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부터 전북노동연대 강령
야만을 넘어 반자본주의로
1%대 99%로 대비되는 불평등의 사회, 노예제․강제노동․여성의 예속․제국주의 전쟁 등 이전 계급사회의 야만을 더 큰 규모로 조장해내는 사회, 생태파괴․핵으로 미래 세대의 삶조차도 위협받고 있는 극단의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황홀한 네온사인 아래 신발조차 신지 않은 노숙인,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세계의 국지적 전쟁 등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 되어 그다지 충격적이지도 않다. 만성적인 실업 및 비정규직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이 되어 내가 아니더라도 내 주변의 누구는 필연적으로 고통 받고 있다. 오늘날 분단의 질곡으로 노동자계급형성이 더딘 남한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는 이런 현실이 더욱 가혹하게 다가오고 있다.
이는 한시기의 특수한 상황이 아닌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모순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이 모순이 야만과 파국을 증폭시키고 있다. 자본주의는 발전하면 할수록 빈곤이 확대 심화되며,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간의 모순이 첨예화 된다. 그 결과 우리는 1930년 대공황보다 더 큰 규모로 몰려오는 경제위기를 목도하고 있다.
기아와 전쟁이라는 흘러간 흑백사진이 현실이 되고 있는 지금, 우리의 각오는 남다르다. 우리는 현재의 위기 속에서 다시금 노동해방·여성해방·인간해방의 기치를 걸고, 변혁적 운동의 유산을 대안으로 만들고자 한다.
변혁적 운동으로 인간해방의 세상으로
90년대 소련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우리 운동은 변혁적 목표를 상실했다.
그동안 우리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각자의 대중공간에서, 각자의 현장조직에서 활동을 전개하였지만, 오늘 우리에게 남은 것은 현장의 조합주의·의회주의·개량주의의 득세에 따른 투쟁력의 약화와 사회변혁적 전망의 상실뿐이다. 운동의 변혁적 전망이 부재한 틈새를 파고든 조합주의와 개량주의는 운동세력을 현실이익을 쫓는 이익집단으로 전락시킴과 동시에 정치운동의 영역에서 대리주의와 의회주의를 불러왔다. 노동자의 자주적인 조직과 정치조직의 무력화는 사회운동의 무력화로 이어져, 위기는 심화됨에도 자본을 향한 대중적 공격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동운동은 노조권력 중심성에서 벗어나 일상적 기층 민중과의 연대의 강화를 통해 반자본주의 전선을 전면화해야 한다. 또한, 변혁적 전망을 다시금 올곧게 세워내기 위해 현장 활동가들이 지역에서 함께하고, 전국적 연대를 창출해야 하며, 이를 위한 사회운동의 확대․강화에도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자본을 넘어 새로운 대안을 만드는 운동이야말로 인류를 파멸로부터 구해내는 것이다. 반자본의 기치아래 노동해방·여성해방·인간해방의 새로운 대오를 갖추자.
현장으로부터 지역으로부터 학습하고 실천하며
다시 출발하자.
그간 대부분의 운동이 실패했다. 정파운동도 정당운동도 우리의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이 되지 못하고 동시대의 오류를 공유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위기를 증폭시키는 기제로도 작용하고 있다.
이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운동의 원칙인 ‘아래로부터 대중적 관점에서’를 주창한다. 바로 이것이 지역운동에 복무하는 첫길이다. 지역적 차원에서 연대하고 논의하며 학습하고 실천하자. 좌우 정파를 떠나 지역의 동지들이여, 현재의 운동적 위기 상황에 응답하라.
변혁적 관점 하나만 일치한다면 그 이후는 동지들이 결정한다.
노동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투쟁하고, 불안정노동을 끝장낸다.
자본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계급에게 전가시키기 위한 대응으로 노동의 불안정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늘어났고, 상시적인 고용불안은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과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노동자 단결을 확대하기 위해 정리해고를 막아내고, 정규직/비정규직의 분할을 철폐하는 투쟁을 전개한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야간노동을 철폐하기 위해 투쟁한다.
자본은 저임금을 강제하고, 노동자가 임금을 위해 장시간노동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자본은 효율성을 위해 노동시간을 자유롭게 재편하려 하지만 노동자는 단순한 상품이 아닌 생명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노동시간의 재편은 노동자의 삶을 뒤트는 것이다. 특히 야간노동은 노동자의 가족, 교우, 취미를 비롯한 사회적 관계마저 뒤틀고 노동자의 건강을 파괴하므로 극단적으로 비인간적이다.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행복한 삶과 건강한 일터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다.
노동자의 자주적인 조직인 민주노조를 확대/강화한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자본주의에 맞서기 위한 기초적인 조직이다. 정권과 자본은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동법을 개악하는 등 다양한 공세를 펼치고 있으며, 이에 맞서 노동조합의 활동을 지켜내고 확대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비정규직, 중소영세 사업장, 이주 노동자는 한층 더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하며 노동조합 조직율도 낮다. 이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할 수 있도록 조직한다.
국경/민족을 넘어 전 세계 노동자계급과 연대한다.
자본이 세계화되는 가운데 초국적자본이 제 3세계의 값싼 노동력을 초과착취하면서 국가 간 빈부격차는 확대되고 있고, 생산자본이 국경을 넘나들어 전 세계에서 노동의 불안정화는 심화된다. 자본은 집중의 정도를 고도화시키면서 세계 곳곳에서 인수합병, 구조조정을 벌이며 노동자계급을 약탈하고 있다. 이에 더해 일국의 통제를 받지 않는 금융자본은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위기를 증폭시킨다. 이렇게 세계화된 착취와 억압에 맞서기 위해 전 세계 노동자계급이 연대하여 투쟁해야 한다.
생태
자본의 이익을 위해 생태를 파괴하는 개발사업을 막아낸다.
인간과 자연은 독자적으로 발전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유기적인 관계로 인간은 생태의 일부이다. 자본주의는 현 세대 소수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생태를 파괴하면서, 생태가 파괴되는 데 따르는 위험과 피해는 미래 세대를 포함한 다수 노동자계급에게 부담시킨다.
개발이라는 허울을 쓴 대규모 토목 사업 또한 자본의 이익을 위해 이루어지며, 그 땅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원주민을 쫓아내고 있다. 전북지역은 그동안 새만금사업을 비롯해 끊임없이 대규모 토목사업이 추진되면서 지역공동체가 파괴되고 주민생존권을 박탈당하는 아픔을 경험했다.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파괴하는 생태파괴에 맞서 투쟁한다.
핵발전 정책 폐기하고 대안에너지 정책 수립을 위해 투쟁한다.
핵발전을 통해 얻는 에너지는 자본의 이익을 위해 쓰이지만, 그 에너지의 생산/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은 다수 민중에게 전가된다. 미래 세대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화석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안전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 비중을 늘리기 위해 투쟁한다.
농업의 자본 침탈을 극복하고 식량주권을 쟁취한다.
초국적자본은 비료, 농약, 종묘 산업을 독점하고서 농민들을 수탈하고 있다. 공장식 작물 재배는 농업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생산물의 안전성을 위협해 노동자 민중의 건강할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생존과 직결되는 식량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농업을 시장 원리에 방치하지 않고 식량주권을 쟁취한다.
평화
자본의 탐욕으로 수행되는 국가/민족 간 모든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위해 군비축소를 실현시킨다.
전쟁억지력은 평화가 아니다. 다른 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무장해야한다는 주장은 세상을 약육강식/적자생존으로 묘사하는 논리와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전쟁의 위협을 증가시킬 뿐이다. 군대의 축소는 자국의 군대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군대의 축소를 의미하고, 전 세계 노동자계급이 함께 투쟁해서 쟁취해야 한다. 평화는 평화를 준비할 때만 얻을 수 있다.
미국 및 제국주의 국가의 군사전략을 위해 진행되는 기지 건설과 확장에 맞서 싸운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군사적 팽창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자신의 군사전략을 관철시키기 위해 한반도 및 주변국가에 군사기지를 새로 건설하고 확장하려 들고 있다. 기지문제를 한반도에 국한해 협소하게 바라보지 않고 전 세계적인 시야를 견지하며 투쟁한다.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전환하고 한반도 평화체계를 구축한다.
남한에서 분단이라는 현실은 지배계급에 의해 군비확대를 위한 근거로 활용되어 왔고, 자본이 노동자운동을 불온시 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억압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남과 북이 적대적인 태도로 서로를 위협하는 데서 따르는 군사비용 및 병역동원의 부담은 노동자민중에게 절대적으로 전가되고 있다. 분단의 질곡에서 벗어나고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 남북 노동자민중이 주체가 되어 투쟁한다.
여성
여성운동을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 아닌 사회변혁운동의 일환으로 인식한다.
자본주의는 여성에게 대가 없는 가사노동과 의무화된 모성을 강요하며, 성폭력과 성매매 등 극단적인 폭력과 착취를 일삼는다. 이러한 극단적인 폭력은 자본의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더욱더 거세지고 있다. 따라서 자본의 세계화에 야만적 폭력과 착취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의 저항은 자본의 야만성과 폭력성에 대항하는 투쟁이며, 이는 곧 반자본주의·사회변혁적 운동이다.
여성권을 근본적으로 제기함으로 노동자 계급 내에 ‘성적차이’를 인식하도록 노력한다.
여성의 권리는 남성들의 권리와 대립되는 권리가 아니다.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은 반자본주의 투쟁 속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계급 내에 이러한 여성의 권리가 그들의 권리와 상충되는 것이 아닌 사회변혁적 운동의 일환임을 인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불어 노동자 계급 내에서 성적차이를 인식하도록 하여 노동자 계급 투쟁을 보다 풍부하고 대안적으로 만든다.
여성 노동의 지속적인 주변화와 불안정화를 막아내고, 노동권과 여성권의 결합에 힘쓴다.
자본의 세계화가 지속되면서 여성의 노동은 지속적으로 주변으로 밀려나고 불안정화 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중 여성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70%가 넘는 현실에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핵심이 되고 있다. 여성 노동의 주변화와 불안정화를 막아내는 투쟁이 현재 우리 운동의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이다. 이는 여성권과 노동권의 적극적인 결합과 실천을 통해서 가능하다.
교육
교육의 상품화· 시장화를 막아내고 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한다.
교육은 만인을 위한 지식을 생산하는 주요한 사회적 기제 중 하나이다. 그러나 자본은 교육까지도 잠식하여 전 인류의 발전을 위해 교육을 작동시키지 않고, 교육이 자본의 이윤을 최대로 산출하는데 복무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는 지식의 서열화를 심화시킴과 동시에 교육 세습이라는 기형적 질서를 창출하고 있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또한 부의 창출에 이바지 하는 산업 지식만 살아남고,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이 도태되는 현 세태는 더욱 용납할 수 없다. 교육은 평등하고 대안적 가치와 지식을 생산하는 전인적이고 총체적인 과정이며, 나아가 전 세계 민중들에게 봉사하는 공공적 기제이다. 우리는 노동, 생태, 여성, 평화 등 ‘대안적 사회가치’에 대한 지식을 확장하고 생산하는 교육을 만들어나간다.
청소년은 정치적 권리를 가진 주체이며, 우리는 이들의 권리 확장을 위해 나아간다.
근대 자본주의는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하며 관리/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기초적인 인권을 제한한다. 이러한 권리의 제한은 이 사회가 인권을 ‘보편적 권리’로 인식하지 않고, 차별과 배제를 용인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또한 자본의 이해와 맞물려 청소년 대다수는 정치적 권리의 행사를 통해 주체화되는 경험을 차단당한 채 성인/노동자가 된다. 자본주의에 맞서는 투쟁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쟁취와 함께 나아간다.
공공성
사회공공성을 확대하기 위해 투쟁한다.
물, 통신, 전기 및 에너지, 의료, 교육, 주택 등 삶을 지속하기 위해 필수적인 공공재가 점차 사유화되며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이들 공공재를 사유화하려는 시도에 맞서고 나아가 공공재의 영역을 확대해 나간다.