. 2020년 경제위기 초반 재화 상품 중심으로 소비가 회복되었으나 2022년 이후 서비스 상품 중심으로 소비가 회복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COVID-19 시기 재정정책으로 형성된 초과저축이 소진되면서 소비가 성장한 것으로 분석한다. 제조업도 상황이 나쁘지는 않다. 미 제조업도 생산이 정체되어 있기는 하나 2024년에도 구축물 투자가 이어졌고 제조업 신규주문도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소득·자산 불평등과 실질임금 괴리
미국 경제는 지표 상으로는 호황 국면이었고 큰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호황을 가리키는 미국의 거시경제 지표가 저소득 계층에게도 해당했을까? 소득과 자산 현황을 소득분위별로 나누어 관찰하면 사뭇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소득 1분위 가구의 세후소득은 COVID-19 긴급지원의 영향으로 2020년에 크게 상승했지만 2021년 이후에는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2021년부터 가구당 임금 소득이 다소 상승했다지만 COVID-19 긴급지원 프로그램이 종료되면서 2023년 총소득은 오히려 2022년에 비해 후퇴했다. 반면 소득 5분위 가구의 세후소득은 2021년부터 급격하게 늘어 2023년 가구당 연간소득은 4년 전에 비해 36,265달러(한화 약5,000만 원) 증가했다.


이와 같은 추이는 자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준이 제공하는 소득분위별 자산 통계를 살펴보면 COVID-19 시기 모든 분위의 자산이 증가했지만, 상위 소득 계층의 자산이 더 높은 비율로 증가했다. 총 자산 증가율은 소득 1~5분위 별로 각각 44.4%, 51.3%, 52.4%, 35.5%, 45.4%로 중위 소득 계층의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특히 소비와 직접 연관된 현금성 자산액에서는 소득 1~5분위 별로 각각 16.3%, 25.2%, 47.4%, 30.3%, 40.8%로 1분위와 3분위 증가율 격차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증가한 자산의 절대 규모의 차이는 더욱 현격하다. 현금 자산 순 증가액을 비교해보면 2019년 4분기 대비 소득 1분위, 2분위, 3분위, 4분위, 5분위 각각 1,358억, 2,920억, 7,890억, 9,240억, 57,623억 달러 증가했다. 특히 소득 1분위의 현금성 자산은 2023년 1분기에 이르러서야 2019년 4분기 수준을 회복했다.



폴 크루그먼은 하위소득 구간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이 상위소득 구간보다 많이 증가했고, 실질 시간당 임금도 상승했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정책을 줄곧 낙관했다. 크루그먼은 ‘시간당’ 실질임금 상승과 인플레이션 완화를 근거로 지난 대선에서 해리스의 낙승을 전망했다가 전망이 어긋나자 경제 정보를 잘못 이해한 저-정보 계층이 공화당에 투표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애초 크루그먼 등 미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이 주목한 자료가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시간당 임금과 노동생산성을 비교하면 2020년 경제위기 이후 둘 사이에 이격이 발생한 뒤 최근까지 좁혀지지 않았다. 총노동의 관점에서 볼 때 분배 악화다. 총노동시간의 감소도 문제였다. 시간당 임금이 상승해도 노동시간이 감소하면 가구 수입은 감소한다.

2017=100

미 대선 결과 이해
트럼프의 당선은 트럼프 지지자 확대보다는 민주당 지지자 감소 때문이었다.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은 8,100만 표를, 트럼프는 7,400만 표를 얻었다. 2024년 대선에서 해리스는 7,500만 표, 트럼프는 7,700만 표를 얻었다.

트럼프가 출마한 세 번의 선거를 비교한 CNN의 출구조사 분석이 미국 정치 참여자의 변동을 이해 하는데 도움을 준다.
미 대선 결과를 ‘정치적 올바름’ 개념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논자가 많다. 트럼프 역시 이민, 낙태, 성소수자 의제를 갈등화하는 이른바 문화 전쟁(cultural war)을 주요 선거전략으로 삼았다.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경우 낙태를 불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의 대다수는 트럼프를 지지했다. 그러나 동시에 ‘대부분의 경우 낙태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 중 절반도 트럼프를 지지한 만큼 문화 이슈만으로 투표 대상이 정해진 것이 아님이 확인된다.


문제는 경제였다. 2024년 미 대선 결과는 기본적으로는 경제가 좌우했다. 경제가 좋다고 생각한 유권자는 집권 정당에, 나쁘다고 생각한 유권자는 상대당에 투표하는 경향이 강했다. 4년 전에 비해 가계 경제가 어느 방향으로 변했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서도 지지 정당이 갈렸다. 가계 경제가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현 집권 정당을 지지했고, 가계 경제가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상대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했다. 가계 경제가 비슷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민주당 지지자 비중이 높아졌다. 트럼프의 당선은 결국 경제가 좋지 않았고, 자신의 경제적 지위가 하락했다고 여긴 유권자가 더 많았음을 의미한다. 앞서 다룬 자산과 소득 통계에서도 5분위 가계의 소득과 자산이 크게 늘면서 1, 2분 가계와의 격차가 급격하게 커졌다. 민주당이 저임금 노동자보다 중산층을 대변했다는 각계의 비판에 견주어볼 때, 상대적 지위가 하락한 1, 2분위 가계에서는 트럼프 지지가, 자산 증가율이 높았던 3분위 가계는 해리스 지지가 더 높았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성별, 인종, 학력 간 분화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라틴계 유권자는 민주당 주요 지지세력이었지만 2024년 대선에서는 많은 시민이 지지를 철회했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남성의 변화가 컸다. 2016년 대선에서 클린턴 후보는 라틴계 남성에게서 31%p를 이겼지만 2024년 대선에서는 반대로 트럼프가 10%p를 이겼다. 남성만큼은 아니지만 라틴계 여성도 지난 대선에 비해 민주당 지지자가 줄고 트럼프 지지자가 늘었다.

인종과 학력의 교차 사이에서도 정치 지향의 변화가 보인다. 백인 대졸자는 트럼프에게서 민주당으로 방향을 선회한 반면, 非백인 고졸자는 2016년 이후 꾸준히 민주당 지지자는 줄고 트럼프 지지자가 늘었다. 백인 집단에서 변화를 이끈 것은 여성 대졸자였다. 그러나 그 변화의 속도는 非백인 고졸자 유권자 집단에서 더 빨랐다.

CNN 출구조사에서는 이를 질문하지 않아 수치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非백인 시민의 민주당 지지 철회는 경제적 이유 외에도 바이든 정부의 이스라엘 지원 정책이 주요 원인이었음이 분명하다. 대선 기간 민주당에 이스라엘 지원 중단을 요구하는 ‘지지 후보 없음’(uncommitted) 운동이 펼쳐졌고 아랍계 시민은 민주당이 가자 학살을 끝내지 않을 것이라고 불신했다. ‘규칙 기반 질서’를 강조해 온 바이든 정부가 파시스트 네타냐후의 불법 점령과 학살을 지원하는 장면 그 자체로 민주당은 패배를 피하기 어려웠다.
트럼프 2기 미국과 세계 자본주의
1980년대 중반부터 40년 간 이어져 온 장기금리와 인플레이션의 하향 추세 배경에는 중국, 동유럽, 러시아 등지의 세계 시장 편입과 그에 따른 저임금 노동력 공급의 효과가 있다. 세계는 WTO 다자무역질서 아래 관세 장벽을 낮추고 미국이 마련한 무역 규범으로 흡수되었는데 특히 중국의 개혁개방, 미-중 수교는 중국을 저임금 노동력 공급처이자 세계 상품시장으로 편입시켰다. 이 기간, 중국은 외환보유고의 30%를 미국채로 채우는 등 미국채 주요 구매자로 등장했고 미국의 경상수지와 재정 적자는 이와 같은 국채 매각을 통한 달러 환류로 뒷받침되었다. 중국의 채권 매입에 따른 수익률 인하는 미국의 재정 부담을 낮추는 효과도 가졌다.
그러나 2008-09년 위기를 전후해 미국과 서구 주요국은 중국을 향해 비관세 장벽을 높이기 시작했고 트럼프 1기 행정부 이래 중국과의 무역 전쟁이 공식화되었다. 보호주의로의 회귀는 바이든 정부의 IRA(인플레이션감축법)이 그러했듯 민주당 정부에서도 이어지는 흐름이었다. 중국을 문제 삼는 바이든 정부의 경제 블록화 정책에 중국 정부는 미국 국채를 대량 매각하며 외환보유고에서 미국채 비중을 줄이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여기에 트럼프 2기의 ‘미국 우선주의’는 민주당이 추진하던 ‘가치와 규범 중심의 연대’보다 한결 더 진전된 경제 블록화로, 중국 뿐만 아니라 유럽·캐나다·멕시코 등 우방국과의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다.


트럼프 2기 정부가 극우 운동의 확산을 배경 삼아 강도 높은 이민 제한 정책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유럽, 일본 등 자본주의 주요국이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직면했고, 미국 역시 경제활동참가율이 위기 이전으로 회복되지 못한 채 노동력 부족이 만성화되는 가운데. 빈 일자리의 상당수는 이민자로 채워졌다. 미국의 이민자 노동 공급은 2020년 위기 이후 기울기가 더욱 가팔라지면서 경제활동인구 중 非미국 출생자 비중은 2019년 12월 17.1%에서 2024년 12월 19.0%로 늘었다.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에 제동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지만, 트럼프가 공화당의 지지를 확고히 확보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트럼프는 극우에 가까운 보수주의와 고립주의를 표방하는 프리덤코카스를 등에 업고 공화당 장악력을 확대하려 하지만, 프리덤코커스의 영향력은 아직 하원에 머무르고 있다. 프리덤코카스는 현재로서는 공화당을 대표하지 못하며, 상원 원내대표로 비-트럼프계인 존 튠 의원이 선출되면서 공화당 내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점에서 트럼프가 관세, 이민 정책을 꺼내든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의회를 설득하기 보다 공격하는 편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트럼프의 태도는 의회를 상대화하고 견제 받지 않는 행정 권력을 추구하는 포퓰리즘(더 나아가 파시즘)에 맞닿아 있다. 이때 의회의 동의를 얻지 않고 행정부의 재량에 의존할 수 있는 정책이 관세, 이민 정책이다. 크루그먼은 관세와 이민자 추방 정책이 다른 정책 수단보다 행정부의 재량에 좌우될 여지가 크다는 점을 들어 트럼프 시대 미국 자본주의가 ‘정실(crony) 자본주의’로 흐를 것으로 우려한다. 일론 머스크로 대표되듯, 특정 기업이 행정부와 밀접히 결합하고 정부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도 심각한 문제다.
정리하면, 우리는 지난 40년의 추세와 다른 인플레이션 압력에 마주하게 될 것 같다. 장기금리 추세 역시 2020년 위기 이전과는 다른 방향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트럼프가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으나 경기 침체 징후가 뚜렷하지 않은데다 관세 장벽에 따른 혼란으로 연준은 금리 인하를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올해 연준의 기준 금리 인하는 소폭으로 이루어지거나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각국이 이민을 제한하고 관세를 높이며 경제·안보 블록화를 추구하는 세계 자본주의는 1929년 대공황 이후와 흡사하다. 100년 전 블록 경제의 결과는 파시즘 정권의 탄생과 세계 대전이었다.
3. 한국
2024년 한국 경제 성장률은 잠정 2.0%로 집계되었다. 1분기 1.3% 성장을 제외하면 2분기 –0.2%, 3, 4분기 0.1%의 저조한 성장을 보였다.
유럽, 일본에서도 부진이 이어지고 있으나, 한국의 경제 부진이 더욱 도드라진다. OECD가 추정한 한국 GDP갭률1은 2020년 이래 줄곧 마이너스였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 수준으로 낮아졌는데 수년 째 실질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한 것은 COVID-19 대응으로 재정정책 대신 유동성 공급 정책을 펼친 문재인 정부, 그 뒤를 이어 감세와 재정 긴축에 앞장선 윤석열 정부의 합작품이다.

2024년 총세출은 529.5조 원으로 전년에 비해서는 29조 원 증가했지만 여전히 2022년 수준에 미치지 못하며, GDP 성장률과 물가인상률을 반영하면 실질 총세출로는 규모가 감소한 것이다. GDP 정부 기여도 역시 0.4%p에 머물렀다.

2024년 국세 수입은 336.5조 원으로 예산(367.3조 원) 대비 30.8조 원이 덜 걷혔다. 2023년, 2024년에 덜 걷힌 세금을 합치면 총 –87.2조 원에 이른다. 전체 내국세 중에서는 법인세가 가장 많이 줄었다. 2022년에 103.6조 원 걷혔던 법인세는 2024년에는 62.5조 원만 걷혔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소득세도 감소했지만 그 감소폭은 법인세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모든 소득 계층이 나눠서 부담하는 부가가치세는 소폭 증가했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감세는 법인 감세에 초점이 맞춰진 초부자감세였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긴축 정책은 노동자에게는 임금 감소로 돌아왔다. 최근 5년 간 노동자 임금 상승률은 경제성장률에 미치지 못했고 심지어 2022년부터 2024년까지는 실질임금이 감소하거나 제자리 걸음이었다. 실질임금 하락은 내수 감소로 이어졌다. 국민계정 민간소비 성장률은 2022년 4.2%에서 2023년 1.8%, 2024년 1.1%로 하락했다.

고용에 있어서도 전체 고용률은 69%대에서 등락하였으나, 질 낮은 일자리는 늘어난 반면 전일제 일자리 취업은 감소했다. 동아일보가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주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 비중은 2020년 5.1%에서 2024년 6.2%로 증가했다. 반면 전일제 노동자는 2020년 76.3%에서 2024년 74.8%로 감소했다. 특히 20, 30대 취업자 중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 수가 34만4천명에서 41만6천명으로 크게 늘었다.
2024년에 경상수지와 수출이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수출 증대보다는 수입이 감소한 결과다. 2024년 상품 수출은 6,962억 달러였고 수입은 5,961억 달러다. 수출액은 2022년 비해 1.9억 달러 증가한 데 그쳐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실질 수출액은 감소한 수준이다. 반면 수입액은 2022년에 비해 826억 달러가 줄었다. 실질임금 감소, 내수 부진의 결과다.
경상수지 흑자 990억 달러 중 투자소득수지 흑자가 286억 달러였다. 해외(특히 미국) 자산시장의 호황이 투자소득 흑자를 이끌었다. 대외금융자산은 2024년 3분기말 기준 2조 5,135억 달러로 늘었고 순대외금융자산도 9,778억 달러였다. 투자소득수지 흑자액은 2021년과 2023년에 전년 대비 각각 42.2%, 32.7% 급증하는 등 최근 5년 간 108.4% 증가했다.



한국사회의 쟁점
- 극우 대중운동의 성장
윤석열, 군 수뇌부가 구속 수사 중이지만 이들의 쿠데타를 실패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윤석열, 김용현 등 12월 3일 쿠데타를 주도한 무리의 입장에서는 실패일지 모르나, 우리 사회에서 ‘계엄’을 선택지 중 하나로 만들었다-심지어 계엄을 적극 지지할 사람도 적게 잡아 10%를 넘는다-는 사실 만으로도 12월 3일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충격이 크다. 윤석열 및 일당에게는 자신의 쿠데타를 지지할 세력이 상당하다는 믿음이 있었고, 우리는 그 믿음이 현실에 부합했거나 부합해 가고 있음을 확인 중이다. 12.3 내란 이후 윤석열이 내놓은 수 차례 담화와 서신 등은 모두 극우 세력을 청자로 삼고 이들에게 ‘물리적’ 결집을 하라는 선동이었다. 만약 현 여론 지형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된다면 실패를 장담할 수 있을까?
극우 대중운동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전히 양지에 서게 되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로버트 팩스턴은 파시즘을 “윤리적․법적인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로 규정하며 그 전개를 몇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자본주의의 위기, 민주주의의 실패로 기존 정치제도의 역량으로 해결할 수 없는 긴장이 야기되며 파시즘 운동이 탄생한다. 이어 파시즘 운동은 정치 제도에 진입하여 뿌리내리고 군, 경찰, 사법부 등 엘리트층과의 공조를 통해 집권까지 이어진다. 이후 파시즘 정당이 국가 기구를 본 딴 ‘동형 기구’로 만든 ‘특권 국가’와 ‘표준 국가’가 협력과 갈등 속에 공존하는 ‘이중 국가’ 상태가 된다. 마지막으로 파시즘 정권은 국민과의 약속을 실현하겠다며 ‘영구혁명’의 인상을 만드는 급진화와 보수적 정치세력으로의 정상화 사이에서 동요한다. 한국에서는 파시즘 운동이 정치 제도에 진입하여 뿌리 내린 2단계까지 나아갔고, 지배계급과의 공조를 통한 집권도 가능성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신진욱은 민주화 이후 극우의 확장을 4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1) 초기적 조직화: 1987~1989년 사이 자유총연맹, 바르게살기운동본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창립, 2) 대규모 조직화: 김대중, 노무현 정권 기 뉴라이트 탄생과 조직화, 3) 극우의 대중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자발적 시민 참여 증가, 4) 극우의 주류화·권력화: 윤석열 정권 기. 2016-17 촛불과 박근혜 탄핵은 역설적으로 극우세력이 자발적으로 동원된 대중을 조직화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들은 매 주말 대중집회를 개최하며 조직을 다졌고 동시에 (영향력의 크기와 별개로) 정치세력 일원으로 사회적 승인을 얻었다. 이들이 성장세가 가팔라진 것은 2019년 무렵이다. 신진욱은 조-미 하노이 회담 결렬이 계기였다고 분석하지만, 그보다는 조국 사태가 변곡점이었다고 진단하는 편이 타당해 보인다. 2022년 총선에서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전광훈 세력은 국민의힘 당원 가입에 나섰고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특정 최고위원 당선을 지원하는 영향력을 행사했다.
국민의힘의 우경화가 심각한 수준이지만 아직 국민의힘과 자발적으로 동원된 극우세력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오히려 국민의힘의 문제는 이념이라 할 만한 게 남아 있지 않다는데 있다. 12.3 쿠데타 이후 자력으로 정치적 생존을 보장받기 어려웠던 국민의힘 주류는 극우 대중운동과 적극적으로 밀착했다. 일정 국면 종료 이후 국민의힘이 극우 대중운동과 거리를 두기 위해 치를 대가는 상당히 클 것이며 어쩌면 분리하지 않은 채 집권을 위해 공조하는 3단계로 이어질 수도 있다. 국민의힘을 극우세력과 동일시하며 대응할수록 극우세력이 수령 할 대가가 커질 것이라는 역설이 우려된다.
극우 대중운동이 성장한 배경에는 경제적 위기가 놓여 있다. 그러나 경제적 좌절을 겪은 저소득·저학력층이 극우화되기 쉽다는 식의 일각의 진단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한국 극우 세력의 성장에 담론적 성격이 강하다는 진단도 객관적 토대를 상대화하는 접근이다. 직면해야 할 문제는 이미 오래전 대두된 ‘장기 저성장’이다. 다른 주요국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경제는 잠재성장률이 1% 후반대로 낮아져 이미 2% 성장을 담보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 소유자 계급의 (지대 소득, 불로소득을 포함한)자본소득을 보호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게다가 사회 각 계층의 일정한 세력화로 그들의 경제적 분배를 조정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성장이 없어도 자본소득은 유지될 때, 각 개인이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지대 수익 추구 동참이다. 그것이 한국에 만연한 주식, 코인, 부동산 열풍과 ‘공정성’(입직에 따른 지대 소득 보장) 요구다2.
서울서부지방법원 건조물침입 현행범으로 연행되었던 사람의 수기가 화제가 되었다. 그는 ‘민주’와 ‘공화’를 분리하며, 민주적 권력 아래 공화를 위협하는 정책과 입법이 시행되었고, 개인에게 성취 대신 의존을 종용했다고 주장한다. ‘자유’와 ‘민주’를 대립시키는 기존의 도식과 달리 ‘민주’와 ‘공화’를 대립시킨 점이 의미심장하다. 1987년 헌법으로 성립된 민주주의는 절차적 정당성을 얻는 형식이 그 한계였고, ‘민주’는 ‘자유’로 흡수되어 버렸다. 성장이 멈춰갈수록 (‘민주’의 외피를 쓴) ‘자유’로는 이해조정이 불가능한 상황에 마주했음을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체감하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상위 계층의 지대 추구에 관여하지 않으며 고착을 지지하는 제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와 조국의 ‘위선’은 그 상징이었다. 극우 대중운동이 파산을 맞이한 ‘자유’ 대신 ‘공화’ 또는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사회주의’를 내걸었듯) 진보 운동의 것으로 여겨지던 이념‧가치를 내세울 가능성도 진지하게 대비해야 한다. ‘복지 쇼비니즘’은 이미 오래된 개념이다.
우리는 저성장을 진지하게 직면해야 한다. 자본 성장의 물질적 한계로 누가(설사 운동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저성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경제 성장을 마르크스적 의미로 단순화하면 결국 총노동시간 증가다3. 그러나 세계 노동시장 확대는 한계에 부딪혔고 블록화와 보호주의로 오히려 축소될 상황이다. 한국은 낮은 출산율에 인구(특히 생산인구)도 감소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지대 추구’와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지대 추구자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 할 이념이 무엇인지 답해야 한다. 여기에서 ‘민주주의’는 대답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엄밀하게는 ‘민주주의’는 이념이 아닌 제도(또는 정체(政體))이고, 전후 서구 민주주의를 뒷받침한 이념은 ‘자유주의(케인스주의)’였다.
극우 대중운동의 조직적 기반인 개신교 교회의 역할도 주목해야 한다. 극우 대중집회에 눈에 띄게 늘어난 20-30대 참여자 중 다수는 어린 시절부터 개신교 교회에 출석한 신도로 알려져 있다. 보수 개신교계 교회는 건물, 관계망, 노하우 등 유‧무형의 자산을 가진 극우 대중운동의 진지다. 교회가 갖는 이데올로기적 기구로서의 역할은 담론 형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중요한 교회의 물질적 역할은 국가가 채우지 못하는 아이, 노인, 장애 돌봄 공백을 담당해온 데 있다. 교회는 국가가 보호하지 못하는 교인의 삶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테두리가 되어왔고, 그 안에서 교회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적을 향한 공포 담론이 유통됐다. 신자유주의 국가의 돌봄 포기와 반이민, 반퀴어 운동의 연결을 눈여겨 봐야 한다.
- 승자독식 정치체제의 위기
직선제 개헌으로 탄생한 제6공화국 헌법의 요체는 국가 원수와 행정 수반을 겸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주적 외양과는 반대로, 대통령에게는 의회에 비해 훨씬 강력한 권력이 부여되고 그 정당성이 보장된다. 수십 번의 거부권을 행사하며 의회를 부정한 대통령도 정부 곳곳에 자신의 사람을 채워 넣고 시행령을 통해 국정을 운영할 수 있었다. 국회와 대법원이 추천한 헌법재판관이 대통령의 손을 거쳐 임명되어야 하기에 발생한 최근의 혼란상에서도 현행 헌법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는 이유가 확인된다.
또한 대통령제는 선거 승자에게 모든 행정권력을 독점시키는 단순다수제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큰 판에서 한 번 이기면 5년 동안 막강한 권력을 획득하는 시스템에서 지지층을 결집시켜 상대를 제압하는데 몰두하는 진영 싸움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행정 권력의 승자독식 제도는 의회에서도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 운동사회는 정치개혁 과제로 비례성 확대를 주장해왔지만 애초 대통령제 아래에서 다당제가 가능한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사례도 적을뿐더러, 논리적으로도 대통령제 아래에서 의회 권력 분점은 쉽사리 수용되기 어려운 선택지다.
- 퇴진 광장과 일상의 잠잠함
이번 퇴진광장은 2016-17년 보다 깃발과 조끼가 환대받고 더 다양한 목소리가 모일 수 있었다는 평을 종종 접하고 있다. 우리에겐 20-30대 여성‧성소수자의 발언이 울려 퍼진 광장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우리에겐 일상이 12.3과 같았다는 이들의 호소에서 민주주의의 공백을 찾아 메울 과제가 있다.
그러나 이번 광장이 이전의 광장보다 더 열려 있다거나 새로운 주체가 등장했다는 평에 대해서는 보다 차분하게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광장은 언제나 대중의 자발성이 극대화되는 공간이었고 현실의 한계를 뛰어 넘는 비전이 제시되었으며 새로운 주체가 등장하곤 했다. 이번 광장이 이전의 광장들에 비해 특별히 더 자발성이 높았거나 상상력이 발휘되었거나 새로운 주체가 등장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은 아무리 용광로 같았던 광장도 마냥 지속되지는 않았으며 종료가 있었다는 경험이다. 매번 광장 이후 손에 잡히는 무엇을 남기지 못한 것은 광장의 열기와 성과를 거대 정당이 휩쓸어 가서라기 보다는 광장의 에너지가 본래 무형이어서라는 게 진실에 더 가까운 서술일 것 같다.
이번에도 우리는 광장의 열기보다 일상의 잠잠함에 좀 더 관심을 쏟아야 할 것 같다. 2016-17 광장과 이번 광장의 가장 큰 차이는 광장에 참여하지 않는 조합원‧시민 중 상당수가 광장과 자신을 굳이 연결 지으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쿠데타 세력에 맞서는 운동마저도 거대 양당의 진영 대립으로 치환해버리는 여론 지형이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광장에 나오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유를 기록해 놓는 것은 우리의 숙제다.
이번 퇴진 광장에서 민주노총의 한남동 집결 투쟁이 정세를 고양시키는 효과는 있었으나, 그것이 2016-17년 광장에서보다 더 큰 역할이었다고 평가할 수도 없다. 현재는 퇴진 광장의 주도 세력이 누구인지가 2016-17 보다 희미해졌고 대중에게 민주노총은 노동자계급의 대표로서가 아니라 투쟁 경험이 많은 여러 ‘단체’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대중투쟁을 주도하는 주체가 분명하지 않을 때 퇴진 이후 사회의 재구성은 기존 정치질서 내부로 수렴될 것이다. 이 때 광장이 포퓰리즘의 재료로 활용당할 가능성이 높다. 운동사회는 이를 대비하며 새로운 사회 방향을 보다 첨예하게 다듬는 데 보다 집중해야 한다.
- 삼성전자와 반도체 산업 위기
30년 간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1위를 유지하던 삼성전자는 AI산업에 쓰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양산에 실패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주력 생산품인 D-ram도 수율에 문제를 겪고 있으며, 최근에는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내외에서 쏟아지고 있다. 이미 2019년에 D-ram 설계 결함으로 8조 원 대 리콜이 있었다. 최근에는 수율 문제로 삼성전자는 최신 스마트폰 모델인 갤럭시 S25에 자사 메모리를 사용하지 못하고 경쟁사인 Micron 메모리를 탑재했다. 파운드리 사업부는 TSMC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율을 보이며 수주에 실패하고 있으며, 시스템LSI 사업부가 설계한 엑시노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성능과 수율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자사 스마트폰 갤럭시 S25 모델에 탑재되지 못했다. 파운드리 사업부와 시스템LSI 사업부의 2024년 영업손실은 약 5조 1,800억 원이다.
삼성전자 위기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한국 족벌 경영체제의 산물이다. 삼성 그룹 전체가 이재용의 경영승계를 위해 회계 부정, 자료 은닉 등 비정상적 행위에 동원됐다. 이재용 지배체제가 완성된 후 족벌 내 기업들은 이재용 비위 맞추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자는 장기에 걸친 연구·개발 투자 대신 단기 성과 도출에 전념했고 설계 결함은 차세대 공정 전환을 꺼내 덮곤 했다. 결함 해결 없는 공정 전환이 누적될수록 수율은 낮아졌고 결국 HBM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게 되었다. 수탈적 원하청 관계도 위기의 원인이다. TSMC의 파운드리 사업은 원천기술을 가진 다수의 중소기업이 참여한 공급사슬로 이루어진다. 대만 GDP의 절반은 중소기업이 차지하며 TSMC도 중소기업으로 출발한 기업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삼성전자 등 재벌기업은 하청업체를 종속·지배하는 수탈적 관계를 맺기 때문에 공급망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이 원천기술을 확보하기란 어렵다. 이와 같은 독점과 지배력은 삼성전자의 위기를 한국 경제위기로 쉽게 전이시킨다. 위기의 원인을 도외시하고 삼성전자의 민원을 수용해 노동시간 유연화를 획책하려는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는 한국 경제의 중대한 위험 요인이다. 우리는 노동시간 유연화를 막고, 족벌 경영 체제 자체가 문제임을 지적해야 한다.
4. 2025년 전망과 과제
더불어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뀐다 해도 거시경제의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확장재정을 예고했지만 증세에는 뜻이 없다. 또한 반도체특별법 논란으로 드러나듯 노동을 희생시켜서라도 기업 민원을 적극적으로 해소하겠다는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실질임금 감소와 내수 부진은 쉽게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작년 제조업 가동률지수와 생산능력은 완만하게 상승했으나 하반기 들어 제조업 신규취업자 증가 속도가 감소했다. 더불어민주당 집권 시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침체로의 진입이 지연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외의 위험 요인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못하는 만큼 2% 내외의 저성장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는 전세계의 관세 장벽을 높이며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하는 현금 지원 정책은 증세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일회성 정책에 그칠 것이고 경기 부양 효과도 단기간에 머물 것이다. 오히려 증세 없는 현금 지원으로 공급을 초과하는 수요 진작이 이뤄진다면 그로 인해 발생할 반대급부를 우려해야 할 것이다. 전 세계에 트럼프 2기 미국의 관세 장벽이라는 골칫덩어리가 던져진 상황에서 공급을 초과하는 재화 수요 진작은 한국도 인플레이션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할 것이다.
미국의 경기가 양호한데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반이민 정책으로 금리 인하가 쉽지 않아져 한국 통화정책의 폭도 제약적이다. 경기 침체가 예견되어도 금융당국이 금리를 대폭 인하하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기 어려운 조건이다.
그나마 반도체 업사이클과 설비 투자는 올해 한국 경제의 악화를 완화할 것이다. 한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제조업은 재고가 줄면서 동시에 생산이 늘어나는 호황 사이클에 접어들었다. 2020~2022년까지 이루어진 설비투자로 지난해 생산능력이 크게 늘었고, 반도체 설비투자가 한국 제조업 설비투자 이끌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도체 설비투자가 증가했으며 호황 사이클인 올해에도 설비투자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은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에서 초래된 것인 만큼 삼성전자의 부진은 지속 될 전망이다.

과제
민주주의 전선의 앞에는 어떤 원리로 민주주의를 작동시킬 것인지가 먼저 세워져야 한다. 그 원리가 ‘공적인 것’의 강조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핵심적으로는 지대 추구자들과의 전선이다. 불로소득에 지지 않는 새 사회를 열자.
우리는 ‘저성장’ 자체를 수용하며 저성장이 장기화 될 때 사회를 지탱할 버팀목을 마련해야 한다. 그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지대 추구를 문제 삼고 양극화를 완화하는 제도다. 금융거래세, 자산 과세 등 불로소득 과세를 포함한 누진적 조세 제도 도입이 불가결하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증세 정책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국민의힘과 함께 금융투자소득, 가상자산 과세를 유예하거나 철회했다. 증세 없는 확장적 재정정책으로는 오랜 기간 축적된 불평등과 양극화를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는 확장재정과 증세를 동시에 요구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최소한 윤석열 정권의 감세부터 원상회복해야 한다.
좀 더 장기적으로는 ‘임금제’ 쟁점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 단순화하면 “각 개인에게 무엇을 기준으로 물질적 보상을 할지”라는 질문에 대한 운동진영, 특히 노동운동 나름의 답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자본주의 경제에 있어, 임금이 무엇에 대한 대가인지는 핵심적인 이데올로기 전장이다. 지대 추구에 맞서 호봉제를 우리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최선일까? 호봉제가 양극화의 원인이라는 진단은 잘못됐지만, 극단적 저출산 사회에서 생애주기 반영이라는 호봉제의 근거도 약해지고 있다. 호봉제의 물질적 토대도 빈약하다. 최소한, 근속보다 경력 보상을 요구하는 편이 더 정당하다. 임금제 연구와 제시가 필요하다.
앞으로 전개될 국면에서 민주당의 포퓰리즘과 우경화가 더 심하게 관철될 것이다. 운동 진영의 입장을 명확히 하여 쟁점을 형성해야 한다. 민주당의 성장 정책, 대통령제 보호, 위기 책임 전가가 주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Growth first”를 외치며 집권 후 성장률을 3~4%대로 회복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한국의 성장률 저하는 자본 축적 고도화, 생산인구감소 등 구조적 원인에서 비롯한다. 구조적 원인을 놓아둔 채 잠재성장률을 초과하는 성장을 달성하겠다는 선언은 대중을 향한 사기에 가깝다. 그 같은 선언은 그것이 불발되었을 때 한국 사회의 우경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위험이 크다.
개헌 논의를 미룬 채 탄핵 후 조기대선으로 넘어가자는 민주당의 태도는 쿠데타를 초래한 현 정치제도의 불안정성을 유지하자는 주장과 같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이 쿠데타를 기도했고 여전히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6공화국은 종언을 맞았다. 설사 탄핵이 인용된다 해도 우리는 대통령 개인의 선의에 공동체의 안전을 기대는 상황에 맞닥뜨려야 한다. 극우 대중운동의 성장세가 이렇게 가파른 상황에서, 5년 뒤 정치 지형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사회의 안전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 시키는 일은 중요한 전선이다.
극단적 폭력을 예방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개헌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개헌의 주요 방향은 (1) 대통령 권한 약화(혹은 폐지), (2) 의회 권한 강화와 비례성 확대, 소환제다. 많은 의제를 나열하여 헌법에 기입하려는 방식의 개헌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당면 과제로는 ‘대통령제’ 자체를 손보는 개헌에 초점을 맞추고, 더 나아가 7공화국을 명문화하는 개헌 운동을 장기 과제로 가져가자.
삼성전자 실적 부진과 반도체 산업 위기의 이유를 노동 투입 부족에서 찾는 자본과 더불어민주당의 반동에도 맞서야 한다. 여기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구조적 문제는 놓아둔 채 ‘노동자 갈아 넣기’를 대책으로 제시하는 형편이다. 이재용의 삼성 재벌 지배 자체가 삼성전자 위기의 원인임을 지목하고 위기의 책임을 사회에 전가하려는 시도에 맞서자.
- GDP갭 = 실질GDP-잠재GDP ↩︎
- 물론 이 역시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고, 자본주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20세기 초 지대 추구 자본주의는 ‘독점’, ‘금융자본’, ‘제국주의’로 개념화되었다. 1980년대 이후 자본 소득 보호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 ‘금융세계화’ 등으로 개념화되었다. 최근 브렛 크리스토퍼스 등은 지대 추구적 자본주의를 “rentier capitalism”로 개념화한다. 필자는 현시점에서는 지대 추구 행위가 사회구성원 전체에게로 확대된 만큼 지대 자본주의 또는 불로소득 자본주의가 좀 더 직관적인 용어라고 본다. ↩︎
- Y ≡ μ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